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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 끄다 물에 타오르다(문예바다 서정시선집 19)

  • 이혜선
  • 문예바다
  • 2024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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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ISBN-13 : 9791161152554
쪽수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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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도서출판 문예바다가 기획한 우리 문단 유명 시인들의 서정시선집 그 열아홉 번째로 이혜선 시인의 『불로 끄다, 물에 타오르다』가 출간됐다.

1981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이혜선 시인은 삶을 영위하면서 할퀴어지는 상처를 스스로 핥으며 아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 그러나 그 다행스러운 자가 치유 능력에 대한 철학적 사유, 이 세상의 본질이나 객체의 외면에 나타나는 현상은 근원적으로 둘이 아니며 관계의 그물망 속에 존재한다는 불이不二 사상으로 이 사회를 통찰하고 있다.

 

날개가 너무 커서 날지 못하고

땅 위에 발이 묶여 있는 알바트로스에게

詩는

큰 날개 펼쳐

북명北溟에서 남명南溟까지 날아가는

붕새가 되게 해 준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붕새의 날개가 돋아나기를 기원하며,

2024. 8. 자민滋忞 이혜선

                                          「시인의 말」

목차

[목 차]

 

시인의 말

 

1누가 나뭇잎 푸른 손 흔드나

서시

코이 법칙

불이不二, 자라나는 팔

불이不二, 공기가 아프다

빈젖요양원

암사재활원 진달래방

미안하다 미안하다

명왕성이 뜬다

사람의 마을

간월看月

장대비 오는 날

마량포구, 금빛 화살을 던진다

지구를 만들다

불이不二, 아리땁던 너

건널목에서

불이不二, 금줄

색色을 먹고 공空을 낳다· 2

 

2돌의 심장 근처 어디쯤

상사초, 나의 별에게

경칩 무렵

불이不二, 서로 기대어

숲속 마을에는

새우젓사랑

불이不二, 번져온다

동그라미가 되고 싶다

봄나무

다랑논 식구들

흘린 술이 반이다

아라홍련 꿈 밖의 꿈

해돋이 해넘이

두뷔를요?

불이不二, 식구

묘적사妙寂寺 심우도尋牛圖

거미줄 법문

운문호일雲門好日, 풍경소리

 

3억겁을 찰나로 불타고만 있는지

길 위에서 1

가을 일기 1

가을 일기 5

가을 일기 7

대왕메뚜기

돈키호테 일기

그대 안의 새싹

아가리 하나 살고 있어

수유꽃그늘 아래

좌석 수 늘리기

무소대나무

장자와 나비

무너지는 집

옹이광배

절간에서 긴 머리칼을 주우며

내게로 오는 길

초가지붕 화양연화

사람의 섬에서

매미

 

4젖어서야 타오르는 꽃불 하나

분신

간장사리

칼과 활

둥구나무 아버지

14세 안소저

새 세상 열어 갈 너에게

딸의 그림 앞에서 2

궁둥이가 왜 파랗지

저 산에 강물에

여남은 살 저녁나절

새소리 택배

내 어린 왕자에게 1

내 어린 왕자에게 2

내 어린 왕자에게 5

내 어린 왕자에게 9

내 어린 왕자에게 11

내 어린 왕자에게 12

 

서정抒情을 향하다닿을 수 없는 별에 닿기 위하여

 

[본 문]

 

***

닿을 수 없는 별에 닿기 위하여,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돈키호테가 늘 내 안에서 끓고 있었다.

채워도 허기진, 채울 수 없는 사막 같은아가리가 늘 입 벌리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거기 더하여 여자라는 삶의 덫에 치여서 내 꿈의 별은 바라보지도 못한 채 고개 숙여 땅만 보면서 동동거리며 살아온 지난 삶의 날들이, 시선집을 엮으려고 펼쳐 본 젊은 날의 시집 속에서 아프게 걸어 나왔다.

― 「서정抒情을 향하다」 중에서

 

***

봄 오면 보랏빛 눈물송이 뚝뚝 지고

가을 오면 둥근열매눈물로 뚝뚝 지는 나무

 

귀 밝은 사내 하나 물관부에 흐르는 그 마음 알아듣고

한 생을 바쳐 갈고닦은 나뭇결 윤나는

열두 줄 명주실 가락, 내 손끝에 실려 천년바람 불어 나온다

죽어서야 비로소 가지는 제 소리 애닯은,

흥에 겨운 제 가락

 

바람소리 산울음 물울음 소쩍새노래

둥기둥 둥둥 둥 둥

웃녘 저수지에 해 머금은 명왕성이 뜬다

눈물 머금은 큰 별 귀 밝은 그 사내

 

오동꽃 보라꽃 지는 밤

머리맡 바람벽에 세워둔 열두 가야금

열두 가닥 명주실에서 제각기

비어 있는 절터 한 채씩, 파르라니 걸어나오는

그 속눈물을 듣는다

                                                     「명왕성이 뜬다」 전문

 

***

이불을 널어놓은 창문으로

날아든 왕벌 한 마리

활짝 열려 텅 빈 문으로 나갈 줄 모르고

온 집안을 붕붕 날아다닌다

닫힌 창문에 이리저리 머리 부딪고 다닌다

 

어디가 길인지, 나락인지

허방지방 흙탕길 헤매온 내 모습이다

지하철 2호선 순환선 타고 깊은 잠 들어

온종일 돌고 도는 노숙자, 캄캄 밤하늘 돌고 돌다가

충돌하여 떨어지는 별똥별, 우주의 노숙자 내 모습이다

 

그러다가 지칠 때쯤

누군가 손 내밀면 좋아라 덥석 잡고

어디든 따라가는 나, 지옥이라도,

 

기진맥진하여 창틀에 널브러진 그를

부채로 날려서 창문으로 내보낸다

나도,

그분이 내밀어주는 그 부채를 잡고 싶다

 

길 잃은 그 자리, 생명이 아프니

공기가 아프다

                                          「불이不二, 공기가 아프다」 전문

 

***

누가 나뭇잎 푸른 손 흔들어

날 오라 부르나

누가 풀잎가슴 풀어헤쳐 날 부르나

 

우리 속에 갇힌 짐승 나를

포효도 잊어버린 나를

누가 자꾸 손짓해 숲으로 가라 하나

 

저 빗줄기 속에 몸 섞어 풀뿌리 되라 하나

잔뿌리 실뿌리 얼크러져,

무너지는 땅 몸으로 감싸안으라 하나

 

던져 주는 먹이만 먹으면 배부른 나를

배부르면 젖은 땅 어디서나 잠드는 나를

잠들면 구겨져 꿈도 꿀 줄 모르는 나를

앙상한 손가락을 펴고

동강 난 뼈마디로 흔들어 깨우나

 

굵은 장대로 등허리 후려치면서

지금은 잠들 때가 아니라 하네

아직은 잠들어선 안 된다 하네

, 누가 있어 온몸 후려치면서,

                                          「장대비 오는 날」 전문

 

***

소금물 속에 녹아

 

살과 뼈 다 내주고

 

까만 눈만 뜨고 기다리는 새우

 

새우 몸을 받아 안아

 

제 살과 뼈 함께 녹여

 

흔적 없이 사라지는 소금

 

둘이 무르녹아 태어나는 둥근 새누리

 

너와 나의 사랑누리

                                          「새우젓사랑」 전문

 

***

아버지

어젯밤 당신 꿈을 꾸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쪽 어깨가 약간 올라간

지게를 많이 져서 구부정한 등을 기울이고

물끄러미, 할 말 있는 듯 없는 듯 제 얼굴을

건너다보시는 그 눈길 앞에서 저는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옹이 박힌 그 손에 곡괭이를 잡으시고

파고 또 파도 깊이 모를 허방 같은 삶의

밭이랑을 허비시며

우리 오 남매 넉넉히 품어 안아 키워주신 아버지

 

이제 홀로 고향집에 남아서

날갯짓 배워 다 날아가버린 빈 둥지 지키시며

 그래, 바쁘지?

내 다아 안다󰡑

보고 싶어도 안으로만 삼키고 먼산바라기 되시는 당신은

세상살이 상처 입은 마음 기대어 울고 싶은

고향집 울타리

땡볕도 천둥도 막아주는 마을 앞 둥구나무

 

아버지

이제 저희가 그 둥구나무 될게요

시원한 그늘에 돗자리 펴고 장기 한 판 두시면서

너털웃음 크게 한번 웃어보세요

주름살 골골마다 그리움 배어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은 우리 아버지

                                                     「둥구나무 아버지」 전문

 

***

한 송이

잘 피어난 단풍나무로

불타오르다, 죽고 싶다

 

진홍빛 선지피 뚝뚝 흘리며

살점마다 살점마다 불타올라

이승의 옷가지 훌훌 벗어던지고

앙상한 뼈마디마저

희디희게 불타올라,

 

잘 닦여진 청하늘 아래

꿈꾸던 종잇장 갈피갈피

한 줌 재도 남기지 말고

머리칼 한 올도 남기지 말고

 

한 송이 잘 피어난 단풍나무로

오로지 까마득히

불타오르다, 죽고 싶다

                                「가을 일기 1-재도 남기지 말고」 전문

 

***

넓은 가로수길 비워둔 채

좁디좁은 사잇길

등 굽은 빗줄기 하나 허위허위 가고 있다

 

어린 날 잡았던 손 놓고 헤어진 사람

하마 저만치 오는 가을빛 속에

날 그리다그리다 등이 굽어,

 

이제 곧 바람 싸늘해지고

마음빗장 굳게 닫은 도시의 겨울밤을

그대, 굽은 등허리 허기진 가슴으로 어이 견디리

가득한 사람의 섬에서

눈보라 한 알갱이 바람에 불려 어디로 가리

                                                     「사람의 섬에서」 전문

저자 소개
저자 : 이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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