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저자의 말
제1장 벤야민의 생애와 사상
1. 생애와 작품
2. 벤야민 사상의 특징
제2장 초기의 언어철학과 미메시스론 1914~18
1. 언어의 마법: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2. 언어보충을 향한 동경: 「번역자의 과제」
3. 마법의 해체: 「유사성론」과 「미메시스 능력에 대하여」
4. 언어의 ‘표현적 성격’과 미메시스: 「언어사회학의 문제들」
제3장 비평과 정치 1919~25
1. 낭만주의 예술비평의 현재성: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
2. 신화 비판과 구제비평: 「괴테의 친화력」
1) 주해와 비평 - 사실내용과 진리내용
2) 신화, 신화적인 것
3) 군돌프에 대한 비판 - 신화 비판
4) 구원의 모티프 - 노벨레 「놀라운 이웃 아이들」
5) 희생제물로서의 오틸리에
6) 오틸리에의 아름다움과 ‘표현할 수 없는 것’
7) “희망의 신비”
3. 알레고리와 비평: 『독일 비애극의 원천』
4. 신학과 정치
「신학적-정치적 단편」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폭력비판을 위하여」
제4장 문학투쟁의 전략가 1925~33
1. 초현실주의와 정치
『일방통행로』
『모스크바 일기』
「초현실주의」
‘인간학적 유물론’
2. 문학투쟁의 전략가
3. 비평가의 과제: 켈러, 헤벨, 프루스트, 크라우스, 발레리, 브레히트
고트프리트 켈러, 요한 페터 헤벨
마르셀 프루스트
카를 크라우스
폴 발레리, 베르톨트 브레히트
제5장 망명기의 글들 1933~39
1. 생활환경의 문자화와 예술의 기능전환
「오늘날 프랑스 작가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하여」
「생산자로서의 작가」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
2. 아우라와 매체이론
「사진의 작은 역사」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
비(非)아우라적 시대의 예술의 기능: 정치
아도르노의 비판
3. 전통적 서사와 새로운 서사
경험의 빈곤과 서사의 위기
「이야기꾼」
카프카 연구
1) 벤야민의 카프카 수용
2) ‘도주 중에 있는 신학’, 흉측하고 왜소해진 신학
3) 순수예술의 신화에 맞서는 신학
4) 카프카에게서 비유와 제스처
5) ‘서사적인 것의 복원’: 유예하기, ‘역(逆)신학’
6) 실패한 작가 카프카
7) ‘부조리한 희망’과 구원
8) 벤야민의 카프카 해석에서 신학적인 것
제6장 현대의 고고학 1931~40
1. 기억된 미래: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2. 19세기의 원사: 『파사주』 프로젝트
3. 보들레르와 모더니티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4. 기억의 정치학: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보론1] 한국에서 벤야민의 저작 번역과 수용에 대하여
[보론2] 벤야민에게서 고급예술, 민속예술, 영화, 키치
참고문헌
벤야민의 주요 저작 목록
개념 찾아보기
인명 찾아보기
[본 문]
* “아직 마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던 그 세대는 맨하늘 아래, 구름 말고는 아무것도 변치 않고 남겨진 것 하나 없는 풍경 속에 서 있고, 그 가운데에 파괴적인 흐름과 폭발의 역장(力場) 속에 왜소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몸뚱이가 있다.”(『벤야민 선집』 5, 173) 이 시대 누구나가 하게 되는 이러한 벌거벗은 경험, 빈곤의 경험을 직시하는 지식인으로서 “시대에 일말의 환상도 품지 않으면서 그 시대에 온몸으로 몰입”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이때 유럽 문화의 전통, 그 전통이 변화하는 현실, 특히 최근의 역사와 문화는 그의 사유가 전개해가는 매체였다. 하지만 그는 당대의 어떠한 현실정치적 노선에도 거리를 두었으며, 이러한 거리두기는 정신의 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그는 세계사적 변혁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좌파 사상을 전유(專有)하게 되지만,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그것과 단절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의 사유의 실험적·변증법적 성격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더 나아가 급진화한다. 사회 현실에서나 지적 작업에서나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이질적인 것들을 사유 속에 혼융하면서 그것들이 변증법적 긴장을 유지하는 성찰을 전개한다. (p. 20)
* 벤야민은 그의 유물론적 시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글로 알려진 「생산자로서의 작가」를 비롯해 30년대 때때로 가명으로 출판된 주요 서평과 에세이들에서 당시 파멸의 위기에 뻐진 유럽 문화, 더 나아가 파시즘의 위협 속에 몰락의 위기에 놓인 인류의 운명에 직면하여 지식인이 취해야 하고 또 취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신랄한 자기비판적 성찰을 펼친다. 그렇지만 이러한 “지식인의 정치화”는 벤야민의 경우 결코 그가 견지해온 유대신학적 사고나 언어형이상학적 입장과의 결별을 뜻하지는 않는다. 브레히트를 다룬 에세이 「서사극이란 무엇인가」나 카를 크라우스(Karl Kraus, 1874~1936)를 다룬 에세이를 비롯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같은 정치성 짙은 글들을 발표할 때도 벤야민은 프루스트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카프카를 신학적 범주들을 갖고서 연구하는 작업을 병행했으며, 「이야기꾼」처럼 당대의 정치 현실과 무관한 글들을 썼다. (p. 27)
* 벤야민에게서 종합과 긴장의 관계를 이루는 주요 모티프들을 꼽자면, 초기의 형이상학적 사유와 후기의 유물론적 사유, 폭력과 정치(「폭력비판을 위하여」), 자연사와 역사(『독일 비애극의 원천』), 신학과 정치(「신학적-정치적 단편」), 이미지와 문자(알레고리), 신체와 정신, 꿈과 현실, 성스러움과 마법과 세속적 삶, 종교와 철학, 미메시스와 창조, 파괴와 구성(인용·역사), 역사의 진보와 역사의 영원회귀적 반복, 고대와 현대(보들레르), 신비주의와 합리성의 현대(카프카), 기억과 망각(프루스트), 기술과 예술(「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의 관계 등을 들 수 있으며, 그에게서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의 항을 이루는 것들의 예는 실로 많다. 또한 각 개념과 모티프들 내부에서도 그러한 변증법적 긴장이 일어나고 있다. (p. 32)
* 벤야민에게서 비평의 요체는 신화에 대한 비판이다. (각종 신화적) 폭력에 대한 비판, ‘상징적 예술’의 관념체계에 의해 억압되고 폄하되어온 알레고리의 구제, 영원한 동질적 시간을 폭파할 필요성에 대한 통찰, 역사주의와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비판 같은 것이 신화비판의 맥락에 속한다. 진리에 대한 신화의 무차별성은 ‘이의성’으로 현상되어 나타나는데, 이 현상을 변증법적으로 사유하여 신화의 신화성을 파악하는 것이 인식의 목표가 된다. 즉 역사에서 지속되어온 신화적 폭력은 역사·이성·정신 등을 그 신화에 추상적으로 대립함으로써가 아니라, 신화적 이의성을 변증법적으로 사유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고, 또한 이러한 사유를 토대로 현상이 구제된다. (pp. 33~34)
* 벤야민의 비평은 초기에 형성된 언어관에 바탕을 둔다. 여기서 그의 언어관은 언어의 ‘매체적 성격’을 주목한다. 물론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그러나 언어가 (대상을 인식하고 또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소통하는) 단순한 수단으로만 이해될 때 언어의 본질이 왜곡되고 그에 따라 언어가 원래 지녔던, 사물을 명명하는 힘과 위엄이 추락한다. 이것과 연관하여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벤야민에게서 언어는 사물을 분류·연역·귀납하는 개념적 사유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관상학적(觀相學的, physiognomisch, 인상학적) 사유와 관찰을 매개한다는 점이다. 사물의 “표현적 성격”을 읽어내는 미메시스적 시각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p. 35)
* 벤야민은 무릇 예술작품을 문학사적인 관점과 예술철학적 관점을 넘어 신학적‧정치적‧사회적‧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비평할 것을 요구한다. 그가 ‘진리의 영역’으로서 이념을 중시하는 이유는 예술작품에 대한 고찰이 어떤 정해진 개념 틀에 따른 문학사적‧예술사적 분류작업이나 상투적인 미학적 고찰의 차원을 넘어서 작품의 ‘진리내용’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비평적 방법은 작품의 ‘진리내용’이 ‘사실내용’에 대한 깊은 천착과 침잠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작품에 대한 내재적 비판이라는 요구를 충족하며, 다른 한편 그 ‘진리내용’에 작품이 생성된 시대의 역사적 경험이 농축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예술작품에서 통상적인 문학사나 예술사적 인식을 깨뜨리는 역사철학적 인식을 추구한다. (pp. 35~36)
* 벤야민에게 모든 진정한 이미지는 변증법적 이미지, ‘정지 상태의 변증법’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역사의 이미지가 이 이미지로 읽힌다. 개인의 경우 죽음 직전의 순간에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전 생애의 응축된 이미지들, ‘비자의적(非恣意的) 기억’의 이미지들이 그런 이미지들이다. 그것은 죽음처럼 흐름을 중단하는 충격적인 순간에만 가능하다. 여기서 중단이란 무엇보다 가상적인 연속성의 중단을 뜻한다. 또한 메시아가 도래하는 시간이나 혁명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도 바로 이 중단이다. (p. 40)
* 벤야민의 인식론은 초기부터 일관되게 전통적인 분과학문의 벽을 허물고, 예술에서 통합적 사유의 모델을 보면서 분류적‧개념적 사고를 지양하려는 노력, “인식하는 의식의 주관적 성격”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특징으로 한다.(「미래철학의 프로그램에 대하여」) 한편 예술에서 그가 추구한 것은 심미적 경험과 가치들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에 대한 지표이다. 또한 그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특히 복제기술이 인간의 지각과 경험구조에 몰고 온 변화를 추적하면서 이것이 다시금 예술의 생산과 수용의 형식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나아가 예술의 새로운 사회적 기능이라든가 새로운 예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까지 제시한다. (p. 40)
* 48세로 삶을 마감한 벤야민은 특히 후기에 경제적 곤궁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 시련에 가득 찬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지식인으로서 치열하게 성찰했고, 명랑성을 잃지 않았으며, 그 명랑성과 긍정성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산문들을 남겼다. 언제나 “불행의 한가운데로 걸음을 옮겼던” 벤야민의 삶은 그가 각별한 친근감을 느끼면서 연구한 카프카를 두고 해석했던 것처럼 “실패한 자”의 삶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해석한 카프카에게서 그렇듯이 그가 남긴 사유의 유산에서는 ‘구제’를 지향하는 묵시록적인 경고가 낭랑하게 울려나오면서 동시에 ‘실패한 자’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이 빛난다. (pp. 45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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