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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68151321 |
|---|---|
| 쪽수 | 128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시 > 한국시
AI추천 이유
어느 호모 메디쿠스의 불안과 욕망
고봉준(문학평론가)
김연종의 시집을 읽다 보면 불현듯 한 중년 사내의 형상이 떠오른다. 사내는 “베이비붐 세대”(「베이비부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 그는 송정리역을 이용해 먼 거리를 통학했다. 이 때문에 그에게 “KTX에 정토를 내어주고/ 간간이 무궁화만 정차”(「다시 극랑강역에서」)하는 극락강역은 유년과 광주에 대한 추억과 동일한 의미이다. 유달리 병약했던 사내는 80년 5월 광주를 목격한 후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의사가 되었다. 첫 시집에 등장하는 “낮게 드러누운 풀밭 사이로 더욱 몸을 낮춰/ 여시같은 역무원의 날카로운 더듬이를 피해야만/ 극락으로 향하는 길은 있었다”(「극락강역」)라는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극락강역’은 그를 고향과 가난했던 유년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장소이자, “내 문학의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다시 극락강역에서」) 시원으로 기억된다. 김연종의 초기 시는 ‘가난’과 ‘병마’로 기억되는 이 세계에 대한 그리움, 혹은 그곳으로 되돌아가려는 귀향 의식이 주조를 이루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다 보니 단골들이 자꾸 떠나간다 돈 벌어 떠나고 나이 들어 떠나고 이러다가 이곳마저 문 닫는 게 아니냐며 아직 못 떠난 단골들이 앞날을 걱정한다 꼬맹이 때 떠났다가 꼬맹이 손을 잡고 온 젊은 엄마가 여기는 어릴 적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니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며 떠난다 그녀가 떠난 빈자리가 동굴처럼 적막하다 동굴 속 사내는 낡은 청진기처럼 더듬거린다 손놀림이 더디고 심술주머니가 도드라진다 정수리가 휑하고 새치가 반짝거린다 검은 머리 원숭이가 직립의 길을 떠난다 다크서클이 두려워 땅만 보고 걷는다 검은 모자를 쓰고 진한 선글라스를 낀다 눈썹문신을 하고 갈색 염색을 한다 진화를 거듭한 유인원이 새 단장을 마쳤다 낡은 몸은 수선을 마쳤지만 한번 굽은 등은 곧게 펴지지 않는다
- 「호스피탈로피테쿠스」 전문
극락강역을 오가던 그 ‘소년’은 지금 중년의 의사가 되어 “동굴처럼 적막”(「호스피탈로피테쿠스」)한 “사각의 진료실”(「상자의 세계」)에 앉아 “감옥 같은 일생이/ 감쪽같이 지나갔다”(「파놉티콘」)라는 사실을 곱씹고 있다. 김연종 시의 화자는 의사이다. 그는 자신을 호모 메디쿠스Medicus나 호스피탈로피테쿠스라고 소개한다. 호모 메디쿠스는 라틴어로 의사를 가리키는 말이며, 호스피탈로피테쿠스는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를 변형하여 만든 의사-인간(의학적 인간)이라는 유사 학명이다. 그런데 김연종의 시에 등장하는 의사 화자는 우리가 상상하는, 혹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위의 인용시는 시인이 묘사한 호스피탈로피테쿠스의 초상이다. 의사-인간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어디론가 떠나가는 서울 외곽의 병원에서 “낡은 청진기처럼” 더듬거리며 살아간다. 그가 일하고 있는 곳은 응급환자로 분주하거나 쾌적함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그런 병원이 아니다. 진료가 끝난 환자가 떠나고 나면 병원은 ‘동굴’처럼 ‘적막’한 곳이 된다. 그곳에서 그는 “낡은 청진기”처럼 변해간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손놀림이 더디고 심술주머니가 도드라”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정수리가 휑하고 새치가 반짝거”리는 상태에 이른 그는 “다크서클이 두려워 땅만 보고 걷”기도 하고, 때로는 “눈썹문신을 하고 갈색 염색”을 함으로써 “낡은 몸”을 수선한다. 하지만 시간의 법칙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니 “한번 굽은 등은 곧게 펴지지 않는다”.
비자금이 꽃비처럼 쏟아지면
장미를 살까 권총을 장만할까
내 안에 여정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세계로 떠난다면
장미는 알까
권총 같은 부채를 안고
오지 않는 그 날을 기다린다는 것을
내 안에 타래를 풀려면
시집을 펼쳐야 할까
청진기를 꺼내야 할까
고독한 타투마저 지워지면
어떻게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꽃잎은 시들었고 가시도 무뎌졌는데
- 「디폴트」 전문
이 시는 김연종의 시가 본질적으로 실존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디폴트default는 흔히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시의 화자에게 ‘부채’가 “권총 같은 부채”로 인식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 시에서 디폴트가 채무 불이행이나 신용불량을 뜻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채무는 경제가 아니라 실존 문제이다. 빌린 돈을 갚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 시에서 화자의 채무는 “어떻게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앞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 시의 화자를 의사 화자라고 상상하고 읽어보자. 화자는 30년 정도의 경력을 지닌 의사이다. 하지만 그는 ‘시집’과 ‘청진기’를 나란히 놓는 존재, 즉 시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비자금이 꽃비처럼 쏟아”지는 일을 상상해야 할 정도의 ‘부채’를 안고 있다. 여기에서 ‘부채’는 부채감이나 부채 의식, 즉 심리적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의 형식이 바로 “장미를 살까 권총을 장만할까”이다. 여기에서 ‘장미’는 아름다움 또는 생명을 연상시키고 ‘권총’은 죽음을 떠오르게 한다. 이 ‘장미’와 ‘권총’의 대립이 4연에서는 ‘시집’과 ‘청진기’의 대립으로 변주되고 있다. 여기에서 “내 안에 타래를 풀려면”은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마음이 표현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는 곧 ‘나’라는 존재의 본질이 ‘시집’과 ‘청진기’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까운가를 자문自問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연종은 의사이자 시인이고, 시인이자 의사이다. 따라서 ‘시집’과 ‘청진기’는 사실상 사내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개의 자아인 셈이다. 그것들은 논리적으로는 구분되지만 실제로 분리할 수는 없다. “나의 상자는/ 문학과 의학의 연리지다”(「상자의 세계」)라는 진술이 이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시집’과 ‘청진기’ 모두에 대해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디폴트default는 두 개의 자아가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부채감, 즉 시인-화자는 자신이 제대로 된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사-화자는 반대로 자신이 의사로서의 책무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연종의 화자들은 이들 두 개의 정체가 하나의 신체에 공존하고 있음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 시의 화자 또한 ‘타투’라는 표식이 지워지면 과연 그 신체가 어떤 화자의 것으로 인식될 것인지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신체에서 공존하고 있는 ‘시인’과 ‘의사’라는 두 개의 자아를 화해시키는 일은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두 자아 둘 모두를 긍정하면 타협이 가능하지만, 그 경우에도 ‘시인 의사’와 ‘의사 시인’ 가운데 어느 쪽이 적확한 표현인지 의문은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인 의식, 그러니까 두 영역 모두에 속해 있으므로 정작 어느 한 세계에 온전히 포함되지 못한다는 의식은 김연종의 시의 한계가 아니라 특이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한계가 아니라 시적 발화의 조건이다.
길고양이 두 마리가 자동차 바퀴 밑에 엉켜 있다 불금보다 뜨거운 소란이 지나가고 나른한 수염처럼 고요가 밀려온다 그곳에 닿으려면 좁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미등에 비친 실루엣이 납작하다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다
머리숱은 줄고 배 둘레는 늘었다
혈압이 오르고 당수치도 간당간당한다
겉은 멀쩡한데
내면의 몰골은 처량하다
감정의 찌꺼기가 혈관에 남아
소소한 일상에도 뒷목이 뻣뻣해진다
조금만 관심이 떨어져도 오금이 저리고
신용불량의 관절 마디엔 마찰음이 요란하다
잔고장이 많아
수시로 지갑을 보충하고 스마트폰을 충전한다
사이드미러엔
솔깃한 명함이 따라붙는다
스킨십의 온도가 높지 않아
사소한 격려에도 온몸이 팔랑거린다
이마와 뱃살을 어루만져
카톡의 프사를 다시 바꾼다
새벽 존엄은 사라진 지 오래
육십갑자에도
조동버릇은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근시안이라 마음을 살필 여유조차 없다
적자투성이 육신은 원래부터 약골이었다
- 「중간결산」 전문
김연종의 이번 시집에는 ‘시집’과 ‘청진기’로 표상되는 존재의 분열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가 느끼는 생에 대한 불안의 감각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가령 시인이 “나는 늘 바른 사나이라고/ 외치고 다니지만/ 심장은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라고 말할 때, 혹은 “바른 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쓰고/ 남은 소변을 털어 내지만/ 왼쪽을 능멸하는 데 능숙하게 사용되었다”(「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라고 말할 때, ‘좌뇌’는 논리적 사고와 분석적 능력을, ‘우뇌’는 감정과 창의력, 즉 예술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바른 사나이’라고 말하지만 심장은 ‘왼쪽’에 치우쳐 있다거나, 반대로 ‘바른’ 손으로 삶을 살면서도 그 손으로 ‘왼쪽’을 능멸하기도 했다는 고백에서 ‘왼쪽’과 ‘오른쪽’은 ‘시집’과 ‘청진기’ 사이에서의 갈등처럼 존재의 분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좌뇌형 인간 우뇌형 인간」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황색 신호에 갇혀버린 나는/ 안개등처럼 깜빡거리고”라는 진술은 “길을 잃었다”(「허무하거나 맹랑하거나」)라는 고백과 비슷한 울림을 갖는다.
반면 인용시에서 느껴지는 실존적 불안은 그것과는 층위가 다르다. 이것은 한 중년 사내의 삶에 대한 ‘중간결산’ 보고서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화자는 시인이나 의사 이전에 한 인간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일생은 수많은 항목들의 비산술적인 총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에 등장하는 한 구절(“난 이제 몸에 이상한 일이 생겨도 놀라지도 않는다. 점점 짧아지는 보폭, 몸을 일으킬 때의 현기증, 굳어버린 무릎, 터지는 정맥, 또다시 비대해진 전립선, 쉰 목소리, 백내장 수술, 이명, 광시증, 자꾸만 헐어 달걀노른자처럼 돼버린 입술 가장자리, 바지 입을 때의 어설픈 동작, 자꾸만 잊고 잠그질 않는 바지 앞 지퍼, 갑작스런 피곤, 점점 잦아지더니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낮잠.”)에 등장하듯이 일생을 산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신체의 존재로서의 몸”이 활력을 점차 상실해 간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일생이 ‘몸’의 상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몸’의 변화를 통해 늙어감을 인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육십갑자’, 혹은 일생의 ‘중간’을 넘어섰다는 것은 ‘몸’이 젊을 때의 그것과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의미이다. “의사)50대 후반 남자, 키 171㎝ 체중 71㎏ BMI 32 중등 비만/ 비만 학회 종신회원이며 현재 비만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음”(「비만을 연구하는 비만 의사」)이라는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몸’의 변화는 의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요컨대 김연종의 이번 시집은 이중적인 층위에서 한 개인의 실존적 위기를 보여준다. 그가 “내 안에 타래를 풀려면/ 시집을 펼쳐야 할까/ 청진기를 꺼내야 할까”(「디폴트」)라고 질문할 때 그것은 ‘시인’과 ‘의사’로 분열된 자아의 불안을 드러낸 것이며, “생의 조타실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가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게 더 문제다”(「나에게 쫓기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육십갑자’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투명한 삶의 방향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늘어진 청진기를 목에 두르고 있다
빛바랜 와이셔츠에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하늘색 단추가 느슨하게 풀려 있다
출퇴근도 휴식 시간도 명확하지 않다
벽시계의 초침은 미동도 하지 않는데
진한 하품 소리가 대기실까지 전염된다
거식증인지 폭식증인지
묻기도 전에 바람의 몸무게를 잰다
이제 막 사랑을 끝낸 중년 부부처럼
이미 잠든 사람을 깨워 수면제를 권한다
철 지난 잡지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푸른색 다이아몬드를 찾아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텅 빈 진료실엔
아직 목숨을 의탁할만한 가벼운 안도감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다
은폐가 불가능한 새끼고양이 수염처럼
자꾸 만져도 자라지 않는 토끼 인형처럼
만질수록 쭈그러드는 방울토마토처럼
시詩든 것들은 모두 바람에 날리기를 원한다
- 「폐업 직전 늙은 의사의 진료실 풍경」 전문
이 시는 실존적 관점에서는 불안/ 권태가 그린 근미래의 초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고, ‘욕망’, 즉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는 “안티고네의 퍼즐” 이후에 도래할 현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화자가 ‘권태’의 반대편에 “시詩든 것들”을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화자는 다시 ‘의사’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다만 이 시는 현재적 상황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불안이나 거세된 욕망이 채색된 내면 풍경에 가까운 듯하다. ‘폐업 직전’과 ‘늙은’이라는 이중적 수식이 암시하듯이 이 시에서 화자는 불안과 권태에 완전히 포획된 상태로 묘사된다. ‘늙어진 청진기’ ‘빛바랜 와이셔츠’, 느슨하게 풀려 있는 ‘하늘색 단추’, 그리고 미동도 하지 않는 ‘벽시계의 초침’과 ‘진한 하품 소리’……. 이것은 권태에 포획된 화자의 내면 상태를 드러내는 시적 장치들이다. 권태는 시간과 연관된다. 그것은 일상의 지루한 반복이라는 점에서 시간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인간에게서 변화의 감각을 빼앗음으로써 시간 자체를 마비시키기도 한다. “벽시계의 초침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권태는 무력함과 공허함을 불러일으킨다. “거식증인지 폭식증인지” 듣기도 전에 몸무게를 측정하고 “이미 잠든 사람을 깨워 수면제를 권”하는 등의 행위는 화자가 무력감과 공허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시는 이러한 무력감과 공허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다. “시詩든 것들”이라는 표현의 정확한 의미와 화자의 의도는 알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시詩’와 관련이 있고, 나아가 ‘바람’과의 연관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무력감과 공허가 하강의 이미지라면 화자에게 시詩는 상승의 이미지로 인식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시인에게 시詩는 일상적인 권태에서 삶을 구원하는 하나의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 래미Saint-Rémy 요양원에 갇힌 고흐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듯이, 화자에게 “노란 해바라기에 붓칠하며/ 노마드의 자판을 힘껏 두드리”(「生來美 요양원」)는 행위는 권태와 불안을 오가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살아있음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生來美, 진정한 삶은 아름다움을 통해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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