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 양성에서의 로마법〉, 23쪽
로마법이 오늘날 젊은 법률가들을 학문적으로 양성하는 데 구성 부분이라 한다면, 이는 현대의 법사고가 사법영역에서만 다양한 방식으로 이 고대 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현대 문화가 많은 분야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지속적인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건축술, 도시시설, 도로체계, 수공업의 많은 기반 기술 및 도구, 산술과 기하학, 언어학, 문법 그리고 특히 철학에 이르기까지 계속 살아 있는 고대의 형식들을 생각해 보라. 법에서는 특히 더 고대 그리스·로마의 영향이 깊고 강하게 드러난다.
로마법은 그 학문적 가공 단계에서 결정적으로 그리스 법철학에 의해 영향을 받았는데, 근세까지 중남부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법이었으며, 독일에서는 1899년 12월 31일까지 효력 있는 법이었다. 세계의 수많은 주요 대학에서 강의가 개설되고 있는 로마법은 유럽의 핵심영역을 넘어 그 문화적 영향력을 널리 발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현대 사법(私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사법의 효력과 내용 모두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보편적인 인식에 따르자면, 법은 단순히 국가의 입법자가 제정하고 법원이 적용한다는 이유만으로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규율이 법으로 인식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법률로 격상되고, 법원에 의해 적용되는 것이다. 이런 결정에 있어, 법으로서 효력을 가졌던 규칙들에 대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경험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경험은 비교적 짧거나 길 수 있다. 하지만 냉철한 의미에서 항상 역사적이다. 역사, 즉 인간들이 경험한 시간에서만 법의 경험이 존재한다. 그리고 새로운 규칙들로 미래를 빚어내려고 한다면, 다시 경험에 의해서만 이 규칙들이 합리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배울 수 있다.
〈주석학파〉, 36쪽
이르네리우스와 그 계승자들은 주석학파(glossatores)라고 불린다. 그들은 로마법의 언명들을 당시 상황에 맞게 짧은 ‘주석’(glossa) 형태로 해석하였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짧으면서도 체계적인 ‘요약서’(summa)도 작성하였다. 유명한 학자로는 네 명의 박사(quattuor doctores)인 마르티누스(Martinus), 불가루스(Bulgarus), 후고(Hugo) 그리고 야코부스(Jacobus)가 있었는데, 이들은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Friedrich Barbarrosa)6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외에 아조(Azo)와 후고리누스(Hugolinus)가 있었다. 그들의 모든 주석서는 아쿠르시우스(Accursius. 1263~?)가 표준주석(Glossa ordniaria)으로 종합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9만 6천 개의 주석을 집대성하였다.
그리고 볼로냐에서 이들의 뒤를 이어 주해학파(Kommentatoren) 또는 후기 주석학파(Postglossatoren)가 등장하였다. 그중 가장 위대한 이름은 바르톨루스(Bartolus. ?~1357)와 발두스(Baldus. ?~1400)이다. 다툼의 여지없이 300년 이상 주도권을 가졌던 볼로냐를 통해 유럽에서 법학은 대학의 전공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2세기 중엽에는 볼로냐에 약 1만 명의 법학도들이 있었다.
교황과 황제의 대충돌(1077년 카노사의 굴욕)에서 로마법은 원칙적으로 세속권력의 편에 섰고, 황제의 지원을 받았다. 황제 편을 든 이르네리우스는 1119년 교황에 의해 파문·추방되기까지 했다. 초기의 사료에서 발견되는 ‘테우토니쿠스’(Teutonicus), 즉 ‘도이치’(deutsch)의 라틴어식 표현인 이르네리우스의 별명은, 그가 독일 혈통이었기 때문이거나 독일 출신 황제 편을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후자는 상대적으로 개연성이 떨어진다. 로마법은, 유럽에서 교회의 엄청난 정신적 권력에도 불구하고 신정정치가 정착될 수 없었고, 법질서는 원칙적으로 항상 세속적인 과제로 남게 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현대 로마법학〉, 51쪽
현대의 로마법학(Romanistik)은 고대 로마법을 그 고유한 조건 아래서 이해하는 과제가 있다. 이를 위해서 한편으로는 역사법학파의 낭만주의적 오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법운동(Freirechtsbewegung)에 영감을 받은 ‘변개(또는 수정)주의적’(interpolationistisch) 학문방향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변개주의 경향(Interpolationistik)은 로마의 사료에 포함된 법이론이 비잔티움(=동로마) 시대 또는 (동서 로마 분열 전) 고전후 시대의 법 사료에서 유래한다고 믿었다. 순수한 사료 그리고 로마의 왜곡되지 않은 민족정신에서 발원한 사료가 동로마인들과 고전후 시대 사람들에 의해 그리스-기독교적인 정신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우상 파괴적인 열정과 함께 주저 없이 추구된 이 연구 방향은 오늘날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고 말았다. 순수한 정신과 불순한 정신 간의 싸움을 주장한 변개주의적 학문 방향이 상정한 이 대결상(對決像)은 마니교적인(manichäisch)WP 색깔을 띠었으며 동시에 가치들의 과격한 무가치화를 대변하였다. 변개주의는 민족국가 형성이 늦은 두 나라인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주로 대변되었고, 그 전에 종교전쟁이 뒤흔들었던 16세기의 프랑스에서 주요한 선구자들이 있었는데, 이 변개주의 시대 전까지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입법은 상당히 높은 영감에 힘입어 창조적 법이성의 근본원리들을 포함한 작품으로 통하였다[쓰여진 이성(ratio scripta)]. 그러나 이제 그것은 어떤 변개자, 사기꾼의 작품으로 간주되었다. ‘interpolare’라는 단어는 『학설휘찬』의 법률 텍스트에서 사실상 사기적 행태를 의미하였다. 즉 “매도하기 위해 내놓은 상품을 사기꾼처럼 다시 새것인 양 보이도록 한다.” 더구나 교부(敎父)들(예컨대 테르툴리아누스에게 변개자는 심지어 악마 자체, 사기와 요술을 쓰는 조물주의 적이었다. 신성한 영감을 받아 등장하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선집(選集)으로서는 얼마나 큰 추락인가!
로마법을 자유법적·낭만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로마인들의 법과 헌법을 오로지 사회적·정치적 실천에서 찾고, 사법(私法)은 구체적 사례에 대한 결정들의 침전물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들에게 여전히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견해는 자연주의(Naturalismus)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데, 이 견해는 법을 가치평가 없이 인간의 행동과 결정의 단순 사실성으로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질서를 부여하는, 규범적 모델을 설정하는 사고의 의미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법체계에서의 사람 개념〉, 153쪽
‘persona’이라는 개념 및 단어는 고전 법학에서 ‘사람’(Mensch)을 가리킨다. 이 표현은 그 문화인류학적인 의미로 인해 중요한 지위를 갖는다. 이것은 동시에 두 가지, 즉 사회적 정체성과 사회적인 역할 연기(演技)를 의미한다. 사람은 그의 얼굴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경우 자신의 얼굴을 그들 쪽으로 돌린다. 고전전(前)의 자연법 시대에는 인간을 ‘머리’(caput)로 표현했는데, 이는 동일한 생각을 영혼이 깃들어 있는 인간의 신체에 적용한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머리’는 우리가 타인에 의해 인식되는 형상을 뜻했다1(caput, cuius imago fit, unde cognoscimur). 이로써 머리(caput)가 법에서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는 비교적 오래된 전문용어들도 설명된다. capitis deminutio maxima, media, minima와 같은 법률용어는 사람의 법적 지위(두격. 頭格)의 감소 등급을 대·중·소로 나눈 것인데, 순서대로 자유와 시민권의 상실, 시민권 상실, 가족에서의 지위 변경 등을 가리켰다. 또한 호구조사에서 이 법적 지위 조사대상이 되었던 무재산(無財産) 자유시민(capite censi)을 지칭할 때도 사용되었다.
이에 비해 ‘사람’(persona)이라는 개념은 원래 극장계에서 비롯되었고, 그리스어[πρόσωπον(prósōpon)]를 기원으로 하여, 사람은 ‘가면’을 의미한다. 이것은 법질서를 인간의 창조물로 파악하는 고전 법이 상정하는 법형상(Rechtsbild)의 특징이다. 철자의 강한 변형은 이 단어가 에트루리아를 통해 전해진 데 기인한다. 머리(caput)와 사람(persona)이라는 두 용어는 같은 대상을 가리키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von Natur aus) 의미 있는 존재와 공생(共生)에서 두드러지는 형상 사이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지하의 여신 프로세르피나(Proserpina),3 ‘네 머리에서 가면을 벗겨낼 것이다’(personam capiti detrahet illa tuo)”(Martials 3, 43)와 “모든 세상은 하나의 무대이며,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은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등장하고 퇴장한다”[세익스피어의 『당신이 원하는 대로』(As You Like It) II, 7]라는 문장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근세의 혼인법〉, 184쪽
근세의 혼인법은 로마법과 성서(교회)법이 혼합된 로마 교회법에서 유래했다.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혼인은 혼인당사자들의 성사이다. 당사자들의 합의가 혼인을 성립시키고, 혼인의 성적(性的)인 완성은 혼인을 해소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혼인은 원래 특정한 형식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유효한 결혼이 존재하지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다시 혼인하면서[중혼(重婚)] 이를 숨긴 경우, 이 중혼은 종종 일부다처제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의 트리덴티눔Tridentinum)는 사제 앞에서 혼의의 합의가 선언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합의는 여전히 결정적인 요소였다. 사제는 단지 공시(公示)를 위해 필요한 증인이었지만, 완전히 수동적인 증인에 불과했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결혼이 성례전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것’이 되면서 영주가 결혼을 주관한다는 생각이 생겨났고 그래서 강제 결혼(zwangsweise Ehestiftungen)도 가능해졌다. 이와 같이 개관한 발전과정을 지배했던 일부일처제의 원칙은 고수되었다.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는 이러한 법 전통에서는 인정된 적이 없었고, 동성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로마에서 이러한 관계는 당사자들의 자유에 맡겨졌다. 현재 이것을 혼인관계로 분류하는 것은 법문화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고전 법의 법원론에 따르면, 이러한 결합은 문명사회의 [자연에 의해 가르쳐진 사회생물학적 자연법(ius naturale) 위에 쌓아올리는] 만민법[(ius gentium) - 이는 그 보편성 때문에 보통법(ius commune)이라고도 불린다]의 법률관계가 아니라,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정적인 시민법의 법률관계에 해당한다.
〈채무와 계약〉, 254쪽
현대 법률가는 계약과 채무를 요건과 효과의 관계로 본다. A와 B가 계약을 체결하면, 법률효과는 한쪽이 다른 쪽으로부터 또는 양쪽이 서로 좁은 의미의 채무관계(즉 Obligation)에 기초하여 급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로마 고전 성기(盛期)에 비로소 등장했다. 즉 excontractu nascitur obligatio(계약으로부터 채무가 발생한다). 더 오래된 사고는 계약과 채무를 동일시했다. 예를 들어 소비대차계약은 일방적인 (즉 차주의 대주에 대한) 계약상 채무1이며, 매매는 양 당사자가 서로 이행을 소구(訴求)할 수 있는 쌍방적인 채무결합(obligatio ultro citroque = 쌍방거래의 의미에서의 contr-actus)이다.
채무는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사법(私法)적인 관계로서, 이에 기초하여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급부를 요구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채권자에 대한 채무자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다. 채권자는 채무가 이행기가 되었을 때에만 청구하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로마의 채무 개념은 자유로운 채무부담(오늘날 ‘법윤리적인 급부의무’)과, 자유롭지 못한, 채무자를채권자에게 종속시키는 책임(오늘날의 ‘다양한 형태의 강제 집행’)을 명확히 구별하게 하는, 고(古)시대 로마법의 가장 성공적인 창작물 가운데 하나이다. 이 창작의 큰 공로는 사법상 채무부담에 관한 법을 오로지 채권자-채무자 관계로만 파악하고 형법을 배제한 것이다. 옛날의 많은 법질서에 형법이 개입하였는데, 그것도 “나에게 빚진 것을 갚지 않는 자는 도둑이다”는 원칙이 그러했다. 이런 대응은 사회적으로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채무자를 감옥에 가두는) 채무자 감옥탑(Schuldturm)2은 이에 앞선 추방과 마찬가지로 지
급불능 상태가 된 채무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없게 만들었다.
로마법 교과서들에 나오는 태고의 소비대차계약인 nexum은 역사법학파의 완전히 불행하고 비역사적인 창작이다. 이것은 (채무자) 자신의 양도로서 구성되는데, 이는 채권자에게 양도되는, 채무자에게는 자유로운 급부 시간이 없다는 점에서 완전히 부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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