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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32034812 |
|---|---|
| 쪽수 | 328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국내소설
AI추천 이유
이 세계에서 끝끝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기적 같은 일에 대하여
한강 문학의 궤적을 지켜보는 기쁨
길 위에서, 가만히 매듭을 짓다
점 세 개를 이어 그린 깊은 선 하나
오늘의 한강을 있게 한 어제의 한강을 읽는다. 1993년 등단 이후 단단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줄곧 삶의 근원에 자리한 고독과 아픔을 살펴온 작가 한강, 그가 현재까지 출간한 소설집 전권(총 세 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재출간’이라는 무색무취한 단어보다, 빛깔도 판형도 하나하나 다른 소설집 세 권을 조심스레 이어 하나의 선 위에 두는 작업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스물서너 살 때의 작가가 1년 동안 휘몰아치듯 썼던 단편을 모은 것이 1995년 한강의 첫 소설집이자 통틀어 첫 책인 『여수의 사랑』이다. 5년 만에 출간된 두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에서 한강은 “흐르는 물과 같이 변화하는 과정이 바로 나라는 평범한 진리”를 만난 듯하다가, 이내 다시 묻는다. “이 한 편 한 편의 소설들을 썼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작가의 말」) 그리고 12년이 지나 세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을 펴냈다. 그 사이사이에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이 씌어졌다.
단편은 성냥 불꽃 같은 데가 있다.
먼저 불을 당기고, 그게 꺼질 때까지 온 힘으로 지켜본다.
그 순간들이 힘껏 내 등을 앞으로 떠밀어줬다.
―「작가의 말」(2012), 『노랑무늬영원』
돌아보아야 궤적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집 세 권이 출간되는 동안 한강 단편소설에서 변화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여수의 사랑』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갈망을 간절하게 드러내며, 떠나고, 버리고, 방황하고, 추락하는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들은 『내 여자의 열매』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세상과 서로를 서툴게 받아들이려다 어긋나버리고 상처 입는다. 그리고 『노랑무늬영원』에 이르러 재생의 의지와 절망 속에서 생명력은 더 강하게 타오른다. 존엄해진 존재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마침내 상대를 껴안으려 시도한다. 끝내 돌아가고야 말 어딘가이자, 잎맥을 밀어 올리는 이파리, 회복기에 피어난 꽃, ‘점을 잇는’ 작업 동안 오롯이 담아내고자 했던 자연스러운 변화와 흐름은 표지에 사용된 사진작가 이정진의 작품과 조화를 이룬다.
한편 변함없는 것은 한강의 치열한 물음이 아닐까.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며, 인간이라는 존재, 삶과 죽음, 이 세상에 대해서 스물한 편의 소설 내내 묻지만 필연적으로 답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파르스름한 불꽃 같은 그 물음 자체가, 물음에서 파생되는 고독의 열기와 세심한 슬픔이 작품 속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고 살아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변화했으나 변하지 않았으므로, 신중하게 소설들의 배치를 바꾸었고 몇몇 표현들을 손보았지만 두어야 할 것은 그대로 두었다.
앞서 “누구”를 묻던 『내 여자의 열매』 속 작가 자신의 물음에, 『노랑무늬영원』의 새로 씌어진 작가의 말을 이어본다. 그 궤적을 함께 되짚어보길 권한다. 누군가, 스무 해 남짓 홀로 써왔다. 한강은 여전히, 걷고 있다.
알고 있다. 이 소설들을 썼던 십이 년의 시간은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이 모든 문장들을 적어가고 있었던 그토록 생생한 나 자신도 다시 만날 수 없다. 그 사실이 상실로 느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작별의 말이 아니어야 하고, 나는 계속 쓰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니까.
―「작가의 말」(2018), 『노랑무늬영원』
삶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고단함을 섬세하게 살피며
존재의 상실과 방황을 그려낸 작가의 첫 책
『여수의 사랑』
작가의 첫 책이자 첫번째 소설집. 1995년에 출간된 『여수의 사랑』은 삶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고단함을 섬세하게 살피며 존재의 상실과 방황을 그려낸다. 이번 출간을 통해 소설 배치를 바꾸고 몇몇 표현을 다듬었다.
여수발 기차에 실려와 서울역에 버려진 자흔과 아내를 잃은 아버지가 자신과 동생을 데리고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정선(「여수의 사랑」),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인규(「질주」), 식물인간이 된 쌍둥이 동생의 삶까지 살아내야 하는 동걸(「야간열차」), 백치 같은 여동생을 버리고 고향에서 도망친 정환(「진달래 능선」) 그리고 집과 고향을 버리고 고아처럼 떠돌며 자신을 찾으려 애쓰는 영진과 인숙(「어둠의 사육제」). 여수는 어딘가 상처 입고 병든 이들이 마침내 다다를 서러운 마음의 이름이다. 운명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시선이 녹아 있는 일곱 편의 단편들에서 고독하고 고립된 등장인물들은 떠나고, 버리고, 방황하고, 추락한다. 죽음 가까이에서 존재의 살아 있음을 일깨우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않는 존재들이 차갑고도 뜨거운 여운을 남긴다.
한강 작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단연 채식주의자일 것이다.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날것의 느낌으로 표현한 그 강렬한 작품은 한강에게 맨부커상을 안겨다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수의 사랑에서 우리는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탄생하게 된 토양을 만날 수 있다. 여수라는 장소는 작품 속에서 이질적인 장소이다. 주인공에겐 어릴 적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한 비참한 사건과 그로 인해 더 이상 생각하기 싫은, 떨쳐내고 떠나고자 했던 장소였다. 반면 자흔에게는 지푸라기 같은 흔적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그리운 고향이었던 것이다. 어릴 적 고아원에서부터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도 잊지 않고자 부던히도 노력했던 고향. 결국 주인공도 자흔의 흔적을 따라 여수행 밤기차에 몸을 싣는다. 돌아온 고향의 잿빛 하늘은 주인공이 다시금 대면해야 할 트라우마를 나타내는듯 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악문 입술과 아련히 떠오르는 자흔의 웃음에서 이제는 마냥 회피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도 느껴진다. 여수(旅愁)의 사랑은 그렇게 여수(麗水)로의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여수의 사랑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작가가 인간의 상처를 이렇게나 깊이 파헤칠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이 소설 속 주인공 정선과 자흔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여수를 떠올립니다. 정선은 여수라는 이름만 들어도 트라우마가 떠오르지만, 자흔에게 여수는 유일하게 자신을 품어줄 고향 같은 곳이에요. 두 사람이 여수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이 묘사될 때마다 그들이 가진 상처의 깊이를 실감하게 됩니다. 단편 질주에서 동생을 잃고 방황하는 인규의 이야기는 상실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요. 복수를 통해서라도 동생의 죽음을 잊지 않으려 하는 인규의 처절한 마음은 읽는 사람도 무겁게 만들어 주죠. 작가는 인규가 질주를 통해 조금씩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상처가 주는 고독과 치유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한강 작가님의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문체 덕분에,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복잡한 감정들이 생생하게 다가왔어요. 책을 덮고 나서도 이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아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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