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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88984947108 |
|---|---|
| 쪽수 | 616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양장 |
이 책이 속한 분야
- 인문/역사 > 한국역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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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론,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오랫동안 재이론은 전근대 사회의 ‘미신(迷信)’으로 치부되었다.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재이 발생의 원인을 ‘과학적’(=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생겨난 자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재이론을 일종의 ‘우상(偶像)’처럼 낳았다고 설명했다. 재이론의 역사적 소멸도 19세기 말 서양 근대과학의 전래와 확산에 따른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19세기 말 서양으로부터 근대과학이 유입되어 ‘사상의 대체’가 일어났고, 이로써 전통 재이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는 그럴 것도 같지만, 이 책은 이러한 종래의 설명을 거부한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일월식 때 행하던 구식례(救食禮)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일월식이 언제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면 의식(儀式)을 미리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계산을 통한 일월식 예측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일월식 재이론이 고수되었다는 뜻이다. 일월식이 규칙적인 자연 현상이고 계산을 통해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는데도 구식례를 거행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재이 발생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던 시절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재이론을 만들었다는 설명은 과연 유효한가. 재이[자연]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재이론의 역사적 존치는 필수적이고 절대적이었을까.
나아가 전통 재이론의 해체와 소멸을 한국 과학사상사의 발전이나 진보로 보지도 않는다. 오랫동안 동아시아 과학담론을 지배했던 소위 니덤의 목적론적 과학사 인식은 전통 자연관의 유지와 존속을 정체 내지 쇠퇴로, 서양 근대과학의 적극적인 수용과 이를 통한 전통 자연관의 부정과 극복을 발전 내지 진보로 보았다. 그러나 이 책의 관심은 이러한 거대 담론이 아니다. ‘재이론이 왜 그토록 조선 사회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토록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했던 재이론이 언제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을까’라는 소박한 질문에 답을 찾는 게 이 책의 주된 목표이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재이론을 이론과 기능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전략을 택했다. 재이론의 내적인 이론체계의 변화와 외적인 정치적 기능의 변천을 정합적으로 구조화하는 방법이다. 내적인 이론체계의 분석에서는 천인감응론(天人感應論)이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주재천(主宰天)・이법천(理法天) 등의 개념이, 그리고 외적인 정치적 기능의 분석에서는 구언(求言)과 응지상소(應旨上疏), 언론 활동 등의 영역이 주요 검토 대상이 된다.
양자의 관계를 보면, 재이론은 이론의 영역보다는 기능의 영역이 변화를 추동한 측면이 더 컸다. 천인감응에 대한 강한 천착은 재이론에 대한 강한 반발로 나타났고, 재이론의 이론적 정비는 결국 재이론의 안정적인 활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체・소멸에서도 이론의 균열보다는 기능의 쇠퇴와 형해화가 더 큰 요인이었다.
재이론이 역사적으로 실존할 수 있었던 것은 초월적인 믿음보다는 현실에서의 필요가 더 큰 동기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지식인이 품었던 고민은 견강부회하지 않는 재이론 활용이었다. 그들은 적지 않은 허점을 확인했으면서도 재이론을 부정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이를 보완하고 재편해 나갔다. 이 점에서 재이론이 오랫동안 존속하며 정치・사상적으로 변화・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미신적 또는 종교적 믿음의 발로(發露)여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담당했던 역할과 기능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요 내용
이 책은 동중서(董仲舒)에서 주희(朱熹)까지 중국 고중세 재이론의 전개를 이론과 기능을 중심으로 분석한 뒤, 고려중기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한국에서 재이론이 어떻게 수용되고 변화해 갔는지 추적한다.
동아시아에서 재이론을 정치사상으로 체계화한 인물은 전한(前漢)의 동중서이다. 동중서는 종래의 천견설과 천인감응론을 결합해 재이론을 이념적으로는 군주의 정치권력과 통치를 정당화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이것의 무한한 팽창을 예방하고 억제하는 양면적 성격의 정치사상으로 체계화하였다. 그런데 후한(後漢) 이후 재이론은 예언·참위화의 변질을 겪었고, 당(唐) 대에는 예언・참위적 재이론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북송(北宋)의 유학자는 재이론을 폐기하지 않고 천리(天理)에 부합하는 강상윤리의 실천을 재이론의 중심에 놓으며 이론적으로 재편했다. 북송 대 이후 많은 지식인의 고민은 재이를 견강부회(牽强附會)하지 않으면서도 군주에게 경계(警戒)하는 마음을 심어줄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이에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재이를 군주의 심성수양 문제로 귀결시키며 재이론의 역사적 수명을 연장시켰다. 이로써 주자학에서 재이론은 도학정치(道學政治)의 우주론적 근거로 기능하게 되었다.
조선 세조 대의 패권정치에 반발하며 등장한 15세기 후반의 사림은 도학정치(道學政治)의 구현을 염원했고, 이것의 구현을 위한 정치・사상적 기제로서 재이론에 주목했다. 이른바 주자학적 재이론의 대두였다. 재이론은 안전한 언론 활동을 보장해 주고, 도학정치가 왜 필요한지, 또 이것을 조선 사회에 왜 구현해야 하는지 우주론적으로 정당화해 주었다. 주자학의 학문・사유체계 내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정연한 논리로 펼칠 수 있었고, 군주에게 심성수양(心性修養)과 성학에 대한 탐구를 강도 높게 요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제도 개혁과 민생 문제를 제기하는 효과적인 언로(言路)로 기능했다. 15~16세기 재이론은 유용한 정치・사상적 기제로 활용되었다.
17세기 이후 재이론은 정치세력의 분화 속에서 정략적으로 이용되었다. 정치세력이 동・서로 분화하고, 언론 활동이 붕당에 따라 나뉘면서 재이론이 그 근거 논리로 복무하게 된 것이다. 이에 재이론의 정략적 활용을 경계하면서 재이론의 본의를 되새기고자 하는 학술적 노력 속에서 「역대요성록(歷代妖星錄)」, 「역대수성편람(歷代修省便覽)」,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와 같은 재이 문헌이 편찬되었다. 그리고 역학 연구의 심화를 배경으로 재이론이 기수설(氣數說) 및 역학과 결합하면서 이론적 체계성이 한층 강화되었다.
18세기 중반 재이론은 정치·사상적으로 중대한 변화를 맞았다. 하나는 서양 과학지식의 유입으로 전통적 재이론의 이론체계가 흔들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이론이 정략적으로 남용되며 하나의 관습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재이론이 담당하던 정치·도덕적 기능은 쉽게 폐기되지 않았다. 이익·홍대용·홍석주·이규경 등의 지식인은 “자연은 인사와 무관하다”는 사실과 “군주는 재이를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모색했다. 하지만 과도기적 시기를 맞아 재이론은 이론적 균열에 정치적 관습화가 더해지면서 그 본의는 퇴색되고, 19세기 후반 유명무실한 ‘전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의 재이론은 이론체계의 균열에 정치적 기능의 상실이 더해지면서 종언(終焉)을 맞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