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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 요 8:51.
도마복음 1장과 가장 유사한 관주성경 구절이다. 사랑의 생명은 영원하여 죽음도 삶도 생명 작용일 뿐, 원래 죽음의 자리는 없다. 그러나 모두는 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니, 오늘 죽음의 맛을 보지 않을 사람이 드물 뿐이다. 태어나서 죽음의 맛을 보지 않을 사람이 열에 한 명 정도이며, 이들이 하나님의 십일조를 의미한다. 이들을 일러 도덕경 50장은 ‘옳게 삶을 다스리는 자’(善攝生者 선섭생자)라고 하였다. <p. 22>
비움의 궁극이며 도타운 고요함을 지키는(致虛極, 守靜篤-도덕경 제16장) 보이지 않는 도(道)가 홀로 있으면 변할 수 없고 알릴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만물(名)의 어미인 천지를 통하여 천변만화(千變萬化)를 경험한다. 그리고 무극(無極)으로 되돌아오는 도의 움직임(反者, 道之動-도덕경 제40장)이 영, 혼, 백(靈,,魂,,魄)의 생명 작용이다. 이름 지어(名) 나타난 천지가 만물의 어미로 쓰이게 된 까닭은 이름도 없고(道) 쓰임이 없는 공간인 태극이 천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도덕경 제1장). <p. 27>
이는 마음의 안(內)과 마음 밖(外)이 둘이 아니고(不二) 하나(根源-하나님)의 진리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안과 밖뿐만이 아니라, 선(善)과 불선(不善), 미추(美醜), 유무(有無), 난이(難易), 장단(長短), 고하(高下), 음성(音聲), 전후(前後)가 생명 작용을 위하여 서로(相)가 없으면 홀로 서지 못함의 이치와 같다(도덕경 제2장). 혹자는 범신론(汎神論)이라고 비방할 수 있다. 그러나 근원 의식이 깃들지 않은 우주 만물은 존재할 수 없다(物我一體). <p. 32>
숨겨지고 감춰진 존재(道-無-天地之始-太極1-도덕경 제1장)는 자기를 드러내고 나타내려고 한다. 그의 들을 귀를 갖지 못한 자는 이미 드러나고 나타난 것(名-有-萬物之母-天地-2-도덕경 제1장)만 알려고 한다. 천지의 시작인 태극은 감추고 숨기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물의 어미인 천지를 통하여 이미 드러내고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한 면만 보는 눈은 나타나지 않은 존재는 믿을 수 없다 하고(유물론자), 또 다른 한 눈(영지주의자)은 이미 나타나 있는 존재도 헛된 것일 뿐이라고 믿는다. <p. 42>
선지자들의 배역함이 우는 사자와 같이 혼(魂)과 재산을 움킨다(겔22:25). 이들에게 자신의 욕심으로 인하여 털려 본 사람만이 자신 안에 있는 사자를 잡아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명을 존중하여 일어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종교화하여 그를 다시 사자로 숭배하고 있음이 현실이다. 도덕경은 화와 복에 대하여 진심을 알리고 있다. 화(禍)는 복(福)에 기대고, 복은 화에 엎드리는 일은 도의 근원(根源)을 찾기 위함이다(禍兮, 福之所倚, 福兮, 禍之所伏。 孰知其極?-도덕경 제58장). 몸을 가지고 있는 한 누구도 화와 복의 순환으로 나타나는 생명 작용을 벗어날 수 없다. <p. 50>
바울의 표현이다. 겉 사람과 속사람은 서로 다투면서도 함께할 수밖에 없는 한 몸이다. 속사람은 집을 되찾아도 겉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고 포용한다. 이는 없이 계신 하나님(근원 의식)의 사랑이 생명과 하나임을 증명한다. 천지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혼자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도덕경 제7장). 사람이 큰 자가 되려고 억지로 일을 꾸미면 죽고, 같이 살기 위하여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 영원하다(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活-도덕경 제73장)는 의미와 같다. <p. 72>
가라지조차도 추수 때까지는 곡식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하나님 사랑이다. 비록 양식이 되지 못하여 불살라질지라도! 선(善)은 불선(不善)을, 미(美)는 오(惡)를 품고서 내 안에서 존재한다. 우주는 생명의 쓰레기라도 함부로 하지 않지만 인자하지도 않다(天地不仁-도덕경 제5장). <p. 184>
내가 지금 있는 시간은 언제나 머리와 꼬리가 물리는 중간 점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는 지금과 함께 존재하는 생명 작용이다. 동시에 나타나는 과거와 미래도 지금 살아서 숨 쉬는 생명이라는 관찰자가 없으면 나타날 이유가 없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 같이 착각할 뿐이라고 현대의 양자역학으로도 설명이 된다. <p. 210>
도덕경은 선(善)의 상대를 악(惡)이라 하지 않고 불선(不善)이라 한다. 영성(靈性)의 궁극적 목표는 선도 아니고 불선(不善)도 아니다. 그러나 그 아닌 것을 알기 위하여 선과 불선으로 나누는 세상의 경험이 필수이다. 선과 불선은 보이는 세상(有)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선도 아니고 불선도 아닌 보이지 않는 것(無)이 따로 존재(Exist)한다. 그러므로 있음은 없음에서 비롯되어 나타난 것이지만(有生於無, 유생어무-도덕경 제40장), 유무상생(有無相生-도덕경 제2장)은 생명 작용의 필수적 덕목이다. <pp. 275-276>
아름다움만 추구하면 이미 더러움이고(斯惡已), 선함만 안다면 이미 선이 아니다(斯不善已). 있음과 없음을(有無相生), 어려움과 쉬움을(難易相成), 길고 짧음을(長短相交), 높음과 낮음을(高下相傾), 내가 내는 음과 들리는 음을(音聲相和), 앞과 뒤를(前後相隨), 안과 밖을(內外相接)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생명 작용으로 만들 때(도덕경 제2장) 멍에는 공의롭고 온유한 쉼(안식)이 된다. 근원 의식(없이 계신 하나님)이 산 자(마 22:32)에게 주는 멍에를 공의로우며 온유하게 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보이는 몸은 매번 죽을 뿐이다. 진정한 생명인 영혼의 성장을 위하여 멍에(소비재)를 지는 것임을 알면 된다. 이를 알면 옳게 삶을 다스리는 자가 되고, 죽음의 자리가 없는 줄 알므로(善攝生者 以其無死地-도덕경 제50장) 쉼(안식)을 누릴 수 있다. <p. 323>
감추어지고 비밀스러운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게 될 때 드러난다는 의미다(도마복음 제3-2장).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안다는 의미는 나의 나 됨을 찾았을 때다. 도덕경도 남을 아는 것은 사리에 밝지만 자기를 아는 자(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는 깨달은 것이라고 했다(知人者智, 自知者明-도덕경 제33장). <p. 374>
도(道)를 알면 풍요로움에 거할 수 있는 이유는 낳고, 기르고, 키울 뿐 소유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지배하지 않기 때문이다(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도덕경 제10장). 몸 역시 넉넉함을 알고, 한계를 깨닫게 되어 욕되지 않고, 두렵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도덕경 제44장). 먼저 온 자(魂魄-겉 사람)가 하늘의 용과 땅의 짐승의 산고를 겪고 난 후 나중 된 자(靈-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혼백(魂魄-天地-2)은 영(靈-太極-1)으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둘이 아니기(不二) 때문이다. <p. 382>