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장 리트의 발달 과정
리트의 어원과 의미
리트에 내재화된 시와 음의 일치
리트의 선행 단계
리트의 발전 과정에 영향을 끼친 역사적, 정신·문화사적 배경
낭만주의 독일 예술가곡
2장 서사 오페라
중세시대의 리트
바그너의 중세 서사문학 수용
서사 가곡
서사 오페라
서사 오페라 축제극장
3장 서정 가곡
슈베르트의 가곡
슈만의 가곡
클라라 슈만의 가곡
브람스의 가곡
볼프의 가곡
말러의 가곡
슈트라우스의 가곡
[본 문]
리트는 시가 발표된 이후 작곡가들에 의해서 곡이 붙여졌기 때문에 음보다는 글이 먼저다. 시는 작곡가에게 감동을 주고, 작곡가는 그 감동을 음악적으로 해석해서 가곡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가곡에 시를 제공한 문인들은 오늘날까지 잊히지 않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때로는 리트에 시를 제공한 시인의 이름은 잘 모르는데 작곡가의 이름만 잘 알려진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로렐라이」의 경우 하이네가 쓴 시라는 것이 질허라는 작곡가가 쓴 곡이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전래해 오는 로렐라이 이야기는 하이네의 손을 거치면서 훌륭한 시로 자리 잡았으며, 질허 이외에 리스트와 클라라 슈만도 곡을 붙였다. 하지만 작곡가보다는 하이네라는 시인이 <로렐라이> 리트와 관련해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와 반대로 우리에게 흔히 ≪겨울 나그네≫로 알려진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여행≫의 경우는 빌헬름 뮐러라는 시인이 작사자라는 것을 아는 경우가 드물다. _ 6~7쪽, “여는 글”
과거부터 시와 음의 일치는 그리스 신화 속의 오르페우스, 찬양가, 민네장, 마이스터게장, 민요 등으로 이어져 내려왔는데, 본격적인 조명을 받은 것은 18세기 후반 이후 가곡에서부터였다. 앞에서 썼듯 가곡은 일반적으로 시와 음이 하나가 되어서 예술적 단계로 융합된 장르다. 이 리트는 기악곡과는 달리 그 노랫말이 직접 청중에게 구체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리트 작곡에서 시 자체를 음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음이 시보다 더 중요하다고 봐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작곡가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또 이것에 대한 관점은 시대와 작곡가마다 달랐다. _ 22쪽, “1장. 리트의 발달 과정”
우리에게 <오, 소나무야!>라고 소개된 이 곡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원래 독일 민요에서는 소나무가 아니라 전나무이며, 전나무는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때 흔히 사용된다. 전나무는 한국의 소나무처럼 독일 지역에서 친숙하게 여기는 나무인데, 이 노래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번역·소개되면서 한국에서 친숙하게 여기는 소나무로 바뀐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 독일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많은 것을 번역했고, 그 영향으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한국의 학교에서도 자연스럽게 독일 민요를 한국어로 번역 또는 개작한 가사와 함께 접한 것이다. 가사를 개작하는 경우 원래의 노랫말과는 의미가 동떨어지지만 부르기 쉽게 바뀌고, 민요는 또한 멜로디가 쉬워서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노래를 익힐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독일 민요들 중 일본어로의 번역이나 개작을 거쳐서 한국의 동요가 된 것이 꽤나 많다. <옹달샘>, <나비야> 등의 동요가 대표적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독일 문화가 민요를 통해서 한국의 동요에도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_ 55~56쪽, “1장. 리트의 발달 과정”
세계 음악사에서 독일 예술가곡은 1814년 슈베르트가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물레 잣는 그레첸>을 통해서 탄생했다. 파우스트를 그리워하는 그레첸의 사랑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이 가곡은 음악사에서 본격적으로 독일 예술가곡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17세였던 1814년 10월 19일에 작곡되었으며, 괴테의 시와의 첫 번째 만남에서 탄생한 것이다. 또한 <물레 잣는 그레첸>은 그로부터 1년 후 작곡된 그의 가곡 <마왕>과 더불어 가곡 장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슈베르트가 가장 활발하게 작곡 활동을 했던 1815년에서 1816년 사이의 많은 가곡 중에는 옛 전통에 따라 단순하고 대부분 화음 피아노 반주로 구성된 단순한 민요조 곡들도 있으나, 그의 예술가곡은 특히 연가곡들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후 슈베르트를 시작으로 낭만주의 독일 예술가곡은 슈만, 브람스, 리스트, 볼프, 슈트라우스까지에서 전성기를 이루었다. _ 95쪽, “1장. 리트의 발달 과정”
음악사에서 볼 때 바그너의 의미는 서사 오페라, 즉 악극을 개척한 점에 있다. …… 그는 아리아, 듀엣, 피날레 등의 장면을 포기하고 그 대신 그 부분들을 설화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악극에는 아리아가 없는 대신 노래하는 이야기 내지는 독백, 대화 등이 들어 있다. 이것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줄거리와 오케스트라 음악에 의해 서로 섞여 있다. 게다가 특정한 인물, 대상, 감정에 특정한 음악적 모티브를 부여하고, 그 주된 모티브들을 반복함으로써 청중에게 낯익은 느낌이 들게 하는 심리적 효과를 주었다. 그런데 그의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음악 그리고 삶과 관련해서, 그 어느 음악가도 바그너처럼 극단적 평가가 양립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바그너를 거절했던 브람스나 차이콥스키 같은 작곡가 이외에도 니체, 아도르노, 토마스 만, 카를 마르크스가 바그너를 비판했다. 니체의 경우 『음악의 정신에서 나온 비극의 탄생』에서 독일 문화의 개혁자로 바그너를 칭송했고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라는 에세이를 그에게 헌정하기도 했으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는 서서히 바그너 찬미에서 벗어났고 나중에는 ≪파르지팔≫을 비독일적인 데카당스 작품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_ 111쪽, “2장. 서사 오페라”
바그너의 ≪반지≫에서는 탈신화화와 탈영웅화 또는 비신화화와 비영웅화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신화는 인간 사회에서 늘 유효한 이야기이며, 그 소재는 모든 시대 어디서나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의 사례인 것이다. 신화의 장점은 그 내용이 가장 압축되어서 어느 때나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그너에게 시인의 과제는 신화를 해석하는 일인 동시에 신화를 새롭게 창작하고 그것을 연극 속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 비극의 혁신은 신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과거의 신화적 사건을 악극을 통해서 현재화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라는 시점에서 비판적 성찰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바그너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북유럽 및 게르만 그리고 그리스적 전통에서 나온 신화의 파편들을 조합해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_ 153쪽, “2장. 서사 오페라”
원래 바그너의 생전 구상에 따르면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니벨룽의 극장’이며, ≪니벨룽의 반지≫ 공연을 위해서 지어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 공연과의 연관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4부작 작품이 없었다면 그의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 대한 구상은 전혀 다른 형태였거나 다른 곳에 건립되었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 ≪니벨룽의 반지≫는 총 상연 시간이 16시간 정도이지만 성악가들, 오케스트라 연주, 군중 장면, 무대 미술과 장치 및 의상을 통해서 매번 아주 현대적인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으로 인해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서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_ 181~182쪽, “2장. 서사 오페라”
뮐러의 연작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주인공인 물방앗간 도제 또한 마이스터가 되려면 ‘편력遍歷’ 시기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Wilhelm Meisters Wanderjahre oder die Entsagenden』라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마이스터가 되는 데 도제의 ‘수업 시대’와 ‘편력 시대’는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독일의 장인 전통문화에서는 도제가 장인이 되려면 여러 경험과 실습을 거쳐야만 했다. 그중에서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직업적 경험을 쌓고 다양한 장인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일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편력 시기는 중세 후기에서 산업화가 시작될 때까지 마이스터 자격을 얻으려는 도제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도제의 편력 시기와 그 의무는 시대나 직업 분야와 길드에 따라 달랐지만, 그것은 규정으로 정해져 있었다. 편력 시기와 특정 몇 년의 방랑 수업이 끝나면 마이스터가 되었고, 그에 맞는 일자리를 얻는 것이 가능했다. _ 223쪽, “3장. 서정 가곡”
클라라의 삶은 정열, 책임과 의무, 그리고 사랑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녀는 어머니로서 여덟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중 한 아이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죽었고, 다른 네 자녀는 성인이 된 후 질병과 죽음을 맞았으며, 가장 사랑했던 뛰어난 음악가이자 남편인 슈만은 우울증을 앓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그녀는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한편으로는 본인보다 약 열네 살 연하의 음악가 브람스와 특별한 사랑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 그녀가 쉬지 않고 유럽의 전 지역에서 줄곧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녀의 음악에 대한 초인적인 의지와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그녀는 자신이 연주자로서 생전에 잊히는 것을 대단히 두려워했다. 예술가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은 예술가로서의 느낌과 감성의 힘이 물리적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당대에도 잊히지 않았고 또한 후대에도 그녀의 작곡과 연주를 통해서 기억되고 있다. 평생 슈만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 데 온 심혈을 쏟았던 클라라는 남편의 위대한 그늘에 가린 존재가 아니라 19세기 뛰어난 여류 음악가로서 슈만과 함께 늘 나란히 기억되고 있다. _ 294~295쪽, “3장. 서정 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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