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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32475370 |
|---|---|
| 쪽수 | 27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교양사상
AI추천 이유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퀴어 세계
플라톤과 미켈란젤로, 셰익스피어와 오스카 와일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위대한 작품들을 낳은 대가라는 점 외에도 동성 간의 사랑을 이상적 형태로 여기고 이를 추구했다고 알려진 인물들이다. ‘퀴어’는 이렇듯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온 존재가 아닌, 고대 혹은 그 이전부터 인류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해 왔다. 잘 알려졌다시피 고대 그리스에서 ‘소년애’는 장려되는 관습이었고, 여성이 아닌 소년을 마음에 품고 그들을 육체적, 지적으로 함양하는 데 힘쓰는 것이 훌륭한 남성이 갖춰야 할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19세기 인물이었던 오스카 와일드는 엄중한 외설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재판대에 섰으나, 그보다 훨씬 오래전 사람인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동성애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소수자’의 설움을 경험할 일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떠한가. 이 두 가지 모습이 혼재한 가운데 한 문화권에서는 다른 문화권에서보다 ‘퀴어함’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반면, 특정 종교는 그것을 사탄의 행위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시 여러 문화 콘텐츠에서 퀴어 소재를 다루는 게 이제는 꽤 흔한 일이 될 만큼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진일보해 가고 있으나, 한편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해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여는 등 여전히 편협한 시각이 존재한다. 『키스를 멈추지 않을 거야』는 퀴어 정체성을 지닌 저자와 화가가 사랑에 있어서 오늘날보다 훨씬 열린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선례를 탐색해 나간 책이다.
사랑의 기쁨과 고통, 때로는 기묘한 욕망을 노래하다
이 책의 제목으로 차용한 “키스를 멈추지 않을 거예요”라는 문장은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시인인 테오그니스의 서정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자에 따르면 테오그니스의 서정시는 두 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2권에 실린 시 164편은 대개 동성애가 주제이며 아름다운 소년에게 바치는 시이거나 사랑의 고통과 기쁨을 노래한다.
남성 간의 동성애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퀴어 여성의 사랑은 그리스와 라틴 고전 문학에 남은 기록이 훨씬 적다. 레즈비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그리스 여성 시인 사포의 시가 일부 소개되고, 여성 간의 욕망을 그린 로마의 시인 마르티알리스의 풍자시는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현대판에서 삭제된 이력이 있지만, 퀴어 여성의 사랑에 관한 기록이 워낙 적은 탓에 저자는 그 글들을 “그 모든 지저분한 영광” 그대로 이 책에 실었다고 밝히고 있다.
‘퀴어(queer)’라는 영어 단어의 또 다른 뜻처럼, 우리는 다양한 신화 속 기묘하고 괴이한 장면을 마주치기도 한다. 자신의 욕망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서 관습을 따르기 위해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신한 이야기 속 주인공이 있는가 하면, 무덤에서 자라난 무화과나무를 연인의 환생으로 생각해 나뭇가지로 사랑의 행위를 하는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 이야기도 있다. 저자는 이들을 단지 ‘이상한’ 존재로 치부하기보다, 솔직하고 간절한 사랑과 욕망의 수만 가지 얼굴 중 하나로 우리에게 그려 보인다.
삭제되지 않은 진짜 세상을 담아낸 퀴어 작가들의 감동적인 글
세상에는 단 두 종류의 성별만 있고, 이 서로 다른 성별을 가진 사람들의 사랑만을 소위 ‘정상’으로 간주하는 세상은 진짜 세상을 담아내지 못한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역사와 문화는 퀴어 사랑의 증거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한 대로 “퀴어의 역사가 계속해서 무더기로 삭제”되고, “그 기록이 당혹스러울 만큼 침묵에 싸여” 있는 가짜 세상에서 “구석구석 퀴어함이 흐르는” 먼 옛날로의 여행은 누군가에게는 ‘소속감’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부여받는 뭉클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고대의 퀴어 영웅들을 찾아내 소개하고 그들의 모습을 현대적인 미학으로 재해석한 이 책의 저자 숀 휴잇과 루크 에드워드 홀의 고백적인 글들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것이 내가 고대 세계의 퀴어 이야기를 읽으며 경험한 급진적이고 계시적인 느낌이다. 나는 내가 역사의 캄캄한 조류에 내쫓긴 것이 아니라 황금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음을 안다.” 퀴어 작가로서 그들의 정체성은 고대의 신들, 철학자들, 시인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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