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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24065471 |
|---|---|
| 쪽수 | 216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양장 |
- 소설/에세이/시 > 수필
AI추천 이유
삶과 죽음은 손을 맞잡은 사이
우리는 서로를 힘껏 놓아준다
목이 잠겨서 말소리가 작아지는 밤
내가 쓰는 문장은 나와 헤어진다
아이로, 어른으로, 자식으로, 부모로, 이모로, 제자로, 선생으로, 노동자로, 유권자로, 중생으로, 세계인으로…… 시인에겐 많은 나로 사느라 멀미가 이는 5월이다. 그럴 때면 내가 누구인지 잠시 헷갈리기도 한다. 불리는 이름도 해야 하는 일도 많아진다. 이런저런 역할 사이를 오가다보면 정작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놓치게 된다. 그럴수록 자주 잠에 빠진다. 글이 막히면 어김없이 그렇다(「놓치면 안 되는 이야기」). 마음에 가까운 말을 찾는 일은 더디고 어렵다. 한 번 쓴 문장을 지우고, 고쳐 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마음에 닿을 수 있다. 시인에게 쓰기는 모호하게 알던 것, 희미하게 느끼고 있던 것, 끝까지 감추고 있던 것이 형체를 얻는 일이다. 쓰고 나면 쓰기 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래서 쓰는 손이 아름다워 보이는지도 모른다. 지우고 또 지우면서도 어떻게든 말을 찾으려는 손. 어렵고 힘들어도 한 줄 더 써보려는 손. 그런 손은 이미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훔칠 수 없는」). 그 안에는 무언가를 말하거나 쓸 때 겪게 되는 언어의 미끄러짐, 무수히 벌어지는 작은 시도와 실패,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자리를 마주하는 용기가 있다(31일 에세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시간을 건너 도착하듯이 글도 그렇게 남을 수 있을까. 사라진 것을 되돌려놓지는 못하지만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을 같은 자리에 잠시 불러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은, 문학은 부재를 넘어 함께 있을 수 있는 아름다운 방식 같다(25일 에세이). 그러니 시인은, 쓰기 시작하면 누구든 더 강해진다는 걸 안다. 종이 위에 남겨둔 말이 언젠가 우리를 다시 일으켜세우기에. 쓰면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기에(6일 에세이).
웃게 돼
강아지들은 왜 햇볕을 좋아할까?
저기 서봐 네가 얼마나 작은지
작아서 얼마나 위태롭고 생생한지
오늘 작업대는 짱이의 것. 새로 산 그림책과 노트, 교정지 더미 사이에 개가 눕는다. 시인의 시쓰기는 일상으로부터 방해받고 간섭받고 뒤섞인다. 그런 점이 전과는 다르게 좋다고 느낀다(16일 그림일기). 시인이 이름을 부르면 개가 돌아본다. 짱이가 시인 쪽으로 걸어온다. 개 발바닥에 붙은 나뭇잎을 떼주며 그는 봄을 알게 된다. 함께하는 이 순간이 닳는 게 아깝다. 짱이 그림을 낙서하듯 남겨본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우리 개의 사랑스러움을, 글에는 담기 힘든 복잡한 마음을 그림에 옮겨본다(「여전히 높이 빛나는 꼬리」). 짱이가 하루를 잘 보내면 시인도 좋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기. 그걸로 강아지는 할일을 다한 것이다. 바쁜 일을 미뤄두고 짱이와 동네를 휘휘 돈다. 짱이가 평평한 얼굴을 땅에 대고 큼큼댄다. 들어올린 꼬리가 나풀거린다. 등허리가 성성하다. 다리에 힘이 빠지는지 이따금 주저앉는다. 걸음 속도가 매우 느려서 개와 사람이 한자리에 오래 서 있을 뿐인 지루한 풍경이겠다(「그다음 강아지가 할 일은」). 시인은 고민에 잠긴다. 쇠약해지지 않고 함께 건강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원고가 되질 않아 가시를 세우고 있지만 소용없음. 한 줄 쓰고 사과 먹고, 한 줄 쓰고 물 마시고, 한 줄 쓰고 개 옆에 눕고, 그러다 봄이 끝날 테지(「오늘 작업대는 짱이의 것」). 잠들기 전에 짱이 재채기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언제고 작별하는 사이. 높이 떠 있는 별의 시점에서 세상을 내려다본다면 어떨까. 울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이 보인다. 고독 속에서, 그러나 같은 둥근 별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에 놓여 있을 뿐이다(「같은 자리」). 어떤 날은 함께이던 기억으로 웃고 어떤 날은 텅 빈 배를 감싼 채 울고,(27일 그림일기) 그러면서 살아가겠지. 장미가 흐드러진 오월, 시인과 짱이는 걷고 또 걸었다.
어디에 있었어
쫑긋 내민 입술을 제자리로 가져가면서
두 글자를 발음할 때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말이야
얇은 입술을 떨어뜨리면서
아주 살짝 낮아진 온도를 느껴할 때
유난히 해가 늦게 뜬 아침
지나가는 길이었어
너를 보러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건 아니야
묻기도 전에 답하는 작은 신을 바라보면서
이내 꼭 안아주면서
기뻐할 때, 우리가 우리를 비로소 마음에 들어할 때
어디 있다 이제 왔어
_5월 24일 「곧 거울이 깨질 시간」 부분
ㆍ ‘시의적절’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시詩의 적절함으로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제철 음식 대신 제철 책 한 권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 1년 365가지의 이야기.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는 2026년에도 계속됩니다. 전국 작은 책방에서 독자들과 만나며, 하루 한 편의 글을 읽고 시를 심어온 시간이 켜켜이 쌓여 ‘시의적절’은 어느덧 세 살을 맞았습니다. 2026년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는 보다 탄탄한 양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인들에게 여름은 어떤 뜨거움이고 겨울은 어떤 기꺼움일까요. 시인은 1월 1일을 어찌 다루고 시의 12월 31일은 어떻게 다를까요. 하루도 빠짐없이, 맞춤하여 틀림없이, 매일매일을 시로 써가는 시인들의 일상을 엿봅니다.
시인들에게 저마다 꼭이고 딱인 ‘달’을 하나씩 맡아 자유로이 시 안팎을 놀아달라 부탁했습니다. 하루에 한 편의 글, 그러해서 달마다 서른 편이거나 서른한 편의 글이 쓰였습니다. 무엇보다 새로 쓴 시를 책의 기둥 삼았습니다. 더불어 시가 된 생각, 시로 만난 하루, 시를 향한 연서와 시와의 악전고투로 곁을 둘렀습니다. 요컨대 시집이면서 산문집이기도 합니다. 아무려나 분명한 것 하나, 시인에게 시 없는 하루는 없더라는 거지요.
올해 시의적절의 표지는 화가 노석미와 함께합니다. 매일같이 뼈대를 곧추세우고 마음을 쓰듯 몸을 쓰는 화가인 그의 그림은 아주 솔직하고도 담백한 어떤 일기처럼 느껴집니다. 매일을 사뿐히 걸어가는 시의적절과 결을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화가 노석미의 그림은 ‘사귐’을 자아냅니다. 서로 얼굴을 익히고 가까이 지내는 일. 자연과 사람을, 사람과 그림을, 마침내 글과 그림을 사귀게 할 그가 열두 달 시의적절을 장식합니다.
한 편 한 편 당연 길지 않은 분량이니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에 한 편씩 가벼이 읽으면 딱이겠다 합니다. 열두 달 따라 읽으면 매일의 시가 책장 가득하겠습니다. 한 해가 시로 빼곡하겠습니다. 일력을 뜯듯 다이어리를 넘기듯 하루씩 읽어 흐르다보면 우리의 시계가 우리의 사계(四季)가 되어 있을 테지요. 그러니 언제 읽어도 좋은 책, 따라 읽으면 더 좋을 책!
제철 음식만 있나, 제철 책도 있지,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기획입니다. 그 이름들 보노라면 달과 시인의 궁합 참으로 적절하다, 때(時)와 시(詩)의 만남 참말로 적절하다, 고개 끄덕이시리라 믿습니다. 1월 1일의 일기가, 5월 5일의 시가, 12월 25일의 메모가 아침이면 문 두드리고 밤이면 머리맡 지킬 예정입니다. 그리 보면 이 글들 다 한 통의 편지 아니려나 합니다. 매일매일 시가 보낸 편지 한 통, 내용은 분명 사랑일 테지요.
[ 2026 시의적절 라인업 ]
1월 한여진 / 2월 김상혁 / 3월 권민경 / 4월 김언 / 5월 남지은 / 6월 홍지호
7월 박상수 / 8월 김보나 / 9월 김이강 / 10월 신용목 / 11월 최지은 / 12월 최현우
* 사정상 필자가 바뀔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 2026년 시의적절의 표지는 글과 그림을 다루는 작가 노석미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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