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추천의 말
출간에 즈음하여
마르코 복음서 입문 / 10
마르코 복음서 둘러보기 / 24
제1과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마르 1,1) / 30
제2과 세례자 요한 (마르 1,2-8) / 42
제3과 세례를 받으시다 (마르 1,9-11) / 54
제4과 유혹을 받으신 후 복음을 선포하시다 (마르 1,12-15) / 68
제5과 제자를 부르시다 (마르 1,16-20) / 82
제6과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 주시다 (마르 1,32-39) / 96
제7과 비유로 말씀하시다 (마르 4,1-9) / 110
제8과 한 이방인 여인의 믿음 (마르 7,24-30) / 122
제9과 수난을 예고하시며 제자들을 가르치시다 (마르 8,27-38) / 136
제10과 영광스럽게 변모하시다 (마르 9,2-10) / 148
제11과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정화하시다 (마르 11,1-18) / 162
제12과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다 (마르 15,22-39) / 176
제13과 빈 무덤 (마르 16,1-8) / 190
[본 문]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진리를 전달합니다. 특히 신약 성경의 중심 주제는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활동, 가르침, 수난과 영광 받으심, 그리고 성령의 활동을 통한 그리스도 교회의 탄생”(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4항)입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위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성경, 즉 하느님 말씀을 읽는 일은 우리를 감동케 하고 변화에 이르게 합니다.
- 추천의 말, 4쪽
예수님에 대한 전승들이 단절되어 가면서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에서조차 ‘예수님은 유랑 설교자인가?’, ‘수많은 이적을 일으킨 기적의 사나이인가?’,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인가?’, ‘새롭게 로마의 황제가 되어 평화와 안정을 이 땅에 가져온 베스파시아누스야말로 진정한 메시아라고들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이 메시아요, 그리스도란 말인가?’ 등의 ‘예수님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 마르코 복음서 입문, 16쪽
유다인과 이방인 모두를 상대로 펼쳐지는 복음서 전반부의 예수님의 복음 선포 활동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8,27-30)에서 그 점에 이르게 됩니다. 베드로 자신조차 이 고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베드로의 이 고백을 기점으로 복음서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베드로의 고백 이후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드러내 밝히시며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 마르코 복음서 둘러보기, 25-26쪽
마르코 복음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복음서의 포문을 열고 있는 이 표현은 마르코 복음서가 왜 집필되었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갈릴래아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죽은 나자렛 사람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것을 세상에 알려 주고자 이 복음서가 집필되었다는 것입니다.
- 제1과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31쪽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마르코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을 지칭하는 매우 중요한 호칭이자, 그분의 신원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표현이 됩니다. 따라서 혹자는 마르코 복음서를 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이 표현이 바로 마르코 복음서 전체와 그 내용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 제1과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34쪽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세례와 예수님의 죽음에 ‘갈라지다’, ‘찢어지다’라는 동일한 그리스어 동사를 등장시킴으로써 이 두 사건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따라서 물속에 깊이 잠겼다가 다시 물 밖으로 나온 예수님의 세례는 단순히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가 아니라, 인간에게서 죄 자체를 없애 주시는 세례, 곧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 주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제3과 세례를 받으시다, 61쪽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예수님 마음속에서도 서로 다른 두 개의 세력이 거세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마르코 복음서를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악마와 함께 천사가 그분을 시중 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1,13). 천사와 악마가 40일 내내 예수님 곁에서 공존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예수님은 심한 내적 갈등을 겪으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제4과 유혹을 받으신 후 복음을 선포하시다, 75쪽
마르코 복음서가 전해 주는 제자들의 소명 사화에서는 ‘즉시’ 혹은 ‘곧바로’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 부사(에우투스εὐθὺς)가 강조되어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만 ‘곧바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1,18 참조), 예수님 역시도 ‘곧바로’ 제자들을 부르시고 계신 것입니다(1,20 참조).
- 제5과 제자를 부르시다, 85쪽
누군가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혹은 자신을 선택한 스승의 뒤를 따라간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제자와 스승이 함께 길을 걸을 때, 제자가 스승보다 앞서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길을 걷는 것만이 아니라, 길을 걷는다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모든 것에서, 곧 삶의 방식이나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또 인생의 갈림길에서 제자는 늘 스승의 뒤를 따라 걷는 자여야 합니다. 그 순간에 스승보다 앞서서 그분을 가르치려 들거나 스승에게 충고를 건네는 사람은 결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 제5과 제자를 부르시다, 87쪽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 활동을 묘사하면서, 종종 복음에 관한 말 한마디 없이 오로지 병자를 치유해 주신 이야기만을 전해 줍 니다. 게다가 때로는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를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 셨다고 말하며, 복음 선포와 병자 치유를 하나의 사건처럼 표현해 놓았습니 다. 예수님의 이러한 활동 자체가 바로 복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 제6과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 주시다, 103쪽
무엇보다도 참된 제자직에 대한 수많은 위의 가르침들이 바로 다음의 말씀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8,34). 제자들을 향한 첫 번째 가르침은 이처럼 십자가에 대한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제9과 수난을 예고하시며 제자들을 가르치시다, 143쪽
군중은 예수님에게서 강력한 힘과 권력으로 이스라엘을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해 줄 새로운 이스라엘 왕조의 탄생과 정치적 메시아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그와는 전혀 다른 메시 아, 곧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을 가져다줄 메시아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엇갈린 군중과 예수님 사이의 생각 차이 는 결국,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의 기대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15,13- 14)라는 외침으로 변하게 할 것입니다.
- 제11과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정화하시다, 169쪽
예수님께서 지니신 메시아로서의 참다운 모습은 기적을 통한 영광이 아니라, 수난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서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코 복음서의 가장 핵심적인 신학인 ‘메시아 비밀 사상’입니다.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신원이 갈릴래아에서는 계속해서 감추어져 있다가, 예루살렘에서 수난과 죽음의 순간에 다다라서야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제12과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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