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프롤로그
1부, 봉홧불 / 7
2부, 해무 속으로 / 81
3부, 섯알오름 / 165
4부, 신은 죽었다 / 225
5부, 붉은 해안 / 271
에필로그
작가의 말
[본 문]
1948년 8월 15일, 마을 뒷산에서 솟아오른 봉화를 끝으로 섬 제주를 달궜던 열기는 산간으로 숨어들었다.
그해 10월이 접어들 무렵, 한라산 소슬바람이 중산간 평원으로 불었다. 한라산이 토했던 용암길을 따라 화산석 돌담이 해안 절벽까지 출렁거리고, 대양의 거센 파도가 섬 제주 해안으로 들이쳤다. 수십만 년 전, 뜨거운 용암을 식힐 때처럼, 섬 제주 해안이 붉게 들끓기 시작했다.
소개령이 내려졌다. 섬 제주 서남부 중산간 평원의 상평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장대 접근이 쉬운 중산간 마을을 떠나, 해안 1.5킬로미터 이내로 소개하라는 이승만 정부의 명령은 단호했다. 게다가 제주에 계엄령이 내릴 거라는 소문까지 나돌아, 해안가에 집을 구하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전전긍긍했다.
10월이 끝날 무렵, 소문으로 나돌던 계엄령은 사실이 되었고, 적의를 품은 거센 파도가 섬 제주를 혼란 속으로 욱여넣었다.
상평마을에서 매일 피비린내가 났다. 낮에는 토벌대가 밤에는 무장대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젊은 사람들은 죄다 곶자왈이나 산간으로 도망가, 마을에는 노인들과 어린애밖에 남지 않았다. 토벌대에 붙잡히면 살기 어려웠다. 산으로 도망가면 빨갱이라 죽였고, 마을에 숨으면 무장대 끄나풀이라며 머을왓으로 끌고 가 죽였다. 아버지처럼 곶자왈로 달아나지 않으면 이장 고순봉의 말대로 해안가로 이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도 해안가로 빨리 이사하면 좋을 텐데……,’
동우네는 그나마 운이 좋았다. 해안가로 소개하지 않는다고 토벌대장 이치순이 윽박질렀을 때도 할머니는 토벌대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거침없이 말했다.
“상모리 김승보 면장 알지, 그 어른이 내 친정 오라비라고, 곁채를 비워준다고 했으니, 며칠만 말미를 줘. 곧 이사할 테니.”
김승보 면장이 친정 오라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니 아무리 위세 당당한 토벌대장 이치순이라도 함부로 할머니를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태 집에 연기가 자욱했다. 무장대가 불을 지른 것 같았다. 기태 할아버지가 기태를 데리고 곶자왈로 달아나도록 토벌대를 막아섰다는 이유로 기태 부모는 토벌대에 총살당했다. 기태 동생 숙자는 어머니 젖꼭지를 물고 울다가 지쳐서 죽었다. 곶자왈로 달아난 기태와 기태 할아버지가 살아남았는데, 기태 할아버지 김하호는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많아 마을 사람들은 어르신이라 불렀다.
동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기태 집을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타다만 시커먼 서까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돌담 틈으로 한라산에서 서늘한 바람이 담쟁이 잎사귀를 훑고 모슬포로 흩어졌다.
‘할머니는 무사하실까……?’
동우는 할머니가 걱정되었다. 무릎 상처가 낮지 않아 온종일 마루에 앉아 마라도를 바라보는 할머니가 생각나 무작정 윗마을 집으로 내달렸다.
덩그런 안채 대청마루 한쪽에는 안방과 서재가 있었고, 오른쪽은 다른 방은 민수 부모님이 거처한다고 했다. 민수는 민수 할아버지가 거처하는 사랑방 옆에 작은 방이었다. 대청마루는 식모가 매일 닦아 윤기가 반들거리고 모든 게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아래채 광을 제외해도 머슴들이 거처하는 방이 네 칸이 더 있었는데, 토벌대를 피해 죄다 산으로 도망가, 비어있다고 말하면서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어쨌든, 동우가 이사한 곁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집이었다.
민수 할아버지, 그러니까 할머니 친정 오라버니는 섬 제주에서 일본 오사카를 드나들며 밀무역으로 돈을 벌어, 해방 후에는 제주도로 완전히 돌아왔다고 했다. 상모리 사람들은 쪽발이 개라며 쑥덕거려도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다녔는데, 동우가 보기에도 뻔뻔스러워 보였다.
민수 아버지 김경태는 일본군 차출을 피하려고 오사카에서 유학하고, 해방 후 섬에 돌아와서 대정면 사무소 서기로 근무했다. 야위긴 해도 피부는 하얬다.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기른 아버지와 겉모습부터 달랐다. 서청 놈들을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말쑥한 차림이라 전혀 딴 사람처럼 보였다.
동우는 곁채 더부살이가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독립이니 통일이니 주절거리며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보다 오히려 민수 아버지가 멋져 보였다. 아버지도 일본에서 유학했더라면 선생은 못하더라도 면서기는 할 텐데. 곶자왈을 들락거리며 한밤중에 담장이나 넘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독립운동이나 통일 따위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해방 이듬해 이른 봄, 부일환은 북간도에서 제주도 산지항(제주항)에 도착했다. 섬, 제주는 어수선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찬탁이니 반탁이니, 알 수 없는 일들로 서로 헐뜯기를 기다렸다는 듯 대양에서 거센 파도가 들이쳤다. 나라가 두 동강으로 쪼개지려고 했다.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수십만 년을 버틴 화석층 벼랑도 쉴 새 없이 들이치는 파도에 한 조각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일환의 운명도 떨어져 나간 화산석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섬 제주는 볼 수 없었다. 산채 동지들의 생사도 가족들의 소식도 그는 알 수 없었다.
잡초가 무성한 임해학교 뒷길을 돌아 월미산으로 올라갔다. 해발 100여 미터 남짓한 작은 섬에서 바라보는 해무로 가득 찬 제물포 연안은 광야처럼 눈앞에서 얼쩡거렸다. 부일환은 눈 덮인 광활한 만주 벌판을 떠올렸다. 눈보라 치던 그 춥던 만주벌판을 생각할 때마다 피가 들끓는 듯했다.
월미산 멧부리에 왜놈 신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런 염병할……. 여태 왜놈 신사가 남아있다니…….”
부일환은 왜놈 잔재만 보여도 부아가 치밀었다. 북간도로 퇴각할 때 왜놈들에게 총 맞이 죽으면서도 독립을 외치던 동지들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조국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부모 처자를 버려두고 먼 타국에서 목숨까지 던졌을까. 적어도 3·8선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모습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귀를 틀어막아도 사람들 비아냥이 귓가에서 얼쩡거렸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살인자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부모를 죽인 원수를 살려둘 자식은 없을 것이다. 민수 아버지 김경태는 서청 놈들과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다녀도 살인자라 비난은커녕 외려 사람들이 침묵했다. 게다가 동우 형이 민수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으면 동혁이 나서서 죽였을 것이다. 이장 고순봉은 더 나쁜 사람이었다. 소개할 곳이 없어 할머니가 민수 할아버지 김 면장에게 부탁해 이사할 집을 소개해 줬다. 인사치레는 차치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을 부추겨 동우 형을 빨갱이 자식이라 살인을 저질렀다며 소문을 퍼뜨렸다.
할아버지는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고 수십 년을 왜놈들과 싸웠고, 아버지는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토벌대와 맞서 싸웠다. 그런데 빨갱이라며 섯알오름에서 총살했다. 왜놈들과 싸운 게, 토벌대와 싸운 게 죽을 짓은 아닐 것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사람은 없었다. 민수 아버지 김경태에게 눈을 부릅뜨며 욕을 퍼붓던 아버지와 가슴팍에 낫으로 내리꽂던 동우 형의 핏발 선 눈빛이 설핏 스쳤다. 죽어야 할 놈들을 죽였을 뿐이었다. 누가 뭐래도 동혁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해병들의 복창 소리는 우렁찼다.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 작전’ 성공으로 상륙군 해병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동우는 죽을 곳을 찾고 있었다. 누군가 죽어야 누군가는 살 수 있었다. 그 누군가는 가족일 수도, 동료일 수도 그리고 이웃일 수도 있었다.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지금은 살았지만, 내일이면 차가운 시신으로 버려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삶이라면 동우는 굳이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이름표를 보았다. ‘고영준’ 부동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비쩍 마른 손을 들어 올리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인민군이 설핏 떠올랐다. 그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자식일 것이다. 동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죽었을 것이다. 그 또한 누군가에게 죽을 것이고…….
상륙주정이 한강을 도하하기 시작했다. 건너편 행주산 95고지 인민군 방공포 진지에서 기관포 포탄이 빗발처럼 날아왔다. 인민군 저항은 거셌다. 동우는 인식표를 목에서 떼어내 오른손에 들고 왼손으로 이름표를 뜯어 한강에 던졌다. 동우의 죽음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고영준이든 부동우든, 상관없었다. 애초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사라지면 그뿐이었다.
동우는 상륙주정에서 일어나 M1 소총을 어깨에 걸쳤다. 강 건너 행주산 95고지가 하얗게 눈앞으로 다가왔다. 가슴이 뜨끔했다. 섯알오름 방공포 진지로 굴러떨어지던 사람들이 맞았던 총알이 이랬을까. 동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어머니!”
토벌대의 무분별한 총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빨갱이 새끼는 모조리 죽여야 해!”
동우 귓가에 토벌대 이치순의 발칙한 고함이 귓전을 스쳤다.
“동희야 미안해,……, 할아버지 죄송해요…….”
동희와 할아버지에게 미안했다. 동우는 그릇된 판단이 부끄러웠다. 몸뚱이가 하늘로 떴다. 그리고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한강을 넘나드는 총소리가 섯알오름 분화구에서 나는 듯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중력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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