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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프씨 안녕하세요?(현대시기획선124)

  • 오덕순
  • 한국문연
  • 2025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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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ISBN-13 : 9788961043823
쪽수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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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새로운 언어의 알을 품고

내면 깊은 곳을 응시한다.

 

마음속에 여문 시의 열매,

오랜 시간의 심층을 뚫고

껍질 밖으로 톡톡 터진다.

 

심장을 치며 행간을 날아가는

시혼의 날갯짓 속에 꽃이 핀다.

 

꽃나무의 눈빛이 아리다.

 

2025 3

오덕순

목차

[목 차]
  

● 시인의 말

 

 

1부 나에게 돌아오는 나에게

 

날아가는 1 10

줄기 속을 지나가는 11

나에게 돌아오는 나에게 12

목구멍 속의 앵무새 14

블랙홀 16

오감의 싱크홀 18

파우치를 이해하다 20

단 한 줄 22

생각을 주고받았지만…… 24

내 정수리 위에 26

하루가 가을의 빛으로 28

눈의 눈은 젖은 눈이다 30

25시의 달 32

0.1초의 응시 34

 

2부 스탬프 씨, 안녕하세요?

 

맑은 날의 스카이라인 38

보도블록을 깨다 39

오늘의 무늬 40

나는 보건소에서 탁구공처럼 42

먼지의 방 44

스탬프 씨, 안녕하세요? 46

그림자를 스캔하다 48

블라인드 뒤에서 낮달이 뜨다 50

그 많던 호랑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52

뻐꾸기가 된 우울증 54

터널증후군 56

제로섬 58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60

자기 고백의 저녁 불빛 속에서 62

 

3부 식물성의 어둠 속에서

 

유리병의 몸속에서 66

예각을 버리다 68

사각 이중 유리창 너머의 저녁 70

식물성의 어둠 속에서 72

연보랏빛 메일을 날린다? 74

번호 인간의 비밀 76

마스크의 방식 77

비대면으로 호젓해지는 사이 78

꽃의 작화(作話) 80

해마 속 검은 꽃 82

언제 또 올 거야? 84

하하하, 웃음치료사와 함께 86

착시 88

 

4부 파워포인트, 물수제비 뜨다

 

() 92

파워포인트, 물수제비 뜨다 94

꽃잎 풍선 96

생활 다이어리를 넘기다 98

, 골똘하세요? 100

탁상이 좋아요 102

나는 커튼을 바꾼다 105

터널을 지나가는 스크린도어 106

블랙 프라이데이 108

아침뉴스의 채널을 돌립니다 110

해가 바라보고, 꽃이 뒤돌아보아요 112

 

▨ 오덕순의 시세계 | 임지훈 114


[본 문]
  

스탬프 씨, 안녕하세요?

 

 

 

그들은 물고기 모양을 A4용지에 찍고 있지요.

문서의 물고기는 어항 속의 금붕어를 닮았나요.

그날의 그들은, 그들만의 날짜를

한 손에 꿰차고 있지요.

아라비아숫자로 나열된 지느러미가 팔다리를 흔들어요.

 

그들은 자기들만의 작은 무늬를

자신을 닮은 그들만의 금붕어를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그날만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풀어놓지 않아요.

 

당신의 형상을 드러내는 상징물을 만들어보아요.

구체적인 서술어를 간략하게 해요.

 

금붕어는 새가 될 수 있나요.

날짜를 까먹은 당신은, 당신의 나이를 까먹어버렸나요.

어항 속에서 수평지느러미를 휘젓는 물고기는

비행기처럼 날아갈 수 없나요.

 

물속을 유영할 수 없는 모형 물고기와

하늘을 날 수 없는 모형 비행기 안의 그들은,

시간을 소모하며 날짜를 넘기고 있어요.

당신의 표정 없는 얼굴을 본뜨지 말아요.

 

그녀는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낙서를 남겨요.

안녕하세요? 당신은 말없이

그들의 자기들은 서로를 닮을 수 없는 작은 무늬들

어제를 지우고 오늘의 날짜를 찍고 있어요.

식물성의 어둠 속에서

 

 

 

문을 걸어 잠그면

방안은 다른 불빛으로 채워진다.

벽을 타고 뻗어가는 줄기를 잘라내도 한층 더 푸른 잎을 펼친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갈 때까지 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는

잎처럼, 빛은 사람의 정신을 곧추세운다.

 

구부러진 등에 흘러내리는 불빛은, 발을 빠뜨린 깊은 구멍 속으로

희미해진 그림자를 끌고 사라져간다.

 

유리 창문에 심장을 대고 톡톡 두드리는 노크 소리,

창밖의 소란을 잠재우고 방안의 고요를 뒤척거린다.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는 숨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온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기척에 온몸이 젖는다.

정수리 위에 홀로 반짝이는 빛 한 점으로

두 눈을 안대로 가린 한 사람의 뒷모습과 마주친다.

 

붕대를 동여맨 나뭇가지의 귀에 걸린

서로 잡을 수 없는 손을 맞댄 유리창을 바라본다.

거울 속 어둠으로 밀봉된 얼굴,

진홍빛 잔광을 지우는 블라인드 뒤에 숨는다.

 

노크하지 않는 창문을 달고

여닫을 수 없는 시간이 신발을 벗는다.

줄기 속을 지나가는

 

 

 

자꾸자꾸 나는 휘어지고 꺾어진다.

지금 껍질 속의 나와 결별하는 순간이다.

물컹거리는 내피의 감촉은 출렁인다.

 

빌딩의 각이 서로 교차점에서 미끄러진다.

하늘정원은 소리 없이 흐르고

나무의 물관은 한때 슬픔이었던 물방울을 길어 올린다.

 

초롱초롱 눈망울은 새로움으로 반짝반짝 떠오른다.

연초록 바람은 멈추지 않는 끝없는 움직임이다.

햇볕과 어깨를 맞댄 나뭇가지를 쓰다듬는다.

 

당장 사라지는 나의 일각과 맞닥뜨린다.

검은 머리카락은 어둠을 삭인 빛의 흔들림이다.

그늘을 지우는 뜰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다.

 

몸을 던지는 봄볕의 결말은 슬프지 않다.

마음의 둘레에 눈빛을 꽂는다.

마지막은 늘 처음의 길로 돌아간다.

추천사

    임지훈 (문학평론가)

    외부와 내면의 절대적 상관관계를 포착하고, 이것을 가능한 손실 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 그리하여 그렇게 탄생한 언어를 지팡이 삼아 어둠 속을 걸어가며, 다시금 그 어둠 속에서 시적 언어의 씨앗을 부풀려가는 일. 그것이 바로 오덕순의 시가 지향하는 바이면서 동시에 그의 시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적인 것이다.

출판사 서평

언어의 목적은 의사소통이다.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가 정련되고 재단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의 것이라면? 혹은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형태가 언어화될 수 없는 특수한 성격의 것이라면?

그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하나는, 정보의 손실을 각오하고 이를 언어화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인간 사회에서 많은 수의 의사소통은 정확한 언어에 따른 올바른 정보 전달이 아닌, 이러한 손실을 각오함으로써 이뤄진다. 그것을 각오할 수 없다면, 우리는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르는 수밖에 없다. 침묵하기. 손실 없이 말할 수 없는 것 혹은 언어화될 수 없는 것에 스스로 입을 다묾으로써 언어를 통해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무언가가사이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시적 언어가 근원적으로 불친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시적 언어는 은유와 환유를 축으로 삼아, 전달하고자 하는 바의 손실을 감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침묵하지도 않을 수 있는 제3의 선택지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집, 오덕순의 「스탬프 씨, 안녕하세요?」가 갖는 함의가 숨어 있다. 그의 화자는 가독성 높은 일반적인 수준의 생활 언어를 활용하면서도 단어의 선택과 문법적 요소의 결합에 있어 기묘한 개성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화자가 전달하는’, 문장은 개별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별다른 특이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연을 이루고 작품을 구성하는 순간 기묘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예컨대, 개별적인 문장 단위에서 축적된 언어의 결합을 통해 그 이상의 잉여적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 오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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