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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93235805 |
|---|---|
| 쪽수 | 280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외국소설
AI추천 이유

★ 2025년 라이프치히도서전상 수상작 ★
★ 곽아람·김기창·박우란 강력 추천 ★
온전히 품을 수도, 영원히 놓아줄 수도 없는
딸을 향한 엄마의 진실된 고백록
5월 말의 어느 토요일 오전, 아네트는 뜻밖의 전화를 받는다. 브란덴부르크 북부의 한 종합병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따르면, 딸 린이 회의에서 발표를 하던 도중 그대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딸에게 가기 위해 길을 나선 아네트의 손은 끊이지 않고 떨린다. 아네트는 자정이 넘어서야 병실에 도착해, 창가 침대에 누워 잠든 린을 바라본다. 린이 태어난 이후로 언제나 아네트의 관심사는 린의 건강과 생존이었다는 것을 아네트는 고요한 병실 안에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 소설은 첫 장면부터 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드러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녀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있어왔기에 어쩌면 특별하지 않다 느낄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엄마와 딸에 관한 이야기 중에 같은 사연을 지닌 경우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서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 사랑과 미움이 얽히는 모양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를 빚어내는 관계가 세상에 또 있을까.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서로를 할퀴고,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는데도 가장 자주 오해하고, 때로는 그 어떤 관계보다 서로에게 의지하기 마련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곽아람(『조선일보』 출판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책장을 덮을 때쯤 알게 될 것이다. 내 삶의 명암에 따라 엄마 삶의 조도가 달라져왔다”고. 딸의 입장에서 쓰인 이 문장은, 읽는 순간 엄마의 관점으로 뒤집힌다. 린이 흔들릴 때마다 아네트도 함께 흔들렸다. 린이 세상으로 나아갈 때 아네트도 빛났고, 린이 상처받고 돌아왔을 때 아네트 삶의 빛도 꺼졌다. ‘나는 왜 여전히 딸에게 매여 있을까’라는 아네트의 마음속 깊이 박힌 질문은 딸을 향한 아네트의 마음을 단번에 드러낸다. 엄마라는 이름의 조건을, 이 소설은 아프도록 정확하게 보여준다.
돌봄과 통제, 사랑과 간섭 사이
내 손안의 아이를 넘어 사회의 시민으로 자라기까지
잠깐의 휴식 이후에 린이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지만, 아네트의 기대와 달리 린은 돌아가지 않는다. 퇴사를 결정하고, 베를린의 집을 정리한 채로 린은 아네트의 집에서 머물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네트는 그런 린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스스로 라플란드행 기차를 탔던 아이였는데. 루마니아 숲속에서 나무를 심고, 스웨덴과 영국을 오가며 공부를 하고, 첫 월급을 받자마자 엄마에게 밥을 사던 아이였는데. 그 에너지가 다 어디로 갔을까.
소설은 린을 통해, 아네트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본래의 린은 숲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조림 프로젝트에 참석하고, 관련 회사에서 근무를 해왔다. 탄소배출권 시장의 구조를 분석하고, 조림 프로젝트에 자금을 연결하고, 데이터를 쌓았다.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으로 버텼지만 어느샌가 린은 깨닫고야 만다. 자신이 속한 시스템이 팔고 있는 것은 반쪽짜리 진실이라는 것을. 환경을 살리겠다는 반쪽짜리 진실을 빌미로 더 많은 부를 쌓는 사람들을 목격한 뒤 린은 그 얘기를 발표장에서 폭로하려다 부담에 못 이겨 쓰러지고 만 것이다.
때문에 『휩쓸린 것들만 남는다』는 단순히 모녀 갈등에 머무는 것을 넘어 세대별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 그 차이를 이해해야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딸이 좋은 것만 보고, 밝은 곳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아네트의 마음과 세상의 명암을 깨달아버린 린 사이에는 모녀 사이라는 사적인 관계를 뛰어넘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돌봄이라는 이유로 딸의 시야를 차단해온 아네트의 노력에도 린은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파악하고 어쩔 수 없이 상처받기도 한다는 것을 작가 빌카우는 자연스레 보여주는 데 이른다.
빌카우는 이 소설을 쓰면서 매일 같은 질문과 씨름했다고 고백한다. “우리 아이가 이 세계를 그래도 살아볼 만한 곳이라 믿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반쪽짜리 진실’을 건네왔는가.” 빌카우의 이 질문은, 반쪽짜리 진실을 건넨 적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건네받은 적 있는 사람이라면,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지만 영원히 주위를 맴돌 불멸의 질문에 다름없다.
휩쓸린 뒤에야 발견되는 우리 안의 흔적들
냉혹한 파도에도 기어코 도착하는 희망과 사랑
소설의 원제 ‘반도(Halbinsel)’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을 일컫는 말이다. 바다가 밀려왔다 쓸려가면서 육지에 놓인 것들을 휩쓸어 가지만 결코 섬은 아닌 곳이 바로 반도인 것이다. 빌카우는 이 지형을 아네트와 린 모녀의 관계 위에 포개어놓는다. 린이 왔다가 떠날 때마다 린에게 매여 있는 아네트에게는 무언가가 휩쓸려 가고, 어떤 것은 남는다. 기쁨도, 상처도, 해소되지 않은 질문도. 아네트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것들을 받아낸다. 파도가 쓸고 가도 그 자리에 남는 땅처럼.
어쩌면 모녀라는 관계를 넘어 삶이란 것이 본래 휩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린에 앞서 아네트에게는 요한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조깅을 나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않은 남편. 거친 파도보다 두려운 그 기억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네트를 잠식하고 있다. 린에게는 세상이 그랬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뛰어들었다가, 시스템의 냉혹함에 부딪혀 돌아온 것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휩쓸린 채 같은 지붕 아래 놓인 두 사람의 일상에 처음으로 틈이 생긴 건 옆집 이웃들 덕분이다. 아그네스, 마리, 레빈. 이들은 아네트가 평생 옳다고 믿어온 삶의 방식 바깥에서,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살아간다. 이들이 아네트와 린 모녀에게 명료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휩쓸리고 난 뒤에도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그 자체로 보여줄 뿐이다. 아그네스가 건넨 “거기서 빠져나와”라는 말에 아네트가 조용히 감동하는 장면은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린 순간이다. 그 말이 린에게만이 아니라, 오래도록 제자리에 박혀 있던 아네트 자신에게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삶의 파도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요한의 죽음에 휩쓸린 아네트처럼, 세상의 냉혹함에 휩쓸린 린처럼. 그리고 대부분은,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빌카우는 희망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진실성에 대한 탐구, 모든 불안과 실수를 끌어안는 사랑. 그리고 스스로를 재발견하며 만들어가는 새로운 출발.” 휩쓸리는 것이 필연이라 할지라도 휩쓸린 뒤에 우리의 삶에 무엇을 남길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일은 파도가 지나간 뒤 삶이라는 갯벌에 남은 것들을 독자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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