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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민음의 시 299)

  • 문정희
  • 민음사
  • 2022년 0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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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ISBN-13 : 9788937409196
쪽수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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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시를 낳을 때마다 다른 시인이 되고
태어난 시로 인해 또 다른 시인으로 변모하는
감응의 산파술, 영원히 완성되는 기념비


문정희 신작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가 민음의 시 299번으로 출간되었다. 『작가의 사랑』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은 시력 50년에 달하는 문정희의 기념비와도 같다. 타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기념비일 때 기념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품이자 영원한 기념을 가능케 하는 예술품이 된다. 시를 욕망하던 어린 시인이 시와 함께 살아가다 이제는 시로써 자유로워진 장대한 시간은 그야말로 기념비에 비견할 만하다.

 

목차

[목 차]

1부
나 잘 있니 13
겨울키스 14
비누 16
나는 내 앞에 앉았다 18
절벽 위의 키스 20
망각을 위하여 22
네가 준 향수 24
머리카락 26
탱고의 시 28
젊은 나에게 34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35

2부
투포환 선수 39
도착 41
나의 검투사 42
그녀, 엄마 43
부엉이 시인에 대한 기억 44
디자이너 Y 46
수상소감 48
시시 50
시인의 장례식 52
어디를 열어야 당신일까 53
어린 떠돌이 54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것은 무엇인가 56
눈송이 당신 58
인생 59
난징의 저녁 60
첫눈은 못질 소리로 온다 62
카페 단테 64
보고 싶은 사람 68
독립문을 지나며 69
내가 만든 나라 70

3부
벌집 75
내가 TV라면 76
예술가와 상 78
여자 작가 80
코레의 레전드를 생각하는 파리의 아침 82
타조 울음 84
국경 마을 내 친구들 86
모든 길에는 야생 개가 있다 88
폭염 90
냉혈 자궁 92
방독면 96
암탉읽기 98
두 사람 100
서원에 오른 여자 102
청와대 앞길 104
좋은 코 106
젖은 지폐 108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내 109
폭면 110
태풍 속의 공항 112
정크아트 114
나 버리기 116
나는 세계이다 118

4부
모른다 123
보석 잠자리가 있던 골목 124
슬픔은 헝겊이다 126
아도니스 128
해골 노래 130
야간 비행 132
잊어버렸다 134
알몸 뉴스 135
장사꾼 다이어리 136
초여름 신도시 138
펜과 깃털 139
꿩 140
떠날 때 141

작품 해설/ 최진석(문학평론가)
기념비의 시학

[본 문]

봄부터 가을까지 내가 한 일은
그동안 쓴 시들을 고치고 주무르다가
망가뜨린 일이다
시는 고칠수록 시로부터 도망쳤다
등 푸른 물고기떼 배 뒤집고 죽어 가듯이
생명이 빠져나갔다
-「망각을 위하여」 부분

요즘 내겐 슬픔이 없어
무엇으로 사랑을 하고 시를 쓰지?
슬픔? 그 귀한 것이 남아 있을 리 없지
창가에 걸어 두고 흐린 달처럼
조금씩 흐느끼며 살려고 했는데
슬픔이 더 이상 나를 안아 주질 않아
멍할 뿐이야
행복도 불행도 아니야
서양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 들었다 놓아
말하자면 폭망한 것 같아
-「망한 사랑 노래」 부분

다 만든 옷을 잘라 미완성을 만든다
그것이 그의 완성이다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그 언어만이 시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 Y」 부분

하지만 모르는 것투성이
그것이 얼마나 희망이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첫눈 같은 신비였는지
너와 나 사이의 악기였는지를
떠날 때 그때 간신히
소스라치듯이 알기는 할까
-「떠날 때」 부분

■ 해설에서
그는 시를 쓰지 않고, 시를 낳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항상 다른 시로 태어났다. 기이하게도, 그가 시를 낳을 적마다 그는 다른 시인이 되었고, 태어난 시로 인해 또 다른 시인으로 변모해 왔다. 이 과정을 나는 감응의 산파술이라 부르고 싶다. 언어가 지닌 논리나 사유의 법칙을 벗어나, 유랑의 자리마다 시인이 수용했던 감응을 문자의 힘으로 녹여내 발출하는 과정이 꼭 아이를 끌어내는 산파의 몸짓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기이하게도, 태어난 아이와 산모, 산파는 하나이다. 셋인 동시에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다수적 형상 속에 다시 또 분기해 가는 유-랑의 여정. 시인은 언제나 하나였지만 또한 둘이고, 셋이나 넷으로, 무수한 나와 너의 그들로 분열을 이어갈 것이다.
-최진석(문학평론가) / 해설에서

 

출판사 서평

■ 기념비의 시학
시인은 언제나 자기를 향한 기념비를 짓는 존재다. 세계의 외관을 서술하는 산문가와 달리, 타인의 작품을 해석하는 비평가와도 달리, 시인은 언제나 세계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읽고 타인의 작품을 통해 자기와 대면한다. 그것은 번뜩이는 지성의 철학적 성찰을 통해서도 아니고 계량된 수치를 열거하는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매번의 시선을 통해, 그리고 매번의 발화를 통해 늘 스스로에게 돌아가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하며 다른 삶을 찾아낸다. 그 반복 속에서 ‘나’라는 사건을 짓는다.

스무 번의 봄날을 지나
아니, 서른 번의 겨울을 지나
나는 내 앞에 앉았다
너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으니
늘 함께 숨 쉬었으니
나에게서 걸어 나와
다시 내 앞에 앉은 것이다
― 「나는 내 앞에 앉았다」 부분

■ 시는 ‘나’에게 건네는 대화
사랑은 그리움과 슬픔을 원료로 작동한다. 문정희 시작(詩作)의 추진체로서 그리움과 슬픔은 감상어린 비애의 관념이 아니다. 실존하는 타인, 이름 부를 수 있는 누군가를 향해 유행가 가사마냥 읊조린 노래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대상으로 자신에게 건네는 대화의 표현으로서 시는 직조되어 있다. 때문에 “당신은 그리움과 슬픔이 너무 많아”(「머리카락」)라고 되뇌는 것은 시인 자신이지만, 듣는 이 또한 시인 이외의 다른 이일 수 없다. 시인이 자신을 “고독의 혈족”(「희귀종」)이라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이니, 매번 사랑에 감응할 때마다 마주하는 것은 그 자신이고, 이 자신이라는 고독을 넘어설 수 없음에 비로소 시가 탄생한다. 문정희가 끝없는 반복으로 ‘나’와 만나고 대화하며 건넨 말들이 문정희의 시다.

나는 울다가 눈을 떴다
그래 이것이 네 운명이라면
그렇다면 이대로 절뚝이며 살아라
나 또한 헛짓을 하며 즐거웠다
나는 시들을 자유로이 놓아주었다
― 「망각을 위하여」 부분

■ 완성되지 못하기에 완성적인>
시인은 시와 자신, 자신과 또 다른 자신, 세계 사이의 무한한 분열을 목도한다. 분열의 세계에서 “정상”이라 불리는 척도란 있을 수 없으며 ‘나’의 정상상태 역시 존재할 수 없다. 비정상, 곧 규정 불가능한 운동과 흐름만이 세계와 나, 너, 모든 것의 원리이다. 따라서 문정희의 기념비는 고정되고 절대화된 어떤 무엇도 가능할 수 없음을 통찰하는 반(反)시학적 명명이다. 그렇게 시인은 줄지어 늘어선 기념비들에 무심히 등을 보인 채, 그 어떤 기념비도 최종적으로 완성될 수 없음을 확신하면서 다시 유랑에 나선다. “아무나 만졌지만 누구도 만지지 못”하는 기념비를 염원하면서.

나는 너와 다르다
오직 하나인 옷
다 만든 옷을 잘라 미완성을 만든다
그것이 그의 완성이다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그 언어만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중략)
아마 나는 여기까지 시인이다
― 「디자이너 Y」 부분

■ 추운 사랑의 노래
그리하여 지금 문정희의 시는 처음 만져 보는 추운 사랑을 긍정한다. 도착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만족하지도 않는 “시의 혈족”은 언제나 유랑 중이다. 유랑하는 그에게 나침반이 있다면 오직 고독과 미완성뿐이다. 고독과 미완성을 추진체로 움직이는 문정희의 시는 추운 사랑만이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임을 알려준다. 혼자이고, 그마저도 분열되며 새로운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이 사랑은 추워도 좋다. “직선으로 소리치고 싶”다고 말하는 시인은 말한다.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처음 만났는데
왜 이리 반갑지요
눈송이 당신
처음 만져보는데
무슨 사랑이 이리 추운가요
하지만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요
하늘이 쓴 위험한 경고문 같아요.
― 「눈송이 당신」 부분

 

저자 소개
저자 : 문정희
    문정희_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다산의 처녀』, 『나는 문이다』, 『응』, 『지금 장미를 따라』, 『작가의 사랑』 등 다수의 시집과 장시집을 비롯해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 등의 에세이집이 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청마문학상, 목월문학상과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스웨덴 하뤼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Cikada) 상을 수상했다.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14권의 시집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1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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