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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항가새꽃(고요아침 운문정신 92)

  • 문설희
  • 고요아침
  • 2026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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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ISBN-13 : 9791167242860
쪽수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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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강대선 (시인)
문설희 시인이 가뭄에 해갈하듯 『거기 항가새꽃』으로 세 번째 뚜껑을 열었다. 우선, 시인의 시편들은 ‘사는 이야기’로 세태를 담아내기도 하고, 내면을 투영하기도 하며, 사유의 경지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삶의 서사를 이루어낸다. 그의 시는 ‘살림 세운 웃대 할머니’를 소환하기도 하고, 골목시장에서 몸으로 써 내려간 키 아담한 아낙의 경전을 읽어내기도 한다. 시인의 시편들이 절절이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시편마다 엄결한 시어들이 시인의 생을 올곧이 담아내어 독자들에게 표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목차

[목 차]

시인의 말 05

 

제1부

 

벨트스패너 13

사월 15

서른에 나는 16

봄이 하는 일 18

두암동 말바우 시장 19

나의 장례식 20

곱 할머니 22

성에 24

혹한기 25

민들레 27

수수꽃다리 29

수박 31

혀 33

바람이 묻네 구름이 묻네 34

꽃 피다 35

타워크레인 36

자꾸 눈물이 난다 38

 

제2부

 

못 43

지하철 45

용봉초록습지 47

명봉鳴鳳역에서 48

골목 시장 부처 49

유등축제 51

붉은머리오목눈이 52

거기 항가새꽃 53

청수국 그늘 아래 54

대파 56

서시천에서 57

호수 위의 달그림자 59

봄비 61

트로피 62

끝말잇기 64

175그램의 무게 66

옛집 68

어미 새 69

월산동성당 쉰 돌 70

 

제3부

 

메모지 73

신호등 74

미나리 76

긴 의자 77

꽃 지는 날 79

노각 80

구멍 81

무 82

날갯짓하다 84

비움과 채움 86

방문객 88

완숙을 위하여 90

날 세우다 92

밥 94

낙원 96

핫한 98

애련리의 오후 100

퍼팅 102

읍소 104

 

제4부

 

에어캡 109

사각지대 110

어느 유기견 112

틀어진 눈물 114

울마 가족, 별이 되다 115

청맹과니 117

프란체스코 118

백팔배 120

비엔날레 공원에 서 있는 양버즘나무 122

위기를 이긴 대화 123

마스크 124

피날레 126

겨울나무 128

멸칫국물 130

시꽃 131

둔황 가는 길 133

구름 134

동백꽃 135

 

해설_ 극서정시의 여운과 자아 성찰의 시학/이지엽 137 

[본 문]

벨트스패너


꿀 먹은 벙어리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더니 냉랭하다
화난 사람처럼 입 꾹 다문 채 꿈쩍도 않는다
꿀병을 보듬어 안고 사정을 해본다
손아귀에 온 힘 다해 돌려봐도
깔보듯 완강하다
가슴이 답답하다
무슨 수가 없나
허둥대는 나를 거들던 남편이
밖으로 나가더니 뭔가 들고 온다
새총같이 생겼다
손잡이가 있고
고무로 된, 길고 머리띠 같은 선이
동그랗게 달려 있다
허리띠 벨트처럼
병에 맞게 동그라미를 조절하여
힘껏 돌린다
탁!
세상이 열리는 소리
병뚜껑이 열렸다
가뭄 해갈하듯 막힌 곳 뚫렸다
가려운 곳 시원하게 긁어주는
해결사 벨트스패너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거기 항가새꽃


순면처럼 유하고 보드라운
떡잎 시절 그저 한 포기 풀이었으나
햇발 날로 더해지자
톱니 모양 이파리 갈라지고
날 세운 가시 앙상하네

살림 세운 웃대 할머니처럼
서슬 퍼런
보라색 짙은 향 폴폴 푸는
꽃집 한 채

꿀벌이라든가 호랑나비
스미듯 조신하게 날아와
꿀을 빠네

산새와 벌 나비만이 친구인
인기척 드문 선친 산소
이웃 되어
묵묵히 웃고 있네
거기
항가새꽃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미나리


집 앞 무논에 미나리를 심었어
방석 두 개 깔아놓은 면적
열 살 무렵

어머니, 흰 광목 앞치마 두르고
간잼이회 만들어 주셨어
먹고 또 먹었어
늦은 밤 배탈이 났어

미나리 듬뿍 넣은 간잼이회,
그 후론 없는 일

두어 해 지나

당신께 일어나선 안 되는 일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집 앞 무논의 푸른 미나리
지금도 눈에 선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에어캡


나는 여백이다
핵심에서 비켜나 있는
너를 살리는 게 내 존재 의미다
네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
무게도 비중도 미미하다
다만 완충시킬 뿐 중심은 따로 있다
중심을 살리는 일
중심이란 중심 외의 것이 있어야
그것이 되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을 더 강하게 한다

여백의 미

세상엔 중심이 있고 가장자리가 있다
사람들은 대개 중심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변두리가 있어야 중심이 있는 것
만물의 수혜, 분복은 갖가지
중심이라고 우쭐하지 말라
그 무엇이 아니라
제자리를 지키는
그것을 살리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동백꽃


남녘에서 웅크렸던 그녀가 몸을 연다

맹추위에도 통통한
항아리처럼 오목한 통꽃
가지런한 솜털이 촉촉하다

길게 뻗은 노란 수염 한 모두기 젖혀보면 통꽃 자루 밑에 다디단 동백 꿀

찬 겨울 눈 속
꿀을 보물처럼 숨겨둔 그녀
그녀 곁을 떠나지 않은 동박새가
동백 꿀로 겨울을 난다
몸속 꿀을 다 내어준 그녀
툭, 몸을 던져 바닥에 떨어진다

속옷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군내 나는 지폐 몇 장
내 손에 쥐여주고
떠나신
어머니 

저자 소개
저자 : 문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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