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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72133979 |
|---|---|
| 쪽수 | 240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국내소설
AI추천 이유
“안나를 만나다니. 나는 저주받은 아이들 중 가장 축복받은 아이일 거야”
전쟁의 소문과 함께 10년간 격리된 소년,
그리고 성인이 된 그가 이제 와 털어놓는 비밀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은 비교적 산뜻한 저주에서 출발한다. 일면식도 없는 초등학생에게 휑한 두피를 들켜 “저주받았느냐”라는 황당한 질문을 받은 우식은 탈모를 걱정하며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는 평범한 어른이다. 그의 꿈은 공과금을 제때 내고 반년에 한 번 치아 스케일링 받는 게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벌이를 유지하는 것. 그는 가전 수리 서비스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 마태공과 함께 온라인상의 흑역사를 지워주는 디지털 세탁소 ‘더 빨래’를 운영한다. 그런 우식에게 어쩌다 세 번의 자가 격리 명령이 떨어지고, 집 안에 틀어박혀 냉동고 성에를 제거하는 일에 신물을 느낀 그는 남들은 어떤 격리 생활을 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그때 그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인생 콘텐츠 구독 서비스인 ‘휴먼북’ 사이트에 올라와 있던 ‘격리 전문가 조기준’의 생을 담은 《휴먼북 조기준》이다. 시의적절한 콘셉트에도 최저가 할인 북 코너에 분류돼 있는 조기준의 생애에 호기심을 품은 우식은 그대로 열람 신청 버튼을 누르고 조기준이 그를 승인함으로써 둘은 연결된다.
1983년 겨울, 놀이터에서 놀던 소년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온다. 도시에서 내려온 불쌍한 여배우라는 소문을 오라처럼 두른 정체불명의 안나다. 어린 그의 눈에 주변의 소란에도 동요하지 않는 공허한 눈빛의 안나는 마치 만화 〈천년여왕〉의 주인공 같다. 세간의 부당한 평가를 받는 저 아름다운 여자가 나의 엄마라면……. 어느새 소년은 항상 바쁘고 무심한 엄마 대신 안나가 그 자리를 채워주길 소망한다. 그리고 세상이 전쟁의 소문으로 떠들썩해진 어느 날, 안나가 사는 산골짜기의 안전 가옥에서 소년은 기한 없는 격리 생활을 시작한다.
소설은 우식이 사는 현재와 조기준이 살았던 과거가 교차하며 나아간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마태공 선배는 그간의 경력과는 관련 없는 트럭 모는 사과 장수가 돼 이유 모를 사과의 말을 외치며 전국 각지를 돌고, 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사람을 죽이는 ‘전쟁 바이러스’에 감염된 소년 조기준은 목에 밧줄이 묶여 벽장에 갇혀 성장을 실감하지 못한 채로 10년을 흘려보낸다. 《휴먼북 조기준》의 챕터가 거듭될수록 우식은 완전한 진실이라 믿었던 이야기들이 반전과 속임수를 품은 반쪽짜리임을 서서히 깨닫는다. 사업을 진지하게 꾸려가던 마태공이 갑자기 전국을 순회하며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사과 퍼포먼스를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조기준이 소년 시절 감염됐다던 바이러스는 실재하는가? 1980년대의 인물들이 이제 와 묻혀 있던 과거사를 털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실은 무엇이며, 거짓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 질문의 답은 인물들의 끈질긴 자기 모색을 통해 조금씩 베일을 벗는다.
“다만 그는 선택했을 뿐이다. 원죄 의식을 갖고도 계속 살아갈 방법을”
나를 미워해야만 비로소 이를 수 있는 평안과
여전히 벽장에 갇혀 있는 이들에 관하여
미스터리 성장 소설이자 동시대를 관통하는 문제 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사건의 전개나 시간의 흐름을 따라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뒤엉키며 뒤의 진술이 앞선 설정을 뒤엎는다. 인생을 서술함에 ‘단 하나의 객관적인 진술’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그 내용이 언제든 왜곡되고 과장됨을 암시한다. 마태공이 불법 촬영 주동자로 지목된 딸을 위해 기꺼이 감행한 일과 조기준이 과거의 자신을 폭력적인 아이로 묘사하는 행위가 특이한 인물들의 예외적 행동이 아닌, 인간이 자기 삶을 받아들이는 보편적이고도 필연적인 방식일 수 있음을 묘파한다. 그리하여 독자는 타락한 세상에서만 자신을 긍정하는 인간의 연약한 마음, 그리고 자기혐오로만 이르는 기이한 평안의 존재를 새삼 깨닫는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벽장 밖에 도착하고자 한다. “한동안 나는 이 소설을 세상 밖으로 내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설의 나쁜 상상과 비관, 기저에 깔린 혐오의 정서는 이미 세상에 팽배했기에 굳이 이야기를 통해서 더 많은 절망과 어둠을 풀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소설을 쓴 덕에 나는 방 밖으로 한 발씩 나와 느슨한 연대로 서로의 고독을 응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저주에 걸리고도 축복을 말할 수 있으며, 결점을 공유하기에 함께할 수 있다. 위악을 방패 삼아 실은 삶에 화해를 청하는 분열적이고 다층적인 인물들을 통해 독자는 제 안의 그들을 감각하고 새로운 한 발짝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악을 향한 공포와 통제에 대한 열망, 저주의 한가운데에서 평온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을 그린 이 소설은 그렇기에 인생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흥미로운 탈출기다. 앞으로 작가가 보여줄 인간 내면에 대한 한계 없는 상상력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벽장 속에 몸을 숨길 때마다 소년은 벽장을 열고 나오면 전쟁이 끝나 있기를 바랐다. 어딘가에 몸을 숨긴다는 건 그런 거였다. 내가 변화하지 않아도 내가 가만히 있는 동안 저 밖의 세계는 내가 원하는 대로, 혹은 내가 원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없더라도 지금과 같진 않은 모습으로 변해 있기를 꿈꾸는 것.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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