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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V 성경 해설 주석〉에 대하여
약어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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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그동안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은 동일 인물이고 세스바살은 공식적인 이름이며 스룹바벨은 개인적 이름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기대할 법하듯이(참고. 단 1:6-7) 이런 이름들의 의미가 설명된 적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두 이름 모두 바벨론식 이름인 것 같다. 두 이름을 갖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예컨대, 다니엘은 히브리 이름과 바벨론 이름을 모두 갖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닷드내가 다리오 왕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장로들(스 5:9-10)과 스룹바벨(5:1-5)이 세스바살의 작업을 기술할 때 세스바살을 이전에 활동적이었던 인물이자 스룹바벨과 분명히 구별되는 인물로 묘사하는 어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5:14-16).
∷ 34쪽, "에스라서 서론" 중에서
성전 기초의 필요성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렸다]”(3:5)는 언급과 더불어 건축을 위한 물질적 예물의 기부(7절)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5절에서 “자원 예물을 바[쳤다]”(새번역)는 단어는 섬김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삿 5:2, 9; 느 11:2)이나 성전 건축을 위해 기꺼이 자기 자원을 바치는 것 (스 1:6; 2:68)을 묘사하는데, 현재의 맥락에서는 후자인 듯하다. 돌아오는 자들은 둘 다 행한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들 삶의 근거지를 떠나고 다시 한번 물질적으로 기여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출발을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과거 그들 선조의 행동과 일맥상통한다. 모세 시대에 성막을 위해 진심으로 예물을 바쳤던 사람들(출 35:20-29)이나 첫째 성전을 위해 기쁘게 예물을 드렸던 다윗과 다른 이들(대상 29:1-9)과 마찬가지다.
∷ 81쪽, "에스라 3:6b-7 주석" 중에서
이 마지막 대목에서 에스라는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여 그의 사명을 완수한다(31-32절, 참고. 7:13). 첫째 달의 “12일”에 아하와에서 출발한 것은 7:9에 나오는 “첫째 달 초하루”와 그 날짜가 다르다. 실제적으로 이 차이는 아하와에서 처음 삼 일 간의 캠프(8:15), 레위인들을 모으는 일(15-20절), 금식의 선포(21-23절)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구별하는 일(24-30절)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날짜들은 신학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 175쪽 "에스라 8:31-34 주석" 중에서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언약과 영적 정점의 문학적 및 신학적 중심은 첫 율법 낭독(8:1-8, 18) 다음에 나오는 레위인들의 위대한 구속-역사적 기도이다(느 9:5-37). 그 낭독은 극적인 영향을 미쳐서 회개, 더 많은 율법 낭독 그리고 예배의 증거를 낳게 된다(9:1-5a). 영적 갱신의 움직임이 그 기도를 낳고, 그 기도의 주제들은 에스라(스 9:6-15)와 느헤미야(느 1:5-11)의 참회 기도를 이어간다. 창조부터 현 시점까지를 망라하는 그 기도는 구약의 나머지 부분과의 거의 무한한 연관성과 함께 이스라엘의 이야기 전체에 대한 요약과 신학적 해석을 제공한다.
∷ 226쪽, "느헤미야서 서론" 중에서
공동체의 방어를 수립하는 지혜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결여를 암시한 적은 전혀 없다. 그들은 주님이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분임을 기억하는 가운데, 그분이 언약에 신실하시고(1:5; 9:32; 단 9:4) 과거에 그랬듯이 현재도 그분의 백성을 방어하실 것임도 기억한다. 주님의 암묵적(implied) 임재는 그들 역사의 이전 시기에 그랬듯이(참고. 출 14:13; 민 14:9; 신 3:22; 7:21; 20:3-4; 수 10:25) 사람의 두려움을 내쫓을 뿐 아니라 공동체로 하여금 그들에게 가장 귀한 가족을 위해 싸우도록 기운을 북돋우기도 한다(느 4:14, 참고. 삼하 10:12).
∷ 297쪽, “느헤미야 4:10-14 주석” 중에서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은 성전 예배를 유지하고 성전 담당 인사를 후원하겠다는 새로운 헌신으로 32-39a절을 요약해준다. 그렇게 하지 못한 실패는 유배시대 이후 선지자들의 글에 거듭해서 나오는 주제이다. 학개와 스가랴는 하나님의 집의 재건을 촉구하고 그 집을 무시할 때의 위험을 말한다(스 6:14; 학 1:2-6; 2:17-19; 슥 1:16-17; 4:8-9; 8:9-13). 말라기를 통해 주님은 “창고에 들[이는]” 십일조를 가져오지 않는 모습을 정죄하신다(말 3:8-10). 나중에 느헤미야는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가 무시되는 모습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고 묻게 될 것이다(느 13:10-14).
∷ 407쪽, “느헤미야 10:39b 주석” 중에서
이 교차 구조는 이 이야기의 중요한 시점에 배치된 일련의 향연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와스디가 이 책의 첫 두 잔치가 열리는 동안 스스로를 과시하길 거부함으로써 또 다른 잔치가 열리고 에스더가 그녀의 자리에 앉도록 허용된다(2:18). 에스더의 둘째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하만의 음모가 폭로되는 한편, 모르드개의 승진이 잔치를 수반하게 된다(8:17). 끝으로,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의 행복한 결말은 유다인의 구출이 부림절로 기념되는 장면이다. 본서의 촘촘한 구조가 그 주된 주제를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한다.
∷ 476쪽, “에스더 서론” 중에서
아마도 이 때문에 에스더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드러내기 전에 두 차례의 잔치를 여는 것 같다. 그녀는 남편이 음식과 포도주를 좋아하는 것을 이용하고 궁금증을 채워주지 않은 채 그것을 높이고 있다. 7장에서 에스더가 드디어 자신의 요청을 밝힐 때가 되면 왕은 이미 세 번이나 그것을 맹세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녀는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대신 왕의 바람에 양보하는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에스더가 하만에게 참석을 요청한 것도 그녀 편에서의 감탄할 만한 명민함을 보여준다. 그녀는 하만을 계속 지켜보면서 자기가 떠난 후 그가 왕을 조종하는 것을 방지하길 원하는 듯하다. 게다가 그녀가 하만 몰래 그를 비난한다면, 그는 교묘한 말로 곤경을 모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7장과 함께 읽으면 에스더가 잔치를 두 번 요청한 것은 계산된 계획임을 알 수 있다.
∷ 537쪽, “에스더 3:3-8 주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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