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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기억상실증 - 버려진 것들로 읽는 문학과 기억의 문화사(인사이트 문화총서 5)
- 임태훈
- 역사공간
- 2025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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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57076628 |
|---|---|
| 쪽수 | 39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이 책이 속한 분야
- 인문/역사 >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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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는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된다. 수도권 매립지는 포화 상태이고 연간 1억 7천만 톤의 폐기물이 쏟아진다. 이 위기 속에서도 한국 사회는 고요하다. 이 기이한 정적은 개인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거대한 ‘망각의 인프라’가 빚어낸 결과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청결 담론부터 쓰레기 종량제에 이르는 제도는, 쓰레기봉투를 묶는 순간 그에 얽힌 기억과 책임까지 함께 밀봉하도록 설계되었다. 저자는 이 집단적 무감각을 ‘쓰레기 기억상실증(Waste Amnesia)’으로 진단한다.
1장은 이 책의 핵심 개념인 ‘쓰레기 기억상실증’과 ‘망각의 인프라’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한다. ‘쓰레기 기억상실증’은 사물에 집적(集積)된 기억이 체계적으로 제거되는 사회·제도적 현상이다. 그 구조적 원인인 ‘망각의 인프라’는 기술, 사회, 문화가 얽혀 기억의 폐기를 관성적으로 만드는 복합 체계다. 이 장은 다양한 이론적 자원을 통해 망각이 의도적으로 생산되는 과정임을 논증하고, 이 시스템에 맞서는 대항 기억으로 문학의 역할을 제시한다. 1장에 위치하지만 마지막 순서로 읽어도 좋겠다. 이 장이 책 전체로 뻗어가는 개념들의 지도를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2장은 ‘쓰레기 기억상실증’의 상징적 기원인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탐사한다. 정연희의 『난지도』, 유재순의 『난지도 사람들』,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을 통해, 국가 시스템 외부에 버려진 듯 보였던 난지도가 실은 고유한 경제 생태계와 감각 질서를 구축한 대안적 도시 공간이었음을 증언한다. 또 한편으로 이 작품들은 모든 것이 쓰레기가 되는 우리 세계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보론 「63빌딩과 난지도」는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경제 성장의 상징인 63빌딩과 그 성장의 부산물을 감당한 쓰레기 섬 난지도의 극단적 대비를 통해, 김기영과 장선우의 영화가 공식 역사에 가려진 배제의 현실을 스크린에 어떻게 기록했는지 분석한다.
3장은 쓰레기 처리 제도의 변화가 소비 대중의 기억 문화를 재구성한 과정을 추적한다. 하성란의 소설을 통해, 1995년 종량제 시행과 아파트의 확산이 ‘종량제 봉투’라는 매개체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적 망각을 자동화했는지 살펴봤다. 보론 「반투명 종량제 봉투의 제도화 과정」은 현재의 봉투 디자인이 국가의 감시 필요성과 시민의 사생활 보호 요구 사이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기술적 타협의 산물임을 밝힌다.
4장은 생명을 폐기물로 전환하는 극단적 사례인 살처분 현장을 들여다본다. 강영숙, 김숨, 이상권의 작품을 통해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 방역 과정에서 수천만 생명이 폐기물로 분류되고 기억에서 삭제되는 과정의 폭력성과 그 안에 내재한 계급 격차를 질문한다.
5장은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특수청소를 통해 사회적 기억이 관리되는 방식을 살핀다. 김새별, 김완 등의 논픽션과 김민정, 염기원, 김인숙의 소설을 통해, 죽은 자의 빈집에 남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들의 삶과 죽음이 어떻게 기록되고 또 지워나가는지를 묻는다. 보론 「저장 공존자의 생활 우주」에서는 저장강박증 진단을 자본주의적 폐기 규범을 이탈한 이들을 통제하는 장치로 비판한다. 이 증상은 과도한 인지 노동에 저항하는 뇌의 신경학적 파업 전략으로 읽혀야 한다. 이들을 환자가 아닌 사물과 교감하는 ‘저장 공존자’로 바라볼 때, 그들의 공간은 공식 역사가 망각한 사물들의 시간을 보존하는 미시적 아카이브인 ‘생활 우주’로 새롭게 드러난다.
6장은 하수도가 도시의 보이지 않는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을 탐색한다.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부터 편혜영의 「맨홀」에 이르기까지, 하수도라는 망각의 인프라가 식민지 시대의 노동 착취부터 현대 도시의 소외된 생명에 이르기까지 기억을 통제하고 폭력을 은폐한 역사를 추적한다. 이어 홍재희의 에세이를 통해 그 단방향의 흐름을 거슬러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는 응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마지막 닫는 글에선 동시대의 첨예한 정치적 현실과 마주한다. 분단 체제가 수십 년간 생산해 온 ‘쓰레기 풍선’이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안보 문제로 귀결된 현실을 통해, 결국 무엇을 쓰레기로 규정하고 폐기할 것인가의 선택이 한 사회의 민주적 가치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정치의 문제임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가장 정교한 망각의 시스템이야말로 가장 집요한 기억을 남긴다는 결론에 이른다. 억압된 기억은 처리되지 못한 폐기물처럼, 매립지의 침출수처럼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귀환한다. 공식 기록이 은폐한 진실, 폐기물에 얽힌 서사, 보이지 않는 노동의 고통이 직매립 패러다임의 시대가 끝내 제거하지 못한 기억의 끈질긴 점성이다. 이 책은 그 귀환하는 기억을 기록하고 분석해서 망각의 인프라를 해부한다. 이 과정은 잊힌 것들을 위한 단단한 기억의 거처를 짓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