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장 두 살이 되었을 때
#1. 마지막 호모 사피엔스의 죽음, 공식적으로
#2. 물고기가 많아진 동해 바다
#3. 바다 위, 커피 타임
#4. 바다 토네이도
#5. 딥 다이브
#6. 한성유통 총수의 유언
#7. 방어진 항구와 프러포즈
#8. 처음 마시는 술
#9. 고래 떼와 일출, 정자항에서
2장 엇갈리는 운명
#10. 첫출근
#11. 파밍 빌딩, 태화강 인근
#12. 어긋난 프러포즈
#13. 움직이기 시작하는 석영진 전무
#14. 울주군, 벼 농장
#15. 급하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16. 구청 결혼식 - 울산 남구청
#17. 질주와 체포
#18. 태화강 파밍 빌딩에 내리는 첫 눈
#19. 출산 일주일 후
#20. 이별
3장 부패 그리고 혁신파
#21. 요트 그리고 호화 파티
#22. TV 토론과 거리 인터뷰
#23. 혁신그룹
#24. 대표의 방문
#25. 노화하지 않는 인간
#26. 불법과 합법 사이
#27. 태풍 한 가운데에서
#28. 반짝반짝 작은 별
#29.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4장 공화국의 대통령
#30. 연안어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31. 공장들의 도시, 울산
#32. 다시 첫 눈
#33. 조폭 수사대
#34. 공화당 전당대회
#35. 2년만 더, 6세 시대, 호모 섹스투스
#36. 서울국민당 창당과 대선
#37. TV 토론
#38. 울산 노인들의 격론
#39. 역전, 방법을 찾아봅시다
#40. 납치범들
#41. 흉헌 것들 좀 치워주시게
#42. 드디어 대선
5장 컨틴전시 플랜
#43. 다시 방어진 항구
#44. 섹스투스 광고 시작
#45. 주인에게 가는 유골함
#46. 훈련과 계획
#47. 아빠, 안녕
#48. 김다익 대통령 취임식
#49. 영거, 속 좀 그만 썩여라
#50. 위기인가?
#51. 비밀 위성 발사
#52. 오영수의 마지막 순간
#53. 한성 시큐러티 울산 지점 운동회
#54. 두 번의 뇌 스캔
6장 내전
#55. 만남
#56. 안녕, 오현아
#57. AI 천수 발진
#58. 경찰청 본부 접수
#59. 불안한 대통령궁
#60. 대통령궁 교전
#61. 탈출 시퀀스
#62. 이제는 당이 나설 때
#63. 총리님, 협조 부탁드립니다
#64. 정부 청사 앞
#65. 공장 봉쇄와 수색
#66. AI 튜닝
7장 인투 더 타이푼
#67. 울산 병원 중환자실
#68. 영해 너머에서
#69. 행복한 이상주의
#70. 오늘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 자신의 방식으로
#71. 친구니까 해주는 말이야!
#72. 남해, 배 위에서
#73. 다른 전화기로
#74. 목포항
#75. 웬 차가 이렇게 많아?
#76. 인투 더 타이푼
#77. 병력 재구성
#78.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
#79. 아날로그 정보전
#80. 네 대의 헬리콥터
#81. 지금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82. AI들의 철학 논쟁 그리고 결정
#83. 붕괴
#84. 다음 단계로
#85. 어느 노인의 마지막 날
[본 문]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 등장했던 호모 에렉투스의 멸종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마지막 호모 에렉투스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콰트로스 사이의 관계도 그와 비슷했다. 워낙 혼돈기였고, 울산 게토를 중심으로 극소수의 호모 콰트로스가 겨우겨우 생존하던 시기였다. 초기에 서로 연락하고 지내던 파리 게토나 베를린 게토 등 많은 4년생의 공동체가 붕괴한 이후, 한반도 남쪽의 어느 공업도시에서 다시 문명을 시작한 이들은 고립되어 있었고, 자신들과 떨어진 곳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수명이 아주 길었던 과거의 인류, 장생종이 이룬 물질적 성과와, 고작 4년을 사는 단생종으로의 전환과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의 전환 사이에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는 인공지능, 즉 AI의 존재다. 호모 에렉투스가 이루어 낸 성과들은 유전자에 새겨져 정보로 계승되었다. 그렇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만들어 낸 지식적 성과들은 데이터베이스에 담겼고, 그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고 전달하는 역할은 AI가 맡았다.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호모 콰트로스의 삶에서 AI를 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캐릭터 AI로서 메인 AI는 호모 콰트로스 사회에서 유일한 호모 사피엔스 생존자였던 오현아가 디자인한 것이다.
호모 콰트로스가 게토 단계를 넘어 정부를 가진 국가로 전환된 후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선 2086년, 유일한 장생종이자 오랫동안 문명의 멘토 역할을 했던 오현아가 노환으로 임종을 맞이했다. 공식적으로는 호모 콰트로스와 공존하던, 아니 그들을 정신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이끌어 주던 마지막 호모 사피엔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12~13페이지)
“애들아, 내 말 잘 들어라. 60살까지는 살던 인간이 이렇게 4년만 살다가 그냥 죽는다는 게, 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 인생에 도대체 뭘 하고 살다가, 지금 이 경우를 맞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이제 뭘 해야겠냐?”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석원주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울산 놈들이 호모 콰트로스의 수명과 관련된 것들을 헌법과 법으로 아주 세세하게 다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장남 석영호가 기계적인 대답을 했다. 순간 감정적으로 울컥한 석원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빨라졌다.
“공장이나 돌리는 놈들이 세상에 대해 뭘 안다고! 지구 전체가 이 한반도 일부 말고는 다 텅 비어 있는데, 그놈들이 이 좁은 땅에 갇혀서 꼼짝을 못 하게 해. 내가 무슨 60살, 70살, 그렇게 살자고 하는 거야? 2년만이라도 좀 수명을 늘려보자는 데, 그걸 못 하게 해. 수명이 2년이라도 늘어야 해외에 나가서 일할 사람이 생길 거 아냐? 우리한테 노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임금 노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얌전하게 4년 살다가 큰 도전 없이 조용히 죽음을 맞으니까 이렇게 정체되어 있는 거 아냐? 자원 부족 때문에 비행기도 못 만들고, 로봇도 대규모로 못 만드는 처지에, 인간 수명이라도 늘리는 게 유일한 해법 아냐?”
(37페이지)
“호모 섹스투스? 인간 수명 6년으로 연장? 그거 불법이야. 불법 정도가 아니라 헌법 위반이야. 전에 다 끝난 이야기 아냐? 잘못했다가는 한성유통이 공중분해 될 수도 있어!”
“알아, 위험한 거는. 어른들하고는 이야기 다 끝났어. 이제는 우리가 몸으로 움직일 차례야. 아버지 유언이라서, 내부에서 반대할 사람은 없어. 실행력이 문제지.”
“실행? 불법이라는데, 뭘 어쩌려고?”
(중략)
“6년을 살 수 있는 인간, 호모 섹스투스. 그게 아버지의 유언이야. 물론, 장사 속도 좀 있어. 우리는 원래 피가 장사꾼이야. 그렇지만 여기에는 꼭 장사만 있는 건 아니야. 아버지의 생각도 그런 거고. 이제는 우리가 사는 곳도 한반도를 벗어나서 지구의 텅 빈 공간으로 나가야 해. 그러려면 지금 수명으로는 어렵지. 4년 살아서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개척하고, 그런 일을 하기가 어려워. 조금은 더 살아야 해.”
(74~76페이지)
“천수, 미안한데 우리가 오늘 할 이야기가 좀 많아. 다 아는 이야기는 좀 건너가자고.”
피천수가 슬라이드를 넘겼다.
“변종 암의 세포는 대부분의 암이 그렇듯 유전적으로 제어를 할 수 없습니다. 여기가 암세포의 폭력성을 작동시키는 유전자입니다. 암세포의 이 부분을 편집해서 피시술자의 해당 유전자로 교체를 해줍니다. 그러면 맞춤형 암세포 자체가 시술자의 원래 세포를 대체하면서도 생물학적 통합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전적으로 변형된 암세포들이 결국 원래의 세포들을 대체합니다. 게다가 이건 주사로도 시술이 가능합니다.”
“그럼 이제 다 된 건가?”
“주입된 암세포가 자기들끼리 피시술자의 줄기세포 역할을 하는 게 작동 메커니즘입니다. 너무 노화가 진행되기 전인 세 살 이전에 이 주사를 맞으면 효과가 확실합니다. 그렇지만 네 살에 맞으면 이미 노화가 너무 진행돼서, 변형된 암세포가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아 인체 기관들을 형성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우리가 관찰하는 캔서 12호가 그런 것처럼 그냥 암 환자로 고통받으면서 늙어가는 데, 수명이 다 해도 죽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132~133페이지)
“교과서 수준의 이야기나 하는 걸 보니, 김다익 후보는 토론 준비는 전혀 안 하셨나 봅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집단이 울산 게토니, 이런 옛날 이야기나 하면서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제가 무슨 60년을 살고, 100년을 살고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2년, 딱 2년만 더 살면 좋겠다는 아주 소박한 소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4년, 그 기간 동안 우리는 한 가지 일에만 숙련될 수 있습니다. 6년, 2년만 더 있으면 새로운 분야나 기술 한 가지를 더 익힐 수 있습니다. 그게 어려워서 지금 이 한반도에 우리가 묶여 살고, 이 밖으로 나갈 엄두도 못 내는 것 아닙니까?”
“피천수 후보, 말이 2년이지, 그게 금방 4년이 되고, 10년이 되는 겁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왜 멸종했는지, 그게 그렇게 이해가 안 가십니까?”
김다익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목소리도 조금씩 커져갔다.
“금방 소망이라고 하셨죠? 그 소망이 결국 욕망이 되고, 그게 우리를 파멸시키게 되는 겁니다. 커질 대로 커진 공룡들이 멸종하고, 지구를 온통 뒤덮은 구인류가 멸종하고, 이게 지구의 역사였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도 결국 그런 이유로 멸종했습니다. 수명과 관련된 기술이나 상품들이 자본과 결합되면, 사회 질서가 근본적으로 교란될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공화국의 번영을 위해서, 지금 국민당 후보가 주장하는 위험한 불장난은 우리 공화국에 재앙이 될 것입니다. 만약 그런 상품이 시장에 풀려 나오면, 기업만 돈 벌게 되고, 공동체는 붕괴됩니다.”
(194~195쪽)
“형, 이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문제야. 사람들은 점점 더 6년을 살고 싶어 하겠지만, 그만큼 그걸 막으려는 울산의 힘도 더 강해지겠지. 결국은 힘으로 우리 다 잡아넣고, 피천수 걔는 아주 비참하게 구경거리로 전락할 거야. 지금 섹스투스 풀리면서 울산 사람들도 우리에게 아주 우호적이지만, 이 흐름이 얼마나 갈지 장담할 수 없어. 지금이 우리 힘이 가장 강할 때야. 생산자본이 결국은 유통인 우리를 밀어내고 자기들이 직접 하겠다고 나설 거야. 돈줄부터 막겠지. 지금이 사실 마지막 기회고, 아니면 우리가 당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훈련 과정을 꼼꼼하게 지켜보던 석영서가 의자에 앉은 채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큰오빠, 컨틴전시 플랜이 이미 가동되고 있어요. 대선에서 실패할 때를 대비한 비상계획이 처음부터 있었죠. 그걸 지금 하는 거예요. 본사의 박진호 전무 통해서 소규모 무기 회사들 인수합병은 완료했고, 지난 몇 달 동안 20만 명 이상 직원들도 새로 뽑고, 훈련도 시켰어요. 로버트 노직이라는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국가는 경비국가라고 했다던데, 내가 운영하는 한성시큐러티가 지금 공화국 최고의 경비 회사야. 울산이든 서울이든, 우리 쇼핑몰과 거점 창고마다 수백 명씩 경비원들이 준비하고 있으니까. 사람도 있고, 무기도 있어. 난 기동 준비 완료!”
석영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석영서에게 물었다.
“물리력만으로 될까? 결국은 마음의 문제인데. 네가 말하는 컨틴전시 플랜, 그건 돌아올 수 없는 강이야.”
“문제없대두! 마음, 바로 그거야 큰오빠. 요즘 피천수 인기가 아주 괜찮아. 선거 기간이 며칠만 더 있었으면 분명히 이겼을 거야. 학생들이 요즘 피천수계를 든다고 그래. 나중에 섹스투스 유료로 풀리면 사겠다고 돈을 모은대. 젊은 사람한테도 인기가 높고, 늙은 사람한테도 인기가 높지. 뭔가 하기에는 지금이 딱 좋아! 1년 후는 장담 못 해!”
(232~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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