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프롤로그
1부 어린 나를 깨워준 문장들
1 만화책 속 아프리카를 살다
2 문을 열고 다시 찾아가 보는 그 만화방
3 작아도 열리는 세상의 문
4 내가 어른이 된 날
5 부끄러움을 배운 날
6 선물이 된 글쓰기
7 사랑이 들어오던 날들
8 사람살이의 기술을 배우다
9 나를 처음으로 불쌍하다고 말해준 사람
10 그때 심은 씨앗이 피어나다
11 십 대의 나에게 건네는 단 한 문장
12 앞으로의 너에게
2부 나를 먼저 안아준 곳, 아프리카
13 뜨거운 공기가 나를 먼저 안아준 날
14 사막의 영성
15 신발 정리로 얻은 사람 마음
16 카렌의 등에 업힌 사랑
17 댐 위에서 걸었던 하루
18 어두워지는 산속 길에서
19 산 자만이 먹는다는 걸 배운 날
20 뱀 두 마리와 함께한 1,200킬로미터
21 아프리카의 봄, 보라색 향기
22 별 보며 멍때리던 날
23 ‘사랑’이라는 글자, 그리고 내가 찾은 집
24 칼라하리에서 나를 다시 만나다
3부 아프리카에서 배운 삶의 리듬
25 아프리카의 길 위에서
26 카사라니에서 켜진 작은 촛불
27 키수무에서 시작된 이야기
28 과일 가게 마마가 선생님이네
29 케냐 사람들의 속도
30 나라별 시간의 고무줄 …
31 예측불가에서 오는 스릴
32 생존 안테나
33 마사이, 마마 그리고 마타투의 냄새
34 선택해서 주는 마음
35 케냐, 마라토너의 나라
4부 나이로비에서 경험하는 일상
36 케냐 청년에게 작업당한 날
37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날
38 “넌 그래도 살아 있잖아”
39 오지 벌판에서 화장실이 급하면
40 카멜레온 이야기
41 흙바닥에서도 웃던 소녀의 꿈
42 케냐 아이가 내 발에 입 맞추던 날
43 코리안-아프리칸으로 자라는 아이들
44 말을 배우는 사이
45 벽을 타고 오르는 머니 플랜트
46 청소가 끝난 집의 고요
47 문이 항상 열려 있는 건 아니다
48 나이로비의 연어 파티
49 토이마켓에서 발견한 가치
50 나이로비 거리에서 태어난 언어, 솅
51 미완성의 도시에서 흔들리는 빨래들
5부 킬리만자로, 느림과 깊이의 시간
52 마음의 거리, 한 끼의 브런치
53 내 몸에 대한 아프리카식 정의
54 상처는 지나고 괜찮음이 남는다
55 관대함이라는 선물
56 뭘 위해 사는 걸까
57 홍학무리의 기적
58 아프리카의 하늘을 찍다
59 팅가팅가 앞에서 마음이 먼저 웃는다
6부 뉴욕, 세계의 중심에서 다시 나를 보다
60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자각
61 초등학생의 한마디
62 친구라는 이름을 다시 배우는 시간
63 모깃소리 발표자에서 국제강사로
64 컬럼비아 도서관에서의 꿈
65 점점 더 아프리카로
66 나만 아는 작은 놀람
67 케냐에 온 미국 선물
68 뉴욕, 세븐트레인에서
7부 당신에게 건네는 마지막 문장
69 오모, 꼬모, 고~~모, 그리고 고모
70 대륙을 오가는 여행자의 길
71 아직도 화해하는 엄마에게
72 참된 재능은 사람됨이다
에필로그
[본 문]
“군자는 마음이 넓고 평안하지만,
소인은 늘 근심하고 조급하다.”
《논어》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 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
내가 사랑에 가장 목말랐던 시절, 정말 사소한 친절 하나에도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배곯던 사람이 한 숟갈의 밥에 눈물짓듯이. 그런데 사랑은 돈처럼 계산되지도 않고, 감정이라서 논리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미안해, 그때 내가 좀 심했지”라는 한마디에 40년 묵은 한이 녹아내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너 그 정도밖에 안 돼?”라는 한마디에 평생 쌓아온 가족으로서의 정이 산산이 부서지기도 한다.
사랑은 참, 사람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요정 같은 존재다. 나 역시 사랑 결핍으로 치자면 끝판왕이었다. 열네 살에 집을 나와 낯선 한의원 집에 얹혀살면서 ‘누가 나를 챙겨준다’라는 느낌을 처음으로 알았다. 같이 밥을 먹고, 아프면 약을 지어다 주고, 맛있는 것을 챙겨주는 그런 사소한 일들.
그러다 직업학교 사감 선생님을 만나면서 신앙이라는 문이 열렸다. 지금도 내 인생 최고의 멘토이신 분. 교회 사모님은 내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기도해주셨다.
그 몇 안 되는 작은 사랑들이 내 헛헛한 마음의 빈 곳을 천천히 채워주었다. 나는 복권 여러 장을 긁어 1등에 당첨된 사람처럼 하루하루 기쁨이 넘쳐흘러서 어쩔 줄 몰랐다.
나는 더는 사랑을 구걸하러 다니지 않았다. 누굴 붙잡고 늘어지지도 않았고, 억지로 뭔가를 붙여서 내 삶을 채우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앞에 놓인 길을 사랑이 충만한 채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런데 그 길 위에서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며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사랑은 애써 찾아 헤매는 게 아니었다. 자기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에게 어느 날 문득 “야, 나 여기 왔어!” 하고 불쑥 찾아오는 햇살 같은 것이었다. 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쏙 빠져나가고, 그냥 걷다 보면 어느새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그런 녀석. 그 작은 사랑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맙다.
결핍이 깊었던 어린 소녀였던 만큼 사랑이 들어왔을 때의 충격도 컸나 보다. 지금도 나는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면 따끈해진 마음을 품어 안으며 혼자 피식 웃는다.
아, 또 당첨됐구나! 그렇게. _ 본문 30∼31쪽
공자가 말씀하시길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려 하지 않고,
소인은 같아지려 들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논어》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자왈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십 대 때의 나는 늘 외톨이였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혼자서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끝없는 들판과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혼자 있다고 해서 화내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우리가 제 속도로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준다는 것을.
이제 나는 조금 느리게 걷고 싶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짝 헝클어도 그냥 웃으며 지나가는 속도로. 조사하고, 글을 쓰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가끔 강단에 서서 아프리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꼭 아프리카일 필요는 없다. 가슴이 살짝 뛰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조카들이 식탁에서 떠들고, “고모~~” 하며 장난치면 내가 “왜~~” 하고 받아치는 그 평범한 소란함이 계속되면 좋겠다. 오래된 친구 토머스와는 대륙을 넘어 “인류를 위하여!”라는 진부한 구호를 외치며 또 같이 뭔가를 벌였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건 많지 않다. 작은 마음, 작은 손길, 때로는 빈약한 통장 잔고. 그런데 그 작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꽤 큰 온기가 되더라. 그걸 알게 된 뒤로, 앞으로의 날들이 괜히 든든해졌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응원의 말을 더한다.
당신은 남들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결국, 당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조용히 밝히는 사람이 될 거다. 너무 서두르지 말길.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너그럽고, 당신이 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_ 본문 46∼48쪽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파고들수록 더욱 단단하다.
《논어》 仰之彌高 鑽之彌堅 앙지미고 찬지미견
1990년, 보츠와나에서의 첫해, 직업학교 교사로 일하던 시기, 학생 한 명이 입원해서 여학생 몇 명을 데리고 병문안을 가던 날이었다. 모래 먼지가 풀풀 나는 길, 아이들은 앞에서 깔깔대며 달리고, 이십 대 중반의 나는 땀범벅이 된 채 터벅터벅 뒤따라갔다. 그러다 갑자기 앞서서 가던 제일 명랑한 카렌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큰 눈, 큰 목소리, 큰 웃음. 평소에도 지나칠 때마다 “Teacher!” 하며 손을 흔들던 아이. 그 카렌이 내 앞에 딱 멈춰 서더니, 갑자기 쪼그려 앉으며 등을 내밀었다.
“캐서린! 업혀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선생 된 첫해에 학생한테 업히는 선생이라니? 이건 예의 문제도, 체면 문제도 아니었
다. 정체성이 완전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카렌은 그런 것 재고 따지지 않았다. “얼른!” 하더니 이미 나를 번쩍 업고 일어났다. 그 등은 놀랍도록 단단했고, 심장은 더 뜨거웠다. 몇 걸음 가지도 못해 내려놓긴 했지만, 그 순간 햇빛은 더 밝아졌고, 카렌의 웃음은 그보다 더 밝았다. 결국, 나는 그 밝은 마음에 업혀 병원까지 갔던 셈이다.
지금도 문득 떠오른다. 아프리카가 나를 키운 첫 장면. 티 없이 건넨 십 대 소녀의 친절이 내가 이 대륙을 떠나
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는 걸, 이제는 웃으며 인정한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선생이 된 날. 그날의 등
하나가 아직도 나를 업고 다닌다.
뜻을 참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대학》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소위성기의자 무자기야
미국에서 7년을 공부했다. 뉴욕 맨해튼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 2층 파란 소파가 내 자리였다.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엔 따뜻했으며, 늘 고요했다. 창밖엔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이 보였고, 그곳에 앉아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학기, 학비가 모자라 마음이 계속 흔들렸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끝인가?’ 하는 생각만 머
릿속을 맴돌았다. 그날도 소파에 기대앉아 있다가 그대로 선잠이 들었다. 꿈속에 열네 살 해영이가 나타났다. 작고 마른 그 애가 나를 보더니 살짝 웃으며 말했다.
“해영아,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해. 컬럼비아까지 왔잖아. 졸업 못 하면 어때? 쫓겨나면 어때? 괜찮아.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너 진짜 잘했어.”
깨고 나서도 그 말이 너무 또렷하게 귀에 맴돌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창밖으로 하얀 눈이 쌓이고 있었다. 12월의 뉴욕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학비는 일부만 내도 괜찮아요. 졸업은 문제없고, 나중에 나머지 내고 나서 학위 찾아가면 됩니다.”
가슴이 뻥 뚫렸다. 공부할 수 있다. 끝까지 갈 수 있다. 나는 그 파란 소파를 잊지 못한다. 누군가가 또 그 소파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가장 따뜻한 위로는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어린 내가 나에게 건네는 한마디일 때가 많다는 것을. _ 본문 212∼2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