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VS 폄훼, 5·18을 둘러싼 논쟁의 재점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차마 공식적으로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 있었다. 바로 5·18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 5·18민주화운동 33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는 이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치르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일부 사이트와 종편 언론에서 ‘5·18 북한 개입설’을 제기했다. 문민정부 이후 역사적으로 고착화된 듯 했었던 5·18이 흔들리고 있었다. 급속히 진행됐던 이 논쟁은 5·18이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위협을 당하는 것처럼도 여겨졌다.
일대의 사건 이후(아직도 진행 중인), 5·18은 오랜 세월 잠재되어있던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5·18의 신성화와 폄훼, 두 가지 입장이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5·18은 1980년대 급진적인 사상과 실천의 원천이었고 심지어 한국적 혁명의 모델로 여겨졌으며, 1990년대에는 그와 같은 열망이 약화되긴 했어도 민주정부 수립을 전후로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제도화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5·18은 고색창연한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수준의 담론으로 토막이 났다. 더불어 ‘투사’나 ‘전사’와 같은 저항 주체의 모범으로 인식되었던 시민군은 국가폭력의 수동적인 피해자로 규정되거나, 정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비극적인 영웅들로 묘사되곤 한다. 그리고 반대로는 5·18 시민군의 구호가 북한의 군중대회 구호였으며, 북한의 통일 기회의 일환으로 남한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면 남침 땅굴 등으로 게릴라 부대를 침투시킬 계획하에, 5·18이 전두환 제거계획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진보 진영에서 합헌적 선거가 아니라 민중 봉기를 수단으로 5·18을 선동한 집권전략이었다는 논리가 이를 뒤따른다. 5·18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끌어낸 ‘민주화운동’이 아니었던가.
오늘날 5·18의 죽음 이면에 있는 것은 전반적인 사회운동의 무력화와 퇴조이다. 거칠게 돌이켜보자면, 1980년대 이른바 ‘민중운동’은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맞물려 1990년대 전문적인 엘리트 중심의 시민운동에게 밀려났다. 또한 한동안 페미니즘과 생태주의를 필두로 서구의 1968년 혁명을 모방하고 계승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시들고 있으며,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의 연계에 기초한 진보적 정당정치 모델은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민주노총의 위기로 파산 직전에 몰려 있다. 2002년 촛불시위 이후 얼마간 상승하던 사회운동의 흐름을 대표적으로 전유했던 노무현 정부는 대기업 권력을 제어하지 못하며 실추했고, 2008년 또 다시 엄청난 대중들이 참여한 촛불항쟁의 역량은 아직 현실화되지 못한 채 모호하게 잠재화되어 있다. 어쩌면 5·18의 또 다른 부활은 그것을 새롭게 반복하고 재현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성장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5·18의 새로운 개념화 “대중 봉기”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소명출판, 2013)는 5·18을 대중 봉기(insurrection of the masses)로 개념화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한다. 대중 봉기는 어떤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mass)를 이루고, 상상할 수 없던 행위를 발명하며 잡다한 목소리와 언어를 쏟아내고 비범한 자발성을 표출하는 시공간(time-space)을 창출한다. 이 봉기 과정에서 대중들은 대량의 인원수를 배경으로, ‘주어진 세상’이라고 알려진 상징 질서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구성한다. 아렌트 식으로 말하자면, 이 거대한 힘이야말로 사람들이 제휴하고 협력하며 만들어내는 정당한 권력(power, puissance)일 것이다. 5·18은 바로 이와 같은 대중 봉기이다. 1980년 5월에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힘을 합쳐 공수부대를 물리치고 항쟁공동체를 구성하며 ‘새로운 세상’을 체험했던 일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대중 봉기의 시공간이 지나가면 대중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텅 빈 거리에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소멸한 대중 봉기는 그것을 직접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 그리고 그 사건을 충실하게 반복하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시키며, 이것이 대중 봉기와 연속적인 새로운 사회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원천으로 작동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대중 봉기의 성취와 실패는 장기적으로 사회운동에 새로운 문제설정과 과제를 던져주고 그에 맞게 실천 형식을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1970년대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실현을 요구하는 재야·지식인 중심의 반독재민주화운동이 1980년대에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노학연대운동으로 돌변하고, 더구나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한국사회에 맑스주의가 부활한 것도 5·18 대중 봉기의 사후 효과였다.
말하자면 대중 봉기는 새로운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는 모태(matrix)이다. 이를 가설적으로 ‘대중 봉기 → 집단적 주체 형성 → 새로운 사회운동’이라는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한국사회운동사의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요컨대 사회운동이 성장하면서 저항 주체들을 조직해내고 이것이 대중 봉기로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우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대중 봉기가 먼저 일어나고, 이 사건의 영향으로 집단적 저항 주체들이 형성되어, 대중 봉기가 제시한 문제설정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도식이다. 예를 들어, 1960년 4·19혁명 이후 학생운동의 성장, 1970년 전태일의 분신에 이어진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 이후 재야·지식인의 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의 출현, 1980년 5·18광주항쟁 이후 전위적 노학연대운동의 부상,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대중적 민중운동과 노동자운동의 조직화, 1991년 5월 투쟁 이후 시민운동과 신사회운동(생태주의, 페미니즘), 1997년 민주노총 총파업 이후 진보정당운동 등등 가설적으로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대중 봉기는 안정적으로 보였던 사회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주체를 호명하고, 이 주체는 대중 봉기가 지향했던 새로운 세상의 꿈에 대한 응답으로 조직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한다. 2008년 촛불항쟁이 앞으로 어떤 집단적 주체를 구성하고 어떻게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이어질지는 사뭇 지켜볼 일이다. 이미 10대 청소년들의 정체성 변화에 주목하는 논의들도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과 그들의 봉기는 늘 폄하의 대상이었다. 자발성의 한계나 조직적 지도력의 부재를 지적하는 일은 대중 봉기를 평가하는 상투적인 관행이 된 지 오래이다. 5·18광주항쟁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우발적으로 갑작스럽게 역사의 무대 위에 뛰어오른 대중 봉기를 향해 ‘무엇인가 준비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미처 갖추지 못한 요소들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누락되는 것은 대중들이 무엇을 통해 상황을 인식하고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다시 말해서,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라고 묻기 전에, ‘지금 이곳’으로 내려와 눈높이를 맞추고 ‘봉기를 일으킨 대중들은 무엇으로 반역하는가?’라고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책에서 현대 맑스주의와 이론적 정신분석학을 참조해 이데올로기 개념을 새로 재구성하면서 답하고자 했던 주요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대중들은 지배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사회 모순을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며, 지배이데올로기에 내재되어 있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적 보편성을 현세에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효과를 남기는가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요구한다.
5·18은 계속된다
이 책은 5·18이라는 대중 봉기를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당연히 사유를 봉쇄하는 다른 길도 있다. 대중 봉기를 숭고한 대상(sublime object)으로 승화시켜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영웅들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5·18에 참여한 사람들은 출중한 영웅들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길거리에 나가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5·18을 신화로 격상시키면서 우리가 잊고 있던 진실이 있다. 영웅 신화는 오히려 오늘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5·18을 탈정치화하고 5·18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기는 데 기여한다. 이 책의 이론적 가설과 사유 실험들이 1980년 5월 광주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살려내고, 5·18의 정치적 현재성과 사회운동적 함의를 고민하도록 돕고 있다.
‘부패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다’라는 말이 있다. 현재의 우리가 그 공포에 너무 무감각해져버린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우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그들이 왜 공포에 분노했고, 흙먼지와 탄약냄새를 들이마시며 목청껏 외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만 한다. 5·18은 매듭지어진 ‘완료의 역사’가 아니다. 아직도 살아있고 ‘현재 진행 중인 과정’이다. 대중 봉기의 주체들이 피땀으로 갈망했던 ‘그것’이,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온전하게 이 땅에 정착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쉬쉬하며 침묵할 뿐이다.
광주, 그리고 5·18은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의 주체로서 그 장(場)을 펼쳐나가길 부르짖고 있다. 5월이 지나도 5·18은 끝나지 않았다. 이 6월,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를 통해 다시 새롭게 5·18을 사유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