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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64934102 |
|---|---|
| 쪽수 | 120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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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세상과 소통하지 않은 채 산촌(山村)에서 농사를 짓는 시인에게도 내면의 돌파구는 필요하게 마련입니다. 이 작업을 통하여 시인은 세상과 소통합니다. 그는 적당히 마른 체구, 꾸미지 않은 의상, 자분자분한 말씨, 쉽게 수긍하는 눈빛, 수줍은 듯 반갑게 잡은 두 손에서 60대의 지순한 소년을 만납니다. 그의 서늘한 눈망울에 이미 마음을 앗기었던 2005년에 첫 시집 『별은 어디에 있을까』의 작품을 감상하며 돈오(頓悟)의 감동으로 행복하였습니다.
솟대 끝에 앉은 기러기
하늘을 톡 쪼니
수천의 대나무 갈라지는 소리
-1시집 「겨울 하늘」 일부
무릎을 칠 만큼 시원한 작품입니다. 사실 산촌에서 농사를 짓는 시인이 자기 고장의 풍경을 노래하는 것이나, 농사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형상화하는 일들은 당연한 귀결일 터입니다.
#2 - 공감각적 이미지, 그리고 비유와 상징을 살려낸 작품의 훈향(薰香)에 잠겨 있다가 2009년에 2시집 『그녀와 허수아비』의 작품을 감상하였습니다. 살아있는 그림처럼 자연스럽게 형상화한 작품은 그야말로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습니다.
옛 이야기로 떠있는
서리서리 새벽별 밟아
곶감 석 접 읍내 장에 내고 온
가난한 마누라의 입술에
곱게 당분이 피리
그때 내 얼굴도 환해지리
-2시집 「곶감」 일부
시인과 ‘가난한 마누라’는 충북 영동군의 지역 특산물인 감을 따고 잘 깎아서 곶감을 만듭니다. 주렁주렁 매달아 말리면 하얀 가루가 감 표면에 배어나옵니다. 마르면서 감의 살은 옅은 회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하고, 좀 더 말리면 햇빛과 같은 황갈색으로 변합니다. 시인의 아내는 이렇게 만든 곶감 석 접을 읍내 장에 가서 팝니다. 이와 같은 스토리에서도 순수한 정감을 공유하게 합니다. 절묘한 표현으로 잔잔한 감동을 생성합니다.
#3 - 첫 시집에 담겨 있는 ‘맑은 바람에 실린 서정과 시인의 지향’도 그대로이고, 두 번째 시집에 담겨 있는 ‘자연동화와 담결(淡潔)한 시 정신’도 거의 그대로이지만, 세상에 대한 품격 있는 비판과 역사의식이 오롯하였습니다. 순수한 서정을 작품으로 빚던 시인이 비판의식과 겨레공동체 의식을 작품으로 빚어내기도 합니다.
저기 저 낮은 자리
이름도 정다운 풀들
잎새마다 눈물의 별 하나씩 달고
보고픈 이름 부르고 있구나
- 제3시집 「노근리에서」 일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는 북한의 침략으로 발발한 6.25전쟁의 와중에서 비롯된 불행한 사건의 현장입니다. 정주일 시인은 이 엄청난 사건에서 서사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실 공방이나 책임 소재 등에는 오불관언(吾不關焉)입니다. 다만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정서적 동질성을 비유와 상징으로 그려냅니다.
#4 - 정주일 시인은 〈세상이 갑작스럽게 변해가고〉 있음을 체감합니다. 농사를 짓다 보면 온도계의 눈금처럼 변화무상한 과정을 확인하지만, 절대로 주눅들지 않는 시심을 지킵니다.
먼 강에까지 가서 물을 길어와
마른 땅에 부어주며 온갖 정성을 다했다
죽은 듯한 나무에 생기가 돌며
새눈이 봉긋하게 부풀어 올랐다
-4시집 「안개 마을 3」 일부
작품 「안개마을 1」의 절망적 현실, 그리고 「안개마을 2」의 과거 회상적 내면 의식, 그 과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인의 지향은 농심(農心)의 황금꽃을 피우고, 그에 따라 새들이 찾아와 노래하며, 서서히 안개가 마을을 감싸주는 시심을 「안개마을 3」에 담아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