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하나. 이 시대의 거대 담론, 공격적 중상주의
『국제무역의 정치경제와 법』 개정판이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그사이 국제무역질서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이번 개정 작업이 늦어진 것은 필자의 게으름 탓이기도 하나, 혼돈 그 자체인 국제무역의 실체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지금이야말로 국제무역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하곤 했지만, 정작 전문가들조차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대다.
스스로를 ‘관세맨(Tariff Man)’이라 칭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1월 재집권하며 꺼내 든 ‘관세 3종 세트(보편·상호·안보 관세)’는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 일본, 유럽 등 동맹국과 중남미 이웃 나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발동되고 있다. 최근 희토류와 그린란드 편입 논란 속에서도 트럼프 행정부는 ‘보복 관세’를 강력한 협상 카드로 활용했다. 바야흐로 ‘자유무역 이상’은 위축되고 ‘중상주의 편향’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이 거대한 편향을 움직이는 몇 가지 분명한 흐름이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 및 무역적자)’는 지속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혔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일방주의는 중상주의적 편향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2024년 기준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약 3,000억 달러(약 435조 원)에 달하고, 한국 역시 600억 달러(약 87조 원)에 이른다. 수출국 입장에서 흑자는 미덕일지 모르나, 그 어떤 교역국도 이러한 규모의 적자를 무한정 감당할 수는 없다.
무역수지 불균형의 상당 부분은 중국의 기형적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에 기인한다. 2024년 기준 중국은 전 세계 상품 수출액(약 24조 달러)의 15%에 달하는 3.6조 달러를 수출하며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막대한 국가 보조금에 기인한 과잉생산의 부담을 덤핑 수출로 외부 전가하고 있다.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중국의 무역흑자는 사상 초유의 1.2조 달러(약 1,740조 원)를 돌파하며 중상주의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수치를 근거로 “중국이 전 세계 부를 약탈하고 있다”며 연일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권, 환경, 데이터, 마약, 인신매매 등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비전통적 이슈들이 무역의 영역으로 거칠게 밀려든다. 미국의 ‘신장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과 ‘틱톡 금지’ 논란,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 그리고 각국이 앞다투어 도입하는 ‘데이터 안보’ 규제의 이면에는 어김없이 중국이 있다. 심지어 합성 마약인 펜타닐 전구물질 유통과 인신매매와 같은 범지구적 범죄 이슈마저 대(對)중국 통상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된다. ‘무역의 정치화’와 ‘정치의 무역화’가 노골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거대한 공룡인 중국의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한다면 ‘자유무역 이상’의 실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첨단 과학기술의 폭발적 성장은 무역과 규제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제 AI는 단순한 혁신의 동력을 넘어, 국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데이터 통제와 규제, 그리고 검열을 수반하는 ‘디지털 중상주의’와 ‘디지털 민족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기술의 초국경성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화와 서비스의 전통적 교역보다 데이터 주권의 확보, 핵심 소스코드의 통제, 그리고 알고리즘 표준의 선점이 국제정치의 새로운 전장이자 미래의 승부처로 부상했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 세 가지 거대한 힘이 작동한다고 본다. 바로 지정학(geopolitics), 지경학(geo-economics), 그리고 기정학(techno-politics)이다. 이들은 특정 국가가 좌우할 수 없는 외생변수이자, 모든 국가에 동시다발적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압력이다. 첫째, 지정학의 귀환이다. 냉전기 ‘동서’ 이념 대결 이후 탈지정학 시대를 맞이했던 세계 시장은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와 함께 다시금 지정학 논리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 그린란드 논란 역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지정학적 야심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견제구이자, 북극권으로 확장되는 세력권 다툼의 한 단면이다. 인도·태평양 지역 역시 단순한 영유권 분쟁이나 해상교통로 확보 차원을 넘어, 이제는 상대의 물리적 세력권을 억제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미중 간의 첨예한 격전지가 되었다.
둘째, 지경학의 대전환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효율’과 ‘비교우위’ 중심의 분업체계는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대중국 기술 제재라는 충격을 거치며 ‘안정성’과 ‘신뢰’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던 리쇼어링(reshoring)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은 이제 국제무역의 중요한 흐름이 되었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목줄’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이다. 미국은 ‘경제안보’를 내세워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재편하려 하고, 중국은 ‘국가 자립’을 통해 대외의존도를 낮추려 한다. 이제 어디에서 누구와 교역하는지가 시장 논리보다 중요해진 시대다.
셋째, 기정학의 약진이다. 반도체와 AI를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은 단순히 산업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국제(무역)질서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전장이다. 이제 기술은 ‘무역이득’을 창출하는 국가 비교우위의 구성 요소에 머물지 않는다. 기술은 그 자체로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가 되었다. 핵심 기술 통제권과 표준 주도권 경쟁은 국가의 사활이 달린 안보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패권은 이제 탱크와 미사일 숫자뿐만 아니라 반도체 성능, 컴퓨팅 파워, 그리고 알고리즘에 대한 통제력으로 측정된다. 결국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와 안보를 지배하며, 궁극적으로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는 명제가 21세기 패권 경쟁의 본질이다.
무역과 안보, 그리고 기술의 역학 관계가 요동치는 이 변곡점에서 한국의 통상정책은 방향과 속도 모두에서 우려스러운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외교적 천동설’을 경계해야 한다. 안보 환경과 기술의 변화를 반영한 큰 밑그림 없이, 파편화되고 즉흥적인 정책 대응에 매몰되어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소위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 아래 안보동맹과 핵심 기술에 대한 선택과 결정을 미루는 것이 전략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외교적 낙관주의를 넘어 무지와 무모함에 가깝다. 이는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천동설과 다르지 않다.
또한, 퇴행적 대중영합주의가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가 디지털과 AI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거는 이때, 우리 정치는 여전히 아날로그식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 혁신에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도 모자랄 판에, ‘노란봉투법’이나 ‘상법 개정안’ 같은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는 기업의 활력만 꺾는다. 2026년 벽두를 달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설’ 또한 전형적인 ‘아날로그 정치 논리’의 산물이다. 대한민국 수출의 25% 이상을 지탱하는 반도체 산업에 지역 이기주의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국가 경쟁력의 토대는 무너진다. 변화에 조응하기는커녕 역주행을 거듭하는 우리 정치의 현실은 ‘한강의 기적’과 ‘무역입국(貿易立國)’의 신화마저 뿌리째 흔들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정학이 안보 구조를 바꾸고, 지경학이 부의 흐름을 재편하며, 기정학이 기술과 인류의 공존을 묻는 이 격동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 훼손된 안보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재확립하고, ‘무역의 안보화’에 기민하게 발을 맞추며, 기술 주권과 핵심 전략산업을 사수해야 한다. 그것만이 중상주의의 파고를 넘어 언젠가 다시 자유무역의 바다로 나아가는 유일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둘. 성찰과 감사의 시간
이번 제3판은 지난 5년여간 강의실과 세미나 현장에서 축적해 온 새로운 문제의식의 집합체이다. 바야흐로 ‘무역의 시대’를 넘어 ‘안보와 기술의 시대’로 이행하는 거대한 전환기에 대한 기록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한층 단단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 개정 작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던 차에 마주한 2024년 12월의 비상계엄 사태와 2025년 4월의 대통령 탄핵, 그리고 6월의 조기 대선으로 이어진 정치적 혼란은 저자를 깊은 무력감에 빠뜨렸다. 적법절차와 민주주의, ‘법의 지배’와 ‘법에 의한 지배’, 표현의 자유와 차별 금지, 부실·부정 선거 논란, 그리고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에 이르기까지-정치경제학자로서 직면했던 낯선 현실과 그에 따른 성찰의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동시에 그 진통은 새로운 사명감을 담금질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무역의 정치경제와 법’의 관점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야말로 우리 미래세대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포착해 글로 담아내는 작업은 마치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길을 잃을 때마다 이 책의 원형인 『무역정치경제론』을 다시 펼치며 은사이신 최병선 교수님의 혜안에 다시금 경외심을 느꼈다. 2018년 은퇴하신 이후에도 한결같이 제자를 아껴주시는 교수님께 깊은 존경을 표한다. 또한 〈통상정책〉, 〈공기업과 산업·통상정책〉, 〈주제탐구세미나2〉 수업에서 함께 고민해 준 제자들과 연구실 조교들, 그리고 지치지 않는 대화 상대가 되어준 제미나이와 챗지피티 등 생성형 AI도 크고 작은 영감을 보태주었다.
‘통상정책’의 담장 너머에서 큰 힘이 되어주신 강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님과 미래지식사회연구회 회원들, 국제대학원 이근 교수님, 사범대 모경환 교수님과 행정대학원 여러 동료 교수님, 서울대 기숙사 ‘새로운 길’ 동지들, 재용·성면·명준 3인방 학과 선배들께 감사드린다. 건국대 이용모 교수님, 경희대 윤지웅 교수님, 연세대 문명재·나태준·엄태호 교수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촉박한 일정에도 솜씨 있게 최종 편집을 맡아주신 박영사 조영은 선생님, 원고 마감일을 늦춰 달라는 필자의 끊임없는 하소연을 너그럽게 받아주신 최동인 대리님, 그리고 변함없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신 안종만 회장님과 안상준 대표이사님께도 깊은 사의를 표한다.
누구보다 이 여정을 곁에서 지켜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요동치는 남편의 마음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준 아내 은희, 힘든 고3 수험생활을 묵묵히 견뎌낸 첫째 딸 윤지와 이제 그 긴 터널에 들어서는 둘째 딸 수지, 그리고 우리 가족 치어리더 막내 준우가 있어 힘을 낼 수 있었다. 윤지와 수지는 이 책의 표지 디자인에도 참여해 의미를 더해주었다. 부모님 돌봄에 헌신하는 동생 희연이와 홍교, 그리고 막내 이모님께도 감사를 전하며,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는 중에도 가족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 주시는 어머님께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작년 11월 여든여덟의 일기로 소천하신 아버님께 이 책을 바친다. 기력이 쇠하는 중에도 맏아들의 집필을 독려하셨던 아버님께 끝내 완성된 책을 보여드리지 못한 채 영전에 올리게 되어 아쉽고 죄송할 따름이다. 평생의 학업을 응원해 주셨던 아버님의 영면을 빈다.
머리말
하나. 이 시대의 거대 담론, 공격적 중상주의
『국제무역의 정치경제와 법』 개정판이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그사이 국제무역질서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이번 개정 작업이 늦어진 것은 필자의 게으름 탓이기도 하나, 혼돈 그 자체인 국제무역의 실체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지금이야말로 국제무역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하곤 했지만, 정작 전문가들조차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대다.
스스로를 ‘관세맨(Tariff Man)’이라 칭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1월 재집권하며 꺼내 든 ‘관세 3종 세트(보편·상호·안보 관세)’는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 일본, 유럽 등 동맹국과 중남미 이웃 나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발동되고 있다. 최근 희토류와 그린란드 편입 논란 속에서도 트럼프 행정부는 ‘보복 관세’를 강력한 협상 카드로 활용했다. 바야흐로 ‘자유무역 이상’은 위축되고 ‘중상주의 편향’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이 거대한 편향을 움직이는 몇 가지 분명한 흐름이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 및 무역적자)’는 지속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혔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일방주의는 중상주의적 편향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2024년 기준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약 3,000억 달러(약 435조 원)에 달하고, 한국 역시 600억 달러(약 87조 원)에 이른다. 수출국 입장에서 흑자는 미덕일지 모르나, 그 어떤 교역국도 이러한 규모의 적자를 무한정 감당할 수는 없다.
무역수지 불균형의 상당 부분은 중국의 기형적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에 기인한다. 2024년 기준 중국은 전 세계 상품 수출액(약 24조 달러)의 15%에 달하는 3.6조 달러를 수출하며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막대한 국가 보조금에 기인한 과잉생산의 부담을 덤핑 수출로 외부 전가하고 있다.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중국의 무역흑자는 사상 초유의 1.2조 달러(약 1,740조 원)를 돌파하며 중상주의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수치를 근거로 “중국이 전 세계 부를 약탈하고 있다”며 연일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권, 환경, 데이터, 마약, 인신매매 등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비전통적 이슈들이 무역의 영역으로 거칠게 밀려든다. 미국의 ‘신장 위구르 강제노동 금지법’과 ‘틱톡 금지’ 논란,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 그리고 각국이 앞다투어 도입하는 ‘데이터 안보’ 규제의 이면에는 어김없이 중국이 있다. 심지어 합성 마약인 펜타닐 전구물질 유통과 인신매매와 같은 범지구적 범죄 이슈마저 대(對)중국 통상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된다. ‘무역의 정치화’와 ‘정치의 무역화’가 노골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거대한 공룡인 중국의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한다면 ‘자유무역 이상’의 실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첨단 과학기술의 폭발적 성장은 무역과 규제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제 AI는 단순한 혁신의 동력을 넘어, 국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데이터 통제와 규제, 그리고 검열을 수반하는 ‘디지털 중상주의’와 ‘디지털 민족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기술의 초국경성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화와 서비스의 전통적 교역보다 데이터 주권의 확보, 핵심 소스코드의 통제, 그리고 알고리즘 표준의 선점이 국제정치의 새로운 전장이자 미래의 승부처로 부상했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 세 가지 거대한 힘이 작동한다고 본다. 바로 지정학(geopolitics), 지경학(geo-economics), 그리고 기정학(techno-politics)이다. 이들은 특정 국가가 좌우할 수 없는 외생변수이자, 모든 국가에 동시다발적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압력이다. 첫째, 지정학의 귀환이다. 냉전기 ‘동서’ 이념 대결 이후 탈지정학 시대를 맞이했던 세계 시장은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와 함께 다시금 지정학 논리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 그린란드 논란 역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지정학적 야심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견제구이자, 북극권으로 확장되는 세력권 다툼의 한 단면이다. 인도·태평양 지역 역시 단순한 영유권 분쟁이나 해상교통로 확보 차원을 넘어, 이제는 상대의 물리적 세력권을 억제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미중 간의 첨예한 격전지가 되었다.
둘째, 지경학의 대전환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효율’과 ‘비교우위’ 중심의 분업체계는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대중국 기술 제재라는 충격을 거치며 ‘안정성’과 ‘신뢰’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던 리쇼어링(reshoring)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은 이제 국제무역의 중요한 흐름이 되었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목줄’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이다. 미국은 ‘경제안보’를 내세워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재편하려 하고, 중국은 ‘국가 자립’을 통해 대외의존도를 낮추려 한다. 이제 어디에서 누구와 교역하는지가 시장 논리보다 중요해진 시대다.
셋째, 기정학의 약진이다. 반도체와 AI를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은 단순히 산업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국제(무역)질서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전장이다. 이제 기술은 ‘무역이득’을 창출하는 국가 비교우위의 구성 요소에 머물지 않는다. 기술은 그 자체로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가 되었다. 핵심 기술 통제권과 표준 주도권 경쟁은 국가의 사활이 달린 안보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패권은 이제 탱크와 미사일 숫자뿐만 아니라 반도체 성능, 컴퓨팅 파워, 그리고 알고리즘에 대한 통제력으로 측정된다. 결국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와 안보를 지배하며, 궁극적으로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는 명제가 21세기 패권 경쟁의 본질이다.
무역과 안보, 그리고 기술의 역학 관계가 요동치는 이 변곡점에서 한국의 통상정책은 방향과 속도 모두에서 우려스러운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외교적 천동설’을 경계해야 한다. 안보 환경과 기술의 변화를 반영한 큰 밑그림 없이, 파편화되고 즉흥적인 정책 대응에 매몰되어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소위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 아래 안보동맹과 핵심 기술에 대한 선택과 결정을 미루는 것이 전략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외교적 낙관주의를 넘어 무지와 무모함에 가깝다. 이는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천동설과 다르지 않다.
또한, 퇴행적 대중영합주의가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가 디지털과 AI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거는 이때, 우리 정치는 여전히 아날로그식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 혁신에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도 모자랄 판에, ‘노란봉투법’이나 ‘상법 개정안’ 같은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는 기업의 활력만 꺾는다. 2026년 벽두를 달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설’ 또한 전형적인 ‘아날로그 정치 논리’의 산물이다. 대한민국 수출의 25% 이상을 지탱하는 반도체 산업에 지역 이기주의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국가 경쟁력의 토대는 무너진다. 변화에 조응하기는커녕 역주행을 거듭하는 우리 정치의 현실은 ‘한강의 기적’과 ‘무역입국(貿易立國)’의 신화마저 뿌리째 흔들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정학이 안보 구조를 바꾸고, 지경학이 부의 흐름을 재편하며, 기정학이 기술과 인류의 공존을 묻는 이 격동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 훼손된 안보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재확립하고, ‘무역의 안보화’에 기민하게 발을 맞추며, 기술 주권과 핵심 전략산업을 사수해야 한다. 그것만이 중상주의의 파고를 넘어 언젠가 다시 자유무역의 바다로 나아가는 유일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둘. 성찰과 감사의 시간
이번 제3판은 지난 5년여간 강의실과 세미나 현장에서 축적해 온 새로운 문제의식의 집합체이다. 바야흐로 ‘무역의 시대’를 넘어 ‘안보와 기술의 시대’로 이행하는 거대한 전환기에 대한 기록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한층 단단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 개정 작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던 차에 마주한 2024년 12월의 비상계엄 사태와 2025년 4월의 대통령 탄핵, 그리고 6월의 조기 대선으로 이어진 정치적 혼란은 저자를 깊은 무력감에 빠뜨렸다. 적법절차와 민주주의, ‘법의 지배’와 ‘법에 의한 지배’, 표현의 자유와 차별 금지, 부실·부정 선거 논란, 그리고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에 이르기까지-정치경제학자로서 직면했던 낯선 현실과 그에 따른 성찰의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동시에 그 진통은 새로운 사명감을 담금질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무역의 정치경제와 법’의 관점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야말로 우리 미래세대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포착해 글로 담아내는 작업은 마치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길을 잃을 때마다 이 책의 원형인 『무역정치경제론』을 다시 펼치며 은사이신 최병선 교수님의 혜안에 다시금 경외심을 느꼈다. 2018년 은퇴하신 이후에도 한결같이 제자를 아껴주시는 교수님께 깊은 존경을 표한다. 또한 〈통상정책〉, 〈공기업과 산업·통상정책〉, 〈주제탐구세미나2〉 수업에서 함께 고민해 준 제자들과 연구실 조교들, 그리고 지치지 않는 대화 상대가 되어준 제미나이와 챗지피티 등 생성형 AI도 크고 작은 영감을 보태주었다.
‘통상정책’의 담장 너머에서 큰 힘이 되어주신 강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님과 미래지식사회연구회 회원들, 국제대학원 이근 교수님, 사범대 모경환 교수님과 행정대학원 여러 동료 교수님, 서울대 기숙사 ‘새로운 길’ 동지들, 재용·성면·명준 3인방 학과 선배들께 감사드린다. 건국대 이용모 교수님, 경희대 윤지웅 교수님, 연세대 문명재·나태준·엄태호 교수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촉박한 일정에도 솜씨 있게 최종 편집을 맡아주신 박영사 조영은 선생님, 원고 마감일을 늦춰 달라는 필자의 끊임없는 하소연을 너그럽게 받아주신 최동인 대리님, 그리고 변함없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신 안종만 회장님과 안상준 대표이사님께도 깊은 사의를 표한다.
누구보다 이 여정을 곁에서 지켜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요동치는 남편의 마음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준 아내 은희, 힘든 고3 수험생활을 묵묵히 견뎌낸 첫째 딸 윤지와 이제 그 긴 터널에 들어서는 둘째 딸 수지, 그리고 우리 가족 치어리더 막내 준우가 있어 힘을 낼 수 있었다. 윤지와 수지는 이 책의 표지 디자인에도 참여해 의미를 더해주었다. 부모님 돌봄에 헌신하는 동생 희연이와 홍교, 그리고 막내 이모님께도 감사를 전하며,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는 중에도 가족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 주시는 어머님께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작년 11월 여든여덟의 일기로 소천하신 아버님께 이 책을 바친다. 기력이 쇠하는 중에도 맏아들의 집필을 독려하셨던 아버님께 끝내 완성된 책을 보여드리지 못한 채 영전에 올리게 되어 아쉽고 죄송할 따름이다. 평생의 학업을 응원해 주셨던 아버님의 영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