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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58966805 |
|---|---|
| 쪽수 | 136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시 > 한국시
AI추천 이유
[해설 엿보기]
모든 언어는 의미를 갖는다. 아주 작은 단어에서부터 하나의 문장, 문단, 혹은 한 편에 이르기까지 모든 언어는 제각기 다른 자기만의 고유한 의미를 소유한다. ‘꽃’이라는 단어는 ‘붉은 꽃’이라는 단어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피어나는 붉은 꽃’이라거나 ‘붉은 꽃이 피어나는 계절에 우리는 만났다’는 문장과도 다른 의미를 갖는다. 얼핏 보기에 언어가 갖는 의미는 이처럼 언어가 지닌 물리적 부피와 비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 언어가 갖는 의미란 그 물리적 부피와 항상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가장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미학적 양식이 바로 ‘시’일 것이다. 시는 짧은 하나의 단어로 무수한 의미를 중첩되게 만듦으로써 고유한 의미의 자장을 펼쳐내기도 한다. 혹은 무수한 단어로 하나의 의미를 첨예하게 파고들어 고유한 의미의 깊이를 길어내기도 한다. 이처럼 언어의 부피와 의미 사이의 비례 관계가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미학적으로 활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의 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 시집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시집에서도 시인은 깊이 있는 사유를 하나의 단어에 응축시켜 폭발력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사유와 문장의 반복을 통해 하나의 의미를 심도 있게 파고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과정은 시의 본령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바로 이 과정에 양선희의 시가 지닌 개성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이 시집을 여기에 이르기까지 정독한 독자라면 이미 눈치챘을 테지만, 그것은 바로 명징한 사유와 적확한 언어의 운용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시인의 말을 통해 부러 드러났듯 양선희라는 시인의 언어는 자신의 언어를 “맑고/분명”하게 드러냄에 주저함이 없다. 여타의 무수한 시인들이 자신의 사유를 부풀리고 언어의 활용을 자랑하기 위해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남용하는 것과 달리, 양선희의 언어는 그 사유의 분명함만큼이나 적확하고 제한된 언어를 통해 자신의 사유를 드러내고 있다.
잡초는 억세고 질기더라 잡초 뿌리 뽑겠다고 덤볐다 몇 번이나 나둥그러졌어 며칠 벌침 치료를 받아야 했지 뿌리 뽑는 일에 달려들 때는 특별히 조심해야겠더라
뿌리는 뿌리끼리 얽히고설켜 기운을 주고받는대 센 태풍이 나 큰 가뭄을 견뎌낸대 그래서 짓밟는 발밑에서도 꿋꿋할 수 있고 사는 일 겁먹지 않는 건가 봐
지상에서는 영역 다툼 심하지만
땅 밑에서는 그렇지 않대
홀로 죽어가게 서로 내버려 두지 않는대
산사태 막는 잡초
보약 밥상 되는 잡초
병 치료하는 잡초
연구 대상 잡초
그 무궁한
생명력들
깊이깊이
파 보려 하네
잡초들 세계
― 「잡초에 대한 단상」 전문
일상에서 마주한 잡초와의 실랑이, 그리고 그로부터 느낀 단상을 그리고 있는 위의 시는 양선희라는 시인이 가진 시적 언어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잡초에 대한 단상」이라 이름 붙여진 위의 시에서, 화자는 자신이 잡초를 대면하여 겪었던 일상을 서술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사유를 펼쳐낸다. 잡초를 뽑으려던 그의 행동은 뿌리째 뽑는 것이 어려운 까닭에 대한 인과적 사유로 빠져드는데, 이러한 사유는 잡초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 속에서 화자는 잡초의 형상에 인간의 삶을 투영하여 “짓밟는 발밑에서도 꿋꿋할 수 있고 사는 일 겁먹지 않는” 잡초의 모습에 기묘한 경탄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서 시인은 부러 철학이나 사상, 종교 따위에서 더러 사용되는 미사여구를 사용하거나 혹은 이국의 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사유를 풀어내는 대신, 간결한 일상어를 통해 자신이 경험하고 사유한 바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여느 독자에게나 익숙하게 읽혀질 쉽고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 자신의 감각적 사유 일체를 환원하여 시적 순간을 언어로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쉽고 일상적인 언어를 자신이 포착한 시적 순간을 서술하는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양선희의 언어가 갖는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 임지훈(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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