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2022 개정 교육개정책을 펴내며: 역사 속 라이벌의 선택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제1부. 삼국시대, 운명을 건 대결
01. 김유신 vs 계백 — 백제 최후의 날, 화랑과 결사대의 숙명적 맞대결
02. 김춘추 vs 연개소문 — 신라 태종무열왕과 고구려 막강 권력자의 천하 쟁탈전
03. 진흥왕 vs 성왕 — 한강 유역을 둘러싼 패권 경쟁
04. 원효 vs 의상 — 한국 불교사의 라이벌
제2부. 고려시대, 외침의 위기와 라이벌의 대응
05. 왕건 vs 견훤 vs 궁예 — 후삼국을 지배한 세 영웅의 패권 쟁탈기
06. 고려 vs 거란 전쟁— 동북아 패권을 건 세 차례 전쟁의 승부수
07. 김부식 vs 묘청 — 사대주의와 자주노선, 고려 중기를 뒤흔든 이념 대립
08. 무신정권의 라이벌 — 칼로 세운 왕조, 무신들의 치열한 권력 게임
09. 고려 vs 몽골 — 40년 항쟁, 강화도에서 펼쳐진 자존심 대결
10. 충렬왕 vs 충선왕 vs 충숙왕 — 원나라 그늘 속 부자 3대의 엇갈린 선택
제3부. 조선시대, 명분과 실리의 각축장
조선 초기(태조~성종)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시대
11. 최영 vs 이성계 — 고려 충신과 조선 개국 왕, 역성혁명의 마지막 승부
12. 이방원 vs 정도전 — 태종과 조선의 설계자, 피할 수 없는 대결
13. 태종 vs 양녕 vs 충녕 — 아버지와 두 아들, 왕위를 둘러싼 가족의 비극
14. 수양대군 vs 김종서 — 계유정난의 주역과 충신, 권력 쟁탈의 혈투
15. 성삼문 vs 신숙주 — 죽음을 택한 충신과 현실을 택한 지식인의 엇갈린 운명
조선 중기(연산군~현종) 권력과 이념의 충돌
16. 중종 vs 조광조 — 권력을 찾으려는 왕과 이상주의 개혁가의 꿈과 좌절
17. 문정왕후 vs 경빈 박씨 — 중종의 두 여인, 궁중의 암투
18. 이순신 vs 원균 — 명량과 칠천량, 두 제독의 엇갈린 운명
19. 광해군 vs 인목대비 — 왕과 계모, 정통성을 둘러싼 악연
20. 김상헌 vs 최명길 — 병자호란, 조선 외교 노선을 가른 척화파와 주화파
21. 인조 vs 소현세자, 효종 vs 청나라 — 병자호란이 남긴 왕실의 분열과 북벌의 꿈
조선 후기(숙종~순종) 당쟁과 개화의 소용돌이
22. 인현왕후 vs 장희빈 — 숙종의 두 여인, 조선 후기를 뒤흔든 환국
23. 서인 vs 남인 — 조선 후기 양대 정파의 치열한 권력 투쟁
24. 경종 vs 영조 — 이복형제의 엇갈린 운명과 연잉군의 역전 드라마
25. 영조 vs 사도세자 — 아버지와 아들, 뒤주 속에 숨겨진 비극의 진실
26. 정조 vs 암살자들 — 계속된 암살의 위기를 넘어선 개혁 군주
27. 김홍도 vs 신윤복 — 조선 후기 두 천재 화가의 예술혼 대결
28. 조선 3대 도적 열전 —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이 보여준 민중의 꿈과 저항
제4부. 인물을 넘어선 또 다른 라이벌
29. 춘향전 vs 흥부전 — 사랑과 가족, 조선 후기 두 고전이 그려낸 이상향의 대결
30. 경복궁 vs 창덕궁 — 조선왕조 정궁의 자리를 놓고 벌인 궁궐 이야기
31. 통신사 vs 연행사 — 조선의 두 외교사절단이 전한 세계관의 충돌과 조화
[본 문]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역사 속 라이벌의 모습은 오늘날 정치가, 기업인, 예술인들의 삶에서도 그대로 되살아난다. 이 책에 담긴 대립의 장면 속에서 우리는 갈등과 경쟁을 다루는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것이고,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었고, 어떤 이는 소통과 포용으로 새로운 흐름을 조성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경쟁을 성장의 연료로 삼아 자기만의 길을 완성했다. 역사 속 인물들이 남긴 선택과 그 결과를 함께 돌아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로 삼길 바란다.
7p, ‘역사 속 라이벌의 선택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중에서
역사의 분기점이 된 만남
김춘추와 연개소문. 두 사람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었다. 642년 겨울의 만남은 신라와 고구려 동맹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는 것으로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춘추가 성공시킨 나당연합은 삼국 중 가장 후발 주자였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혈혈단신으로 적국의 최고 지도자를 찾아가 외교적 교섭을 시도했던 김춘추의 노력이 역사적 변곡점으로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사람에 대한 후대의 역사적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조선 시대 유교 관점에서 김춘추는 ‘사대 외교를 훌륭히 수행한 인물’로 높이 평가받는다. 반면 연개소문은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33p, ‘김춘추 vs 연개소문’ 신라 태종무열왕과 고구려 막강 권력자의 천하 쟁탈전 중에서
이순신의 투옥과 원균의 기회
정유재란이 시작되면서 이순신은 감옥에 갇히게 되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일본군이 이순신 장군을 그렇게나 무서워했는데, 왜 그 중요한 순간에 왕은 이순신을 감옥에 보낸 것일까?
일본군의 전략 중 가장 큰 목표는 이순신을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존재 때문에 곡창 지대인 호남을 차지하지 못했고, 서해안 뱃길을 통해 보급로를 만들려는 계획도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중간첩 요시라(고니시 유키나가의 통역관)를 이용해 조선 조정에 일본군 출정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리는 계략을 꾸몄다. 선조는 그 정보에 속아 이순신에게 출정 명령을 내렸으나, 이순신은 일본의 계략임을 파악하고 출정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교묘하게 몇 척의 배를 출동시켰고, 결국 이순신은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1597년 2월 투옥되었다. 일각에서는 그를 처형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정탁 등의 구명 노력 끝에 4월 1일 가까스로 감옥에서 풀려났다. 이후 이순신은 백의(흰옷)를 입고 전장으로 나서는 백의종군의 길을 택했다. 오늘날 행적을 따라 걷는 ‘이순신 백의종군길’이 남아 있다.
이순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라이벌 원균은 무엇을 했을까? 그는 이순신을 대신하여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다. 원균 입장에서는 드디어 라이벌이순신을 제치고 해군의 총사령관 자리를 맡게 된 셈이었다.
216~217p, ‘이순신 vs 원균’ 명량과 칠천량, 두 제독의 엇갈린 운명 중에서
사랑과 권력, 두 여인의 운명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이야기는 단순한 두 여인의 질투 이야기가 아니다. 그 배후에는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갈등, 왕권과 신권의 대립, 후계자를 둘러싼 권력 투쟁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인현왕후는 명문가 출신으로서 품격과 덕을 갖춘 전형적인 왕비상이었지만, 후사를 낳지 못한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반면 장희빈은 미천한 신분에서 출발했으나 숙종의 사랑을 받고 왕자를 낳음으로써 일시적으로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두 여인의 결말은 비극적이었다. 1701년, 인현왕후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장희빈은 사약을 받았다. 권력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아무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 실제 역사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냉정하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이야기는, 권력의 중심에 선 순간 사랑조차 당파의 이익으로 바뀌는 정치의 본질을 드러낸다.
270p, ‘인형왕후 vs 장희빈' 숙종의 두 여인, 조선 후기를 뒤흔든 환국 중에서
원조 한류, 조선통신사
휴가철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에 나서지만, 조선 시대에는 개인적으로 해외에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다만 공무로 일본이나 중국에 다녀올 수는 있었다. 이때 일본으로 가는 사절단을 통신사(通信使), 명나라로 가는 사행단은 사은사(謝恩使)라 불렀으며, 명나라가 멸망하고 중원에 청나라가 들어선 뒤에는 연경(현재 베이징)으로 향하는 사절단을 통틀어 연행사(燕行使)라 불렀다.
통신사와 연행사는 파견된 국가에 따라 서로 다른 색깔을 보였다. 두 나라를 다녀온 사신들은 각각 어떤 경험을 했을까. 일본 통신사를 다녀온 후에 쓴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와 청나라 연행사를 다녀온 후에 쓴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살펴보자. 일본 열도에 파견된 사신에게 붙은 통신사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에도 존재한 것으로 보이나,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통신사라는 명칭만을 사용하지 않고 회례사(回禮使), 보빙사(報聘使), 경차관(敬差官) 등 여러 명칭을 함께 사용하였다. 대개 3인의 대표단 즉 정사 1인, 부사 1인, 서장관 1인, 그리고 이들을 수행하는 관리와 화원, 말을 끄는 사람까지 거의 400~500명 가까운 사절단이 구성되었다. 당시 조선통신사의 시를 받으려는 일본인들의 줄이 이어지는 등 이들은 현재의 한류(韓流) 문화 전파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대략 400~500명의 통신사 일행을 맞이하는 데 1,400여 척의 배와 1만여 명의 인원이 일본 측에서 동원되고 접대비는 한 번(藩)의 1년 경비를 소비할 정도로 성대했다. 그들은 서울을 출발하여 문경새재, 대구 등을 지나 부산에 도착해 배를 타고 대마도, 이끼섬 등을 거쳐 이동했다. 그렇게 일본 본토에 도착한 후 해로와 육로로 교토까지 도착하는 데 거의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366~377p, '통신사 vs 연행사' 조선의 두 외교사절단이 전한 세계관의 충돌과 조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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