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프롤로그 _ 10
제1부. R.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의 교육철학 _ 14
part. 1 근대 인도와 R. 타고르 교육철학의 형성배경 _ 16
part. 2 인도의 현실 인식과 R. 타고르의 현실극복 방안 _ 26
내셔널리즘(Nationalism) 비판 _ 26
공동체 사회와 보편적 휴머니즘(Universal Humanism) _ 37
part. 3 R. 타고르의 교육 철학 _ 42
교육적 이상으로서의 조화와 통일성 _ 44
모국어(mother-tongue) 교육 _ 48
자연과의 공감 및 농촌체험 _ 51
교육에서의 예술의 역할 _ 58
R. 타고르의 교육실험 학교들: 산티니케탄, 스리니케탄, 비스바 - 바라티 _ 64
제2부. 근대 인도미술의 전개와 인도 민족주의 미술 _ 74
part. 1 영국의 식민지배와 서양화풍의 수용 _ 76
동인도회사 양식 회화(Company Style Painting)와 그 영향 _ 77
미술학교의 설립과 식민지 미술교육 _ 83
라자 라비 바르마(Raja Ravi Varma)의 회화 세계 _ 89
part. 2 벵갈화파의 등장과 민족주의 미술운동 _ 101
벵갈의 지역적 특수성과 벵갈화파의 형성 _ 102
벵갈화파와 민족주의 사상 _ 110
‐ E. B. 하벨(E. B. Habel)과 A. 타고르의 만남 _ 111
‐ A. K. 쿠마라스와미(A. K. Coomaraswamy)와 문화적 민족주의 _ 117
‐ 니베디타(Nivedita)의 힌두 민족주의 _ 121
‐ 인도적인 것(the Indian)을 넘어 동양적인 것(the Oriental)으로 _ 129
제3부. 산티니케탄(Santiniketan)의 미술학교 칼라-바반(Kala-Bhavan) _ 138
part. 1 R. 타고르의 동양주의 비판 및 모더니즘적 사고 _ 140
R. 타고르와 노구치의 논쟁: 오카쿠라 텐신의 동양주의 비판 _140
모더니즘적 사고와 바우하우스의 수용 _ 144
R. 타고르의 그림들 _150
part. 2 칼라 - 바반의 교육 이념과 세 명의 미술가들 _ 157
칼라 - 바반의 교육이념: 인간과 자연, 동양과 서양의 조화 _ 157
세 명의 미술가들: 난달랄 보세, 베노데베하리 무케르지, 람킨카르 바이지 _ 159
part. 3 칼라 - 바반의 교육방법과 그 영향 _ 175
칼라 - 바반의 교육방법과 토착예술가 양성 _ 175
독립 이전의 인도 모더니즘 미술 _ 181
국제적 모더니즘과 인도 미술의 정체성 찾기 _189
에필로그 _ 200
부록 _ 208
‐ 참고문헌 _ 209
‐ 주석 _ 221
‐ 도판 목록 _ 233
저자 약력 _ 237
[본 문]
타고르는 모국어 교육이 인도 사회를 다 깨우는 상징이 된다고 생각했으며, 모국어를 다시 제 위치에 올려놓는 것이 인도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자기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으로 보았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과 평등하게 서있지 못하는 국민들이라면 스스로도 독립적으로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나라의 언어인 모국어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 자신감을 갖고 자기의 힘을 존중하는 것이며, 나라의 독립과 자주적인 위치를 이루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한 만큼 역시 모국어로 된 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P. 51
R. 타고르는 자연을 숭배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시인이나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의 숭배는 사원이나 교회나 모스크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자연의 불가결한 일부분이며 자연을 통해 상상력과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용기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였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창조성의 삶을 펼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산티니케탄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 P. 52
R. 타고르는 예술 교육에서 하나의 장르만을 강조하지 않고, 미술, 문학, 음악, 드라마, 디자인 등의 다양한 예술을 통한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는데, 학생들의 자기표현이 하나의 수단만으로는 충분한 소통과 표현을 이룰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문학에서 사용되는 단어들과 더불어 그 밖의 다른 예술언어들의 소통능력도 발견해야 하며, 선, 색, 소리, 리듬 등과 같은 것들을 통한 자기표현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매체를 수단으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창조성과 예술을 통한 교육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R. 타고르는 순수예술과 응용예술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구분이 인간의 정서적·직관적인 능력이 실용적 능력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나타났다는 점, 교육 과정에서 발휘되어야 할 창조성이란 종합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R. 타고르는 주장했다. - P. 62
R. 타고르는 그 자신을 세계의 시민이라고 생각했으며, 편협한 국수주의와 맞서려 했다. 따라서 그의 교육에서 전쟁이나 국가를 뒷받침 해주는 정치적인 제한은 의미가 없었고, 오로지 출생 장소와 자연과 사회를 포함하는 우주라는 큰 세계만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 안에서 국가나 인종이라는 틀로 제한을 두는 일은 없었다. 일본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그는 많은 나라들이 내셔널리즘의 정신으로 인해 타락해 가는 것을 보았고, 나라들 사이에 선의의 상호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대신 전쟁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전통에서 온 사상가들이 같이 모여 앉아 인간적 관계에 관해서 토론하고 함께하는 창조성을 즐길 여유는 전혀 없었다. R. 타고르는 거기서 보편적 통일성을 향한 정신이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슬픔과 불안함을 느꼈고, 산티니케탄으로 다시 돌아온 후 산티니케탄을 종교나 나라나 문화에 상관없이 전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화합의 장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인도인들과 인도의 미래를 생각하며 교육의 실험적 장소로 시작했던 산티니케탄이 한 단계 도약을 이루었고,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장소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 P. 68
오늘날 우리 미술계도 국제화의 흐름 속에서 전통적인 것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보편언어로서 미술의 위상을 확립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식민지 경험과 민족주의 및 세계주의의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가 R. 타고르의 교육철학과 실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을 밝히고, 그것들을 조화시키는 일이 1세기 전 인도 근대기의 선각자가 지녔던 고민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문제에 대한 해답이 하루아침에 혹은 단 한 번의 시도로 구해질 수는 없는 것이지만, R. 타고르가 산티니케탄에서의 교육활동을 통해 보여주었던 통합적 예술교육의 가능성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특히 예술이란 민족적이면서도 국제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예술행위에 있어서 보다 근본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동양적인 것에 앞서 한국적인 것의 정체성 탐구가 선행되고, 우리의 독창성을 살리기에 적합한 서구적인 것은 과연 무엇일지에 대한 탐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전통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의 조화를 목표로 했던 산티니케탄 미술학교 칼라‐바반의 교육방침이 우리 미술교육에서도 유의미한 참고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우리들만의 교육 방침과 방법과 노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것을 강조하면서도 미술의 세계적인 진보에 대응할 수 있는 미술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 P. 20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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