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머리말 • 5
01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을 담다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 15
02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 35
03 한국사 연구의 기본 자료
《조선왕조실록》 • 53
04 한글의 창제 원리를 밝히다
《훈민정음해례본》 • 75
05 한국학 연구의 보물 창고
《승정원일기》 • 89
06 조선 기록 문화의 꽃
조선 왕조 〈의궤〉 • 103
07 왕 개인의 일기에서 국가 공식 기록으로
《일성록》 • 117
08 조선의 왕이 지향하고자 했던 조선의 정신
조선 왕실의 어보와 어책 • 127
09 집단 지성으로 인륜 공동체 건설
한국의 유교 책판 • 135
10 백성을 위한 공공 의료
《동의보감》 • 141
11 이순신 장군의 진중 일기
《난중일기》 • 153
12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의 관계
조선 통신사에 관한 기록 • 159
13 전 국민이 참여한 경제 주권 회복 운동
국채 보상 운동 기록물 • 173
14 개발도상국에게 국가 모델이 되다
새마을운동 기록물 • 187
15 우리나라 민주화의 밑돌
1980년 인권 기록 유산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 191
16 전쟁의 아픔과 상흔을 딛고 평화로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 203
[본 문]
대장도감을 설치한 후, 1251년에 총 81,137장의 대장경을 완성했다. 8만 장이 넘었기에 ‘팔만대장경판’이라고 하며, 다시 만든 대장경이라는 의미에서 ‘재조대장경판’, 고려시대에 대장도감에서 만들어서 ‘고려대장도감판’이라고도 하며, 합천에 있는 해인사에서 보관하고 있어 ‘해인사고려대장경판’이라고도 한다._22쪽
《직지》는 상・하 두 권으로 간행되었는데, 상권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하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 원래 39장에서 1장이 사라져 38장만 남아 있다. 《직지》가 불교의 귀중한 문헌이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유명하게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본으로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이다._38쪽
《조선왕조실록》은 현대에 붙인 이름이다. 태조 시대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실록은 《태조실록》, 정조 시대의 일을 기록한 실록은 《정조실록》이라 이름 붙였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서 조선 왕조의 실록 전체를 《이조실록》이라 칭했으나, ‘이조’라는 명칭이 적당하지 않다고 하여 1955년 10월 12일 《조선왕조실록》이라 공식적인 명칭으로 확정했다. 참고로 북한은 《리조실록》이라 말한다._56쪽
《훈민정음해례본》은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문자의 음가, 운용법, 훈민정음에 대한 해설과 용례를 설명한 책이다. ‘해례’라는 말은 ‘보기를 들어 내용을 풀이한다’는 뜻이며, ‘본’은 책을 뜻한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훈민정음’이라는 문자가 아니라 《훈민정음해례본》이다._78쪽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는 일과 더불어 승정원 내부의 문서를 관리하는 일을 했는데 국정 관련 기밀 문서와 인사 관련 기록 등이었다. 업무 중에는 매일매일 일기를 작성하는 일도 포함되었다. 왕명이 드나들고 각 관청에서 하는 보고와 건의한 내용들, 거기에 따라오는 행정 사무와, 의례적인 사항 등 왕이 국정을 논의한 것을 편년체로 모두 기록한 이것이 《승정원일기》이다. 《승정원일기》를 기록하는 관리는 ‘주서’이다._90쪽
정조는 왕이 된 뒤에도 일기를 계속 썼다. 즉위한 지 5년째 되던 해인 1781년에 규장각 신하들에게 자신이 일기를 매일 쓰고 있으며, 이 일기를 공식적인 기록으로 후대에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 기록물을 《일성록》이라 이름 짓고, 공식적인 사업으로 추진했다. 정조는 평소에도 글을 많이 써서 문집을 지었는데, 《홍재전서》 중 〈군서표기〉를 보면 1783년부터 나랏일이 많이 늘어나 자신이 직접 기록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으니 규장각 각신에게 편찬하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_119쪽
왕위를 이을 아들(왕세자)과 손자(왕세손) 등 왕실의 승계자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왕세자나 왕세손에 책봉되는 전례(책례)를 치렀다. 이러한 전례에 쓰인 예물인 어보와 어책, 교명 등이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쓰였다. 어보는 왕을 책봉하거나 존호를 수여하는 의례에 쓰는 도장으로 금, 은, 옥으로 만들었으며 왕과 왕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리거나 왕비와 세자, 세자빈을 책봉할 때 만든다. 어책은 대나무(죽책)나 옥(옥책)에 새긴 교서로 세자와 세자빈을 책봉할 때, 비나 빈의 직위를 하사할 때 만든다._128쪽
서책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유교 책판’은 718종의 서적, 305개 문중과 서원에서 기탁한 총 64,226장으로 되어 있다. 특히 활자본과 달리 판목에 직접 새긴 목판본으로, 후대에 새로 제작된 번각본1)도 거의 없어 유일한 판본이다. 유교 책판은 16~20세기 유교 문화의 정수를 보여 준다._136쪽
전쟁이 끝나고 난 뒤 1601년 선조는 허준에게 왕실에서 갖고 있던 의서 《내장방서》 500권을 내주면서 다시 편찬을 지시했다. 선조의 지시에 따라 허준은 빠르게 《언해태산집요》, 《언해구급방》, 《언해두창집요》 등 세 가지 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공무가 바빴던 허준은 1608년 선조가 승하할 때까지 《동의보감》을 끝내지 못했다. 다음 왕이 된 광해군은 허준에게 선조의 병을 고치지 못한 책임을 묻고 싶지 않았으나 신하들의 성화에 허준을 의주로 유배 보냈다. 유배 중에 허준은 《동의보감》 편찬 작업에 전념했다. 1년 만인 1609년 귀양에서 풀려나 1610년 8월 《동의보감》을 완성해 광해군에게 바쳤다._145쪽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기간 동안 직접 쓴 진중일기이다. 1592년 1월부터 마지막으로 치른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직전인 1598년 11월까지, 거의 날마다 적은 기록으로 총 7책 205장의 필사본이다._155쪽
통신사가 일본에 다녀오면 일본에는 이른바 ‘조선 붐’이 일었다. 일본의 유행이 바뀔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는데, 통신사들의 활동을 그린 그림들이 이를 증명한다. 당시 통신사가 준 사소한 선물을 소중하게 간직해 그것을 그들의 문화재로 삼고 있을 정도다. 통신사가 일본에 남긴 것으로는 당인의 춤, 조선 가마, 필담으로 주고받은 시문 등 다양하다._170쪽
국채 보상 운동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나랏빚 1,300만 원을 갚기 위해 빈부귀천, 남녀노소, 도시농촌, 종교사상을 초월해 전 국민이 참여한 경제 주권 회복 운동이다. 앞서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대한 제국에 차관을 적극적으로 빌려주었다. 그 이유는 첫째 대한제국의 재정을 일본에 예속시키는 것이었고, 둘째는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차관으로 미리 정지 작업을 하려는 것이었다._175쪽
새마을운동은 말 그대로 새로운 마을을 만들려는 운동이다. 생활 환경의 개선과 소득 증대를 도모하기 위해 1970년에 시작된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다. 우리나라는 20세기에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새마을운동을 통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농촌의 빈곤을 퇴치했으며, 영농을 과학화했고, 농촌 마을을 성공적으로 현대화할 수 있었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기회가 되었다._188쪽
두 전직 대통령(전두환·노태우)과 고위 관리들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1997년 4월에 있었고, 폭동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항쟁 참가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7년에는 5월 18일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5·18민주화운동 때 사용된 묘지는 2002년에 국립묘지가 되었으며 피해자들은 국가 유공자로서 수혜자격을 얻었다._194쪽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져 살게 된 사람이 약 1천만 명이나 되므로 KBS는 이산가족을 찾아 주자는 취지로 한국 전쟁 33주년과 휴전협정(1953. 7. 27.) 30주년을 즈음해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획했다. 처음에는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으로 6월 30일 하루만 방영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방송은 1983년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_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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