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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92467193 |
|---|---|
| 쪽수 | 330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서양철학
AI추천 이유
“우리에겐 이방인에 대한 의무가 있다”
한국 사회의 낯선 이방인들… 우리는 어떠한 준비가 돼 있는가?
지난해 8월 국내 체류 외국인이 100만 명을 돌파했다. 동아시아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한국을 찾아오고 있다. 이제 지하철에서, 버스 안에서 피부색이 다른 사람 한두 명쯤 보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과거,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우리가 해외로 나가던 시대로부터, 거꾸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시대다. ‘다문화 사회’란 말도 점차 쓰임이 많아진다. 그러나 오랫동안 ‘단일민족’을 ‘자부심’의 또 다른 표현으로 여겨왔던 우리들은 아직 이런 상황에 충분한 마음가짐이 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일부에서는 이 ‘이방인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경제적·심리적으로 위축되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들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 TV 뉴스에는 밀린 몇 달치 월급을 받으러 갔다가 악덕 고용주의 신고로 출입국 관리소 단속반에 잡힌 불법 체류자의 모습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불법 체류자의 모습이 동시에 나온다. 그래서 이 낯선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에는 이성보다는 동정심과 적대감 등의 감정이 우선하는 것 같다. 비단 피부색 다른 외국인만이 아니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는 전 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디아스포라를 낳았다.
아직 남측에 생존해 있는 혈육을 둔 북쪽 이산가족이나 독립운동가의 후손일 수도 있는 고려인, 재중동포(조선족), 재일 조선인, 새터민(탈북자) 등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가? 우리는 같은 민족인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동질감을 갖고 있을까?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이들과 맞닥뜨렸을 때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을지? 그렇다면 이들은 이방인일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전례 없이 민족과 인종, 국적, 종교, 그리고 경제 양극화에 따라 분화되는 사회 계층 등 온갖 경계가 복잡다단하게 겹겹이 줄을 치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점차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가고 있다.
이방인과 공존하는 글로벌 시대, 우리에게 무엇이 요구되는가?
냉전이 무너지고, 세계 경제의 자본 종속이 더욱 심화되면서 세계는 유가와 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미국발 금융 위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등 점차 유기적인 거대 단일 경제권으로 점점 압축돼 가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인터넷과 텔레비전 등의 정보통신 발달로 세계는 점점 조밀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지구촌 각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어딘가에 우리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개개인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일말의 책임의식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러한 물음이 이 책 『세계시민주의 - 이방인들의 세계를 위한 윤리학』의 지은이 콰메 앤터니 애피아(Kwame Anthony Appiah, 1954~)가 제기하는 문제다. 세계화의 촉진과 인터넷의 보급은 그동안 서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문화권의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제 그동안 이방인으로 여겨왔던 ‘낯선’ 사람들의 생활권이 손 내밀면 닿을 곳까지 다가와 있다.
애피아는 묻는다. “그러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가?” 애피아는 세계화(globalization)도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도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를 말한다. 세계시민주의란 모든 시민들이 (나라이든 민족이든) 하나의 ‘지역적’ 공동체에 속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점을 거부하고 ‘세계’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세계정부’의 필요성과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을 제시한 책인가? 그렇지 않다. 애피아가 정치 제도나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식의 세계시민주의적 이상을 설파하려는 게 아니다. 이방인이 더 이상 멀리 떨어져 사는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실체로 존재할 때, 우리가 사회의 일원이자 개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갖는 것이 좋을지를 논하는 것이다. 즉 애피아는 ‘글로벌’ 시대를 위한 ‘윤리학’의 원천이자 영감을 세계시민주의에서 찾고 있다.
①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기존 담론의 한계를 뛰어넘다
국가나 민족, 지역, 계급, 성, 인종의 경계를 넘어서자는 세계시민주의는 그동안 반(反)애국주의·반민족주의의 ‘혐의’를 받아왔다. 실제로 세계시민주의를 둘러싼 논점들은 인류에 대한 충성과 애국·애족 중의 양자택일과 같은 이분법적인 논쟁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학교 교육 문제로까지 번져, 과연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는 지역이나 국가보다도 인류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가르쳐야 하는가와 같이, 가치 부여의 우선권을 가지고도 논쟁이 있어왔다. 그런데 애피아가 그리는 세계시민주의는 우리에게 국가나 민족과 같은 소중한 가치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국가나 민족, 사회에 앞서 개인의 이성과 윤리적 태도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피아는 자신이 말한 ‘이방인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보장할 수 있는 건 현재의 민족국가 메커니즘이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으며, 그런 의무도 가족이나 민족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애피아의 세계시민주의는 ‘우리’와 ‘그들(이방인)’, 인류와 민족(혹은 국가), 세계와 지역 등의 “양 요소가 조화롭게 번영할 수 있는 윤리적 지대”(존 아이켄베리의 ‘추천사’ 중)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국가 체제나 제도적인 측면이 먼저 떠오를 법한 세계시민주의를 세계 윤리적 관점에서 전개해 나간 이 책은 이런 면에서 역설적으로 세계시민주의를 다룬 책들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뛰어난 글일 것이다. ‘환상에 지나지 않다’고까지 치부되던 세계시민주의에 실천적 가능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윤리적 실천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② 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를 꿈꾸다
애피아가 옹호하는 세계시민주의를 요약하자면 ‘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다. 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는 인간의 사회적·문화적 다양성과 차이에 가치를 둔다. 그러한 다양성과 차이가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적 제약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기꺼이 놔두고자 한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이방인과의 대화는 이방인을 이방인이 되게 한 요소, 즉 ‘차이’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지, 그 차이를 해소하여 서로 일치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이 “코르넬리우스여, 당신은 나의 아주 사소한 것을 매우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고대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말로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보편적인 인간의 삶뿐 아니라 특수한 삶의 가치까지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 이것이 애피아의 세계시민주의다.
③ 글로벌 시대에 요구되는 윤리학을 논하다
세계화의 결과이든 인터넷 보급에 따른 것이든,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방인을 만날 수 있고 이질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여전히 총을 겨누는 군사적 대치 상태인 지역도 있고, 종교 분쟁·민족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전례 없이 도덕적 가치와 문화의 충돌이 곳곳에서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존하는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모든 차이와 경계를 가로지르는 통찰적인 사고의 틀을 제시하여 세계 윤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이 책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책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세계시민주의”라는 주제목보다 “이방인들의 세계를 위한 윤리학”이라는 부제에 더 큰 방점을 찍어야 한다.
④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전제들을 들추어내다
애피아는 이방인과의 대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개인 혹은 집단의 정체성과 관련해 잘못 알고 있는 전제들을 하나씩 들춰낸다.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혹은 사회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고 있던 많은 것들이 실은 우연적이며 모순되기도 하고 오류를 담고 있거나 확인될 수 없는 것들임을 밝힌다. 그래서 작가이자 영미문학 전문가인 윌리엄 맥페런(William McPheron)은 이런 애피아를 “분석철학의 언어와 스타일로 소크라테스적 질문을 던진다”고 평하면서 “우리 시대의 포스트모던 소크라테스”라고 했다. 물론 애피아의 이런 문제 제기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세계상이 인종과 국가, 민족, 계급, 종교 등의 경계를 초월하여 이방인과의 공존을 모색하려는 데 장애가 되고 위협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⑤ 설득력과 매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독특한 대화체의 글
철학자 고(故)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1931~2007)는 이 책을 “설교적이기보다는 대화적인 성격을 지닌” 글이라고 평가했다. 애피아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아프리카 가나와 나이지리아 등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는 비교문화적인 예시와 지은이 개인의 생생한 경험이 담긴 일화들을, 어렵지 않은 철학적 논증과 함께 버무려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글을 전개해 나간다. 현학적이거나 학자연하지 않는 그의 글은 언뜻 온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때론 급진적이기도 하고 시종일관 긴장의 강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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