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작가 소개
정념과 미덕
시향용 향기 혹은 떠돌이 광대들
옮긴이의 글
[본 문]
그는 책이나 연극에 나올 법한 그런 대단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감정이 메마르긴 했지만 사리 판단이 분명한 남자였고, 무엇보다 화학자였다. 한편으로 그는 유혹의 이론, 그 원칙과 규칙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정확하지만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그 방면에 재주가 아주 뛰어났다. 소위 유혹에 능한 남자는 그런 기술들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법이다.
p.11 <정념과 미덕>
가련한 마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욕망이 되고, 집착으로 이어지다가 마침내는 분노로 변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녀는 직감했다. 그러나 어리석고 무지했던 그녀는 얼른 그런 예감을 떨쳐버리고, 행복한 미래, 평온한 삶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정념이 환희를 안겨주고 쾌락이 행복을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했다.
p.25 <정념과 미덕>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이 아주 오래 떠나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그만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날 여정에서 보고 들었던 전부를 끊임없이 다시 떠올리며 온밤을 지새웠다. 자신이 거쳐온 마을들, 자기가 지나온 그 모든 길이 눈앞에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방파제 위에서 바다와 멀어져가는 돛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축제 의상을 입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던 결혼식도 떠올랐다. 포석이 깔린 도로 위를 굴러가던 자신의 마차 소리도 들렸고, 자신의 발아래 우르릉거리며 튀어 오르던 파도 소리도 들렸다.
p.56~57 <정념과 미덕>
아! 여자들! 여자들! 그녀는 마음 깊이 여자들을 증오했다. 특히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어떤 공연장이나 무도회에서 샹들리에와 촛불의 불빛 아래 물결처럼 흔들리는 목선, 레이스와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를 드러낸 여자들. 남자들은 서둘러 그녀들의 미소에 미소로 화답하고 아첨하며 찬사를 보낸다. 그녀는 그런 여자들의 옷과 자수 놓인 하늘거리는 천들을 구겨버리고 싶었고, 그 사랑스러운 얼굴들에 침을 뱉고 싶었으며, 그렇게 차갑고 그렇게 자긍심 넘치는 낯짝들을 진흙탕 속에 처박고 싶었다.
p.63 <정념과 미덕>
인간과 함께 태어나 ‘존재하지 않음’에도 계속 존재하며, 철학과 인간들이 그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온갖 궤변으로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보며 잔인한 웃음을 짓는 한편, 마치 말라붙은 두개골로 저글링을 하는 거인처럼 그들 모두를 강철 같은 손아귀로 주무르면서 모든 시대와 모든 제국 앞에 사라지지 않고 당당히 맞서왔던 신, 잘못은 바로 그에게 있다!
p.98 <시향용 향기 혹은 떠돌이 광대들>
아! 제발, 제발 날 좀 도와줘, 페드리요!”
그녀는 붉고 앙상한 두 팔로 그를 감쌌다. 누더기를 걸친 추한 여자가 마치 본능처럼 자신을 밀어내는 그 남자를 그토록 사랑스럽게 끌어안는 모습, 그 비참함과 다정함, 그것은 참으로 흉측하면서도 숭고한 광경이었다.
“자,” 페드리요가 말했다. “내일 아이들을 데리고 광장으로 가. 갈 때 내 바이올린도 가져가고.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빵을 구해와.”
p.114 <시향용 향기 혹은 떠돌이 광대들>
광장의 돌바닥 위에 펼쳐놓은 양탄자와 다름없어 보이는 그녀의 괴상한 옷차림, 구멍 난 외투에 분홍색 스타킹, 그녀의 빨간 머리카락과 머리에 꽂힌 시든 꽃들은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웠다. 누군가 던지는 말이 들려왔다. “정말 못생겼군!” 그리고 그들은 웃으며 지나가 버렸다.
p.122 <시향용 향기 혹은 떠돌이 광대들>
아! 문제는 젊고 아름다운 이자벨라다였다.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그녀는 이가 하얗고, 눈은 초롱초롱하고, 머리칼은 흑단처럼 까맣고, 허리는 잘록하고, 발은 앙증맞았다. 반면에 마르그리트는 못생긴 데다 나이는 마흔 살이었고, 잿빛 눈에 빨강머리, 절구통처럼 두루뭉술한 허리에 발은 넙데데했다. 둘 중 하나는 아내였고, 다른 하나는 연인이었다.
p.148 <시향용 향기 혹은 떠돌이 광대들>
“나한테 뭘 어떻게 해서가 아니야, 그냥 난 당신이 싫어. 아까 당신이 곡예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당신의 그 파란 드레스에 진흙을 집어 던지고 싶었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가슴을 때려서 멍이 들게 하고 싶었다고! 나도 알아, 당신은 나한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어쩌면 다른 누구보다 나
은 여자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든 난 당신이 마음에 안 들어. 당신한테 불행이 닥쳤으면 좋겠어. 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내 마음이 그래.”
p.164~165 <시향용 향기 혹은 떠돌이 광대들>
“왜 이러냐고? 난 질투하고 있어! 아! 당신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지, 당신은! 내가 왜 이러냐고? 어쩌면 난 미쳐버린 건지도 몰라,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난 그 여자가 미워, 그리고 당신을 사랑해!”
p.177 <시향용 향기 혹은 떠돌이 광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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