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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의 밥

  • 김지영
  • 이지출판사
  • 2025년 07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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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ISBN-13 : 9791155552599
쪽수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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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은 시인으로 수필가로 스토리텔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지영 시인이 다섯 번째 펴낸 시집이다. 짧고 쉬운 시가 읽히는 시대이지만, 김지영 시인은 장편 시 120편을 이 책에 담았다.

 

김지영의 시에는 온갖 사유들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그의 시 세계가 그만큼 밀도 있고 진중하다는 의미다. 그가 쓰는 시어들은 평범하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색을 지녔다. 제목도 소재와 언밸런스한 조합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그의 속내를 알아차리면 아하,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독자의 시선을 붙드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인 듯하다.

 

김지영의 시는 묵직하다. 눈길이 머무는 시계(視界)를 떠나 깊은 내면으로 걸어 들어간다. 삶의 자양분 안에서 포착한 언어들을 보듬고 쓰다듬고 때로는 아주 멀리 자신을 버리고 떠난다. 어느 새벽 무릎을 꿇고 무의식에 빠지기도 한다. 하루 펼쳐진 시간들을 압축봉에 가두어 호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서는 날도 있다.

 

특히 <> 연작시 25편이 압권이다. <섭리의 밥>이라는 묵직한 책 제목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에 관한 장편 연작시를 통해 그의 시 세계를 탐닉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목차

[목 차]

작가의 말 • 5

에필로그_ 나는 빚진 자입니다 • 212

 

 

1부 상수의 계절

 

삼월의 수소문 • 12

손톱 • 14

획 • 15

향기로운 자 • 16

찰나 • 18

지문 • 19

정오 • 20

천변 • 22

곡우 • 23

등나무 꽃 • 24

지하철 타다 • 26

감나무였습니다 • 28

모란 • 29

상수의 계절 • 30

개구리 • 32

수도관 교체하다 • 34

녹색(0.1 G 5.2/6.2) 36

그 집에 • 38

풀잎 끝 잠자리 • 39

바람의 집 • 40

달력 • 42

무사했구나 • 44

내 안의 연못 • 45

앵무새 놀이 • 46

제물 • 48

카페에서 • 50

봄 길 • 52

일요일 • 54

오후 네 시 • 56

선물 • 58

 

2부 뼈가 줄어드는 밤

 

망초꽃 • 60

어머니의 의자 • 62

식물성 언어 • 64

멸등 • 66

슬그머니 • 68

이석증 • 70

아카시아 꽃방 • 71

창 • 72

뼈가 줄어드는 방 • 74

여기에 • 76

삼겹살 • 78

서랍 • 80

지렁이 가다 • 82

새벽 • 84

양말 한 짝 • 86

공식적 죽음 • 88

벚꽃 • 90

빨강 • 91

그냥 • 92

고향 가는 길 • 93

염천 • 94

노송 • 96

가을이 온다 • 98

커피 내리는 아침 • 100

오후의 미용실 • 102

밤 • 104

여길 지나가 • 106

톤레샵 • 108

식탁보 • 110

장미가 흐드러졌습니다 • 112

 

3부 섭리의 밥

 

1 114

2 116

3 117

4 119

5 121

6 122

7 123

8 124

9 125

10 126

11 128

12 130

13 131

14 133

15 135

16 137

17 139

18 140

19 142

20 144

21 146

22 147

23 149

24 151

25 153

약속 • 155

건축법 • 157

춤추는 손가락들 • 159

섭리의 밥 • 161

그날 아침 • 163

 

4부 낙엽 세공

 

보라 • 166

간지럼 • 167

어째야 쓰까 • 168

낙엽 세공 • 170

메디컬 • 172

풍경 • 174

도장 • 175

흰 • 176

공원을 독서해요 • 178

유월을 베껴요 • 180

낮은 것 • 182

지나간다 • 184

수건 • 185

Happy Day 186

까마귀 • 188

겨울로 가는 마음 • 189

미끼 • 190

나의 생 • 192

이만하면 • 193

두레상 • 194

촉수 • 196

그날 • 198

오후 다섯 시 • 200

지금 • 202

날벌레 • 204

능금 • 205

비수기 • 206

누에를 아시나요• 208

부추 • 210

예약했습니다 • 211


[본 문]

1

 

 

아카시아 그늘에

자리 펴고 앉았어요

 

금빛으로 출렁이는 강물에

아버지는 투망을 던졌어요

투망에 딸려 나온

각시붕어, 쏘가리, 동자개, 피라미, 가물치…

 

어머니의 손맛이 든

도시락을 열면

배추김치 붉은 물이든

꽃밥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밀려왔어요

 

빛이 어른거리는

그늘에 누워

노란 환타를

돌려가며 마셨어요

 

녹색이 풀리고

우리들의 뼈마디도 물이 올라

미루나무처럼

명랑하게 자라고

 

그날

들에서

먹은 점심은 여름처럼 환했어요

 

 

3

 

 

어머니

가만히 되뇌기만 해도

눈물이 나요

 

칠만이 넘는 끼니를

차려내실 때도

눈치가 둔했던 우리

모든 끼니가 신선했음을

이제 깨달아요

 

두 번 삶아서 보드랍던 보리밥

팥물을 드려 쪄낸 찰밥

숭덩숭덩 떼어 넣어 끓여 준 수제비

노란 조밥

얼룩덜룩 수수밥

포실한 감자밥

달콤했던 고구마 밥

쑥 향기에 버무려진 나물 밥

 

여름이 깊어 지면

, 강낭콩을 삶아

가마솥 가득 끓여 내셨던 팥 칼국수

여름 저녁

죽 심부름을 다닐 때가 생각나요

발을 통통 구르며

걸어오던 골목

하늘에 달도

나를 따라오던 길

그때가 어제만 같아요

충만한 기억이 남아 있는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어요

 

 

5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밥그릇

쨍 소리를 내며 정지했다

진밥이

깨진 그릇에 조금 달라붙어 있었다

 

검게 그은 얼굴

둥글게 말린 등

빛바랜 치마폭에 싸인 층이

내려온 저녁을 어루만졌다

 

젖가슴을

어루만지는 아기의 손

맑은 눈동자가 반짝여

너는 어디에 놓아두어도

잘 살겠구나!

 

이마는 더 봉긋해지고

뜨거운 콧김을 불며

입술을 달싹거리는데

 

진밥이 싫은 남자

마당을 나갔다

 

 

7

 

트럭에 꽃을 싣고 온 남자가 골목에 임시 화원을 차렸다. 참새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듯 늘어선 화분 앞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로즈마리. 트리안, 노벨리아 꽃 이름이 죄다 외국말이다. 수국이 나 좀 데려가라고 눈짓한다. 봄마다 꽃을 사는 내게 화분 좀 그만 늘리라는 가족들 말이 걸리는데, 수국은 마당 큰 화분으로 옮겨심었다. 삼백예순날 혼자 꽃을 돌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투정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한데 가끔은 물 한번 주지 않은 그들이 야속하기도 하다. 이듬해 수국이 열다섯 송이 하얀 꽃을 피웠다. 청바지 공장에서 틀을 돌리던 여자들이 믹스커피를 들고 수국 앞에서 오감을 쏟아놓고, 흰 꽃송이가 커다란 사발에 담긴 흰 쌀밥 같아서 마냥 좋은 나는 배가 불룩하도록 채우고, 철들 때까지 쌀밥 구경 못 한 한을 풀어주는 수국 꽃밥을 며칠째 먹고도 질리지 않아 밥맛없는 사람 죄다 불러서 수국 밥상에 앉히고 싶은 마음, 요즘으로 말하면 내가 정신 놓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23

-아버지 마지막 끼니

 

 

일생을

타악기로 쓰시던 몸

채 두드린 자리 비늘이 수북했다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한지

여러 날이 지나갔다

미지근한 물과

간 쇠고기를 채에 걸러

죽과 섞은 끼니는

콧줄을 타고 위장으로 흘러들었다

 

콧줄과

소변줄이 뽑히고도

흰 얼굴엔

남아 있던 맑은 미소

시간이 썰물로 빠져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아 애가 탔다

 

실비 속에

길도 훌쩍거렸다

발이 치마폭에 걸려

손목뼈에 금이 갔다

 

아버지~~~

바람이신가요

사방에 쏟아지는 빛이신가요

내가 생각하면 되짚어 오시는 것

아주, 가지 않았지요

아버지 지분 앞에

무릎을 꿇어요

 

 

25

 

 

민들레 홀씨들이 흩어져요

흰 밥알을 등에 태웠어요

골목과 빌딩 숲을 넘어

폭이 넓은 강가에 닿았네요

방금 지나친 강물 길이 지워졌어요

건너편 길을 달리는 것이 보여요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요

 

흰옷을 입은 사람들과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행렬이 물결로 흘러가요

흘러가는 홀씨가 아름다워요

나만 따라가는 줄 알았어요

 

셀 수도 없는 수저들이 햇볕에 반짝여요

 

길모퉁이 민들레 밥집이 보여요

압력솥 뚜껑이 돌고 있어요

허공을 채우는 냄새가 맛있어요

 

세상에 없는 사람이 그립나요

 

세수하지 마세요

모자도 벗지 마세요

옷도 갈아입지 마세요

구멍 난 양말도 그대로 신고 와요

아무 때나 와요

먹는 것은 신선한 일

그래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모든 마을은 밥집입니다

저자 소개
저자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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