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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36436537 |
|---|---|
| 쪽수 | 296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국내소설
AI추천 이유
여기 모여 있는 일곱개의 단편들은 저마다 자기 색을 갖기 위한 힘겨운 실험 속에서도, 예의 그 작가의 재기발랄한 유쾌함을 빠뜨리지 않는 풍성함을 안겨다 준다. 그 풍성함 속에는 농담도 있고, 사유도 있고, 그럴듯한 아포리즘도 있다.
은희경 상표라고 불릴만한 것도 있고, 그와는 다른 새로운 브렌드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게 참 잘 섞여 있다. 도가니탕이 아니라 야채 샐러드다. 봄냄새 물씬 풍기는 야채 샐러드의 푸릇한 색을 갖추고 있다.
이번 두번째 소설집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에서 작가는 인물에 대한 섬세한 심리묘사와 속도감있는 문체, 치밀한 구성이라는 자신만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유부남과의 관계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 여성이 사랑과 삶의 의미와 한계를 가늠하고 이로써 사랑의 쓸쓸한 이면을 이해하는 과정을 세밀화처럼 보여주는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은 작가의 득의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유부남은, 결혼이라는 제도의 이점에 스스로의 삶을 기대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권태를 느끼며 일탈욕을 갖는 우리 사회 소시민의 전형이다. 그런 유부남을 사랑하는 스물아홉살의 '나'는 결혼에 대한 허무감을 갖고 있지만 낙태수술 이후 그의 청혼을 받고 자신에게도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정서가 있음에 잠시 혼란을 느낀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이혼소동에 대해 하소연하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그의 여자이며 그의 아내의 연적이었다. 나는 그의 아내였다. 그고 나다, 나는."이란 깨달음은 '나'로 하여금 유부남과 떠나 홀로 서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표제작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역시 '이룰 수 없는 사랑' 내지 '결혼제도에 대한 허무감'으로 읽을 수 있다. 사랑하던 두 사람이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배다른 남매임을 알고 보이는 태도는 남녀 각기 상이하다.
자살하는 남자는 근친상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상적인 생각을 드러내나 그를 사랑하는 여성화자는 그런 사회적 통념에 굴하지 않고 남자가 죽은 후에도 그에 대한 사랑을 다짐한다. 이 두 작품은 결혼·가족제도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인생과 사회에 대한 대조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멍]과 [서정시대]가 있다. [멍]은 인생을 '서정적'으로 대하는 이들에 대해 드물게 작가가 공감을 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대학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화자를 내세워 작가는,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의 양육으로 지친 화자의 아내와, 한때 운동권이었지만 부랑자같이 쓸모없는 인생을 살다 간 대학동창 심영규의 아내 한현정의 삶 모두에 애정을 드러낸다.
반면 작가의 '자전소설'이란 이름이 붙기도 했던 [서정시대]는 인생을 진지하고 '서정적'으로 대했던 '나'가 첫사랑의 실패라는 경험을 통해, 냉혹한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농담'이라는 포즈를 취하며 영악해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뛰어난 두 작품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이중적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저자 은희경(殷熙耕)씨는 1959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등단한 그해 작가는 장편 [새의 선물]로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면서 일약 90년대 한국문학의 대표주자로 부상하였고, 1997년에는 첫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1996)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에는 중편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한국문단에서의 위치를 확고히했다.
삶이란 이해 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엉뚱한 방향으 로 빠져 들 수 있는, 어쩌면 원죄처럼 여러 운명의 가변성이 내재되어 있는 건 아닐까? 은희경의 책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어떻게 복합적 인 여성의 감성을 섬세하게, 보이지 않는 내면을 사진을 인화하듯 똑같 이 묘사 할 수 있을까 이다. 수학문제에 묶음으로 계산할 때처럼 한 묶음 두 묶음으로 굴곡 된 여러 삶을 독특하게 일품 요리해놓고, 때론 혼자만의 흡족한 냉소를 즐기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면 섬뜩하다 못해 닭살 돋듯이 소름 끼친다. 그럼에도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드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 예컨대 이 시대 의 불안한 여성의 의식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성의 몸부림, 약간은 상식을 뒤엎는 듯한 소재를 밀도 있게 그려나가는 점에 매료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작품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 은희경 고유의 삐딱한 시 선과 맞물린 허무주의와 그리고 아이를 낙태하는 모습이 늘 따라 다닌 다. 그녀의 세 번째 남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역시 그랬고,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에 실린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에서도 아 이를 뗀다. 작품의 주인공은 이런 행위를 통해 사랑의 도덕성과 부도덕 성, 즉 사랑의 의미와 한계라는 잣대를 저울질 해 본다. 아울러 우리 여 성들이 겪었을 상처가 어느 만큼인지 읽는 독자의 몫을 남겨놓는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상상을 통하여 삶의 다른 단면을 마음껏 그릴 수 있도록 해준 작가의 숨은 그림 찾기 솜씨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결혼 생활 10년이면 누구나 한번씩 권태를 느껴본 기억을 가지고 있을 거다. 이쯤이면 서로에게 약간의 신비감도 사라진 상태이고,때묻은 세월 을 거치면서 아내는 남편에 대해 밑바닥까지 안다고 어린애 취급을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40세 이후의 남자는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탓에 자기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인생의 연륜에 존경을 표하는 어린 여자에게서 인생의 사는 맛을 만끽하려고 한다. 이러는 과정에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이 고개 들 수도 있는 것이다. 기실 불륜이라고 외치는 사랑도 그들 나름대로는 정말 소중하고 진정 추하지 않는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드러내 놓고 밝히며 사랑할 수 없는 게 불륜 아니던가! 자기 남편으로부터 푸대접받는 여성일지언정 다른 남성에게 인기순위 1위라라 는 우스개를 빌지 않더라도 모르게 진행되는 만남에는 분명 말할 수 없 는 스릴과 매력이 숨어 있음에 틀림없다. 부도덕은 사랑하지 않아야 될 사랑을 시작했을 때 이미 시작된 일이다. 인연을 끊겠다는 사람일수록 마음 깊이에는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강 하다.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집착의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이 견뎌야 할 고독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술잔을 앞에 놓고 호들갑 감상을 즐길 것이 아니라 자리를 박차고 떠나 버려야 한다. 산다는 것은 언제나 미풍에 흔들리는 가지처럼 그런 흔들림의 연속일 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찾아오는 새로운 사랑에 부도덕이 무서워 그냥 저냥 지나친다면 그 또한 인생이 억울할 것 같은 느낌도 배제할 수 없 다. 그렇다고 흔쾌히 사로잡힐 성질도 아니고 보면 자기를 잘 다스리는 방법, 그리고 수양을 쌓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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