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축시 _ 현암 윤석산
책을 내며_ 수암 염상철
추천의 글_ 천도교 교령 준암 박인준 / 천도교 전 교령 인암 박남수 / 한국종교인연대 상임대표 김대선
수운 최제우 대신사 편
01. 경주 용담(龍潭)
02. 울산 여시바윗골
03. 내원암과 적멸굴
04. 지동(芝洞) 장조카 최세조의 집
05. 남원 은적암
06. 흥해 손봉조의 집
07. 대구 감영과 관덕당
08. 자인현(玆仁縣) 후연주점(後淵酒店)
09. 경주 대릿골
10. 수운 대신사 생가
해월 최시형 신사 편
01. 포항 흥해 검곡
02. 영양 윗대치
03. 영월 직동
04. 정선 무은담
05. 정선 적조암
06. 단양 송두둑·사동 일원
07. 정선 방시학가(房時學家)
08. 인제 갑둔리
09. 단양 천동
10. 익산 사자암
11. 공주 가섭암
12. 서택순가
13. 상주 앞재(전성촌)
14. 인제 성황거리
15. 김천 복호동(伏虎洞)
16. 진천 금성동(金城洞)
17. 상주 윗왕실
18. 보은 장내리·북실
19. 옥천 문바윗골
20. 음성 되자니
21. 원주 치악산 수레너미(水禮村)
22. 이천 앵산동
23. 여주 전거론
24. 원주 송골
25. 서울 사형 터
26. 여주 해월 신사 묘소
수운 최제우 대신사 약력 / 해월 최시형 신사 약력 / 참고 문헌 및 자료
[본 문]
[11쪽] 동학 천도교에의 채워 지지 않는 갈증을 지니고 살아가던 중, 고암 한한숙 어른과 심암 이동초 어른, 그리고 현암 윤석산 전 교령님 등을 가까이에서 뵙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의 도움으로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되었고, 특히 윤석산 교령님과 함께 뜻이 있는 동덕들과 전국에 남아 있는 스승님들의 발자취를 종종 답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이분들과 스승님의 발자취와 가르침이 담긴 곳을 애써 찾아가 곤 했습니다. 이렇듯 스승님들의 발자취를 찾아 답사를 시작한 지 벌써 20여 년이 됐습니다.
[39-42쪽]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구미산(龜尾山) 중턱에 자리한 용담(龍潭)은 행정구역상의 이름은 아니다. 구미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용추계곡(龍湫溪谷)에 용담정이 자리해 있고, 이곳에서 수운 대신사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고 동학을 창명(創明)하였으며, 세상을 향해 가르침을 편 곳이기 때문에 흔히 세상의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대신사는 이곳 용담에서 도를 펴시다가 포덕 4년(1863년) 12월 10일 조선조 조정에서 급파된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가 이끄는 관군에 체포되었다. 경주부에서 신상 파기를 마치고 서울로 압송되던 중, 철종(哲宗)의 승하(昇遐)로 과천에서 길을 돌려 대구 감영에 수감되어 취조를 받았다. 이후 조선의 조정으로부터 참형을 선고받고 대구 관덕당(觀德堂)에서 참수되었다.
[142쪽] 대신사께서 태어난 곳, 즉 생가는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이다. 1824년 10월 28일(음)에 어머니 한씨 부인 사이에서 최옥의 아들로 태어났다. 최옥이 후사가 없자 동생의 아들인 제환을 양자로 들인 후이다. 대신사는 최옥 나이 63세에 태어난 만득자(晩得子)이다. 그러나 과부였던 한씨 부인이 재가를 하여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서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나이 스물이 될 때까지 생가에서 살았지만, 화재로 집이 모두 소실되어 잠시 장조카 최세조와 지동에 가서 살다가 용담 깊은 산속의 와룡암 자리의 집으로 들어갔다. … 대신사 생가는 용담정 주차장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화재로 소실된 이후 대신사 생가는 오랫동안 빈터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1971년 천도교가 주축이 되어 마당에 귀부와 이수를 갖춘, 5m 높이의 유허비를 세웠고, 2011년 11월 경주시가 동학 발상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하였다.
[167-168쪽] 영양 윗대치는 당시 모여드는 동학 도인들로 하여 ‘동학 공동체 마을’과 같았다. 대신사사 모님을 중심으로 대신사 승통일인 4월 5일, 대신사 탄신일인 10월 28일, 대신사 순도일인 3월 10일, 이렇듯 일 년에 세 번의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자연히 제사를 모시는 날이면 다른 지역의 동학 도인들도 참여하게 되고, 이 자리에서 동학 재건을 논의하게 된다. 사계절마다 49일의 특별 기도식을 봉행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이와 함께 해월 신사께서 친히 스승님인 대신사 가르침의 글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입으로 구송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받아쓰게 함으로써 스승님의 가르침을 펴기도 했다.
[256쪽] 공주 가섭암(迦葉庵)은 공주 마곡사(麻谷寺)의 말사(末寺)이다. 해월 신사께서 가섭암을 찾은 것은 1884년 10월의 일이다. 익산 사자암에서 4개월간의 기도를 마치고, 해월 신사는 새로 입도한 신진 도인들을 대동하고 가섭암을 찾아 49일 기도를 봉행한다. 가섭암은 공주군 사곡면 구제리 마가변두에서 개울을 건너 북쪽으로 난 가파른 산길을 따 라 올라가면 만나는 작은 암자이다. 산세가 묘해서 아래에서는 암자가 보이지를 않는다. 당시 해월 신사께서 대동했던 신진 도인들은 손병희(孫秉熙), 박인호(朴寅浩), 송보여(宋甫汝) 등이다.
[282쪽] 해월 신사는 1886년(丙戌年) 봄부터 도인들에게 위생에 각별히 신경 쓸 것을 당부했다. 가래침을 뱉으면 땅에 묻고, 먹던 음식을 새 음식에 섞지 말 것이며, 항상 부엌을 청결히 해야 한 다고 강조했다. 주변과 환경을 깨끗이 하는 한편, 지성으로 수련에 임하여 심화기화(心和氣和)를 이루도록 가르친다. 그해 6월 하순부터 콜레라가 유행하여 많은 인명이 이에 감염되어 몸을 상했으며 콜레라는 추석이 지나서야 가라앉았다. 다행히 수도한 보람이 있어 도인 집은 거의 무사했다고 전한다. 해월 신사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동학 도인의 집안에서는 전염병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소문을 듣고 충청(忠淸), 전라(全羅), 경상(慶尙), 경기(京畿) 등지에서 많은 인사가 모여들었다.
[294쪽] 해월 신사께서 「내칙」과 「내수도문」를 쓰고 반포한 복호동은 경북 금릉군 구성면 용호리에 있다. 김천에서 버스를 타고 거창 방향으로 가다가 지례(知禮) 못 미쳐 16km 지점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김천 쪽으로 되돌아서면 우측으로는 일천(日川)이라는 내가 흐르고, 좌측은 골짜기이다. 이 골짜기를 따라 끝까지 들어가면 양쪽 산줄기가 맞닿아 좁은 골짜기의 어귀를 이루는 곳에 당도한다. 이곳이 복호동 입구이다. 해월 신사는 이곳에서 1889년 11월에서 1890년 3월까지 4개월 정도 머물면서 부인수도를 위한 「내칙」, 곧 부인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과, 부인들이 어떻게 수도를 해야 하는가를 밝힌 「내수도문」을 짓고 반포하였다.
[330쪽] 130여 년 전 이곳 보은은 동학이 지향하는 세계인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조화와 균형의 정신이 그대로 현현되었던 곳이며, 나아가 동학 정신의 현현을 통해 우리나라에 있어 최초로 민주 시민으로서의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자랑스러운 지역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보은 장내리는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민권사상과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지켜야 한다는 자주주의가 성숙된 시민의식과 함께 자리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공론의 장’이었다.
[368쪽] 해월 신사께서 오천 년 동안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고 하신, 새로운 제례법 ‘향아설위’를 처음으로 거행한 앵산동 일대는 들판과 야산이 연달아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있는 능선의 끝부분 남쪽에 있는 마을이 해월 신사께서 향아설위의 가르침을 폈던 마을이다. 앵산동(鸎山洞)이라는 이름은 동네 앞에 있는 작은 봉우리를 ‘앵봉(鸎峯)’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앵산동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조그마한 야산 밑에 20여 호 안팎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마을 앞에는 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그러니 벌판의 끝에 자리한 마을이라고 하겠다.
[408] 해월 신사 묘소는 2021년 5월 경기도 기념물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주록리 계곡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 보면 성혈사라는 작은 절이 있고, 그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오르면 해월 신사 묘소에 다다른다. 도중에 (사)동학농민혁명서울기념사업회에서 세운 ‘천도교 제2세 교조 해월 신사 최시형 묘소 1km’라고 쓴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묘소까지 오르는 길은 계곡물 소리가 들려오는 데다 숲이 우거져 있어 청량한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산길을 따라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별다른 이정표 없이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원적산 중턱에 자리한 묘소에 이르면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시야에 건너편의 능선과 뒤편의 원적산 기슭이 수려하게 펼쳐진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이 볼수록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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