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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88936425265 |
|---|---|
| 쪽수 | 19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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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들은 죽어서도 할 말이 남아서
꿈속의 빈 의자를 찾아다니고”
제목 그대로 ‘우울’과 ‘경청’은 이번 시집을 꿰뚫는 가장 적확한 단어라 할 수 있다. 시인에게 ‘우울’은 단순한 슬픔의 감정이 아니라 일상의 부조리를 감지하는 감각이자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공명하는 윤리적 감수성이다. 시인은 “지난겨울의 천재지변과 누구나 아는 재앙 같은 것”(「진홍의 왕」)을 노래하면서도 “우리는 웃었다 믿음이 마르지 않았다”(「지그소」)라고 말한다. “밤낮 없는 암흑천지와 누구나 앓던 우울 같은”(「진홍의 왕」) 절망의 이야기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의 기운, 그것이 시인이 말하는 우울의 진짜 얼굴인 것이다. 당신의 슬픔에 귀 기울이고 슬픔을 함께 견디며 살아가는 우울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타인의 목소리를 향한 ‘경청’이 놓여 있다. “귀를 기울일수록 못 들은 말이 늘어나고”(「우울과 경청」) “밤이 계속되자 경청이 직업이 되었다”(시인의 말)는 문장처럼, 시인에게 있어 경청은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고통받는 타자의 목소리에 몸을 기울이는 행위, 타자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윤리이자 곧 살아 있음의 증거이다. 시인은 “나사처럼 천천히 숨을 조여오는 공포”와 “꺼지지 않는 어둠 속”(「공감각」) 저편에서 들려오는 “절뚝거리는 목소리”(「우울과 경청」)를 포착하고 이에 마음을 쏟는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귀신이나 천사, 지박령, 고양이 같은 비인간 존재들과 여자, 아이, 엑스트라 등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적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야말로 시인이 택한 세계와의 연대 방식이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있어 이들은 단순한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의 폭력에 가장 먼저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각의 주체이다. 이처럼 작고 약하고 여린 존재를 통해 세계의 폭력을 응시하는 시인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먼저 울고 먼저 듣는 자들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이며 경청의 시학을 완성한다.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사랑한다는 뜻이지.”
기나긴 밤의 복도를 따라 울려 퍼지는 나지막한 목소리
전작 『미기후』에서 “세계적인 우울과 각자의 기후 속” 살아가는 인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인은 이번 시집 『우울과 경청』에 이르러 “삶의 고독을 너무나 잘 이해하면서도 그 고독이 결코 나만의 일로 그치지 않”(황인찬, 추천사)도록 우울을 통해 타인의 슬픔을 껴안고, 경청을 통해 서로에게 접속하고자 한다. 시인은 “죽음 앞에서 손 붙잡고 할 수 있는 것,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니까”(「우울과 경청」)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어두운 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것이 이민하의 시가 지향하는 공감과 환대의 윤리이자, 삶을 지키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죽음의 이름들을 기억하는 행위”(전승민, 해설)는 결국 “잊지 않겠다는 뜻”이며 “사랑한다는 뜻”(「사랑의 역사」)이 된다. 세계의 어둠을 견디는 모두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죽지 말아요/오늘은 죽지 말아요”(「제너레이션」)라 되뇌는 이민하의 주문은 기나긴 밤의 복도를 가득 채우며 투명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