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한국어판 서문
서론
참고문헌
로마서 개요
I. 1:1-4:25│하나님의 신실하심
A. 1:1-17│주제를 제시하는 서언: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의
1:1-7│하나님의 복음과 바울의 직무
1:8-15│로마에 가고자 하는 바울의 소망
1:16-17│하나님의 의를 계시하는 복음
B. 1:18-3:20│하나님의 의에 대한 도전: 이방인과 유대인이 공히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우상 숭배와 부도덕의 죄를 범했다
1:18-32│하나님의 진노를 낳는 우상 숭배와 비인간화된 행동
2:1-16│하나님의 차별 없는 심판은 도덕적 우월성을 위한 어떤 여지도 남겨 두지 않는다
2:17-29│“유대인”을 향한 직접적인 도전
3:1-8│이스라엘의 불신실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3:9-20│토라는 유대인을 이방인과 나란히 피고석에 앉힌다
C. 3:21-4:25│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3:21-26│예수의 신실함을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의
3:27-31│한 하나님, 한 믿음, 한 백성
4:1-25│아브라함의 언약 가족
4:1-8│약속을 믿음
4:9-15│할례에 의한 것도, 토라에 의한 것도 아니다
4:16-17│약속에 따른 온 가족
4:18-22│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4:23-25│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의미
II. 5:1-8:39│참 인류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A. 5:1-11│믿음에서 소망으로
5:1-5│평화, 인내, 소망
5:6-11│메시아의 죽음과 하나님의 사랑
B. 5:12-21│아담에서 메시아로
C. 6:1-23│세례와 자유
6:1-11│메시아와 함께 죽고, 함께 삶
6:12-14│죄의 통치의 종료
6:15-23│노예 상태와 자유
D. 7:1-8:11│율법이 줄 수 없었던 생명
7:1-6│율법 아래에서 빠져나옴
7:7-12│율법의 도래: 죄가 기회를 잡다
7:13-20│율법 아래서의 삶: 죄가 죽음을 가져오다
7:21-25│율법에 관한 성찰: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8:1-11│하나님이 아들과 성령을 통해서 생명을 주심
E. 8:12-30│보증된 상속
8:12-17│성령의 인도를 받음
8:18-30│만물의 갱신
F. 8:31-39│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III. 9:1-11:36│하나님의 약속들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A. 9:1-5│약속의 담지자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에 이르지 못한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탄식
B. 9:6-29│아브라함부터 바빌론 유수까지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를 보여 준다
C. 9:30-10:21│메시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9:30-33│믿음, 행위, 걸림돌
10:1-21│하나님의 의와 범세계적인 선교
D. 11:1-36│하나님의 깨뜨릴 수 없는 약속들의 성취로서 “온 이스라엘”의 구원
11:1-10│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
11:11-32│“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이다
11:33-36│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
IV. 12:1-16:27│예배, 거룩함, 연합에 대한 하나님의 호소
A. 12:1-2│몸과 마음의 예배
B. 12:3-13│연합, 사랑, 공동체의 삶
C. 12:14-13:7│외부 세계와 직면해 있는 교회
12:14-21│(아마도 적대적인) 이방인들에 둘러싸인 그리스도인의 삶
13:1-7│권위 있는 자들에게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요청
D. 13:8-10│율법을 성취하는 사랑
E. 13:11-14│떠오르는 태양을 따라 살기
F. 14:1-15:13│관습과 민족적 정체성의 장벽을 넘어 생명과 예배의 연합을 이루라는 하나님의 요청
14:1-12│판단함과 판단 받음
14:13-23│양심과 하나님의 나라
15:1-13│메시아의 사역에 근거하여 서로 환대하라
G. 15:14-33│바울의 사도적 여행 계획
H. 16:1-16│추천과 인사
I. 16:17-20│분열을 조심하라
J. 16:21-24│바울의 동료들의 인사
K. 16:25-27│결론적 송영
약어
[본 문]
이 주석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저 제 작품을 더 이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바울의 저작과,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바울은 아마도 메시아 예수의 복음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제가 바울을 연구해 온 수십 년 동안 제게 점차 분명해진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울은 일관되게 굉장히 유대적인 사고 방식을 고수했으며, 이러한 사고에서 핵심은 로마서 1:3-4에 표현되어 있듯이,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증명되었다는 바울의 믿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제 이 내용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서는 넓게는 바울 신학을, 좁게는 로마서를 철저하게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바울 자신도 로마서를 그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미 이러한 내용은, 지난 세기에 제시되었던 다른 많은 학자들의 바울 해석과 저의 바울 해석을 구분 짓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울이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었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바울 신학의 중요한 특징으로 혹은 토대가 되는 내용으로 이해한 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진정한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우리가 사해 사본이든, 요세푸스의 글이든, 위경이든, 다른 문헌이든, 1세기 유대교의 문헌들을 연구할 때, 그 저자들이 기록한 주요 내용은 ‘들어가기와 머물기’에 대한 내용도 아니며, 또한 그들은 믿음을 통한 칭의든 혹은 다른 것을 통한 칭의든 ‘칭의’에 관한 논의를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던 내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가 약속하셨던 일들을 언제 그리고 어떻게 마침내 행하실 것인가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악한 현시대’의 곤경으로부터 그들을 구출하시고, 그들이 기다리고 소망하고 기도해 온 ‘올 시대’의 시작을 알리실 것인가? 그리고 또한 그들은 그날이 동텄을 때 하나님의 참 백성은 누구일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내용들을 염두에 두고 바울의 저작들, 특히 로마서를 읽는다면, 온갖 내용들이 새로운 조명 아래 우리 눈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제가 이 주석에서 그리고 다른 책들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성경에 접근할 때 이제는 관례처럼 사용되는 방법이 있다. 즉 먼저 언제, 어디서, 왜, 누구에 의해서 그 책이 기록되었는지 묻고, 그다음 단계로 그 책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다룬다. 다행히도 첫 질문들 중 일부는 로마서의 경우에는 논란거리가 아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1세기 중반인 50년대 말에, 고린도나 그 부근에서,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항해를 계획하면서 기록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남은 질문인 “왜?”는 상당히 난해한 문제로 드러난다. 로마서는 우리가 때때로 생각하는 것보다 “왜”와 “무엇” 사이가 훨씬 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바울은 왜 하필 이 순간 이 교회에 이 편지를 쓰려 했는가에 대한 논의와, 그 편지가 실제로 말하고자 했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복잡한 논의 사이에는 계속해서 끊임없는 대화가 오가야 한다. 다른 분야에서처럼 하나의 가설이나 이론이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은, 타당하면서도 단순한 전체 틀 안에서 구체적인 자료들의 의미가 잘 통하도록 설명해 주고, 관련 연구의 다른 영역들의 문제를 풀어내는 데도 도움이 될 실마리를 던져 주는 것이다. 나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이러한 큰 목적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서론”에서
바울의 사상 체계는 제2성전 유대교 세계관이 약간 변형된 것이었다. 당연히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건을 통해 바울의 사상은 자극을 받고 변화되었으며, 그는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생겼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유대인의 사고방식을 고수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의미심장한 내용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11:1-6에 관한 주해를 보라). 바울은 재빨리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그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학수고대해 왔던 묵시적 순간으로 간주했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과 세상의 이야기를 바라보았던 이전의 방식을 재고하게 되었다. 우리는 바울의 이러한 변화를, 로마서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 받은 자신의 소명에 관한 내용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이 메시아 예수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된 것은, 그의 동족 유대인들이 복음 메시지를 거부했다는 단순한 좌절감에서 유발된 일종의 전위행동(displacement activity)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지금 진정으로 성취되었다면 이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올 때가 된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행동이다.
-“서론”에서
헤롯왕이 복음서의 많은 부분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로마 황제 카이사르 역시 바울의 글 가운데 여러 구절 속에서 언급되지만 않을 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카이사르는 그 당시 세상의 주(主)였다. 하지만 다름 아닌 그 역할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 유대인 메시아에 의해서 그의 자리가 넌지시 위협을 받고 도전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의 복음을 들고 로마로 온다는 것은, 그리고 이 세상의 왕좌에 다른 사람이 즉위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마치 빨간 코트를 입고 화나기 직전인 황소가 기다리는 투우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이러한 제안은 13:1-7과 긴장 관계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구절에 대한 주해를 참고하라). 바울은 몸을 사리지 않고 이 사명에 헌신하기로 결정했다. 즉 그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표현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중 사람들이 예수를 부끄러워하는 것에 관한 말씀 전승에 대한 암시가 있는 것 같다(마가복음 8:38과 병행구절).
-“로마서 1:16_주해”에서
바울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 사이에는 수많은 표면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정의에 관한 질문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세기에 벌어진 전쟁들과 잔혹한 행위들로 인해서 다음과 같은 주요한 질문들이 제기되었지만 여전히 미해결인 상태다: 선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일들을 허락하실 수 있는가? 아우슈비츠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르완다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그리고 발칸에서는? 2001년 9월 11일에는 어디에 계셨는가? 이제는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구속을 절실히 바라고,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과 비인간화를 점차 깨달아가며, 하박국처럼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왜?”인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인지 묻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상황 자체로 인해서 우리는, 바울이 현재 본문과 편지 전체에서 “언약적 신실하심”과 “정의”를 하나로 합친 의미로 논의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만약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만물을 정의와 평화와 조화의 상태로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셨다면, 우주 전체와 그 안에 있는 인류는 그러한 상태를 가져올 하나님의 정의와 신실하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 세대가 담당해야 할 세상에 대한 교회의 직무에는 다음과 같은 임무가 포함되며, 아마도 이 임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될 때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되며, 또 그 능력이 발휘되면 믿음이 존재하는 그곳에 하나님의 미래의 축복들이 앞당겨 현재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 유대인의 메시아이신 예수에 관한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로마서 1:1-17_단상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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