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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35654567 |
|---|---|
| 쪽수 | 397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동양철학
AI추천 이유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다시 꼼꼼히 정리하여 독자 앞에 내놓은 이 책에서도 저자는 철학이 결코 홀로 선 주체 자신만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됨의 과정을 걸어가는 지난한 여정임을 보여준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이 저자는 그리스 비극을 통해 주체와 타자의 문제를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과 접목하여 간결하면서도 미려한 문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그리스 비극이 결코 순수예술의 전형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리스 비극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정치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과 아크로폴리스로 상징되는 그리스 문화의 본질적 요소는 ‘자유인’들이 만들어낸 인류 최고의 향연이었으며, 그것은 곧 정치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공동체에서만 가능하다는 당연한 논리를 반영한다. ?오이디푸스 왕?의 시인 소포클레스가 페리클레스와 더불어 아테네를 이끌던 지도적인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점은 그리스 비극 작가들이 결코 사회, 정치적 활동에서 소외된 직업적 시인이 아니었음을 예증해준다. 따라서 그리스 비극은 직업적인 시인이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한 예술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인간의 미적 반성의 표현인 것이다. 결국 그리스 비극은 예술과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예술로서, 예술이 한갓 미적 가상을 창조하는 활동만이 아니라 동시에 공공적 현실을 형성하는 정치적 활동이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즉 저자는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예술창조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며, 그리스 비극이 바로 그 대표적인 전형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리스의 비극시인들은 예술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주제이다. 저자는 그리스 비극시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민주주의, 곧 자유로운 시민 공동체의 형성을 갈망했음을 주목한다. 그런데 왜 희극이면 더 좋았을텐데, ‘비극’을 통해 그것을 달성하려 했을까?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리스 비극은 처음부터 고통 그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숭고를 표현하고 그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예술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많은 경우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인 비극으로 나타나게 된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 비범한 고통 속에서만 인간 정신의 숭고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고통없이 위대한 정신의 경지에 도달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임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고통에 가까이 거주하지 않는 정신, 오직 행복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정신은 허영과 경박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괴테가 말했던 바, 한 번도 눈물과 함께 자기의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삶을 알 수 없다는 것처럼 고통이 항상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아무런 고통의 감수성 없이 정신이 지혜로워지고 깊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이 아니라는 것, 항상 존재의 불안과 죽음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곧 인간이 항상 고통과 슬픔 속에 던져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외면하고 어떻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저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치열한 질문이자 화두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우리 사회의 지적 환경을 탈바꿈시켰던 포스트모더니즘적 철학에 대해서 저자가 비판적 언급을 하는 이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즉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고통과 슬픔보다는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록 그것이 철학의 한 경향을 설명하고 인간의 한 측면을 새롭게 부각시켰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지나치게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거나 비하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강한 비판을 한다. 아울러 그것은 곧 자신만의 행복과 삶의 존재이유를 찾아가는 지극히 주체 지향적인 ―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는 자기 상처의 쓰라림에 대해서만 예민해질 뿐 타인의 눈물과 이웃의 슬픔에 점점 둔감해져 가는” ― 홀로주체성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나르시스의 꿈?에서 제시했던 바 서로주체성의 개념이 곧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자신의 내면에 받아들여 ‘내가 곧 네가 되어버리는 것’이라면, 현대철학의 주도적 경향은 차마 떨쳐버려서는 안되는 타자의 슬픔과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멸시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와 같이 너도 고통받고 슬픔 속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기의 좁은 방으로부터 벗어나 타인의 슬픔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타인의 슬픔에 참여함으로써만 우리는 타인과 진정으로 만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 비극은 이처럼 내가 편협한 이기심과 고립된 개별성에서 벗어나 열린 광장에서 타인과 만나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주체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인류 최고의 향연이었던 것이다. 편지글 형식을 통해 독자와 대화하고자 하는 저자는 철학이 슬픔의 의미와 고통의 존재이유를 묻는 것,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리고 가장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 땅에서 철학하는 자세가 무엇이며, 왜 우리가 진지한 철학적 물음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없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나 자신의 고통과 슬픔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보다 더 자유롭게 하는 진지한 과정이자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로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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