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머리말_함께 우물을 판 사람들에게……5
1부_어둠을 넘어 새벽으로 가는 길
제1장 집안의 역사……17
그 어둠의 시대 | 헌신적인 삶 |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 | 자식들의 홀로서기 |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 |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 빛이 되어준 은인들
제2장 인생 항해의 시작……40
세상의 문턱에서 | 김우중을 만나다 | 김우중을 보고 세상을 배우다 | 대우로의 이직
제3장 대우의 태동과 세계로의 첫걸음……55
젊음이 세운 회사 | 폭발적인 성장 | 미국 성인 셔츠는 모두 대우 제품 | “잠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 시어스 로벅의 교훈 | 가방에는 꿈이 들어 있었다 | 섬유의 성취에서 종합상사의 전선으로 | 규범을 어겼으나 신념은 곧았다 | 무역을 넘어 산업 플랫폼으로 | 3국 거래, 세계를 잇다 | 성공의 절정에서 찾아온 시련 | 오지로, 전쟁터로 | 대우를 떠나며
2부_세상의 아침을 열다
제4-1장 대우중공업 [부임]……85
낯선 공장, 낯선 운명 | 젊은 엔지니어들의 호응 | 폭풍 속에서 드러난 정부 정책의 칼날 | 미파MIPA 운동으로 불황 극복에 도전 | 사람을 키우는 일, 회사를 키우는 일
제4-2장 대우중공업 [솔라 프로젝트]……98
굴삭기에서 시작된 국산화의 배수진 | 꺼지지 않는 불빛 | 고유모델에 도전하다 | 욕심은 넘치고, 현실은 험하고 | 굴삭기 강국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제4-3장 대우중공업 [LX 프로젝트]……110
대우중공업을 세계에 세운 프로젝트 | 세계 1위의 문을 두드리다 | 하늘길에서 쓴 한 장의 합의서 | 계약서도 없이 공장을 짓다 | 8,500달러, 값비싼 수업료이자 도약의 발판 | 기계산업 수준을 한 차원 끌어 올리다 | 신뢰와 자율이 빚어낸 성과
제4-4장 대우중공업 [공작기계]……124
공작기계 강국의 탄생 | 독일에서 사 온 씨앗 | 엔지니어를 믿고 넓은 운동장을 내주다
제4-5장 대우중공업 [스톰 엔진이 일으킨 스톰]……132
디젤엔진의 씨앗, MAN과의 첫 만남 | MAN 엔진의 전성기와 국산화의 필요성 | AVL과 함께한 고유모델의 꿈 | 스톰 엔진의 탄생과 값비싼 시행착오
제4-6장 대우중공업 [철도차량]……141
석탄 기관차에서 서울 지하철까지 | 애물단지에서 보물단지로 | 국산화의 달콤한 결실 | 환경 변화가 안겨준 천운 | 세계시장에서의 대우 철도차량
제4-7장 대우중공업 [항공사업]……153
남들이 물러선 자리에서 기회를 잡다 | 사라진 제도부터 되살려야 했던 출발선 | F-16 기체 생산의 기적 | 잠수함이라는 또 다른 항로 | 중소형 여객기와 헬기 사업의 꿈 | 하늘 위에서 다시 만나는 창원 엔지니어들
제4-8장 대우중공업 [방산]……166
불모지에서 움튼 방산의 씨앗 | ADD와의 줄다리기 | 국군의 날 15분 | 한국형 장갑차 | 보스니아의 한국 장갑차
제4-9장 대우중공업 [대한민국 기계사관학교를 떠나며]……177
엔지니어사관학교라 불리던 집 | 기술 자립이라는 하늘의 명령 | 도면 앞의 병사들, 기계 앞의 정예부대 | 쇳내와 기름 냄새 속에서 자란 자부심 | 자기 것의 힘 | 기계사관학교에서 바다로
제5장 대우조선……186
육지를 떠나 바다로 | 녹슨 쇳덩이들의 무덤 | 답은 늘 현장에 있다 | 두 번째 도약을 향한 경영 혁신 | 한국 조선사를 바꾼 한 권의 책 | 옥포 생산 시스템의 탄생 | 줄을 다시 세우니, 인원이 남았다 | 가짜 출근, 허수 인력의 민낯 | 함께 울며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 | 무제한 회의 | 선진 조선소에서 얻은 소중한 배움 | 세계 조선사에 새 기록을 새기다 | 그리고 후회되는 일들 | 대우조선을 떠나며
제6장 한국중공업……218
민간기업에서 공기업으로의 선회 | 혹독한 통과의례 | 새 일꾼들과 새출발 | 새로운 시도, 새로운 희망 | 도전이 주는 난제 풀기 | 국제입찰에서 기준이 되다 | 세계 독보적인 기술 | 인연을 중시한 결과 | 잭 웰치와의 인연 | 이루지 못한 꿈 | 메꿀 수 없는 경영 철학의 간극 | 지도 밖에 길을 내며 | 같으면서도 다른 생활
3부_성공의 뒤안길
제7장 가족, 또 하나의 우주……253
인연의 시작 | 나의 더 좋은 반쪽을 보내며 | 나를 지탱한 또 하나의 우주 | 세상 가장 아름다운 증언
제8장 개인의 역할을 넘어……275
국경 없는 봉사 | 제조업의 기둥을 세우는 시간 | 정밀을 향한 땀의 시대 | 세계에 플랜트를 심던 추억 | 마음을 이어 붙이던 시간 | 나라를 서로 잇는 다리가 되어 | 멀리 있는 이웃을 위한 봉사
제9장 인생 경영을 정리하며……287
확신과 회의 사이 | 49%의 승리 | 신뢰를 쌓는 사람들 | 재판再版의 마음으로 | 선봉의 책임 | 모세의 선택에서 얻은 교훈 | 낮은 것들의 가치 | 지도에 없는 길
4부_인연, 그리고 사람들
제10장 내가 본 윤영석……303
다재다능한 사람_손경식 |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_오명 |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전문경영인_유흥수 | 잘 돕고 잘 베푸는 그 따듯함_이동건 | 우리 모두의 멘토_야산 장만영 | 경영 능력과 인품을 겸비한 신사_홍성부
제11장 윤영석의 그림자들……316
회장께서는 탁월하셨다_이선주 | 삶 전체를 바꿔놓은 살아 있는 학교_고영렬 | 세 가지 기억_이경원 | 인생의 스승이요 대부_김동규 |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값진 경험_김기풍 | 인생의 자부심_안상언 | 우연이 만든 인연_이규민
맺는말_시대를 함께 견뎌 낸 인연들에게 바치는 마음의 기록……336
[본 문]
• 심리적 충격이나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으면 어떤 사람은 부정적 변화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어떤 사람은 내면의 긍정적인 변화를 얻는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한다고 한다. 아마도 아버지를 여윈 후 나의 형제들은 다 함께 ‘외상 후 성장’의 길을 걷지 않았나 싶다. p.34
• 국내 최초의 섬유제품 직수출로 기록된 이 사업의 규모는 웬만한 공장이 1년 내내 생산해도 감당할 수 없어 하청까지 주어야 할 정도로 엄청난 물량이었다. 그런 능력으로 김우중 회장은 이미 한성실업의 일개 과장이 아니라 회사 내 실력자 반열에 올라 있었다. p.47
• 이때쯤 대우는 대졸 젊은이들이 너나없이 입사하고 싶어 줄을 서기 시작하는 회사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대우를 선망한 가장 큰 이유는 역동성이었다. p.65
• 나는 기계의 구조나 설계 수치를 엔지니어들처럼 세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회사가 향해야 할 목적지를 제시하고 그 길을 기술자들이 신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90
• 그런 도전을 극복하고 성취하면서 우리나라 철도차량 기술은 한 차원 더 높아졌다. 지금 한국 기업들이 전동차 생산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은 그때 우리가 모터와 컨트롤 시스템을 국산화한 것이 밑거름이 되었다. p.147
• 대우중공업은 우리나라 기계산업계에서 오래도록 ‘엔지니어사관학교’ 혹은 ‘기계사관학교’라 불렸다. 지금 철도차량, 항공, 굴삭기, 지게차, 엔진, 공작기계 분야에서 1등을 다투는 국내 기업들 가운데, 그 뿌리가 대우중공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회사를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p.177
•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예량 구매’였다. 선박 수주와 동시에 자재를 함께 주문하는 방식이다. p.199
• 그렇게 한국중공업의 위상이 높아지는 중심에는 늘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었고, 나는 그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으며, 그 신뢰는 기적을 만들었다. p.231
• 남들이 모두 선택하는 안전한 길에서는 더 새롭고 더 알찬 기회가 눈에 뜨일 수 없다. 남들이 가지 않는 지도 바깥은 비록 걷기 힘들고 두려운 길이지만, 남들이 못 본 거대한 보물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의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p.245
• 그녀는 본래 지적이고 고상한 여인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단순히 듣는 취미로 즐긴 것이 아니라 그 배경과 작곡가의 사유까지 연구하듯 탐구했다. p.258
• 나는 기업의 힘이 장기적·구조적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나눔명문기업’이라는 고액 기부 프로그램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고무적이었다. p.283
• 내가 49%만 갖고 상대에게 51%를 준다는 마음, 거래할 때 그런 마음으로 임하면 대개의 경우 성공한다. 그런데 돌아서서 보니 내 손에 51%가 쥐어진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p.290
• 무엇보다 윤 회장은 ‘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늘 말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좋아서 하는 것이 낫고, 좋아서 하는 것보다 즐기며 하는 것이 가장 좋다.” p.307
•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전문경영인 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윤영석’을 선택한다. p.309
• 두 번째 인복은 젊은 날 사회생활의 시작점에서 김우중 회장을 만난 복이다. 크고 거친 세계를 개척해 나가던 그분을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크고 특별한 인연이었다. 젊은 시절, 패기와 비전으로 충만했던 그는 나를 기업의 세계로 이끌었고, 그로 인해 나는 산업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바라볼 수 있었다. p.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