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르네상스 직전의 유럽, 십자군 전쟁
콘스탄티노플 함락, 피어나는 르네상스의 불씨
최초의 르네상스인, 프리드리히 2세
1세대 개척자들의 시대
피사의 조각가, 니콜라 피사노
회화의 창시자, 조토 디 본도네
중단된 르네상스, 흑사병의 창궐
2세대 완성으로 가는 길
메디치 가문, 일어나다
집념의 천재, 브루넬레스키
유물 사냥꾼, 도나텔로
피렌체의 국부, 코시모 데 메디치
덤벙이 천재, 마사초
3세대 황금기의 르네상스
불꽃남자, 로렌초 데 메디치
작은 술통, 보티첼리
최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신성한 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온유, 라파엘로
에필로그
참고 문헌
[본 문]
니콜라의 표현력이나 기술을 보면 아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가 르네상스 조각의 첫 발을 내디뎠다는 것입니다. 그는 딱딱한 고딕 조각에서 벗어나 최초로 인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의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미술’에서 르네상스의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미술’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_피사의 조각가, 니콜라 피사노, 65쪽
우선 중세의 눈으로 조토의 그림을 바라봅시다. 얼핏 보기에도 중세의 그림보다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보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상당히 충격적으로 느껴졌을 법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절반이 뒤돌아 있다는 점입니다.
과연 우리는 포장마차에 쓸쓸히 앉아 있는 어느 아저씨의 뒷모습과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의 뒷모습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반면 중세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에는 모든 제자들이 정면을 보고 있습니다. 조토 이전의 화가 대부분은 이렇게 정면으로 그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조토가 전통을 깨고 뒷모습으로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_회화의 창시자, 조토 디 본도네, 77-78쪽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거대한 붉은 돔입니다. 제작자의 이름을 따라 ‘브루넬레스키의 돔’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돔은 무게가 자그마치 3만 7,000톤에 달합니다. 3톤 트럭 1만 2,000대 정도를 공중에 띄워 놓았다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이 돔을 건축하는 데 사용된 벽돌만 400만 개가 넘고, 돔의 크기만 폭 54.8미터, 높이는 34미터에 달합니다. 돔 자체만으로도 15층짜리 고층 아파트의 높이가 되는 셈이죠. 아래 예배당까지 생각한다면 30층 아파트 위에 다시 15층 아파트를 올린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5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멀쩡하게 서 있으니 당시로서는 최고의 엔지니어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_집념의 천재, 브루넬레스키, 124쪽
도나텔로가 다비드를 과감하게 미소년 누드로 표현했던 건 아마도 자신이 그리스 로마의 미술을 부활시키려 한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여주려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들을 떠올려 보면 비너스상이든 아폴로상이든 예외 없이 대부분 나체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예술가들은 왜 인체를 꼭 벗겨서 표현하려고 했을까요? 고대에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풍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나 로마 콜로세움에서 열린 경기에서 선수들은 활을 쏘거나 원반을 던지고, 레슬링을 할 때도 예외 없이 나체로 경기를 치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는 승부를 겨루는 목적뿐만 아니라, 육체의 아름다움을 뽐내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습니다. _유물 사냥꾼, 도나텔로, 155-156쪽
반면 마사초의 그림을 보면 ‘덤벙이’ 마사초답게 약간 정신없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마솔리노와는 다르게 아담과 이브를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해 놓았습니다. 마치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와 아저씨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이브의 표정을 보면 그녀는 세상을 잃은 듯 엉엉 우는 와중에도 자신의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며 터덜터덜 걷고 있습니다. 그 옆의 아담은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듯 몸을 숙이고 체념한 얼굴을 감싸고 있습니다. 지상 천국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처지였던 두 사람이 “다 끝났어…”라고 말하며 한탄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_덤벙이 천재, 마사초, 195-196쪽
〈프리마베라(봄)〉는 르네상스 예술에서 본격적으로 그리스 신화를 다룬 첫 번째 그림입니다. 생각해 보면 르네상스 문화운동이 시작된 지 벌써 200년이나 됐음에도 그리스 신화를 직접 그린 그림은 아직 없었습니다. 이는 보티첼리의 혁신성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분야에서든 변화를 일으키기란 정말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_작은 술통, 보티첼리, 240쪽
〈모나리자〉는 명실상부 인류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려진 모든 그림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러 가고, 가장 많은 해석 글이 존재하고, 가장 많이 패러디되었으니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그림이 왜 그토록 유명한지 정확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냉정하게 이 그림은 그저 평범한 귀부인의 초상화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처럼 스케일이 큰 것도 아니고, 어떤 비밀스러운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며,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그림은 유독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_최고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291쪽
메디치 가문의 지원이 끊긴 미켈란젤로는 이제 스스로 살아가야 했는데, 재미있게도 그는 첫 경력을 사기로 시작하게 됩니다. 미켈란젤로와 친하게 지냈던 메디치 가문의 사람 중에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Lorenzo di Pierfrancesco)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켈란젤로에게 큐피드상을 하나 주문하며 이상한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큐피드 조각을 땅에 묻었다가 꺼내서 고대 골동품인 것처럼 만들어줄 수 없겠느냐고 말이죠. 당시 르네상스의 여파로 고대 조각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었던 탓에 골동품으로 팔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말하자면 미켈란젤로에게 ‘골동품 사기’를 치자고 한 셈이죠. 그런데 미켈란젤로도 당시에 상당히 돈이 궁했는지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큐피드에 흙을 묻히고 살짝 고쳐서는 마치 고대 조각인 것처럼 바꾸어놓았습니다. _신성한 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308-309쪽
라파엘로는 왜 미켈란젤로를 헤라클레이토스의 자리에 그린 걸까요? 일단 확실한 건 원래 스케치 버전에는 미켈란젤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에 감명을 받은 라파엘로가 뒤늦게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추가하다 보니 자리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헤라클레이토스로 그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존경을 표시하려고 했다면 굳이 ‘인간 혐오주의자 철학자’였던 헤라클레이토스를 선택한 점이 의문입니다.
이는 아마도 라파엘로의 소심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라파엘로는 줄곧 자신을 무시했던 미켈란젤로에게 “전 형님을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데요?”라고 말하며 약을 올리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원래 있어야 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리가 아닌, 짓궂게도 우울증에 걸린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자리에 미켈란젤로를 그려 넣은 듯합니다. 미켈란젤로가 비아지오 사제를 지옥문의 미노스로 그린 것처럼 라파엘로도 그림으로 복수한 셈이죠. _온유, 라파엘로,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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