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안의 모든 생각과 감정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복잡하게 얽힌 마음속 시스템을 이해하여
내 안의 모든 감정을 살리는 심리학
오늘날 인류의 미래를 논할 때 단연 뜨거운 화두는 인공지능(AI)이다. 사실 인공지능 연구의 시초는 심리학에 대한 실험적 접근이었으니, 상담학의 권위자로서 인간 심리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이 책의 저자 권수영(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학과 교수)도 그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2023년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의 급부상을 지켜보며 불현듯 떠올린 오래전 실험의 감회를 털어놓는다.
몇 년 전 ‘대화형 인공지능 비서’가 처음 세상에 공개된 당시, 저자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감정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 마음에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내가 지금 화가 많이 나 있어! 어떻게 하지?” 하지만 뒤이어 주고받은 대화는 실망스럽게도 기계적 해결책을 제시받는 정도에 그쳤다. 그때 받은 상처를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저자는 이번에 새로 출시된 챗GPT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답변의 속도나 내용은 이전에 비해 놀랍게 발전했지만, 질문한 사람의 진짜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 모습에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로 귀결되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깊숙이 이해하고 제대로 반응하기가 이토록 더디고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셀 수 없이 다양한 감정이 얽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인공지능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심리상담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부정적 감정’을 병리적으로만 이해하는 심리치료 기조에 아쉬움을 느끼던 차, 리처드 슈워츠가 제시한 ‘내면가족시스템(Internal Family System, IFS)’ 치료를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 내면가족시스템 이론에서는 불안, 분노, 무력감 등 개인에게 고통을 유발하므로 제거해야 할 감정으로 여겨지는 소위 ‘나쁜 감정’들이 사실 마음속 시스템 안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부담감을 곱씹으며 각오를 다지기도 하고, 슬픔이나 수치심을 함께 나누며 연대와 공감을 쌓기도 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사람의 마음은 수학적 계산으로 견적이 나오는 결괏값이 아니라, 감정과 생각과 감각 등 다양한 부분이 끊임없이 상보적인 작용을 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인간의 내면에 필요 없는 감정이란 없다. 다만 과도하게 기능하는 감정과 억압되는 감정이 생기면서, 시스템의 균형이 깨져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감정’들은 내면의 진짜 상처를 방어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신호로 여기고 그 감정의 근원을 천천히 탐색하면 진정한 치유를 향한 길이 열리게 된다.
감정도 시스템이다. 우리의 감정세계는 주연만 존재하는 연극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무수히 많다. 그중에는 조연도 꽤 있고, 그냥 스쳐가는 행인도 많다. 한 사람이 자주 등장하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고 하여 그 사람만 보게 되면 전체 연극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마음속 감정들이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데에 장애가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강렬한 감정만을 인식하게 되고, 안으로 숨겨진 감정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 37쪽 (1장_사람의 마음이 ‘시스템’이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덮치는 부정적 감정들,
이 감정들은 대체 왜 나를 찾아온 걸까?
‘내면가족시스템’의 구성원에는 어떤 감정들이 있을까? 앞서 말했듯 우리의 감정은 각각의 소인격체로 기능하며, 강하게 자주 표출되는 ‘강경파’와 내면 깊숙이 숨은 ‘온건파’로 나뉜다. 우리 마음속 불안, 분노, 슬픔 등 수많은 감정은 가족처럼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는 감정 시스템에서 제 나름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감정은 없다. 가족 중 문제아로 규정된 구성원이 있다고 해서 그 구성원이 쓸모없는 존재인 것은 아니듯, 일견 필요 없어 보이는 감정들도 마음속 시스템의 필수 구성원이다. 더 깊게 살펴보면, 이들은 오히려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문제를 끌어안고 홀로 감내 중인 구성원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자신의 내면에 어떠한 불편함이 감지되었을 때 그 불편한 감정을 무조건 제거하려 들면 안 된다. 내면 시스템의 작동원리, 그리고 그 시스템 안 구성원의 속사정을 제대로 파악해야 내면 치유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온건파 감정은 왜 자꾸 숨어드는 걸까? 온건파 감정은 겁이 많다. 나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 알려지면 자기 자신에게 큰 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서 아예 존재를 숨긴다. 외로울수록 더 크게 웃고, 창피할수록 더 강하게 역정을 내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온건파 감정 수호를 위한 방어 전략이다. 온건파 감정이 드러날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강경파 감정이 대신 앞으로 나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62쪽 (2장_마음에도 내시경 검사가 필요하다)
슈워츠는 내면에 감춰진 ‘유배자’ 감정을 방어하는 감정으로, 평소 끊임없이 기능하며 마음속 시스템을 관리하는 ‘매니저’와 유배자 감정이 노출될 위기에 처했을 때 급하게 등장하는 ‘구급대’ 감정을 제시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이 소인격체 중 우리에게 나쁜 영향만을 주는 감정은 없다. 그러나 어떤 감정이 오랫동안 지나치게 기능하거나 혹은 기능이 거의 멈추는 등 내면 시스템의 균형이 깨지면 심리 문제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내 마음속 시스템의 불균형을 눈치채고 이를 바로잡는 것이 심리적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스템의 불균형을 알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가 불편하게 여기는 ‘나쁜 감정’에 그 단서가 있다고 말한다. 2부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부정적이라고 평가하는 여섯 가지 감정, 불안·죄책감·분노·미움·무력감·슬픔의 내밀한 작동 원리를 다룬다. 이 중 불안·죄책감·분노·미움은 심리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자주 호소하는 강경파 감정들이다. 무력감은 온건파 감정이지만, 부모에게 오랫동안 순종하며 살아온 ‘착한 아이’의 경우 부모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단 두려움 탓에 짜증이나 분노 대신 무력감이 나설 때가 많다. 슬픔은 사람들 대부분이 숨겨둔 채 살아가는 대표적인 온건파 감정이다. 슬픔을 남들 앞에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마음속 시스템의 강한 명령 때문에, 슬픔을 느껴야 할 때 다른 감정이 나서게 되어 결국 시스템 전체의 혼란을 초래한다.
분노 감정이 악착같이 원심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안을 들여다보면 안 된다’라고 굳게 믿는 구급대 감정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분노는 마음속 시스템으로 깊이 숨겨 놓은 수치심을 느끼면 끝장이라고 굳게 믿으며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이 아니던가? 시선을 밖으로만 돌리려 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분노 감정이 일어나면 내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못 하고, 밖에 있는 상대방의 문제 행동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 157쪽 (6장_분노 “한번 화가 나면 참을 수 없어요!”)
책은 생생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이 여섯 가지 감정의 숨겨진 역할과 기원을 설명한다. 4장에서는 장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며 학생상담센터를 찾은 대학생 철주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상담 과정에서 철주의 학습 불안이 대인관계에 대한 불안과 동시에 심화했음을 알게 된 상담사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실마리로 삼아 철주 내면의 진짜 상처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상담사와 함께 자신의 불안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아보던 철주는 마음속 밑바닥에 감춰져 있던 온건파 감정,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진 듯한 감정을 발견한다. 그를 괴롭힌 불안은 사실 버려짐에 대한 공포가 마음속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걸 막고자 애써 온 감정이었던 셈이다.
또다른 강경파 감정인 분노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아이가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이에게 다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누구보다 폭력을 혐오하며 자란 이들이 폭력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아이를 볼 때 어릴 적 겪었던 학대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함께 찾아오는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분노가 구급대로 나서기 때문이다. 폭력 사범을 대상으로 오랜 기간 종단연구를 진행한 하버드 의과대학의 교수 제임스 길리건 역시 이들의 공통된 내면 감정으로 수치심을 발견한 바 있다. 이는‘분노 범죄’라는 단어로 분노라는 감정을 탓하는 우리 사회에도 생각거리를 남긴다. 분노 감정에는 잘못이 없다. 분노를 마음의 구조 신호로 여기고 그 뒤에 숨은 상처를 발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약한 나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해 온
‘나쁜 감정’을 안아 주는 셀프 감정 코칭
강경파 감정은 이처럼 내면의 진짜 고통스러운 감정인 온건파 감정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내게 찾아온 강경파 감정의 원인을 궁금해하고 차분히 탐색하면 내 안의 진짜 상처를 발견할 기회가 열리게 된다. 책의 3부에서는 이런‘나쁜 감정’이 보내는 마음속 신호를 포착하여, 진정한 내면의 치유를 이루는 단계별 감정 코칭 전략을 제시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감정에 대한 선입견 버리기다. 저자는 이를 ‘마음속 내시경의 렌즈를 투명하게 유지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불안, 죄책감 등을 비난하거나 폄훼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 감정이 시스템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섣부른 판단을 내려놓고, 진정한 호기심과 공감의 자세로 강경파 감정에게 ‘네가 내 내면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라고 묻는다면 그 감정이 지금껏 마음속에서 해 왔던 역할이 천천히 느껴질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이러한 강경파 감정의 역할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기다. 이해를 얻은 강경파 감정이 잠시 과도한 기능을 멈춘 사이, 우리는 그 뒤에 숨었던 온건파 감정을 발견할 기회를 얻게 된다. 가장 잊고 싶었던 나 자신의 모습과 연결된 온건파 감정을 발견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여 공감받는 순간 내면세계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나는 그간 심리상담을 통해 오랫동안 유배해 놓았던 자신과 만나는 수많은 내담자를 목격해 왔다. 내담자들이 표현하는 이러한 만남의 감격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오묘하다. 그들의 고백 중 공통점은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생각이나 감정, 욕구나 감각들이 지금껏 모두 자신을 위해 존재했었다”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 305쪽 (14장_모든 감정이 나를 위해 존재함을 깨닫는 연습)
저자의 단계별 코칭에 따라 내 감정세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마음속 시스템이 균형을 이룬 상태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 시스템의 균형이란 강경파 감정과 온건파 감정 사이의 기능 격차가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지금껏 과도하게 기능해 온 강경파 감정은 부담을 내려놓고, 온건파 감정은 숨을 필요가 없는 상태가 바로 건강한 내면세계의 모습이다. 모든 감정이 고루 목소리를 내는 이런 마음속 환경을 갖추면 우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내 안의 모든 감정이 나를 위해 존재함을 깨닫고, 창피했던 모습이나 무력했던 모습도 모두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의 완성이다.
저자 권수영은 20여 년 넘게 수천 명의 내담자를 만나 온 상담학의 권위자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환자’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적절하게 운영할 방법을 탐색 중인 능동적 주체라는 관점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내면세계를 구성하는 요소 전체를 인격적 성장의 원동력으로 보는 따스한 시선은 신학을 전공하여 인간 고유의 영적인 가치에 관심을 두어 온 저자의 이력과 맞닿아 있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마음마저 기계적 원리로 설명되는 풍조가 만연한 현대에, 이 책의 메시지가 더욱 특별한 위로를 주는 이유다.
“내 안의 모든 생각과 감정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복잡하게 얽힌 마음속 시스템을 이해하여
내 안의 모든 감정을 살리는 심리학
오늘날 인류의 미래를 논할 때 단연 뜨거운 화두는 인공지능(AI)이다. 사실 인공지능 연구의 시초는 심리학에 대한 실험적 접근이었으니, 상담학의 권위자로서 인간 심리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이 책의 저자 권수영(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학과 교수)도 그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2023년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의 급부상을 지켜보며 불현듯 떠올린 오래전 실험의 감회를 털어놓는다.
몇 년 전 ‘대화형 인공지능 비서’가 처음 세상에 공개된 당시, 저자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감정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 마음에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내가 지금 화가 많이 나 있어! 어떻게 하지?” 하지만 뒤이어 주고받은 대화는 실망스럽게도 기계적 해결책을 제시받는 정도에 그쳤다. 그때 받은 상처를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저자는 이번에 새로 출시된 챗GPT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답변의 속도나 내용은 이전에 비해 놀랍게 발전했지만, 질문한 사람의 진짜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 모습에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로 귀결되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깊숙이 이해하고 제대로 반응하기가 이토록 더디고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셀 수 없이 다양한 감정이 얽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인공지능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심리상담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부정적 감정’을 병리적으로만 이해하는 심리치료 기조에 아쉬움을 느끼던 차, 리처드 슈워츠가 제시한 ‘내면가족시스템(Internal Family System, IFS)’ 치료를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 내면가족시스템 이론에서는 불안, 분노, 무력감 등 개인에게 고통을 유발하므로 제거해야 할 감정으로 여겨지는 소위 ‘나쁜 감정’들이 사실 마음속 시스템 안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부담감을 곱씹으며 각오를 다지기도 하고, 슬픔이나 수치심을 함께 나누며 연대와 공감을 쌓기도 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사람의 마음은 수학적 계산으로 견적이 나오는 결괏값이 아니라, 감정과 생각과 감각 등 다양한 부분이 끊임없이 상보적인 작용을 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인간의 내면에 필요 없는 감정이란 없다. 다만 과도하게 기능하는 감정과 억압되는 감정이 생기면서, 시스템의 균형이 깨져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감정’들은 내면의 진짜 상처를 방어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신호로 여기고 그 감정의 근원을 천천히 탐색하면 진정한 치유를 향한 길이 열리게 된다.
감정도 시스템이다. 우리의 감정세계는 주연만 존재하는 연극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무수히 많다. 그중에는 조연도 꽤 있고, 그냥 스쳐가는 행인도 많다. 한 사람이 자주 등장하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고 하여 그 사람만 보게 되면 전체 연극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마음속 감정들이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데에 장애가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강렬한 감정만을 인식하게 되고, 안으로 숨겨진 감정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 37쪽 (1장_사람의 마음이 ‘시스템’이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덮치는 부정적 감정들,
이 감정들은 대체 왜 나를 찾아온 걸까?
‘내면가족시스템’의 구성원에는 어떤 감정들이 있을까? 앞서 말했듯 우리의 감정은 각각의 소인격체로 기능하며, 강하게 자주 표출되는 ‘강경파’와 내면 깊숙이 숨은 ‘온건파’로 나뉜다. 우리 마음속 불안, 분노, 슬픔 등 수많은 감정은 가족처럼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는 감정 시스템에서 제 나름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감정은 없다. 가족 중 문제아로 규정된 구성원이 있다고 해서 그 구성원이 쓸모없는 존재인 것은 아니듯, 일견 필요 없어 보이는 감정들도 마음속 시스템의 필수 구성원이다. 더 깊게 살펴보면, 이들은 오히려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문제를 끌어안고 홀로 감내 중인 구성원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자신의 내면에 어떠한 불편함이 감지되었을 때 그 불편한 감정을 무조건 제거하려 들면 안 된다. 내면 시스템의 작동원리, 그리고 그 시스템 안 구성원의 속사정을 제대로 파악해야 내면 치유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온건파 감정은 왜 자꾸 숨어드는 걸까? 온건파 감정은 겁이 많다. 나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 알려지면 자기 자신에게 큰 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서 아예 존재를 숨긴다. 외로울수록 더 크게 웃고, 창피할수록 더 강하게 역정을 내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온건파 감정 수호를 위한 방어 전략이다. 온건파 감정이 드러날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강경파 감정이 대신 앞으로 나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62쪽 (2장_마음에도 내시경 검사가 필요하다)
슈워츠는 내면에 감춰진 ‘유배자’ 감정을 방어하는 감정으로, 평소 끊임없이 기능하며 마음속 시스템을 관리하는 ‘매니저’와 유배자 감정이 노출될 위기에 처했을 때 급하게 등장하는 ‘구급대’ 감정을 제시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이 소인격체 중 우리에게 나쁜 영향만을 주는 감정은 없다. 그러나 어떤 감정이 오랫동안 지나치게 기능하거나 혹은 기능이 거의 멈추는 등 내면 시스템의 균형이 깨지면 심리 문제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내 마음속 시스템의 불균형을 눈치채고 이를 바로잡는 것이 심리적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스템의 불균형을 알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가 불편하게 여기는 ‘나쁜 감정’에 그 단서가 있다고 말한다. 2부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부정적이라고 평가하는 여섯 가지 감정, 불안·죄책감·분노·미움·무력감·슬픔의 내밀한 작동 원리를 다룬다. 이 중 불안·죄책감·분노·미움은 심리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자주 호소하는 강경파 감정들이다. 무력감은 온건파 감정이지만, 부모에게 오랫동안 순종하며 살아온 ‘착한 아이’의 경우 부모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단 두려움 탓에 짜증이나 분노 대신 무력감이 나설 때가 많다. 슬픔은 사람들 대부분이 숨겨둔 채 살아가는 대표적인 온건파 감정이다. 슬픔을 남들 앞에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마음속 시스템의 강한 명령 때문에, 슬픔을 느껴야 할 때 다른 감정이 나서게 되어 결국 시스템 전체의 혼란을 초래한다.
분노 감정이 악착같이 원심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안을 들여다보면 안 된다’라고 굳게 믿는 구급대 감정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분노는 마음속 시스템으로 깊이 숨겨 놓은 수치심을 느끼면 끝장이라고 굳게 믿으며 긴급 출동한 소방대원이 아니던가? 시선을 밖으로만 돌리려 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분노 감정이 일어나면 내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못 하고, 밖에 있는 상대방의 문제 행동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 157쪽 (6장_분노 “한번 화가 나면 참을 수 없어요!”)
책은 생생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이 여섯 가지 감정의 숨겨진 역할과 기원을 설명한다. 4장에서는 장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며 학생상담센터를 찾은 대학생 철주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상담 과정에서 철주의 학습 불안이 대인관계에 대한 불안과 동시에 심화했음을 알게 된 상담사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실마리로 삼아 철주 내면의 진짜 상처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상담사와 함께 자신의 불안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아보던 철주는 마음속 밑바닥에 감춰져 있던 온건파 감정,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진 듯한 감정을 발견한다. 그를 괴롭힌 불안은 사실 버려짐에 대한 공포가 마음속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걸 막고자 애써 온 감정이었던 셈이다.
또다른 강경파 감정인 분노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아이가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이에게 다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누구보다 폭력을 혐오하며 자란 이들이 폭력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아이를 볼 때 어릴 적 겪었던 학대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함께 찾아오는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분노가 구급대로 나서기 때문이다. 폭력 사범을 대상으로 오랜 기간 종단연구를 진행한 하버드 의과대학의 교수 제임스 길리건 역시 이들의 공통된 내면 감정으로 수치심을 발견한 바 있다. 이는‘분노 범죄’라는 단어로 분노라는 감정을 탓하는 우리 사회에도 생각거리를 남긴다. 분노 감정에는 잘못이 없다. 분노를 마음의 구조 신호로 여기고 그 뒤에 숨은 상처를 발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약한 나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해 온
‘나쁜 감정’을 안아 주는 셀프 감정 코칭
강경파 감정은 이처럼 내면의 진짜 고통스러운 감정인 온건파 감정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내게 찾아온 강경파 감정의 원인을 궁금해하고 차분히 탐색하면 내 안의 진짜 상처를 발견할 기회가 열리게 된다. 책의 3부에서는 이런‘나쁜 감정’이 보내는 마음속 신호를 포착하여, 진정한 내면의 치유를 이루는 단계별 감정 코칭 전략을 제시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감정에 대한 선입견 버리기다. 저자는 이를 ‘마음속 내시경의 렌즈를 투명하게 유지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불안, 죄책감 등을 비난하거나 폄훼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 감정이 시스템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섣부른 판단을 내려놓고, 진정한 호기심과 공감의 자세로 강경파 감정에게 ‘네가 내 내면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라고 묻는다면 그 감정이 지금껏 마음속에서 해 왔던 역할이 천천히 느껴질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이러한 강경파 감정의 역할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기다. 이해를 얻은 강경파 감정이 잠시 과도한 기능을 멈춘 사이, 우리는 그 뒤에 숨었던 온건파 감정을 발견할 기회를 얻게 된다. 가장 잊고 싶었던 나 자신의 모습과 연결된 온건파 감정을 발견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여 공감받는 순간 내면세계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나는 그간 심리상담을 통해 오랫동안 유배해 놓았던 자신과 만나는 수많은 내담자를 목격해 왔다. 내담자들이 표현하는 이러한 만남의 감격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오묘하다. 그들의 고백 중 공통점은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생각이나 감정, 욕구나 감각들이 지금껏 모두 자신을 위해 존재했었다”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 305쪽 (14장_모든 감정이 나를 위해 존재함을 깨닫는 연습)
저자의 단계별 코칭에 따라 내 감정세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마음속 시스템이 균형을 이룬 상태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 시스템의 균형이란 강경파 감정과 온건파 감정 사이의 기능 격차가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지금껏 과도하게 기능해 온 강경파 감정은 부담을 내려놓고, 온건파 감정은 숨을 필요가 없는 상태가 바로 건강한 내면세계의 모습이다. 모든 감정이 고루 목소리를 내는 이런 마음속 환경을 갖추면 우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내 안의 모든 감정이 나를 위해 존재함을 깨닫고, 창피했던 모습이나 무력했던 모습도 모두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의 완성이다.
저자 권수영은 20여 년 넘게 수천 명의 내담자를 만나 온 상담학의 권위자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환자’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적절하게 운영할 방법을 탐색 중인 능동적 주체라는 관점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내면세계를 구성하는 요소 전체를 인격적 성장의 원동력으로 보는 따스한 시선은 신학을 전공하여 인간 고유의 영적인 가치에 관심을 두어 온 저자의 이력과 맞닿아 있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마음마저 기계적 원리로 설명되는 풍조가 만연한 현대에, 이 책의 메시지가 더욱 특별한 위로를 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