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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76414724 |
|---|---|
| 쪽수 | 314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시
AI추천 이유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교보문고에 갔다. 방학이 끝나지 않아서인지 발디딜 틈이 없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아이들의 책을 골라준 뒤, 가끔씩 들리곤 하던 시집 코너로 갔다. 평소에 시를 즐겨 읽는 편이라 시집 코너는 꼭 들르는 편이다. 그때 한 권이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베이지 색 바탕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시인의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이었다. 어딘가 먼 곳을 동경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 시선은 고등학교 때 처음 보았던 사진에서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시집의 제목은 "소유하지 않는 사랑"이었다. 대학교 때 많이 들었던 릴케의 애인, 루 살로메의 생각이 났다. 사랑에 소유가 없다니? 과연 릴케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유를 저버리고 나름의 자유를 구가하는 모습이란, 정녕 예술가의 참 모습이 아닐까? 나는 얼른 책을 집어들고 훑어보기 시작했다. 시집의 작은 제목은 '릴케의 가장 아름다운 시'였다. 이런 제목을 단 시집들이 옛날부터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는 별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한 권의 시집 분량치고는 제법 두툼한 그 시집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이 시집은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릴케의 시집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시집을 사서 어린 영혼처럼 가슴에 품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밤 늦은 시각부터 한 작품 한 작품씩 되새기면서 읽어내려갔다.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이 시인의 인생의 역정을 반영하듯이 유연하게 흘러갔다. 초기의 약간 어린 듯한 느낌에서부터 가을날의 시인의 단계와 신시집의 시인의 모습을 지나 만년의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까지 읽었을 때에는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 속에서 릴케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약간 어려운 시구절에는 역자의 친절한 주석이 달려 있어 내용을 이해하고 다음 구절로 넘어가고 또 시작품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 소절, 한 구절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이의 노력이 흔적이 역력하게 묻어나왔다. 릴케의 특징은 무엇보다 강한 이미지인데 그것이 우리말로 확연하게 눈앞에 떠오를 수 있도록 달콤하게 옮겨놓았으니 말이다. 두이노의 비가의 10편의 비가를 이렇게 한 권의 시집에 다 모아놓고 게다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의 중요 작품과 시작노트 및 헌시 그리고 미발표 원고까지 수록한 역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세심한 노력이 우리의 번역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는 일이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창밖의 비는 폭우로 바뀌었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비가 꼭 시의 물결을 이루어 고독에 젖은 도시의 골목을 누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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