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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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들어가며
1.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의 운명
2. 심판하시고 처벌하시고 보복하시는 하나님은 없다
제2장 ╻기독교 신앙의 근거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할 때
1. 창조주로서의 신
2. 신의 전지전능에 대하여
3. 논리는 이 세계의 전제이다
4. 언어가 곧 세계이다
5. 하나님의 의미
제3장 ╻진화와 창조는 동일한 것이다
제4장 ╻창세기 1장의 올바른 이해
1. 창조의 본질
2. 창조의 법칙 - 번식력
3. 왜 하필 이 법칙인가?
4. 하나님은 진화를 창조했는가?
제5장 ╻창세기 1장은 지구 생태계 먹이사슬이다
1. 창세기 1장
2. 하나의 제안
3. 먹이사슬이 먹이사슬인 이유
4. 신의 과학 - 제럴드 슈뢰더
5. 진화란 무엇인가 - 에른스트 마이어
6. 최초의 7일 - 존 C 레녹스
7. 창조/진화는 먹이사슬의 완성이다
8. 창조/진화의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필연성
9. 스티븐 호킹의 ‘희망’에 반대하여
10. 창조와 진화는 왜 동일한 것인가?
11. 우주의 미세조정에 대하여
제6장 ╻기독교는 창세기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가?
대상화의 문제
제7장 ╻창조의 원리와 성(性)
1. 창조의 법칙으로서의 성性/음과 양
2. 인간의 성과 다른 피조물의 성은 어떻게 다른가?
3. 피조물은 모두 알몸이다 - 타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 물리계에서의 성性
제8장 ╻논리로 읽는 창세기 1장
I. 창세기 1장의 논리적 독해
1. 카오스
2. 빅뱅
3. 어둠과 빛의 분리
4. 대륙의 봉기와 갈라짐
5. 미생물의 창조
6. 식물의 창조
7. 식물의 광합성
8. 초식동물의 창조
9. 육식동물의 창조
10. 잡식동물 인간 창조
11. 인간의 먹을 것을 채식으로 규정
II. 창세기 1장에 대한 보론
보론 1. 카오스 빅뱅 에로스
보론 2. 자기지시/자기언급의 문제
보론 3. 창조의 본질
보론 4. 인간의 먹을 것에 대한 채식 규정
보론 5. 창조의 여섯 날
보론 6. 먹이사슬은 무엇인가?
보론 7. 먹이사슬을 통하여 보는 창조의 본질
보론 8. 지구 생태계 마지막 포식자로서의 인간
제9장 ╻논리로 읽는 창세기 2장
I. 창세기 2장의 논리적 독해
인간과 인간의 노동
II. 창세기 2장에 대한 보론
보론 1. 두 개의 창조 기사?
보론 2. 하나님에서 2장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변화
보론 3. 에덴동산의 의미
제10장 ╻논리로 읽는 창세기 3장
I. 창세기 3장의 논리적 독해
1. 진화하는 인간
2. 창세기 3장 본문 읽기
II. 창세기 3장에 대한 보론
보론 1. 창세기의 집합론
보론 2.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보론 3. 인간의 자의식이란 무엇인가?
보론 4. 인간 언어의 본질
보론 5. 노동이 창조한 인간
보론 6. 노동형에 처한 인간
제11장 ╻논리로 읽는 창세기 4장
창세기 4장의 논리적 독해
문명과 자연의 대립
제12장 ╻하나님 형상의 인간
1. 창세기 1장과 2장
2. 인식과 창조
3. 형상과 모양
4. 노동과 인식
제13장╻창조론과 진화론의 만남
제14장╻창조/진화의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필연성
1. 창조/진화의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필연성 1
2. 창조/진화의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필연성 2
3. 화이트헤드의 유신론
[본 문]
논리의 한계는 언어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 세계를 내어놓은 바와 같이 우리 인간도 언어를 통하여 이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계가 질서가 유지되는 이유는 질서, 그 뒤에는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논리가 없는 질서를 생각할 수가 있을까? 앞에서 물질을 통한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가 불가능하고, 언어를 통한 창조는 무로부터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했다. 물질이 아무렇게나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배열되어야 한다. 그로부터 질서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창세기 1장에서 하신 일이 곧 배열이다.
제2장 _ 〈기독교 신앙의 근거〉 중에서
과학에서 주장하는 자연의 진화와 종교에서 주장하는 신의 창조가 다 같이 논리적인 것이라면, 창조와 진화가 달라야 하는 이유는 없다. 창조론에서 말하는 그 대상은 인간의 서식처인 지구이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그 대상도 인간의 서식처인 지구로, 동일한 것이다.
제3장 _ 〈진화와 창조는 동일한 것이다〉 중에서
창세기 1장은 바르게 이해하고 나면 하나님이 사실적인 이 세계를 실제로 창조했다는 이해는 불가능하다. 창세기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 몸을 움직여서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하여 창조했다고 하는 기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이 세계를 실제로 창조했다고 믿으라는 것이 아니다.
제6장 _ 〈기독교는 창세기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가?〉 중에서
지금은 인간이 지구의 80퍼센트를 점하여 인간 홍수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이제 지구를 노아의 방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율, 땅에 충만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지라는 의미는 인간 공동체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진화론의 거장인 도킨스가 말한 것, 인간도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실화되는 일이다. 즉, 인간도 하나의 종으로서 유전자 보존의 차원에서만 살아남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제7장 _ 〈창조의 원리와 성(性)〉 중에서
지금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들이 이 세계를 두고 이것이 하나님에 의한 창조냐 진화의 산물이냐로 크게 싸우고 있으나, 양쪽이 다 창세기를 잘못 읽고, 바르게 읽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싸움이다. 과학계보다는 종교계의 잘못함이 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의 어디에도 신이 물질적인 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언어를 통하여 창조하는 신을 보여준다.
제9장 _ 〈논리로 읽는 창세기 2장〉 중에서
지금 기독교가 해야 하는 일은 창세기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이다. 창세기를 바르게 읽어내는 데는 지구 생태계에 대한 사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요청되는 것이 인간의 노동이다. 창세기를 바르게 이해하게 되면 기독교는 과학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지적설계 이론이나 창조과학은 과학과 화해하려는 시도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독교의 창세기에 대한 해석에서는 생물학적인 사유와 인간의 노동에 대한 사유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참으로 웃기는 일은 그 이유가 바로 그들이 창세기를 신화로 읽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창조가 오로지 인간을 위한 창조라는 해석이야말로 무신론의 정수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상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를 이해하는 데에 생태계에 대한 사유와 인간의 노동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립하는 근거가 성서의 창세기인데, 그 이유인즉 창세기가 그만큼 과학적이기 때문이다. … 창조와 진화는 그 실제에 있어서는 같은데, 창조론과 진화론이 다를 뿐이다. … 따라서 기독교는 싸우기를 그만두고 참된 창조론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을 문제 삼는 것으로부터 발아할 것이다.
제13장 _ 〈창조론과 진화론의 만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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