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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67375797 |
|---|---|
| 쪽수 | 336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문학
AI추천 이유

싸움이라도 벌인 것처럼 장렬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원고지’만큼 작가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무용수나 축구선수의 발을 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잘못 쓴 원고를 버리지 않는, 혹은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아쿠타가와는 나쓰메 소세키에게서 보고 배웠을 것이다. 아쿠타가와의 소설과 삶을 겹쳐 읽으며 그 마음에 다가가본다. _본문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일
생과 생을 가로지르며 무한히 탄생하는 재서술의 과정
손정수 평론가는 《고전의 사계》를 이루는 부 구성이 캐나다 문화평론가 노스럽 프라이의 논의를 바탕으로 마련된 것이라고 서문을 통해 밝힌다. 노스럽 프라이가 그의 저서 《비평의 해부》에 뮈토스를 네 개의 계절로 나누었는데, “이상 세계를 지향하는 여름의 뮈토스”와 “현실 세계에 집중하는 겨울의 뮈토스”를 한 축으로, “이상으로부터 현실로 하강하는 가을의 뮈토스”와 “현실로부터 이상으로 상승하는 봄의 뮈토스”를 다른 한 축으로 설정한 것에서 착안했다는 것이다. 《고전의 사계》의 또한 스물두 편의 비평에세이를 네 개의 부로 나누어 네 개의 계절에 차례로 대응시킨다. 이에 따라 현실의 압력을 뚫고 나오는 환상의 힘(여름), 삶의 미궁과 이야기의 미로(가을), 인간의 고뇌로 빚은 시대의 초상(겨울), 소설의 열린 결말과 인류의 미래(봄)이라는 하나의 사이클이 완성된다.
1부에 해당하는 ‘여름-현실의 압력을 뚫고 나오는 환상의 힘’에서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매체로 재창작되어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너새니얼 호손 《주홍 글자》,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를 다룬다. 작품이 발표된 시대적 배경은 물론 작가 개인의 삶 깊숙이 파고들며 작품을 여러 레이어로 읽어낸다. 특히 위 작품들 모두 현대에 이르러 페미니즘, 젠더적 관점에서 작가와 작품을 향한 더 깊이 있는 이해와 독해를 이끌어내고 있는 고전들이기 때문에 각각의 비평을 비교하며 읽는 의미가 있다.
2부 ‘가을-삶의 미궁과 이야기의 미로’에서는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애거사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슈테판 츠바이크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다룬다. 2부 또한 작가와 작품 사이의 연결점을 섬세하게 묘파하는데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서전과 소설이 함께 필요한 상황”에 보다 집중한다. 작가의 명성, 작품 속 이야기,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 그 자체의 괴리를 통해 ‘쓰는 사람’으로서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고통과 모순, 자의식 등을 작품과 함께 읽어낸다.
3부 ‘겨울-인간의 고뇌로 빚은 시대의 초상’에서는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알베르 카뮈 《페스트》, J.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필립 로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다룬다. 3부에 실린 작품들은 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특히 시대의 영향을 받은, 혹은 시대에 영향을 준(주고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을 통해 “한 인물의 내적 세계가 현실 속에서 객관화될 계기”를 얻고, 소설 속 “알레고리”가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는 가을과 겨울을 거쳐 ‘봄’, 즉 현실적인 이상과 희망을 향해 나아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읽히기도 한다.
마지막 4부 ‘봄-소설의 열린 결말과 인류의 미래’에서는 고전이 된 작품과 고전이 될 작품을 함께 다룬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930년대에 아직(까지도) 오지 않은 먼 미래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쓴 《멋진 신세계》, 그리고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근현대에 가까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태고의 시간들》 《로드》를 차례로 읽는다. 그럼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도 고전은 끊임없이 탄생하고, 인류 사회는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내포한다.
이렇듯 네 개의 계절을 통과해 책의 말미에 당도하고 나면,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해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과도 대응함을 깨닫는다. 이상세계를 꿈꾸지만 삶이라는 현실로 하강하고, 현실에서 고뇌하다 다시 그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발견해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희망 있음’ 상태에 우리를 끌어다 놓는 것이다.
겨울이 아닌 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우리는 고전을 읽는다
《고전의 사계》 속 계절은 왜 봄이 아니라 여름부터 시작인가. 이는 고전문학을 통해 우리가 품어야 할 어떤 ‘이상’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생명력 가득한 봄으로 시작해 서서히 저무는 겨울로 마치는 것이 아닌, 뜨거운 여름으로 문을 열고 서늘한 가을과 겨울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찬란한 봄을 맞게 되는 것. 이렇듯 겨울이 아닌 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우리는 고전을 읽는다. 더 아름답고 더 충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완성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완성됨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미완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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