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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99577701 |
|---|---|
| 쪽수 | 368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이 책이 속한 분야
- 예술 >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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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자동기술적으로 드로잉한 이혁발만의 선 맛
사람 얼굴이 다 다르듯이, 글씨체도 다 다르다. 글씨만 봐도 그 사람이 드러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림의 선 하나에도 그 사람의 얼굴이 있는 것이다. 선의 강약(힘이 들어갔는가 적게 줬는가 등)이나 굵기, 선의 속도감, 제스쳐 등이 만들어내는 ‘선’의 얼굴은 그 사람만의 얼굴을 가진다. 까탈스러움이나 신경질적 같은 성질머리도 다 들어가게 된다.
이중섭의 선에는 이중섭이 있듯이, 이 판화집에는 이혁발의 ‘선 맛’이 있다. 다른 사람이 따라 하려고 해도 따라 할 수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자신만의 맛이 있다는 것이다. 이혁발의 성질머리와 이혁발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계가 함께 녹아 들어가 있는 이 선들에는 현재(작품이 나온 당시)의 이혁발의 얼굴이 있다는 것이다.
이중섭의 은박지 드로잉은 패인 깊이만큼의 시대의 아픔이 들어있고, 그 아픔을 견디는 단단함과 강인함이 있다. 그것은 가족이 다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희망도 곳곳에 꾹꾹 담겨져 있다.
이혁발의 선은 이중섭보다 훨씬 가볍고 속도감 있으나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가졌다. 그 곡선들은 보들보들하고 야몽야몽하여 감각의 왕국으로 이동시킨다. 이중섭의 형태는 아이, 가재 등 알아볼 수 있는 형체를 추상화한 선들이고 이혁발은 정확히 무엇이라 칭할 수 없는, 무엇에서 따온 그런 형태가 아니다. 무심하게 아무 계획없이 손가는대로 이뤄진 무의식 드로잉이디. 그러므로 이 덩어리들은 관자의 생각에 따라 각자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그 상상, 이미지화를 통해 이혁발의 형체들은 살아 꿈틀거리듯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육감도’라는 이혁발만의 세계가 풀어내는 예술
예술작품 한 점이 나온다는 것은 나오는 그때까지 그 작가의 전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의미한다. 작가가 이제껏 경험한 것, 작가가 생각하는 세계관, 그래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가 작품 안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작품은 ‘하나의 세계’가 된다.
이 작품에 펼쳐진 이혁발의 드로잉 세계는 1995년부터 들고나온 ‘육감도’라는 세계의 드러냄이다.
사람 모두의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청아한 노래가 되고
그 노래가 한여름 낮의 아이스크림처럼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사랑으로 녹아 내려
살랑살랑 솜사탕이 되고
몽실몽실 뭉게구름이 되어
온 세상이 달콤한 흰 눈으로 쌓이는 공간
또한 곤충의 더듬이 같은 예민함으로 풍성한 감각의 바다에 흠뻑 빠지되
자아가 살아있는 주체적 삶을 영위하는 공간
그리하여 삶 자체가 예술같이 아름다우며
행복이 철철 넘쳐나는 그런 공간
육감도
(2018)
이 370장의 드로잉 세계는 이런 육감도라는 공간에서 풍성한 감각을 느끼며 욕망하되 넘치지 않으며 모두 다 어울렁더울렁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상 세계를 펼친 것이다.
이 하나의 ‘세계’(작품)가 탱탱하고 알차게 영글게 되는 데에는 그 시간까지의 작가 삶의 깨알 같은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작품 안에 알알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도 작가가 이 나이까지 접한 모든 경험과 쌓아 온 조형감각, 감성 등 자신의 모든 것이 결합 되어 하나의 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 하나에도 그 사람의 전 생애가 들어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반복하자면 이 작품집에는 이혁발 63년의 세월이 오롯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시집처럼 꺼내볼 수 있는 작품집
이 작품집은 서가에 꼿아놓고 시집처럼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볼 수 있다. 특별한 순서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의 우측에 의태어를 한두 개씩 넣어 놔서 그림을 보는 또 다른 맛을 제공한다. 그 그림과 의태어가 특별히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그저 무심히 의태어도 읽고 그림도 보면서 이러저러한 상상의 시간을 갖기에 좋은 것이다. 의태어가 주는 독특한 연상이 있고, 드로잉이 주는 연상과 만나 묘하고 특별한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림은 액자를 해서 벽에 걸어야한다는 통념을 깨는 ‘서가에 꼿힌 작품’이라는 관점은 신선하다. 그것도 1993년부터 발상하였다는 것도 미술사적으로 의미 부여를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