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프롤로그
추천사_ 우원식/ 대한민국 국회의장
김부겸/ 제47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PART 1_ 이상한 선거운동
가장 낮은 자세로 동네를 걷다
PART 2_ 좌충우돌 초선일지
행정의 벽과 씨름하다
PART 3_ 끈기와 배짱으로 쌓아 올린 4년
작은 승리와 좌절의 반복
PART 4_ 초선이 발견한 지방 정치의 가능성
미래를 설계하다
PART 5_ 정치 백수의 삶
삶의 무게를 털다
PART 6_ 정치 1번지 여의도 입성
아빠 괜찮아?
에필로그
주민이 본 박정권
[본 문]
학생운동을 하며 경찰서와 구치소를 드나들던 시절, 아버지는 말없이 논밭에 나가셨다. 때론 생각과 이념이 다른 아들의 모습이 못마땅하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미안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배운 건 분명했다. 세상은 누군가의 침묵 위에 굴러가선 안 된다는 것. 그 마음이 결국 지금의 나를 이 자리로 데려왔다.
이제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금 마음속에 갈무리한다. 남의 밥에 숟가락을 얹지 않는 결백함을 넘어, 누구도 억울하게 자신의 밥상을 뺏기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것이 내가 선택한 더 넓은 의미의 ‘스스로 서는 법’이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할지라도, 내 신념에 따라 묵묵히 길을 내는 이 행위 자체가 나를 진정으로 자립하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
-머리말
정치는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사람과의 신뢰와 끈기에서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주민과 눈을 맞추며 주민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인식하고, 예산 낭비 없이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발로 뛰는 경험이야말로 정치 초년생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몸소 체감했다.
-p. 43, ‘작은 해결, 소중한 깨달음: 구의원의 땀과 첫 신뢰’ 중에서
골목길 어귀에 위태롭고 생뚱맞게 서있던 전봇대 하나. 수십 년 전에는 그 자리가 필요했겠지만, 세월이 흐르고 주민들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면서 그 존재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위험이 되었다. 좁은 길을 지나는 아이들과 보행자들은 차량과 전봇대를 피해 아슬아슬하게 몸을 옮겨야 했고, 걸으면서 잠깐 시선을 놓치면 부딪치는 위험도 있다.
그냥 보기엔 작은 전봇대 하나지만 오랜 시간 반복된 민원은 해결이 쉽게 되질 않았다. 이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까지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단순해 보이는 전봇대 하나를 옮기는 일에도 구청 여러 부서와 한국전력공사의 복잡한 협의 과정이 필요했다.
교통과와 건설과를 오가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예산과 책임 소재를 조율해야 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예산이 없어서, 한전과의 협조가 어려워서, 옮길 공간이 없어서, 오히려 옮기는 게 더 위험하다는 답변까지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안전과 주민들의 삶의 불편을 해소하겠다는 진심이 있었기에 끈질긴 설득과 협조 요청으로 작은 전봇대 하나를 옮길 수 있었다. 단순히 전봇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소통과 노력, 그리고 주민 안전에 대한 진심이 담겨있다.
‘전봇대를 옮기는 구의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화려한 정책이나 거대한 사업이 아닌, 동네 구석구석의 작은 불편함을 인지하고 해결하려 했던 것, 그것이 진정한 주민자치이고 주민 생활 정치라 믿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건, 정치란 단순히 법과 예산을 다루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과 사람 간 설득이 핵심이라는 점이었다.
-p. 65, ‘전봇대 하나 옮기기: 안전과 진심을 옮기다’ 중에서
현장을 찾아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던 곳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들었다. 왕복 4차로와 2차로가 교차하는, 아파트단지 바로 옆의 그 위험했던 삼거리에 회전 교차로가 설치되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을까. 민원인분의 연락을 받고 현장을 찾았을 때, 그곳은 그야말로 ‘위험의 교차로’였다. 신호등이 없어 교통 혼란이 극심했고, 횡단보도는 있으나 마나 제 역할을 못 했다. 특히 우회전 시 오른쪽 시야가 불법주정차 차량에 완전히 가려져 사고 위험이 항상 존재했다. 밤샘 불법주차는 새벽에도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주범이다. 주민들의 불안과 분노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담당 부서에 협조를 구하고 끈질기게 해결책을 모색한 지 1년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구청에서 이 교차로를 회전 교차로로 변경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현장의 위험을 외면하지 않고 심도 있게 검토하고 협조해 준 모든 관계자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 작은 결정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안전한 일상을 지켜줄 것이다. 의정 활동의 보람이 이럴 때 가장 크게 느껴진다.
-p. 139, ‘위험했던 삼거리에 희망이 돌다: 위험한 교차로를 안전한 회전 교차로로’ 중에서
초선 시절, 작고 미시적인 문제에 매몰되었던 그것과 달리, 국회의장실에서의 시간은 더 큰 그림을 보는 시야와 무거운 책임감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지방 소멸, 기후 위기 같은 거대 담론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법과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하는지,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배우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은 지방의 현실을 아는 내가 중앙 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낙선 후 방황의 시간, 생계 현장에서 흘렸던 땀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 경험들이 나를 더 겸손하고 현실적인 정책 비서관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다.
-p. 181, ‘지방 정치와 중앙 정치의 교차로’ 중에서
본회의장 앞을 팔과 팔을 끼고 인간 바리게이트로 막았다. 결사 항전이었다.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복도에는 소파와 책상, 진열장 등 무거워 보이는 모든 집기를 쌓아 올렸다.
“절대 뚫리면 안 된다!”
우리는 맨몸으로 계엄군에 맞서야 했다. 사전 준비도, 훈련도 되지 않은 민간인 그 자체였지만, 일사불란했다. “여기가 뚫린다! 모여주세요!”라는 외침에 누구의 지시 없이도 곧장 달려가 온몸으로 필사적인 저항을 이어갔다.
우리는 두려움과 추위 속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비록 계엄군의 본청 진입을 막지 못했지만, 본회의장 사수를 통해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의결을 추진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마침내, 새벽 1시경에 ‘계엄 해제 결의안’은 의결되었다.
하지만 2차 계엄의 가능성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기에, 국회의원들은 돌아가면서 본회의장 앞을 지키고 있었고, 의장 비서실과 의원 보좌진들도 비상대기로 이후 며칠 밤을 교대로 새면서 국회와 대한민국을 지키는 투쟁은 계속되었다.
국회 밖에서는 수많은 시민이 함께하고 있었다.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고,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보여준 연대와 절박함 덕분에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 밤, 훈련되지 않았던 우리는 용감했고, 위대했다.
-p. 190, ‘12. 3. 계염의 밤, 나는 그곳에 있었다’ 중에서
‘중앙의 문법’이 아닌 ‘현장의 언어’로 말하는 지방정치인이 되기로 했다. 내가 그리는 지방 정치의 지향점은 명확하다.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집 앞의 가로등, 우리 아이의 등굣길 안전, 무너진 골목 상권의 회복에 있어야 한다.
중앙 정치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대구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쌓아 시민들이 “내 삶이 정치를 통해 나아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p. 198, ‘현장이 답이다: 시민의 곁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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