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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60233520 |
|---|---|
| 쪽수 | 204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시
AI추천 이유
해방둥이로 태어난 시인에게도 현대사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동네 친구의 아버지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연루되어 주검으로 돌아오자, 시인의 아버지는 그날로 집을 나갔다. 빨치산이 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하고 그 이후로 시인은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시인은 그 동네 친구와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이 젊은 부부의 앞날은 험하기만 했다.
시인은 삶을 살아왔고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시를 썼다. 내내 토하지 못하고, 웅크려 왔던 아버지를 보내 주고 싶었다. 또 누가 받을까 무서워 누를 수 없는 ‘휴대전화 단축 번호 1번’이었던 그이를 맘껏 그리워하고 싶었다. 늘 석탑처럼 서 있던 할머니와 늘 내일을 좋아하셨던 어미의 한평생을 풀어헤치고 싶었다. 이렇게 시인은 총 80편의 시들을 펴놓았다.
[시집 뒷이야기]
시로 씻어낸 주홍글씨
이 시집은 해설을 쓴 박제영 시인의 말처럼 “자전적 시집”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서사시는 아니다.
시인이 해방둥이로 태어나고 여섯 살이 되었을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은 이미 비극을 배태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남한 사회 전역에는 마녀사냥의 광기가 휩쓸던 시대다. 주지하듯 보도연맹 사건이 그것.
그 광기는 시인의 삶에 직격탄을 날렸다. 전쟁이 일어나고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제사를 모시던 시아버지가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고 만 것. 이 소식을 접한 시인의 아버지는 친구의 시신이라도 집으로 모셔 오려고 학살 현장을 찾았다. 그렇게 시아버지 시신을 고향으로 모셔 온 아버지는 그길로 집을 나가셨다.
사람들은 “성당 마당에서 은행잎을 쓸던 이가 닮았다 하고 / 대둔산 굴속에서 싸리잎에 불을 지펴 / 밥을 짓던 이가 영락없다 하고”(「아버지는 아침 이슬」 부분) 수군댔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할머니와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논산경찰서 광석지서를 찾아가 “○○○이는 집에 오지 않았다. ○○○에 대한 들려오는 소문도 없다”라는 각서를 써야 했다. 어떤 날은 밤샘 조사를 받고 오는 일도 있었다.
이 두 친구의 아들과 딸은 연좌제가 시퍼렇던 시절 교사와 군인이 자신들의 안위를 지켜줄 것이란 막연한 믿음으로,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각자의 미래를 설계했다. 시인은 공주사범학교로 시인의 남편은 충남대 축산학과로 진학해 ROTC가 되었다.
시인의 교사 생활은 눈칫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주 송정초등학교는 물론 고향으로 돌아와 두 곳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조그마한 소요라도 있을라치면 교장실로 불려가기 일쑤였다. 초급장교를 택한 남편에 대한 압박은 더 심했다. 결국 시인도 남편도 자신들의 안위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교사와 군인이란 직업을 포기했다.
괴나리봇짐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그 후 서울 변두리를 전전하며 세 남매를 키웠다. 이제는 가훈은 아니지만 “남에게 모질게 굴지 말라”는 부모의 가르침을 잘 따르며 성장한 아이들이 고맙고, 손주들의 어리광도 마냥 즐겁다.
그러던 2018년의 어느 여름날 친구이자 동지로 고통을 함께 짊어졌던 남편은 시인의 곁을 떠났다. 남편의 1주기 추도예배 때부터 시인은 예배 순서지를 직접 만들었다. 이 순서지로 예배를 드리고 난 자식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머니 이 순서지는 그 어떤 성직자의 예전 문안보다도 훌륭해요. 문학성도 있고요.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시는 건 어때요?” 했다.
그 후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특히 젊은 시절의 남편을 추억하며 시편들을 써 내려갔다. 또 문학소녀 시절을 떠올리며 친구들의 이야기도 수놓았다. 이 시집은 그렇게 탄생했다.
역사가 알려주지 않은, 우리의 삶의 이야기. 시인의 시를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역사의 뒤안길을 둘러보았습니다. 꽃보다 고왔을 소녀가 기억하는 그 시간에는 삶의 무게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우리의 엄마들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모질고 시대가 어수선해도 밥짓는 연기는 오르고 다듬이돌 소리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일평생 함께 했던 고마운 이에 대한 그리움이 뜨거운 돌덩이가 되어 마음속 깊숙히 자리합니다. 하나둘 늘어가는 빈자리를은 한자한자 적어 내려간 시인의 시들로 채워졌습니다.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꺽이지 않은 시인의 삶을 통해 시대를 살아온, 아니 이 시대에서 살아남은 여인의 모습을 엿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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