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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개정증보판 - 6.25 전쟁에서 4.19 혁명 전야까지

  •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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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ISBN-13 : 9788959068135
쪽수408쪽
크기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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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승만의반공포로 석방’, 한미방호상호조약과반공 선민주의’,

중임 제한 폐지를 위한 사사오입 개헌, 민국당 자유민주파가 만든 민주당

지난 10년 한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그 모든 것은 어떻게 달려왔는가?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키다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는 역사학계에서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민감한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그 나름의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참여의 마당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는 독보적이다. 지금의를 이룬,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국인의보물창고와 같다.

1945 8 15일 정오부터 봉준호의 〈기생충〉까지 75년의 역사를 촘촘히 담아낸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는 정치·경제·사회는 물론 대중문화·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삶과 역사의 무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이를 위해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는 방대한 주석에 당시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 ‘역사 산책코너 등을 통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는 단순한 사건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는다. ‘()과 욕망의 폭발’(1940년대), ‘극단의 시대’(1950년대), ‘기회주의 공화국의 탄생’(1960년대), ‘수출의 국가종교화’(1970년대),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1980년대), ‘분열은 우리의 운명, 연대는 나의 운명’(1990년대), ‘노무현 시대의 명암’(2000년대), ‘증오와 혐오의 시대’(2010년대) 등 각 시대를 지배했던 정서와 구조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주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진보의 이름으로 새로운 가치를 선점할 수 있듯이 극단과 궁핍의 시대를 살아남아야 했던 과거 세대의아픔도 함께 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준만은 한국 현대사가인간을 배제했던 역사라고 간파하며인간의 복원,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이념과 세대의 새로운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과 평가의 문화를 정착시킨 한국 최초의 단행본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목차

[목 차]
  

1 1953: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1 : 보릿고개와 인플레이션

초근목피의 고통 · 19 절량농가의 입도선매 · 20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통화개혁 · 21 정부를 믿을 수 없는불신의 소용돌이’ · 24

 

2 : ‘스탈린 사망에서북진궐기대회까지

‘포로교환에 관한 협정체결 · 27 핵무기 사용 검토, 관개용 댐 폭격 · 29 선교사의 폭격 아이디어 제공 · 31 이승만의 한미상호방위조약 요구 · 32 “통일 없는 휴전은 3천만의 죽음” · 34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 36

 

3 : 이승만의반공포로 석방

‘에버레디 작전과 한미상호방위조약 · 40 세계를 경악시킨 반공포로 석방 · 42 휴전을 원한 북한과 중국 · 44 38선 근처의땅따먹기 싸움’ · 46 조병옥이 당한기괴한 일’ · 47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 49

 

4 : 휴전: ‘반공이 아닌, 반한을 위한 전쟁

7 27일 정전협정 조인 · 51 전 인구의 10분의 1을 죽인 전쟁 · 53 미국의 놀라운 풍요가 낳은 재앙 · 55 “지금은 한국인으로 태어날 때가 아니다” · 57 미국과 세계 경제를 구원한 전쟁 · 59 일본엔 축복이 된 전쟁 · 62

 

역사 산책 1 왜 육사 필수과목에서 6·25 전쟁사가 빠졌는가? · 65

 

5 : 민간인 학살: 끝나지 않은 전쟁

골로 간 사람들 · 68 “어느 쪽으로 갈지 가르쳐주십시오” · 70 유족이 나타나지 않는 유골 · 72 “‘100만 명 학살진상 왜 밝히지 않나” · 74

 

6 : 포로 송환: ‘광장밀실의 와중에서

포로 송환 이후의 갈등과 진통 · 78 인도행 배를 탄 ‘76인의 포로들’ · 80 최인훈의 「광장」 · 82 이명준의 남북한 비판 · 83 조창호와 전용일 · 85

 

7 : 김일성의 남로당파 숙청

남북한에 구축된 강력한 국가 · 86 북한의자기 정당화게임 · 87 스탈린식 정치 재판극 · 88

 

8 : 한미상호방위조약과반공 선민주의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 · 92 리처드 닉슨의 방한 · 94 한미상호방위조약 발효 · 95 이승만은세계적인 반공 지도자’ · 96

 

9: 유엔 마담·꿀꿀이죽·비로도

상이군인·고아·미망인 · 98 ‘양공주독버섯이었는가? · 100 미군부대 쓰레기장을 뒤지던 안정효의 추억 · 102 손창섭의자기 모독적 소설’ · 104 ‘비로도에 얽힌 박완서의 추억 · 106 매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 · 108 ‘사랑방에서다방으로 · 111 〈굳세어라 금순아〉 · 113 전쟁 기간 중의 축구 · 115

 

10 : 샌프란시스코: 동경과 숭배 대상으로서 미국

이승만은 숭미주의의 선봉 · 118 ‘샌프란시스코는 마력적인 상징 · 120 ‘PX 경제체제하의 삶 · 122 초콜릿··우유가루 · 125 교회는샌프란시스코의 관문 · 126

 

11 : 기독교: 반공·친미·기복

기독교를 지키기 위한 전쟁 · 128 기독교는반공의 보증수표’ · 131 공산주의자는 사탄·마귀·악마 · 132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서 신앙 · 134

 

12 :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전쟁이 삶의 철학과 처세술에 미친 영향 · 137 물질에 의한 과잉 보상 의지 · 139 신분제와 도덕 체계의 해체 · 141 파벌 사회에 중간은 없다 · 143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 145 “위험을 무릅쓰는 문화” · 147

 

13 : 월남과 월북: 두 개의 생존방식

월남자들의 월남 동기 · 150 자기 입증을 위한 전투적 반공 · 152 월북자 가족들의숨죽이기’ · 155 “세월이 원망스럽다” · 157 이문구와 이문열의 각기 다른 삶 · 158

 

2 1954: 자유당 독재체제의 구축

 

1 : 이승만의 족청계 제거

족청계의 자유당 장악 · 163 이기붕 체제로 개편된 자유당 · 165 ‘일민주의를 외친 안호상의 시련 · 167 김성주 살해 사건 · 169

 

2 : 3대 총선: “개헌 조건부로 입후보케 하라

대통령 중임 제한 철폐를 위하여 · 173 조봉암과 신익희의 시련 · 174 조병옥·김두한·김영삼의 당선 · 176 목포 무소속 후보 김대중의 낙선 · 178

 

3 : 이승만의 방미: 불행한 방문

한국 문제 해결을 위한 제네바 회의 · 180 이승만, 3차 세계대전을 촉구하다 · 183 “미국은 한국을 공산 침략자에게 팔지 말라!”· 185 ‘반공=도의교육 강화 · 187

 

4 : 중임 제한 폐지를 위한 사사오입 개헌

국민 78.8%가 반대한 초대 대통령 연임 · 189 ‘뉴델리 밀담설매카시즘 바람 · 190 서울대 교수들이 제공한사사오입논리 · 193 민국당에 희망은 없었다 · 194 ‘불온문서 투입 사건공작 · 196

 

5 : ‘자유부인허벅다리 부인

‘자유부인’ 사건 · 199 “불순 세력의 공작비를 받고 쓴 게 아닌가?” · 202 ‘자유부인사건의 진실 · 204 열녀·효부·절부 표창 운동 · 206

 

6 : 이승만이 일으킨 한글 간소화 파동

지당·낙루·병신 장관 · 208 북한의 한글 전용에 대한 반동 · 210 이승만은 1904년에 미국으로 갔다 · 211 ‘전문적인 과학자국가 권력자간의 싸움 · 213

 

7 : 『한국일보』 창간, 기독교방송 개국

신문은 이권을 챙길 수 있는 권력기관 · 215 불발로 끝난 신문 정비론 · 217 상업주의를 표방한 신문의 창간 · 219 영원히 사라질 뻔한조선일보라는 제호 · 221 한국 최초의 민영방송 탄생 · 223 한국 영화 최초의 키스신 · 226

 

8 : 문학: 예술원·펜클럽·실존주의

관제 예술원 창립 · 229 정치판 못지않은문단 정치’ · 231 지식계를 휩쓴 실존주의 바람 · 233 청계천은한국의 쎄느강’ · 235

 

9 : 군복 강도·졸업식·카투사·월드컵

군복 착용 강도의 횡행 · 237 졸업식 꽃다발 유행 · 240 카투사는 ‘6·25 전쟁이 낳은 기형아’? · 242 꿀벌 150만 마리 보내온노아의 방주’ · 245 스위스 월드컵의 감격과 충격 · 246

 

3 1955: ‘우상 정치동원 정치

 

1 : 이승만은예수나 석가와 같은 성자

3 26일은어용곡필배들의 잔칫날’ · 251 이승만은세기의 태양’ · 252 이승만은현대의 성자’ · 254 이승만은구국의 태양’, ‘인류의 등대’ · 255 자유당은내시 정당’ · 257

 

2 : 반둥회의: 평화공존은 친공인가?

평화공존·비동맹·반식민주의·민족자결주의 · 260 비동맹은남들의 운명에 대한 무관심”? · 262 이승만의 반둥회의 비난 · 263 나세르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사건 · 265

 

3 : 반일운동과 반공운동의 결합

이승만의 평화선 선포 · 267 미국이 주선한 한일회담 개최· 269 5·20 총선을 앞둔 반일주의 · 271 북진통일 궐기대회 · 273 일본과 북한의 연대 남침 음모? · 275 반일과 반공의 상충 · 277

 

4 : “학도를 정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체코·폴란드 물러가라시위 운동 · 279 대구 매일신문사 테러 사건 · 282 『매일신문』이 1만 부를 돌파한 이유 · 283

 

5 : 민국당 자유민주파가 만든 민주당

쟁점으로 불거진 조봉암 참여 문제 · 286 조병옥·장면·김준연의 반대 · 288 민주당 창당과진보당창당준비위원회구성 · 289

 

6 : ‘괴뢰 이승만사건과 『사상계』의 활약

『동아일보』의오식 사건’ · 292 ‘大統領犬統領으로 오식한견통령사건 · 294 청소년 대상 잡지 『학원』의 인기 · 295 ‘자유민권을 내세운 장준하의 『사상계』 · 297 장준하의 지식인에 대한 비판과 옹호 · 299

 

7 : : 부정부패의 창궐

리영희가 느꼈던 울분 · 301 사바사바·후생사업·송충이 · 302 1955년은군내 부정의 대표적인 해’ · 305 정치자금 조달용 부정부패 · 307 상급자에게 선물을 보내는 폐습 · 309

 

8 : 불교: 정화인가, 법난인가?

대처승 대 비구승 · 312 이승만, “대처승은 일제 식민지배의 유산” · 313 단식·시위·법원 난입·유혈난투극·할복자살 · 315 불교계의 정치적 예속성 심화 · 317 종교의 정치적 도구화 · 320

 

9 : 박인수 사건: ‘숫처녀 논쟁

70여 명 중 처녀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 322 2002년의박인수 재판 논쟁’ · 324 “왜 여성의 정조만을 문제삼는가” · 326 “서울의 숫처녀는 불과 60%도 못 된다” · 327

 

10 : “전쟁 미망인의 타락을 막아라

전쟁 미망인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 · 331 영화 〈미망인〉과 가요 〈단장의 미아리 고개〉 · 333 ‘미망인, 너 죽어라’? · 334 사회의겉 다르고 속 다른대응 · 337 강한 어머니, 약한 여성 · 338 ‘자궁 가족이란 무엇인가? · 340

 

11 : 〈피아골〉·〈아리조나 카우보이〉·국민 명랑화 운동

〈춘향전〉과 〈피아골〉 · 343 대중가요의 미국 지향성 · 345 “명랑한 도시를 만들게끔 노력하겠다” · 347 “향락에 탐닉하는 크리스마스비판 · 348

 

12 : 박태선·문선명·나운몽, 신흥종교 번성

민중의 이상향 갈구 · 352 권력과 유착된 기독교 · 353 신흥종교의 성장 · 354 전도관 신도의 89%가 개신교인 · 357

 

13 : 도시화·베이비붐·결혼식장·박인환·노동귀족

도시화와 서울 집중 · 359 ‘씨받이 면회베이비붐’ · 361 깡통을 매달고 달린 결혼식 카퍼레이드 · 363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365 ‘노동귀족비판 · 368

 

· 370


[본 문]
  

6·25 전쟁의 최대 비극 중 하나는 미국의 놀라운 풍요였다. 한국은 미국의 그 놀라운 풍요 덕을 크게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풍요가 전 한반도를 대량학살의 무대이자 폐허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전쟁 중 미 해군 수병들은 함포탄 1발의 가격이 최고급 승용차 캐딜락 1대의 값과 맞먹는 1만 달러라는 뜻에서 함포사격 구령에 맞춰캐딜락 1대가 날아간다고 복창했다. 자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에 수백만 대의 캐딜락을 쏟아부을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미국밖엔 없었다. 미국의 6·25 전쟁 전비(戰費)를 국방부는 180억 달러, 상무부는 675억 달러, 미 의회도서관은 340~790억 달러로 추산했다. 그 엄청난 돈의 상당 부분은 폭탄 값이었다. 전후 6·25 전쟁사가들은 한반도 전체 파괴의 90%는 직접적으로 미군의 물량 작전, 융단 폭격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1부 제4장 휴전: ‘반공이 아닌, 반한을 위한 전쟁(본문 55)

 

교회는 샌프란시스코라는 이상향을 구경이라도 해볼 수 있는 관문이었다. 교회는 그 이상향의 언어인 영어를 배우고 실제로 그 이상향에 유학을 갈 수 있는 주요 통로이기도 했다. 각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YMCA만 하더라도 “YMCA란 영어·수학 강습회를 하는 곳이다는 말이 널리 퍼질 정도로 영어 강습에 주력했는데, 1950년대 말까지 약 20만 명이 YMCA의 영어 강습회를 수강했다. 그렇게 영어를 익히면서 선교사나 미션계 학교를 배경으로 하면 미국 유학 가기도 쉽고 미국에 가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중엔근자에는 미국 가기 위하여 교회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국의 개신교 교회는 미국과 맺은 특수한인연으로 인해 이미 해방을 맞을 당시한국 사회 안에서 가장미국화된 부분이었지만, 6·25 전쟁과 전후의 곤궁을 겪으면서 더욱 미국화되었다. 「제1부 제10장 샌프란시스코: 동경과 숭배 대상으로서 미국」(본문 127)

 

11 27일 토요일에 열린 제90차 국회 본회의는 표결에 들어갔다. 표결에 앞선 토론에서 무소속 의원 송방용은 자유당 지도부가 소속 의원들에게 표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암호 투표 방법을 사용하게 해서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가부(可否)의 표시가 있는 투표용지에 각 도 단위로 부()자를 지우는 방식을 달리해 개헌안이 부결되었을 경우 이탈자를 색출해내겠다는 것이었다. 논란 끝에 비밀 보장을 약속받고 표결에 들어갔다. 개표 결과, 출석 의원 203명 중 찬성은 헌법 개정에 필요한 136표에 1표가 모자라는 135표였다. 203 3분의 2 135.333명이기 때문에 이건 분명 부결된 것이었다. 그래서 사회자인 국회 부의장 최순주도 부결을 선포했다. 그런데 일요일을 보내고 나서 월요일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29일에 열린 국회 제91차 본회의에서 최순주는 27일의 본회의에서 개헌안의 부결을 선포한 것은 계산 착오에 의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하고, 개헌안은 사사오입(반올림)의 수학 원리에 따라 가결되었다고 선포한 것이다. 자유당은 135.333명을 사사오입하면 135가 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웠다. 그래서 이 개헌에사사오입 개헌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제2부 제4장 중임 제한 폐지를 위한 사사오입 개헌」(본문 193)

 

당시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건 사실상의 계급투쟁이자 권력투쟁이었기 때문에 온갖 불법과 편법과 불공정이 난무했다. 예컨대, 1956년 말 문교부가 6개월간의 준비 끝에 중고등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국에 걸쳐 치르고자 했던 연합고사가 무산된 사건도 그걸 잘 말해주었다. 연합고사는 지역별 학교 수준을 측정해 장학 지도의 참고자료로 삼고 입시지옥의 폐단을 막기 위한 것으로 전국의 학부형과 대부분의 교육자들이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층과 일류 중고교 교장이 반대해서 무산되고 말았다.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자들이 자기 자식들을 일류 학교에 보내기 위해 저지른 불공정 게임은 1950년대 내내 계속되었다. 1957년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2·3류교에는 지원 학생이 없어 교실이 비는데도 경기고·서울고·경복고·용산고·경동고 등 세칭 1류 학교엔 학급 증설을 허용했다. 특권층에 영합해 동일계 중학교 졸업생을 전원 입학시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특권층은 청탁 등의 수단으로 자기 자식들을 일류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제2부 제9장 군복 강도ㆍ졸업식ㆍ카투사ㆍ월드컵」(본문 241~242)

 

민국당 계열의 보수파는 7 17일 자파만의 신당 발기 준비위원회를 구성, 다른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9 19일에 신당을 창당했는데, 그게 바로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반공이데올로기와 자유자본주의 신념을 내세웠다. 민주당은 5명의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대표최고위원엔 신익희, 나머지 4명의 최고위원은 대의원 투표로 조병옥(282), 장면(278), 곽상훈(262), 백남훈(111) 등이 뽑혔다. 민주당은 이른바구파신파로 구성되었다. 한민당과 민국당 계열을 승계한 구파는 신익희·조병옥·김준연·윤보선·유진산 등으로 지주 집안 배경을 가졌거나 해외 유학파가 중심이었다. 김성수의보성·동아 인맥이 강세를 보였다. 이승만에게서 소외된 전 자유당 인사들·흥사단·조선민주당계 인사들의 연합 세력인 신파는 장면·오위영·조재천·엄상섭 등을 핵심 인물로 한 관료·법조인 출신이 주류였다. 그 외 언론인과 정치인,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일제 치하에서는 법관 또는 관료로 일했던 사람들이다. 「제3부 제5장 민국당 자유민주파가 만든 민주당」(본문 289~290)

 

박인수는 명문 E대생들을 비롯한 70여 명의 여인과 간음을 했다는 것인데, 그는 공무원 사칭과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피소되었다. 70여 명이라는 숫자와 그 대부분이 여대생이라는 점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박인수 재판엔 수천 명의 방청객이 몰려들어 법정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언론의 뜨거운 관심에 의해 미주알고주알 밝혀진 바에 따르면, 경남 김해 출신으로 해병대 헌병 대위였던 박인수는 약혼녀가 자신을 배신하고 모 대령과 결혼해버린 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 충격으로 군기 문란과 근무지 무단 이탈이 문제가 되어 불명예 제대한 뒤부터 여성 편력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군 재직 시절 장교구락부·국일관·낙원장 등 고급 댄스홀을 드나들며 익힌 춤 솜씨와 수려한 용모로 여성에 대한 복수에 나선 셈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섭렵한 여성 중 처녀성을 가진 여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는 박인수의 실토에 대해 언론은 일제히우리 여성들의 정조 관념에 일대 경악과 통탄을 금할 수 없는 중대한 현실 문제라고 규정했다. 「제3부 제9장 박인수 사건: ‘숫처녀 논쟁(본문 323~324)

출판사 서평

‘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 1950년대편 개정증보판 출간!

 

한국인은 아직도 6·25 전쟁 시절을 살 듯이죽느냐 사느냐식의 처절한 삶을 살고 있다. 6·25 전쟁도 끝났고보릿고개도 끝났지만, 그 시절을 살던 정신은 아직 살아 있다. 그것은 개화기에서부터 개발독재 체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배층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모든 공적(公的) 체제 자체에 불신을 갖게끔 만든 건 물론이고 생존을 위해 사적(私的)인 연고와 정실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들었던 시절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체제와 제도를 불신하고 사적인을 신뢰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사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연보다 투자 수익성이 높고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게 있겠는가? 이런 이치를 모르면 한국의 살인적인 대학입시 전쟁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적나라한생존 투쟁이요계급 투쟁이다. 6·25 전쟁은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또다른 6·25 전쟁을 겪고 있는 것이다

6·25 전쟁이 낳은 소용돌이는 많은 지식인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6·25 전쟁은 악마의 저주로 간주되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를 포함한 인명 손실은 3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나 되었으며, 1,000만 명이 가족과 헤어졌고 500만 명은 난민이 된, 말과 글로 다할 수 없는 끔찍한 비극을 낳은 그 전쟁이 영원히 악마의 저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이 악마의 저주란 말인가? 그런데 6·25 전쟁이 과연 모든 사람에게 악마의 저주로 간주되어 마땅한 일이었는가 하는 의문과 관련된 것이다. 기록으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지역과 사람에 따라서는 6·25 전쟁 중 특별히 전쟁의 고통이라고 할 만한 걸 겪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마을에 들어온 북한 인민군 병사들이 친절하기까지 했다는 증언들도 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625 전쟁에서 419 혁명 전야까지』 개정증보판은 모두 3권으로 구성되었다. 1권은 1950~1952, 2권은 1953~1955, 3권은 1956~1959년의 역사를 담아냈다. 강준만은 한국처럼 현대사가 끊임없이 다시 쓰거나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큰 나라는 없을 것이며, 한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들의 비밀문서가 해제되고, 비극적인 과거에 대한 진상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배상과 보상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21년 전에 출간된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의 개정증보판을 펴낸다고 말한다.

 

끝나지 않은 전쟁, 민간인 학살

 

6·25 전쟁은이원(二元) 전쟁이었다. 군인들끼리 싸운 전쟁이 그 하나라면 또 하나의 전쟁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민간인 학살은 군과 경찰에 의해 저질러졌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 사이에서도 저질러졌기 때문에 더욱 비극적이었다. 민간인 학살은 한국의 일그러지고 뒤틀린 근·현대사의 역사적 모순과 질곡의 표현이자 결과이기도 했다. 램지 클라크는미국에서 한국전쟁은잃어버린 전쟁으로 불린다당시 3천만 인구 가운데 10%가 넘는 민간인이 몰살당한 전쟁을 국제사회가 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6·25 전쟁은잊혀진 전쟁일 뿐만 아니라끝나지 않은 전쟁이기도 하다. 1999 9 AP통신이 미군에 의한 노근리 학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후 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있었던 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밝히는 것도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그 전쟁은 6·25 전쟁 이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수행되어왔다. 북진통일 궐기대회가 판치는 이승만 정권하에서는 오직 빨갱이에 의해 죽었을 때에만 그 진상규명이 허용되고 장려되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의 진상규명은 반역이었다. 역사학자 서중석은신문사를 습격하건, 법원에 난입하건, 공공집회를 무법천지로 만들건, 정치인을 백주에 테러하건, ‘반공용사들이 했다고 하면 붙잡지 않았, “어떤 사람이건, 어떤 행위건나는 반공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말만 하면 그것에 저항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4·19 직후, 6·25 전쟁을 전후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진상규명에 나선전국 피학살자 유족회는 유족들의 신고를 바탕으로 114만 명이 국군의 손에 의해 학살당했다는 보고서를 냈는데, 이들은 빨갱이로 몰려야 했다. 이후 이들은 입을 닫아야 했고, 4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기독교의 반공, 친미, 기복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독교 신앙이라는반공의 보증수표가 부도날 염려가 없을 정도로 반공의 전선에 앞장섰다. 예컨대, 전쟁이 발발한 다음 날인 6 26일 서울에서는 교파를 초월한 개신교 단체인대한기독교구제회가 조직되었고 7 3일 대전에서 목사 한경직이 앞장서서대한기독교구국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남한 지역 30개 도시에 지부를 설치하고 국방부·사회부와 협력해 선무와 구호, 방송, 의용대 모집 등 반공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선무공작대’를 조직해 남한 전역에서 활동했으며기독교 의용대라는 단기 군사훈련을 거쳐 전선에 배치되기도 했다. 기독교 지도자와 신자들은 단순한 참전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합리화하며 정당성을 부여했다. 물론 그 논리는 종교적인 것이었다. 특히 한경직은 인천상륙작전 당시에 대한기독교구국회 회장으로서 군복을 입고 참여하는 등 맹활약을 했다.

반공은 곧 친미를 의미하고 친미는 곧 친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6·25 전쟁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기복은 이에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전쟁 중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도 복이었겠지만, 죽을 염려는 피한 전후의 잿더미에서는 좀더 현실적인, 즉 물질적인 복을 구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수단은 여의치 않았다. 기복 신앙은 전후의 잿더미와 비교되어 엄청난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미국을 닮고 자본주의 정신에 투철해지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미국에 대한 동경과 숭배, 물질에 대한 한의 종교적 표현이 바로 기복 신앙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기복 신앙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마저 갖게 되었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특별한 한국의 기복 신앙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특별했던 한국의 역사적 상황이 낳은 산물이었다.

 

『한국일보』 창간과 기독교방송 개국

 

1954 6 9일 공식적으로 상업주의를 표방한 『한국일보』가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창간호 사설에서 ”‘리얼리즘에 입각한 상업신문의 길을 개척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의 사주는 은행가 출신으로서 2년 동안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던 장기영이었다. 그는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해 그가 『조선일보』를 맡은 후 1년 동안 발행 부수는 350%가 늘어났고, 지대 수입은 640%, 광고 수입은 518%가 늘어났지만, 그의 개성이 강한 운영 방식과 독자적인 영향력 구축이 방씨 일가와 갈등을 빚어 임기의 반도 지나지 않고 중도 퇴임했다. 장기영은 『조선일보』를 그만둔 지 2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경영난을 겪고 있던 『태양일보』를 인수해 『한국일보』를 창간했다. 장기영은 국내 최초로 1954 8 1일 기자 제1 6명을 공채한 이후 정기적으로 기자를 공개 채용해 다른 신문사에 이러한 관행을 퍼뜨렸다.

1954 12 15일에 첫 전파를 발사한 기독교방송은 한국 최초의 민영방송이 되었다. 원래 기독교방송은 1949년에 정식으로 방송국 설립 승인을 받았으나 전쟁으로 설립이 중단되었다가 1954년에 다시 설립 허가를 받아 개국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방송의 국장은 미국인 선교사 감의도였다. 기독교방송의 탄생은 감의도가 미국 선교 본부에서 5킬로와트 송신기와 부속 일체를 발주 받고 방송국의 운영에 소요되었던 모든 자금은 미국 뉴욕에 있는 기독교단체라디오, 시각 교육 및 대중 커뮤니케이션 위원회의 원조를 받아 이루어진 것이었다. 정순일은기독교방송이 청취자의 환영을 받은 것은 우선 그 깨끗한 음질이었다. 국영 KBS가 쥐꼬리만 한 예산으로는 구할 수 없던 LP판을 미국에서 기증 받아와서 틀어제끼니 당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전쟁 미망인의 타락을 막아라

 

1957 10월 말 현재 55 5,000여 명으로 추산되는전쟁 미망인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의 피해자였지만, ‘미망인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가 시사하듯이 그들의 타락 가능성만을 염려하는 사회적 담론이 무성하게 일었다. ‘과부의 재가 허용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지만 1950년대까지도 이른바미풍양속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정충량은 월간 『여성계』 1955 9월호에 쓴 글에서동족 사이의 난륜은 더 큰 사회 범죄의 온상이며정욕을 참지 못하려면 차라리 개가하는 편이 훨씬 떳떳하고 명랑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전쟁 미망인의 위험한 성을 재혼을 통해 안정시키자고 주장했다. 정충량은 성공 사례를 거론하면서 자녀가 있더라도 전쟁 미망인의 재혼이 가능함을 역설했다.

1955 12 10일 서울 중앙극장에서 한국 최초의 여자 감독 박남옥의 〈미망인〉이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미망인이 거센 세파를 헤치고 살아간다는 내용이지만, 역설적으로 미망인이 수절하며 거센 세파를 헤쳐나가는 게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설가 장덕조는 월간 『여원』 1956 3월호에 쓴 글에서자녀를 가지지 않은 미망인은 연애를 하거나 재혼을 할 것을 인정하거나 권장하자고 주장하면서도자녀가 있는 미망인은 연애나 재혼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모성의 보호와 모권 확립의 문제, 즉 자녀가 받게 될 심리적 충격과 가정교육 등을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후 사회가전쟁 미망인의 타락을 막아라고 외쳐대는 선전·선동으로 얻고자 했던 것은 결국강한 어머니의 탄생이었다.

저자 소개
저자 :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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