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시작에 앞서
히브리어 알파벳과 발음
창세기
1 쩰렘, 쩰라: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2 케로힘: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
3 헨: ‘노아’의 이름에 숨겨진 ‘은혜’
4 헤에민: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는 것
5 레크-케라: 신앙의 힘은 기억에서 온다
6 야레크:약함의 은혜
7 이스라엘: 하나님이 함께 싸우신다!
8 임, 에트: 가장 큰 복
출애굽기
1 예레크: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
2 야레: 두려움이 아닌 경외함
3 샤마: 깊은 탄식을 듣는 하나님
4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하나님의 이름
5 에흐예: 일상으로 부르시는 하나님
6 아니 야웨: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7 아노키 야웨 엘로헤이카: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레위기
1 바이다베르 야웨: 말씀은 모두에게 향한다
2 구약의 제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할까?
3 타호르와 타메: 음식법이 필요했던 이유
4 욤 키푸림: 대속죄일과 예배의 완성
5 카도쉬: 거룩하라!
6 샤밭: 진정한 안식
7 요벨: 희년은 여전히 필요하다
민수기
1 나지르: 나실인
2 바라크: 나는 복 받은 사람일까?
3 아나브: 모세의 온유함
4 바야웨 잍나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5 카짜르: 불뱀과 놋뱀
6 케셈: 신 위의 신
7. 숫자 이면에 숨겨진 의미
신명기
1 쉐마, 라아소트: 순종이란?
2 자카르: 안식일을 기억하는 정체성
3 쉐마! 이스라엘!: 들으라! 이스라엘아!
4. 광야, 잠시 멈춤
5 마콤, 메코모트: 예배 장소는 고정될 수 없다
6 레쉬트: 첫 열매와 십일조
7 아멘: 저주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
감사의 글
참고문헌
주
[본 문]
히브리 성경에서 오경의 각 권은 본문을 시작하는 첫 단어가 곧 책의 제목이 됩니다. 따라서 창세기를 시작하는 첫 단어이자 제목은 ‘태초에’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베레쉬트‘라고 읽는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히브리어는 한글과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는 것입니다. ‘베레쉬트’는 ‘~안에’를 뜻하는 전치사 ‘베’와 ‘태초’라는 의미의 ‘레쉬트’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이렇게 ‘태초에’가 구약성경 첫 책의 제목이 된 것입니다.
_18p 창세기 1. 쩰렘과 쩰라: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히브리어 ‘쩰렘’은 기본적으로 ‘형상’, ‘모형’을 뜻하고 나아가 ‘어떤 사물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렘’은 본체와 형상 사이의 유사성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신의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지상에 내려온 신으로 믿고 섬겼습니다. 또한 스스로를 신의 현현으로 선포한 제국의 왕들은 자신의 상(像)을 통치 구역 곳곳에 세워 왕이 신의 통치를 대리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보편적이었습니다. 즉, 고대 근동에서는 왕만이 유일하게 신의 형상을 지녔고, 왕만이 신으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은 자였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결국 왕을 숭배하는 문화와 종교가 강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는 고대 근동의 세계관에 근본적인 충격을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창세기는 왕만이 신의 형상이며 신의 대리 통치자인 동시에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모든 인류가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이는 단순히 왕을 숭배하는 세계관을 거부하는 차원을 넘어,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새로운 세계를 선포한 것입니다.
_20p 창세기 1. 쩰렘과 쩰라: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노아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무관한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 형태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끝없는 전쟁과 분열, 기후 위기, 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인간의 죄성과 탐욕. 이런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며 ‘의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때로는 무모한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자기중심적이고, 빠르고, 성과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산다는 것은 그 흐름에 맞서는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_47p. 창세기 3. 헨: ‘노아’의 이름에 숨겨진 ‘은혜’
구약성경에 의하면 모세 전까지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는 ‘전능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엘 샷다이’입니다.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샷다이’는 ‘전능자’라는 뜻입니다. 두 단어를 일반적으로 ‘전능의 하나님’으로 번역합니다. 이 이름은 족장들에 의해서 불리던 칭호였지, 하나님이 직접 알려 주신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이 칭호는 특별히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관련하여 불립니다. 만약 이런 칭호가 있었다면 모세도 하나님을 ‘엘 샷다이’라고 부르면 될 텐데 왜 하나님께 이름을 물어보았을까요? 당연하게도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름을 알리는 것은 친밀감을 형성함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존재가 실재한다면 반드시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고대 근동 사람들의 이해였습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실재를 요구한 것이고, 이는 그들의 사고에서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세는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야 했기 때문에 ‘이름’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이름’이 없다면 존재하는 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이해였기 때문입니다.
_121p. 출애굽기 4. 에흐예아쉐르 에흐예: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께 구별되어 땅을 쉬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 땅의 풍요를 소유하는 것을 넘어 이웃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게 하는 지혜로운 명령인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도 이 점을 언급합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경건함, 나눔, 정의, 인간애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율법은 일곱 번째 해에는 땅을 묵혀 두라고 명령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는 모든 작물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하지 않습니까? 자연은 원하는 자에게 농부 역할을 합니다. 율법은 훌륭하지 않습니까? 정의를 가르치지 않습니까?(Strom. 2. 86. 4-5.)”
_206-207p. 레위기 6. 샤밭: 진정한 안식
여호수아와 갈렙의 두 번째 말도 중요합니다. 그들은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바야웨/아도나이 타누’입니다. 첫 단어는 접속사 ‘붸’와 야웨/아도나이’가 합쳐진 말입니다. 두 번째 단어는 전ֵ치사 에트’에 대명사 접미사 1인칭 공성 복수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런데 이 전치사는 언뜻 ‘~을/를’의 의미를 가진 전치사와 똑같이 생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명사 접미사가 붙을 때 두 전치사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대명사 접미사가 붙을 때, 두 번째 자음 ‘타브/타우’안에 점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점의 유무로 두 전치사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럼 본문에서 전치사는 ‘~와 함께’입니다. 그래서 번역이 ‘우리와 함께’가 됩니다. 단어를 종합해서 번역하면 ‘그리고 야웨는 우리와 함께’입니다. 동사가 없기 때문에 문장이 완료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에서 배운 것처럼 이렇게 동사가 없는 문장인 명사 문장이 나왔을 때는 ‘하야’동사가 없지만 있다고 생각하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완료된 번역은 ‘그리고 야웨는 우리가 함께 계신다’입니다.
_240-241p. 민수기 4. 바야웨 잍타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의 안식일은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라’는 명령은 히브리어로 ‘자코르라고 읽고, 원형은 ‘자카르입니다. 한글 성경 본문에는 8절 마지막에 ‘지키라’가 있지만, 원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기억하라’는 명령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신명기의 안식일은 지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_280p. 신명기 2. 자카르: 안식일을 기억하는 정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