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추천의 글
들어가는 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니체’라는 극약 처방
제1장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라
1. 나를 사랑하는 기술
자신의 단점을 일부러 찾아내는 ‘무한 루프’에 빠진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기술’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자화자찬력을 갈고닦을 때
2. 가장 먼저 나를 사랑할 것
3. 또 하나의 나
프로이트와 니체는 하나로 통했다
나는 언제나 내 편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도 각오하면 용기가 샘솟는 법
4. 인생은 축제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축복하라
제2장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라
1. 고독으로의 도피
고독이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
현대인이여, ‘단독자’가 되어라!
2. 멀리 있는 별
서로를 격려하고 높이는 ‘별들의 우정’
슈퍼스타를 동경하고 사랑하라
3. 소수파의 고뇌
새로운 가치를 무너뜨리려는 ‘동조 압력’에 굴복하지 말라
4.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다
‘몸의 감각’으로 세계를 파악하라
짧은 시 지어보기
5. 친구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은 친구로서 매력이 없다
노예적 정신, 전제자적 정신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6. 최선의 적
우정이란 ‘필사적인 싸움’이다
“선비는 사흘 만에 만나면 눈을 비비고 볼 만큼 달라져야 해”
‘진실한 말’로 이어지는 친구만큼 훌륭한 친구도 없다
7. 동정과 우쭐함
동정이라는 이름으로 업신여기고 있지 않은가
동정이 상대방의 힘을 빼놓을 수도 있다
제3장 말인이 아닌 초인이 되어라
1. 신의 죽음
과학이 ‘신이 없는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신의 존재가 인간의 성장을 방해했다
2. 낙타, 사자, 어린아이
3. 자기를 열다
셀카만 찍는 사람이 잃어버린 것들
자신을 도외시하면 멋진 세계가 눈에 들어온다
4. 질투심의 극복
질투의 끝은 비극
비교하려면 과거의 나 자신과 비교하라
불타오른 질투의 불길을 끄는 방법
5. 내장 최강
내장에는 ‘삶에의 의지’가 가득하다
중요한 것은 모두 육체에 물어보라
6. 초인
초인을 목표로 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무언가를 한 뒤에 얻는 것이 있으면 된다
제4장 높은 곳을 지향하라
1. 행복
고민과 고통이 없다면 행복한 인생일까?
“내 자식들은 가까워”이 말의 의미는?
2. 발견과 발굴
가까이에 있는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라
역풍이 불어도 순풍으로 바꾸면 그만!
3. 인생에 감사하라
자신의 인생에 감사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다
니체의 말투는 전염된다?
4. 재능의 싹
스스로에게 희망을 물어라
꿈을 실현하는 도구로 인터넷을 활용하라
5. 진정한 자유
자유로부터 도망치고 있지 않은가?
6. 파괴와 창조
파괴가 없으면 창조도 없다
제5장 지금 이 순간을 살라
1. 과거를 전부 긍정하라
모든 것은 반복된다. 그러니 모든 것을 긍정하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영원이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라
2. 존재의 수레바퀴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라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사랑하라
3. 최고의 죽음
죽음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각오
4. 힘에의 의지
‘힘에의 의지’를 실감해보는 방법
욕심을 갖는 것이 좋다
5. 공격적인 용기
부조리의 영웅 시시포스
운명에 맞서라!
한순간을 영원으로 여기는 감성
나오는 글: ‘북극성’과 같은 니체의 말
[본 문]
니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이 점 역시 오늘날 우리가 니체의 말에 공감하기 쉬운 이유입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충격적인 말이 나오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기독교를 부정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선(善)이므로 모두 천상의 세계에 있고, 지상에 사는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고 긍정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하찮은 존재로 치부하고, 신을 무조건 훌륭한 존재로 숭배하는 그런 비굴함을 인간이 초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_15쪽
“남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나만이 따로 할 일이 있지 않을까? 발밑을 깊이 파보면 거기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니체의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나에겐 아무것도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발밑을 파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굴해야 합니다. 지금의 인간관계가 시시해 불만인 사람은 ‘그래도 이런 인간관계라도 없어지면 외로울지 몰라’라며 마음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 이미 하고 있는 일에 빛나는 무언가가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깊이 파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_41쪽
제 경우에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인식하면서 동시에 “나는 언제나 내 편”이라는 말을 표어처럼 자신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니체의 책 어딘가에 나오는 말인지 제가 스스로 만들어낸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친숙해지다 보니 완전히 제 것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제 자신을 적으로 여긴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런 짓은 하지 말 걸 그랬어’ 하며 나의 말과 행동을 반성하거나 속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혐오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제 경험을 통해 여러분에게도 “늘 자신의 편이 되어라”라고 자신에게 계속 말해주기를 권합니다. 니체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라”라는 강력한 삶의 방식과도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_51~52쪽
그리고 ‘고독자’라고 하면 왠지 외롭고 쓸쓸하고 나약한 느낌이 듭니다. 반면, ‘단독자’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고고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요. 영어로는 ‘solitude’라고 표현하는데 무언가 강인함이 느껴집니다. 만약 고독하다고 느낀다면 스스로에게 “나는 고독자가 아니라 단독자다”라고 말해줍시다. 기독교라는 거대한 권력에 홀로 맞선 단독자 니체를 떠올려보길 바랍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힘과 용기가 솟아날 것입니다. 강인함은 단독자로 존재할 때만 생기는 법입니다. _71쪽
하지만 데카르트보다 250년 정도 뒤에 태어난 니체는 육체야말로 이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혼만으로는 살 수 없다. 정신이라고 이름 붙인 작은 이성은 육체라는 위대한 이성의 작은 도구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앞의 인용문에서 “그대들의 감각으로 파악한 것”이라는 표현이 나오듯이, 니체는 먼저 자신의 감각으로 이 세상을 파악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다음 자신이 파악한 세계가 무엇인지 생각할 것. 그렇게 감각과 생각이 연동되고 결합하면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고 했습니다. _86쪽
우리가 친구로 삼고 싶은 사람은 노예적 정신, 전제자적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노예적 정신, 전제자적 정신이 있다면 니체가 말하는 친구가 되기 힘들 것입니다. 니체의 말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 친구에게 원하는 자질, 친구가 되는 데 필요한 자질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친구 관계를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_93쪽
한마디로 말하면 ‘어린아이의 시기’란 모든 것을 긍정하며 놀이하는 시기를 가리킵니다. 그렇다고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의 규칙에 속박되어 살아가는 부자유스러움과 고통을 알고, 그 경험을 통해 구태의연한 가치관에 반항하고 자기주장의 기술을 배우는 것. 그 끝에 열리는 순진무구한 정신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꿔 말하면 정신이 ‘어린아이의 시기’에 도달하면 자신을 전부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_123쪽
‘인간을 뛰어넘는다’라고 하면 상당히 장벽이 높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좀 더 가볍게 생각하면 이런 것이 아닐까요? ‘비포 앤 애프터(before & after)’처럼 무언가를 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 자신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령, 지금까지 읽어본 적 없던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기로 하고 먼저 『죄와 벌』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 책을 독파하면 도스토옙스키를 읽은 적이 없던 나 자신을 뛰어넘는 셈이 됩니다. 그다음에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습니다. 다시금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중에서 『죄와 벌』밖에 읽지 않았던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지요. _153~154쪽
차라투스트라는 ‘행복’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고민이 해소되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그런 것은 행복이 아니다. 나는 사업을 이루는 일에서 행복을 추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생각했을 때 고민이나 고통이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면 무언가 스케일이 작고 재미없게 느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행복은 고민과 고통을 통해 이루어낸 끝에 느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_163~164쪽
듣고 보니 자유에는 고통스러운 일면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권위 앞에 복종하고 때로는 독재자에게 몸을 맡겨버리는 것도 자유를 내던지고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정말로 자유를 원하는가’라는 기독교의 근간을 묻는 이 장면은 니체의 사고방식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어쨌든 자유는 ‘도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유를 생각할 때는 니체의 말을 떠올리고 이렇게 자문해보세요.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_195쪽
운명을 긍정하는 것과 운명에 안주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후자에는 왠지 모르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저항하지 못해 어쩔 수 없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반면, 운명을 긍정한다고 하면 주어는 ‘나’가 됩니다.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맞서는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차라투스트라의 ‘공격적인 용기’도 이와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본래 자기 운명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운명의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불행하다, 불쌍하다, 불운하다고 해도 스스로가 이 운명을 선택한 것은 바로 ‘나’라는 생각으로 진취적으로 맞설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운명입니다. _236~237쪽
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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