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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98135865 |
|---|---|
| 쪽수 | 416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사회학
AI추천 이유

탈자본주의 원칙을 실천하는 방법,
커먼즈은행 빈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많다. 하지만 그에 비해 자본에 얽혀 들어가 있는 삶 자체를 탈자본화하는 실천 방법은 뚜렷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탈자본주의 운동은 주로 노동자운동과 소비자운동으로 발현되어 왔다. 노동자운동을 통해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해 벌어들인 자본을, 소비자운동을 통해 기업이 소비자를 활용해 앗아가는 자본을 탈환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렇게 탈환한 작지만 소중한 우리의 자본이 은행을 통해 금융자본으로 다시 활용됨으로써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먼즈은행 빈고는 자본주의 은행을 이용한다면 누구나 포섭될 수밖에 없는 자본금융의 흐름을 벗어나, 함께 공유지를 넓혀가는 커먼즈금융을 제시한다. 물론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자본을 위한 노동과 소비, 저축과 대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빈고는 탈자본 금융주체들이 함께한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탈자본주의라는 원칙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자본의 바깥에서 서로의 실천을 교환적으로 확인하며 공유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16년간 약 540여 명의 탈자본주체들이 빈고를 통해 조금씩 자본의 세계에서 공유의 세계로 자신의 삶을 옮겨왔다. 커먼즈은행 빈고는 공유지를 넓혀 가는 탈자본주의적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천 그 자체다.
빈고에서 커먼즈를 만들어가는 방법,
자본수익 사양하기
우리는 누구나 잉여가 생기면 집이 아닌 은행에 보관한다. 우리는 그저 은행에 보관만 했을 뿐이지만 은행은 이를 자본으로 활용해 우리가 동의하지 않았고 알 수도 없는 곳에 사용한다. 빈고는 이러한 잉여를 자본주의 은행이 아닌 빈고에 출자할 것을 제안하고, 그렇게 모인 자본을 커먼즈로 활용한다. 자본이 필요한 사람들과 이용계획을 세워 이들이 필요한 만큼 이용(대출)할 수 있도록 하고, 이용활동을 한 사람은 원금과 함께 수익의 일정 비율(이자)을 반환한다. 출자자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잉여를 빈고에 출자(예금)하고 은행과 마찬가지로 원할 때 반환(출금)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빈고와 다른 은행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발생한다. 출자자와 이용자가 모두 자본수익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용자는 수익을 모두 갖지 않고 빈고에 돌려주려 하고, 출자자는 발생하는 이자를 사양한다. 빈고가 일정 비율에 따라 출자자에게 제공하는 출자적립금(이자)은 언제든 가져갈 수 있지만, 크게 필요하지 않다면 이를 사양해 다시 커먼즈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서로가 수익을 갖기를 거부하는 ‘사양의 경제’ 속에서 자본은 커먼즈로 전환된다. 이 커먼즈는 다시 누군가의 필요를 위해 순환하며, 금융의 관계를 채권자와 채무자가 아닌 공동체의 일원들로 재구성하게 된다.
주거에서 금융으로.
경계를 허문 실천의 시작
빈고의 실천은 2008년 해방촌에서 시작된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 빈집’에서 시작되었다. 빈집은 친구 여럿이 보증금을 모아 같이 집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기여한 자본의 크기에 상관없이 방문하는 모두를 집의 주인이자 손님으로 대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집의 보증금을 누가 냈는지, 계약자가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이 집에 들어선 자들은 모두 동등했다. 이렇게 ‘모두’에게 문을 연 빈집의 특이한 공동생활은 높은 주거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모델로 주목받았다. 그렇게 빈집에 장기투숙객이 늘면서 빈집은 한 채, 두 채, 새로 계약을 해나갔고, 여러 개의 빈집이 생기면서 ‘빈마을’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한 집일 때는 발생하지 않았던 금융과 관련한 문제가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빈집에서는 계약한 사람, 보증금을 낸 사람, 실제 거주하는 사람이 달랐고 그 수도 일정하지 않았다. 보증금을 낸 사람도 이에 따라 혜택을 본 사람도 이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집이 여러 채가 되고 보증금을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빈집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빈마을금고’를 만들어 여러 빈집의 자산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다. 보증금을 내지 않았어도 다른 빈마을금고를 통해 기여할 수 있었고,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빈마을금고를 통해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빈마을은 다시 한 번 경계를 넘는 시도를 한다. 집안과 집밖의 경계를 허물고 빈마을의 자산을 집밖의 구성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빈집이 아닌 곳에서도 빈집의 자산을 이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빈마을의 범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빈집의 원칙인 ‘자치, 공유, 환대’의 원칙에 동의한다면 누구나 빈고의 자산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빈마을금고는 빈집 거주자를 중심으로 하던 주거협동조합에서 금융협동조합으로 전환해 간다. 빈집이 손님-주인의 경계를 허물었다면, 빈고는 채무자-채권자의 경계를 허물었다. ‘내 것’이 ‘모두의 것’이 되어 함께 풍요를 만들어가는 커먼즈은행 빈고의 실험은 서로를 지탱하는 삶의 방식이 되었다.
실천에서 사유로.
교환의 새로운 규칙, 사양의 경제학
이 책의 한 축이 커먼즈은행 빈고의 생활과 실천을 담고 있다면, 다른 한 축은 커먼즈은행 빈고를 뒷받침하는 탐구를 담고 있다. 빈고의 구성원들은 빈집에서부터 이어져 온 질문과 빈고가 가능한 이유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탐구해 왔다. 빈고의 질문은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왜 공동체는 커질수록 커먼즈를 유지하기 어려운가?”, “노동자가 자본을 가지게 될 때 어떤 딜레마가 발생하는가?”, “탈자본금융은 기존의 노동자운동이나 소비자운동과 어떻게 다른가?”, “대항화폐로 충분하지 않고 대항은행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을 따라가며 탈자본 원칙에 따른 커먼즈금융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교환양식인 ‘사양교환’을 소개한다.
빈고는 빈집에서부터 가족, 국가, 자본이 아닌 공유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일반화된 원칙으로 빈고에까지 적용해 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빈고의 도식이 가라타니 고진의 교환양식론과 구조적인 유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만이 경제체제가 아닌 자본=국가=네이션이 독립적이면서도 얽혀 있는 삼위일체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네이션은 선물과 답례의 교환양식 A에,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의 교환양식 B에, 자본은 상품과 화폐의 교환양식 C에 기반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교환양식 D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가라타니는 이를 ‘어소시에이션의 어소시에이션’, ‘노동자운동으로서의 소비자운동’,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 ‘세계 공화국’ 등 여러 개념으로 설명해 왔으나, 하나로 규정하지는 못했다. 빈고는 교환양식을 규정하기에 앞서 교환을 ‘제안’과 ‘응답’으로 분해해 가라타니 고진의 교환양식 A, B, C의 유효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교환양식 D가 서로 갖지 않기로 경쟁하는 사양교환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사양교환은 반복되고 확장되면서 커먼즈로 제도화된다. 빈고는 자본=국가=가족의 자본계에 맞서는 새로운 트라이앵글인 공유지(커먼즈)=공동체=공화국의 공유계를 넓혀갈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탈자본의 원칙을 실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길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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