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머리말 _ 고해苦海여! 안녕
1부 추락
- 코로나19 속에 재활을 꿈꾸다 -
2021년 12월 11일~2022년 11월 8일
2부 슬픈 행복
- 휠체어 산책을 즐겼던 요양원 시절 -
2022년 11월 13일~2025년 1월 18일
3부 고통의 바다… 그리고 해탈
- 콧줄로 연명한 막바지 삶 -
2025년 1월 21일~2025년 6월 7일
[본 문]
[머리말]
송영자(1940년생) 할머니는 2021년 10월 13일 아침 쓰러졌다. 뇌졸중 증상으로 침대에서 떨어졌다.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은 후 병원과 요양병원, 요양원을 옮겨 다니며 3년 9개월의 고생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지 중 왼쪽 손만 온전했고, 내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바깥 구경을 겨우 할 수 있었다. 흡인성 폐렴을 앓은 이후에는 콧줄로 영양을 공급받았다. 이 글은 이런 병상 생활을 도운 늙은 남편의 일기다. 경황 중이라 처음 2개월간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사사로운 일기를 출판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걸 알면서도 왜 책으로 엮으려고 마음먹었을까. 그것은 고인이 겪은 고난이 사람의 말년에 대한 성찰의 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혼자 움직이고, 화장실에 다닐 수 있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자는 내 다짐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고인을 기리고 싶어 하는 유족들의 바람도 물론 이유가 될 터이다.
고인은 긴 병상생활 중 코로나19에 두 차례 감염되어 격리된 적도 있고, 오랜 병상 생활로 인한 악성 피부병으로 여러 병원을 돌며 고생했다. 두 차례나 폐렴에 걸렸고, 지병인 당뇨와 고혈압, 피부병 약을 포함한 여러 가지 약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말년 병상생활은 고통의 시간이다. 치다꺼리하는 가족들의 아픔도 크다. 생지옥이란 말은 이 경우에 적절한 표현이 된다. 많고도 많은 말년 환자들이 요양시설에서 오늘도 고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옛사람들은 천수를 누린 후 편안하게 죽는 것을 오복의 하나로 여겼다. 그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절실함으로 다가온다.
[책 속으로]
오늘 저녁에 영자를 만날 때 울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렇게라도 살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좋아지겠지. 언제나 밝은 면만 보자는 깨달음에 감사한다. 저녁에 면회를 했다. 걱정과는 달리 영자 얼굴은 좋았고, 표정은 조용하면서 평화로웠다. 꽃과 야채수, 새로 산 조끼를 안겨주었더니 좋아라 한다. 오늘은 하루종일 우울했는데, 면회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도 꽃을 들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처량한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p. 10, 1부 ‘2021년 12월 11일’
요양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영자가 틀니를 빼서 던져버리고, 마스크도 벗어버린다는 것이다. 계속 끼고 있으니 불편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벗어 던진다는 것은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니다. 또 마음이 아프다. 병원 의사를 만나봐야겠다.
『스님은 아직도 사춘기』라는 명진 스님의 신간을 읽었다. 출가자의 삶도 삶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종교는 도피이자 기만이다. 몸부림쳐도 유기체의 숙명은 어쩔 수 없다.
-p. 16, 1부 ‘2022년 1월 23일’
요양병원 의사가 영자의 의식수준이 유치원생 정도라고 말했다. 많이 회복된 것이다. 간식을 들고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운동하고 병실로 돌아가는 영자를 조우했다. 너무 반가워 눈물이 핑 돌았다. 휠체어에 앉은 영자 얼굴에도 반가움이 솟아났다. 엘리베이터를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우리는 짧은 만남을 이어갔다. 영자의 표정과 눈동자가 거의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놀라운 진전이다. 만나기 어려우니 자꾸 편지라도 써줘야지.
-p. 30, 1부 ‘2022년 4월 27일’
꽃봉오리는 귀엽다. 꽃은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시든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꽃은 시든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망각으로 들어가는 죽음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망각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더 그럴 것이다. 엄마는 병원에 있고, 아빠는 아프니 부담이 되겠지. 여기서 감사할 건덕지는 뭘까? 신록의 계절에 날씨도 좋은데. 공원 벤치에 앉아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것,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영자와 통화를 했다. 원망이 가득한 말투다. 병원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으니 데리고 나가라는 것이다. 가슴이 아프다. 누가 돌볼 수 있나. 눈물이 절로 난다. 정신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는 것이 이런 고민을 안겨준다.
-p. 31, 1부 ‘2022년 5월 6일’
영자는 한없이 불쌍하고, 나는 여기저기가 아프다. 혼자 가만히 집에 있으면 서글퍼진다. 의미 없는 날이 오고 또 번개같이 지나간다.
석가나 예수나 소크라테스나 톨스토이나 모두 그렇게 아웅대다 떠나갔다. 죽은 자는 망각으로 사라졌는데, 산 자들이 온갖 의미를 붙여 추모한다. 죽은 자는 그걸 알지 못한다. 生은 空이다. 그러나 요양원에 있는 영자는 실존이다. 나도 실존이다. 그래서 空과 영자와 내가 뒤엉켜 고뇌한다.
-p. 62, 2부 ‘2022년 11월 29일’
영자와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좋다. 위문을 하는 게 아니라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내면에 잔잔히 흐르는 슬픔이 언제나 나를 눈물 짓게 한다. 영자는 이제 그곳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다. 그전에는 바깥에 한 번 나오면 안 들어가려 했는데, 이제는 좀 피곤하면 들어가자고 한다. 체념을 한 건가.
오늘도 마고커피에서 이런저런 것 먹으며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요양원에 들어와 같이 살까, 하고 물었더니 영자는 픽 웃었다.
-p. 81, 2부 ‘2023년 5월 9일’
당신 사랑한다고 전화로 말했더니 영자가 겨우겨우 목소리를 내어 하는 말이 나도 사랑해란다. 왈칵 눈물이 난다.
-p. 105, 2부 ‘2023년 11월 13일’
영자는 시종일관 무표정했다. 간단한 말도 못 한다. 다리를 주물러 주니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시원하다고 말해보라고 했더니, 입만 오물거릴 뿐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모깃소리처럼 작은 소리를 겨우 내뱉기는 하는데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암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해도 표정이 없다. 아마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키위 하나와 바나나 하나를 맛있게 먹는다.
-p. 107, 2부 ‘2023년 11월 25일’
오늘 과일을 먹여주면서 많이 울었다. 음식이 자꾸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흡사 두 살배기 어린이에게 먹이듯 얇게 썰어서 주는데도 제대로 씹질 못한다.
한없는 연민에 삶의 허망함이 마구 밀려와 나는 눈물 콧물을 가눌 수가 없다. 무표정한 영자는 내가 왜 우는지를 알까. 삼 년이란 세월, 숱한 고통 속에서도 영자는 아직 살아 있다. 나도 계속 여기저기 아프니 누가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p. 142, 2부 ‘2024년 10월 14일’
어제 영자가 입원했다. 영자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고개를 가누지도 못한다. 오전에 파티마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밤늦게서야 겨우 병실을 구할 수 있었다. 현정이가 휴무일이라 함께했다. 나는 오후 늦게 현정이와 교대하고 집에 돌아왔다. 현정이가 하루 12만 원짜리 간병인을 구했다. 영자는 폐렴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몇 달 전부터 잔기침을 했는데, 그걸 간과했나 보다.
오늘 새벽에 요양원 주변의 산책길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때가 그래도 행복했다. 다시 그렇게 산책을 할 수 있으려나? 오늘 오전에는 병원에 가져갈 물건들을 챙겼다.
-p. 154, 3부 ‘2025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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